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교회는 전체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 교회 생태계는 악화되고 해외 선교는 위축됐으며, 다음 세대는 빠르게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신학교 역시 지원자가 줄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일 교회의 힘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결국 교단 전체가 다시 힘을 모아야 한다는 단순하지만 본질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협동선교(CP)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다. CP는 단순한 헌금 프로그램이 아니다. 교회가 가진 선교 역량을 교단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확장시키는 공동선교의 동력이다. CP는 개교회 선교사역을 확장시키는 기반이며, 미 남침례교회가 세계 최대 교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구조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 남침례교는 1925년 협동프로그램을 결의한 뒤 세계선교, 국내 개척, 신학교 사역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는 협력의 힘이 교단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 교단도 CP를 통해 건강한 연합의 역사를 만들어오고 있다. 관심과 사랑으로 매년 많은 교회들이 참여해 건강한 교단을 세워가고 있다. 함께 협력하는 교단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으로 시작된 CP는 단순한 재정 모금이 아니라 ‘교단을 함께 세우는 운동’이라는 정체성
영통영락침례교회(고요셉 목사)는 지난 11월 16일 교회 본당에서 ‘가을 음악회’를 개최했다. 이번 음악회는 ‘2025 영락 가을 축제’의 일환으로 지역 주민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전하는 무대로 꾸며졌다. 음악회에 앞서 고요셉 목사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롬 8:37~39)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고 목사는 “가을날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듯, 우리의 삶도 소중하다. 대중가요의 95%가 사랑 노래고, 찬송가의 가장 많은 주제도 사랑”이라며, “세상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고 환경에 의해 끊어질 수 있지만, 성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말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그 사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선포했다. 음악회는 헵시바 중창단의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주 은혜가 내게 족하네’ 찬양으로 문을 열었다. 이어 영통영락교회의 임마누엘 성가대 지휘자이기도 한 바이올리니스트 정우혁이 무대에 올라 영화 ‘시네마 천국’의 OST ‘시네마 파라다이스’, 파헬벨의 ‘캐논’, 이권희의 ‘사명’ 등을 연주하며 가을의 정취를 더했다. 성도들의 뜨거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는 지난 11월 24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글로리아홀에서 74회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교회협은 신임 회장으로 정훈 목사(예장통합 총회장)를, 신임 총무로 박승렬 목사(기장)를 선출했다. 이번 총회는 조성암 대주교의 개회선언으로 문을 열었다. 총회는 각종 보고와 안건 처리에 이어 임원선거와 신·구 임원 이·취임식을 진행했다. 총무 선임 투표는 단일 후보로 추천된 박승렬 목사가 총 114표 중 찬성 94표, 반대 16표, 무효 1표, 기권 3표로 당선됐다. 박 목사는 앞으로 4년 동안 교회협 총무직을 맡는다. 박 목사는 “약자와 사회의 아픔을 위해 함께해 온 NCCK의 신앙적·사회적 전통을 이어받겠다”며 “한국교회의 명예를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신임 회장은 회원 교단 순번에 따라 정훈 목사가 선임됐으며, 부회장으로는 황규진 목사(기감), 김병윤 사령관(구세군), 양용순 회장(성공회여성단체협의회·여성), 김석원 청년(청년), 원종호 총회장(루터회), 나이영 사장(연합·CBS)이 임명됐다. 서기는 이병현 목사(복음), 회계는 김승민 목사(예장)가 맡는다. 이임하는 김종생 총무는 “에큐메니컬 운동
여름 햇살 살며시 담은 바다는 파도를 만들고 바다를 찾아 안긴 몸 흔들흔들 띄우느라 하얗게 땀 흘리는 파도는 하늘의 마음을 담았다 한여름 뜨거운 햇살 기꺼이 품고 흰 파도를 내어주는 바다는 사랑이다.
권서인의 사명은 설교나 교회 개척이 아니라 성경을 보급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피터스는 한양에 머물기보다 항구도시, 교역로, 새로운 지역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니며 성경을 보급시키려 했다. 인천 제물포를 시작으로 군산과 목포를 거쳐, 마침내 그의 발걸음은 제주도로 향했다. 그 시대의 제주는 본토 조선인 조차 접근이 쉽지 않은 특수한 지역이었고, 복음도 전해지지 못한 곳이었다. 피터스 선교사가 제주를 탐방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영국 성서공회 한국 총무‘였던 ’켄모어‘의 후원이 큰 역할을 했다. 그의 권유와 지원에 힘입어 피터스는 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섬, 당시 서양인들에게 ‘켈파트(Quelpart)’라 불리던 제주도를 향하게 된다. ‘켈파트’라는 이름에는 흥미로운 역사가 담겨 있다. 17세기 초 동아시아를 오가던 네덜란드 갤리선(함선의 한 종류) 가운데, 1630년 무렵 제작된 배의 이름이 ‘켈파트 드 브락’이었다. 이 배가 1642년 제주를 발견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 보고했고(1648년), 그 기록을 통해 제주가 처음으로 서구에 알려졌다. 이후 유럽에서는 이 배의 이름이 섬의 이름으로 오해되었고, 특히 1668년 하멜 표류기가 출판된 뒤 서양 지도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