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리며 축복합니다!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2기 사역을 시작한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한국은 완연한 봄 날씨로 그와 관련된 봄 꽃 소식을 연일 전해 듣고 있습니다. 반면에 미얀마는 건기 막바지로 매우 덥고 전기와 물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얀마는 4월 11일에 새해가 시작되면서 신년 연휴(11~20일)와 물 축제 준비가 한창입니다. 이 때 엄청난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물 부족상황이 더 심각해지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ㅅㄱ사 또는 ㅅㄱ단체는 믿는 사람들을 세속문화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랑빛 ㄱㅎ성도들과 에스더 공동체아이들도 수련회에 참석합니다. 수련회가 안전하게 진행되고 참석한 모든 자들이 ㅅㄹ충만하고 믿음이 견고해 질 수 있도록 중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1. 에스더 청소년 기*독교 공동체 1년 안식년을 보내고 오니 아이들은 주님의 은혜와 두 분 ㅅㄱ사님의 세심한 돌봄으로 인해 많이 성숙해져 있었습니다. 제가 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월에는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먼저 슬픈 일은 에스더 공동체
6월 8일 선교사들을 디브리핑하고 상담하고자 네팔에 도착한 우리는 개인 상담을 시작으로 이튿날부터 3일간 오전엔 남자 집단 상담과 미술치료, 오후와 저녁엔 부부상담, 개인, 가족 상담을 진행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지진으로 인해 두려움과 무기력감, 탈진, 죄책감, 불면증 등으로 어려워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지진 후, 침대나 소파에만 누우면 흔들리는 느낌이 계속 있고 지진이 또 날 것 같은 두려움에 힘들어 했다. 어떤 분은 지진 후 50여 일간 밥을 전혀 먹지 못해 치료차 한국으로 들어간 분도 있었다. 하지만 이 선교사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지금 한국에 오면 어떻게 하냐? 그곳에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라는 한국교회의 반응이어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선교사들은 모두 구호사업에 나서서 한국에서 보내온 돈으로 물품을 이곳저곳에서 사서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보살피는 일을 하느라 너무나 바빴다. 이들의 사역지는 대부분 차로 험한 길을 여러 시간 동안 가서 또 며칠 동안 산을 넘고 또 넘어서 가야만 되는 곳에 있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들은 많이 지쳐 있었고 탈진해 있었다. 이들을 위해 누군가 들어주고 쉬어야
2015년 4월 27일 아침 네팔 선교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금 여진이 계속 오고 있어요! 지난 3일 동안 집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원에서 유숙했어요. 사모님들이 무서워하고, 지진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고 있어요. 국제단체에서는 어제부터 멤버케어 팀이 들어오고 있는 것 같아요. 저희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하고 특별히 사모들에게는 청심환도 많이 필요해요.” 청심환? 그것은 정말 위급할 때 사용하는 구급약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약이 필요한 상태라고? 그리고 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나의 상식으로는 지진 가운데 있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지낼 곳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선교사님들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것이었다. 바로 항공권을 구입하였다. 5월 12일 오후 네팔 카투만두에 도착 후 마중 나올 선교사님을 기다리는 순간에 제2차 강진이 발생하였다. 지진을 처음 경험한 나는 지진으로 인해 우왕좌왕 하는 주변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흔들리는 공항 청사 앞에 서 있는 나에게 나무가 흔들리고,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가리키면서 속히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선교사들을 위해 가져 온 반찬과 의약품, 그리고 한국위기관리재단의
지난 고난 주간에는 꽃샘추위에 조금은 쌀쌀한 새벽공기를 맞으며 새벽기도회에 다녔습니다. 부활주일이 지나니 벚꽃이 피어나면서 어느새 만개해 가고 있습니다. 고난 뒤에 있는 영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생각됩니다. 고난과 영광,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 삶 속에서 동전의 양면처럼 매일 실현되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주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호카야마 청년의 침례식 본래는 하카타교회에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릴 예정이었지만, 호카야마 형제의 바람으로 와지로교회에서 부활주일 예배를 드리게 됐습니다. 이날 호카야마 형제의 침례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와지로교회에 출석한지 일 년정도 됐는데 이날 예수님을 주인과 구주로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침례에 앞서 신앙간증을 했습니다. 뉴질랜드 유학시절 함께 공부하던 한국인 친구가 자신을 교회로 데리고 갔는데 교회의 한국인들이 따뜻하게 대해주고 자신을 잘 챙겨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학 중에 계속 교회를 다니다가 일본으로 귀국하게 됐는데 그 후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마침 집 근처에 있는 와지로교회에 찾아오게 됐다는 것입니다. 일 년간 담임인 죠마에 목사님과 성경공부를 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을 한 것입
며칠 전 남아공에 요청했던 비자취득에 꼭 필요한 현지교회의 초청장이 한 달여 만에 도착했습니다. 이 일에 주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2주 늦어도 3주면 오는 편지가 너무 지연되면서 우편물 분실을 우려했는데, 지난 금요일 아침 7시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저희가 임시로 살고 있는 시골마을에 저와 이름이 같은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편배달부는 주소지를 확인하지 않고 이름만 확인하고 그곳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 분은 항상 자신의 것이 아니면 무조건 반송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에는 돌려보내지 않고 뜯어보았다가, 누군가에게 중요한 편지라 여겨져서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정말 주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 한국에서 준비해야 할 서류 준비로 분주했습니다. 특별히 요즘 남아공 비자법이 강화되어 비자취득이 쉽지 않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많은 수수료를 들여 대행업체의 도움을 받아도 여러 번 거부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저희는 예전처럼 직접 서류를 준비해서 접수하려고 합니다. 인터뷰도 해야 합니다. 특히 재정 증명과 은행 잔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기도로 잘 준비해서 3년 봉사자비자(Visitor’s Vis
1. 위기(재난) 관리 평가 가. 선교사회의 좋은 전통 기독교를 억압하고 선교활동에 적대적인 네팔의 분위기와 정부정책으로 선교사회 내에는 서로 돕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초창기 선교사들로부터 선교사들 간의 친목과 화합을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하는 좋은 전통이 세워진 것이, 갑작스럽게 닥친 대지진이라는 큰 재난 중에서도 선교사회가 힘을 합쳐 연합 구호활동을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나. 비상 연락망 확보 또 네팔인들의 느긋한 천성과 견고한 공동체 의식으로 인해 재난상황에서도 사회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 또한 선교사들이 구호활동에 안심하고 집중할 수 있었던 주요한 여건이 되었다. 음성통화가 불가능한 상태였음에도 3G 데이터 통신이 작동하여 카카오톡(카톡) 통신이 가능했던 것이, 신속하고 효과적인 구호활동을 가능케 했던 절대적인 요소였다. 재난지역으로 급파된 구호물품 운반팀과 이루어진 카톡 통신으로 현지 상황파악은 물론, 구호물자 확보, 재정 확보, 자원봉사 자원 활용, 미디어 정보전달 등에 있어서 실시간 정보교류가 이루어짐에 따라, 재난대책본부 상황실은 순간순간의 필요에 빠르게
동서 길이가 20km, 남북 길이만도 10k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으로 그 중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라이더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앙코르톰과 앙코로와트가 가장 유명하다. 머리가 7개인 나가(뱀신) 두 마리를 서로 껴안은 신들이 다리 양쪽으로 쪼그리고 앉았는데 왼쪽에 54명의 선한 신(善神)이고 오른편의 54명은 악신(惡神)인 아수라 상이 있다. 앙코르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장례식을 위해 지어진 하나의 묘지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하여 37년 동안 하루에 동원된 인원만도 10만 명이 넘었고, 코끼리가 4만 마리나 동원됐다. 이 사원을 짓기 위하여 쓰인 사암은 여기서 60km 떨어진 톤레삽을 통하여 운반해 왔다. 우기와 건기라는 두 계절만 존재하는 열대지방으로 건기가 되면 거의 비가 오지 않아 메마르고 건조하여 먼지가 많이 날린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4개월 가량 비가 내리지 않아서 신작로길인 마을 지붕과 나무들에는 뿌연 먼지가 쌓여 있었다. 우기에는 비가 6개월간 거의 매일 같이 오는데, 농민들은 농사 준비를 해서 8월에 모내기를 시작하고 9월이 되면 온 벌판이 푸르게 변한다. 대호수(大湖水)라는 의미의 톤레샵(Tole Sap) 호수는 지름이 100Km이고
안녕하세요. 행복한 선교사 비크럼, 박예진입니다. 이곳은 찬 공기가 차츰 따뜻하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엔 봄이 오는 기쁨을 한껏 만끽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공기도 점점 따뜻해지고 있겠지요. 겨울이 추울수록 봄을 기다리고 반기게 되는 것 같습니다.저희의 생활 2월 12일에 포카라로 집을 이사했습니다. 포카라는 저희가 살던 너우다라에서 22km떨어진 곳 입니다. 포카라는 해발 800m높이에 위치한 도시이고 너우다라는 해발 1,500m에 위치한 산동네입니다. 겨울에 너우다라는 많이 춥습니다. 여러겹 옷을 입어도 햇살이 거의 들지 않는 방 안은 항상 차갑고 난방도 없어, 세 달의 겨울을 지내고 나니 저희의 몸에 이전같지 않은 증상들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9일 동안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했고, 비크럼 선교사는 기침과 코막힘과 고열과 두통을 번갈아가며 10일이상 앓았습니다. 따뜻한 포카라로 이사를 하고 이틀 후에 저는 몸이 나아 건강해졌고 비크럼 선교사도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회복중입니다. 기침이 끊이지 않아 병원을 찾아가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에 염증이 생겨 약을 먹으면 나을거라 하여 약을 복용중입니다. 비크럼 선교사의 건강이 회복되어 가
지난해 여름 한국을 방문하는 3개월 동안 선교센터의 게스트룸에 거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비타의 가정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중에서도 러이사와 치열한 접전을 벌였던 슬로뱐스키와 마리우풀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마린카 근교에 작은 마을(꾸락호바)에서 거주했다. 그 가정을 통해 아들 지성을 동역자로 세워 이 지역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쿠락호바라는 마을은 키예프에서 동남부로 약 800킬로 떨어진 곳으로 도착하는 동안 3개의 검문소(controlpoint)를 지나야 했다. 무장을 한 군인(경찰)들이 통행차량을 검문했고, 신분증 검사와 방문 이유 등을 묻는 것으로 어렵지 않게 통과를 시켜 줬다.10여시간을 달리는 동안 느꼈던 것은 좌우로 펼쳐진 광활한 대지는 위대함과 함께 평온함을 줬다. 반면 작은 마을들을 지나며 언뜻 비춰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한없이 굳어 있었고, 한겨울의 자연과 같은 차가운 느낌이었다. 목적지인 쿠락호바에 도착해 동행한 비타의 안내를 받아 피난길을 떠난 한 가정의 처소에 여정을 풀었다. 25000여 명의 인구가 모여 살았다는 이 지역에는 현재 얼마의 인구가 유입되고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화력발전소는 있지만 가스가 중단된 상태인지라 가정마다 전기
2016년 2월 22일(월)부터 28일(주일 새벽)까지 샘밭교회 15명은 베트남을 거쳐서 캄보디아 비전트립을 다녀온 뒤 1주일이 지난 어제, 저녁식사와 겸해서 시작된 캄보디아 비전트립 정리를 위한 모임은 늦은 시간까지 감동과 비전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했던 노 자매님도 어느새 친근한 지체로 웃음과 친밀한 주님 사랑을 입술로 간증하고 있다. 작은 농촌교회에서 아직 파송선교사도 없는 선교사역이지만, 담임목회자 주도로 이루어지는 선교가 아니라 성도들 주도로 조용하지만 감사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다.비전트립의 목표는 예수님의 명령인 선교에 대한 발걸음을 내디뎌서 베트남과 캄보디아 사람들을 만나 동일한 생명을 가진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배우고, 참가자들에게 세계를 향한 비전을 품게 하고,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의 소중함을 일깨워서 자신이 할 수 있고, 해야 할 사명을 발견하며, 이금춘 선교사의 사역을 배우고,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협력의 마음을 배워 기도하기 위한 것이다.2008년 샘밭교회에 부임한 이후, 교회의 변화를 기다리기만 하는 시대는 지냈다는 판단을 하고, 교회 리더들과 농촌에 위치해 있지만 열정적으로 사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