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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2017 !

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

침신대 피아노과

기억을 추억으로 고이 접어 마음 깊이 넣어두며 다시 한 번 시간과의 이별을 하는 시기가 왔다.
2017년의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만감이 교차하는 경험은 이맘때쯤이면 누구나 한번 쯤 하게 되는 연중행사 같은 것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격동의 시기를 지나왔고 급기야 땅마저 요동치며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일도 겪으며 그 상처가 치유되기도 전에 시간은 야속하게 우리를 떠나려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그리 큰 지진이 아니라고 하는 강도에도 유리가 깨어지고 땅이 갈라지는 모습에 두려워하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연약함을 다시 깨달으며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무엇이 중요한가?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안지를 마련하는 것이 송년을 위해 준비해야 하는 우리들의 과제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무엇이 되고자 하는데 온 정신과 관심을 쏟아온 것 같다.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되어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마음으로 동의하지 않고 행동으로는 실천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하고 손해를 끼치고 고사시키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진영을 나누고 그 진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부당함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고 반대로 자신의 진영을 위해서는 비상식적인 편법도 허용하는 무질서함은 결국 공동체를 병들게 하고 와해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사람의 편파적 한계라고 지나칠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조종하고 역사하는 사탄의 권세에 대해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실질적인 이익 창출을 위한 쟁취적 투쟁이라고 보기 전에 영적 전투의 최전선이라는 각성이 필요하다. 


이런 각성도 중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각성한다고 해서 집단적 이기심과 개인적 탐욕에서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분의 보혈로 날마다 정결함을 받고 그분의 부활을 바라보며 두려움을 이겨야 한다. 이런 결의를 담은 간절한 기도가 더 많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송년의 때일 것이다.


한 해를 보내는 기도와 함께 헨델(Georg Friedrich Handel, 1685~1759)의 메시아 중에서 1부 일곱 번째 곡인 “깨끗케 하시리라”를 추천한다. 이 작품은 말라기 3장 3절의 말씀을 가사로 작곡된 것으로 바로크적인 청량한 리듬이 특징인 합창곡이다. 그리스도 탄생의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배치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전달하려는 헨델의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인다.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재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이기심과 욕망, 탐욕으로 얼룩진 우리들의 내면이 다시 갱신되고 정결하게 비워지는 송년이면 좋겠다. 그래서 깨끗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고 그 시간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의로운 재물이 되기를 소원해 본다. 아름답게 정돈된 헨델의 음악과 함께…. 아듀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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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