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교회가 당면한 큰 문제는 종교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종교 다원과 포스트 모던니즘의 영향은 점점 더 단 하나의 객관적 진리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는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의 복음을 과연 유효하게 선언하고 선포된 복음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을 가지고, 그들의 삶과 생활을 바꿀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 혹은 교회 중심적 배타주의를 고수하며 신앙을 이끌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종교들이 자기 절대성과 적극성을 주장하고 서로 상이한 입장들이 공존하게 됐다.종교 다원주의란 종교 다원 현상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다원적인 종교들을 동일한 지평선에서 바라보며 다원적 종교들의 궁극적인 것의 실제를 주장하는 종교적, 신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 다원주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어떤 특수하고 고유한 종교로 바라보지 않고 다양한 여러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데 문제가 있다.따라서 기독교만이 유일한 종교가 아니라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의 진리가 있고 나름대로의 구원의 길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기독교는 그 여러 종교들 중에 하나일 뿐이라는
요즘처럼 사건 사고가 빈번한 적도 없다. 화재사고를 비롯해, 교통사고, 자식이 부모를 구타하는 사건,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버리면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한강 투신은 고통이 덜한 자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목숨에 미련이 없어도 고통은 두려운 사람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 한강다리에 선다고 한다. 하지만 강은 품 안으로 뛰어드는 이들에게 더없이 가혹하다. 한껏 가속이 붙은 사람 몸이 물과 부딪힐 때 충격은 맨땅에 그대로 떨어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에서 높이가 37m인 청담대교는 아파트 10층과 맞먹는다고 한다. 한강 다리 중 15m로 가장 낮은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져도 아파트 4, 5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준다.투신한 사람을 건져보면 등, 배 부위 속옷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된다. 떨어지는 동안 공포에 떨다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강은 의식 없는 생명을 집어 삼키고 태연히 입을 닫는다. 다리 난간에서 발을 떼는 순간 후회해도 그땐 돌이킬 수 없는 투신하면 절반이 사망하는 죽음의 낙하다. 그 치명적 선
최근 한국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목회자 세습을 반대하고 이를 결의했던 교단에서 편법적인 목회자 세습이 이뤄지는가 하면 대형교회가 조세 포탈 혐의로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모 교회는 교회가 분열된 상태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소송을 불사하고 갈등을 겪고 있으며 목회자의 윤리적인 문제가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멈출 수 없는 기관차처럼 쉼없이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달려왔다. 끊임없이 성장세를 유지했던 한국교회는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영적 성숙을 대비하지 못하고 비대해진 교회상을 보이며 취약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교회 성장과 제자 양성의 사명을 감당하며 성장한 한국교회였지만 그 내면에 보이지 않았던 내부의 관행들이 치부로 드러나는 상황이다. 교단이 앞장서서 교회 세습을 반대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법을 제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사역적인 면에서는 정당하다고 당사자들은 주장하지만 상식적인 측면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영광을 위해 행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그 말을 귀한 복음을 값싼 복음으로 격하시키는 위험한 발언임을 알아
3월 1일은 삼일절 94주년이 되는 날이다.한국교회가 해마다 삼일절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은 삼일운동의 중심에 한국교회가 있었고 한국교회는 이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했기 때문이다. 독립선언문에 서명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거의 절반인 16명이 기독교인이었고 이 독립운동으로 인해 일제의 가혹한 박해를 가장 많이 받은 곳이 한국교회였다. 그래서 삼일독립운동을 가리켜 기미독립운동이라고도 한다.1910년 이래 한국은 일본의 조선총독부 통치하에 놓여 있었는데 제국주의 침략에 대해 한민족의 항일독립투쟁은 각지에 의병을 일으켜 널리 민족계몽운동으로 발전하여 갔던 것이다. 일본은 이와 같은 민족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헌병 경찰 제도를 실시하여 항일독립운동 투사들을 학살, 투옥하고, 일체의 결사와 언론활동을 금지하기도 했다.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우민정책을 실시해 민족의식의 성장을 억누르고, 고도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박탈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무단정치는 한국의 고유문화를 말살했을 뿐만 아니라 토지, 광산, 철도, 금융 등 모든 분야의 이권을 독점 경영했으며, 한민족의 경제발전마저 극도로 제한했던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해외로 망명하고, 특히 무력투쟁으로 혹은
매년 2월은 졸업시즌이다. 유치원 졸업에서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소정에 과정을 이수하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 있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진출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졸업이란 학생이 학교에서 교과과정을 마치는 것을 뜻한다. 사람의 일생에 있어서 졸업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자랑스러운 일 이 아닐 수 없다.자퇴나 휴학 또는 유급 등으로 졸업을 못한다면 졸업장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급학교로 진학을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런 불상사가 없이 학교를 졸업하게 됐으니 정말 복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도 소위 졸업 한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바로 광야학교에서 성민(聖民)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훈련과정을 마치고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하나님은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신 후에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이와 같이 학교를 졸업하는 기독 학생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바라면서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학교는 배움의 터다. 사람들이 학교에 다니는 목적은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시험을 치르는 목적도 배운 것을 잘 익히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
한국사회가 정신적 혼란기를 맞아 목회자로서 할 말이 없게 됐다. 그 이유는 비종교인 90%가 종교를 가질 의향이 전혀 없다는 한 여론 조사의 결과가 일간신문에 기사화됐기 때문이다.향후 종교를 갔겠다고 답한 비종교인 비율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비종교인과 종교인 중 비기독교인 기독교인 등을 대상로 작년 하반기와 올해 초에 걸쳐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한 “2012년 한국인의 종교 생활과 의식” 조사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비종교인 537명 중 “향후 종교를 가질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9.3%(53명)였다. 1998년(32.9%)에 비해 3배 넘게 줄었다. 또한 2004년(23%)과 비교해도 2.5배 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조사를 진행한 글로벌리서치 관계자는 이 결과에 대해 “과학적 사고가 사회를 지배하는 비중이 커지고, 사회가 갈수록 치열해지고 각박해지면서 사람들이 종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종교에 대한 기본 개념 자체를 거부하는 비율이 커지고 있다. 종교적 역동성이 줄어드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비
대한민국에서 종교는 성역이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감정과 맹종이 논리와 이성을 압도해 종교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종교를 비판하는 데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교회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 말기를 맞이하고 있다.집권 초기에 한국교회의 득세에 따른 다종교 질서의 붕괴를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을 무릎 꿇게 하고 대통령 하야 발언도 교계에서 서슴치 않게 나오곤 했다. 대표적인 교계 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를 뽑는 선거는 금권 논란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권력 싸움이 벌어지면서 분열의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모습을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더욱이 한국교회를 향하는 시선은 요즘 들어 더 서늘한 기운을 느낄 정도로 냉랭하다. 이에 맞춰 한국교회의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금권선거 물의를 일으킨 한기총의 해체를 요구하며 물신주의를 배격하려는 움직임이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교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이들 단체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
어떤 사람은 복지부동형으로 일이나 문제가 생기면 덮어두고 , 또 어떤 사람은 정면으로 도전하고 문제의 해결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복지부동형의 사람들은 일이나 문제를 덮어두고 쉽게, 편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다. 본인에게 어떤 변화와 문제가 닥쳤을 때 변화하고 개선하려는 모습보다는 그냥 덮고 지금처럼 편하게 가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시키는 일 외에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부러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도 없고, 일거리를 만들어서 골치 아플 필요도 없고, 대충 편하게 살자는 생각이다. 바로 이런 생각들이 자신과 사회를 발전하지 못하게 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나 사회에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하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유형은 자기 위치만을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나치게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신의 위치만을 생각하다보니 동료나 이웃을 위해 배려하는 여유나 아량이 부족하다. 때로는 편법을 쓰기도 하고, 속여서라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만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단점과 허물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해 주변의 사람과 사회를 병들게 한다. 자신의 모습을 냉정히
프로야구선수 출신 유명인 조성민(40)씨의 자살을 계기로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거리낌 없이 ‘자살 스토리’를 활용하는 방송 문화의 폐해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지난 달 23일 MBC주말 드라마 ‘메이퀸’은 악행을 일삼던 인물 장도현(이덕화)의 자살로 드라마를 끝냈다.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오랜 기간 악행을 저지르던 장도현은 자기 삶을 뉘우치며 바다로 투신자살한다. 프로야구 출신 조씨는 올해 마흔 살이다. 1990년대 고교 야구 명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일본 프로야구 명문 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전 선수로 활약했었다.그러나 조씨는 일반 사람들에겐 2008년 자살한 연예계 톱스타 최진실씨의 전 남편으로 더 익숙한 인물이다. 최씨의 동생으로 누나와 같이 연예계에서 활동하던 최진영씨도 2010년 자살했다. 불과 4년 사이에 한때 한 가족으로 기대고 살던 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이다. 조씨와 조씨를 둘러싼 인물들의 비극은 자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 모두의 곁으로 다가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우리나라의 자살 관련 통계를 보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다. 하루 평균42.6명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해 자살자가 1만5566명(
2012년 한해가 지나고 2013년 새로운 한해를 맞이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난해에 대하여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반성과 새해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는 “창조”가 있고 “종말”이 있는 직선적인 역사관 같으나 구원이라는 부활의 새 생명을 가질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은 우주에서 변화무쌍하게 일어나는 다양성과 융통성 속에서 대전제가 있다. 대전제 앞에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성경의 진리를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과 삶의 유일한 표준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자신의 신앙 고백과는 상이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런가? 깊이 분석하고 관찰해보면 그것은 비성경적인 현대 사상과 불 신앙적이고 세속화된 인본주의 운동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께 나의 삶을 의탁해 매우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검증된 삶으로 나를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정신적이고 지식적인 우리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2013년의 모든 영역에서 최선
2012년도 몇 일 안 남기고 있다. 한 해가 지나가는 마지막 날에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시작할 때 가졌던 아름다운 희망과 꿈, 기대가 성취된 것보다는 미완성으로 사라져 가는 것을 보게 된다.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희망과 꿈, 기대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회개를 통해 대청소를 해야만 한다. 한해를 살아오면서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 왔었다. 언제나 삶의 모자라는 것과 어두운 면을 찾아서 강조하며 살아온 그리스도인들이 아닌가? 부정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꼬투리를 잡는다.진실로 밝고 맑고 환하고 긍정적인 마음이 되지 못하고 무언지 모르게 언제나 어두운 점을 찾고 모자라는 점을 찾고 못된 점을 찾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인격이 모두다 부정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한 해 동안 너무나 소극적으로 살아왔다. 발전과 향상을 저항하는 삶이 소극적이다. 적극적인 사람은 모험적이고, 발전적이며,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인 사람은 언제나 나 홀로 전통주의적이며 안정적이고 보수적으로 살아간다. 그러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 그리고 하나
전 세계적으로 학교와 회사 즉 사회생활에서 기독교 복음전파가 적지 않은 위기를 맞고 있는데 이는우리나라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많은 사회단체도 있고 기독교 이념을 가지고 창업된 회사도 있다.그 중에 이랜드 그룹이 독특한 기업 문화로 다시 한 번 주목 받고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 이념 아래 세워진 회사답게 기독교적인 활동을 강요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랜드 측은 강제적인 내용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타 종교인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매주 월요일 이랜드 계열 회사들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부서별로 진행되는 월요 모임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랜드 그룹에서만 볼 수 있는 이 행사에서 한 시간 동안 찬양 예배를 드린다. 150여 명의 부원들은 1층 지정된 장소에 모인다. 외부에서 별도로 초청해 온 찬양 팀은 직원들에게 성경 구절을 들려준다. 문제는 월요 모임이 반강제적 성격을 띠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모임에 빠지기 위해서는 부서장에게 메일을 보내야 한다. 피치 못할 사정을 제외하고는 전원 참석을 원칙으로 한다. 예배 시간동안 직원들 대부분은 조용히 기도한다. 하지만 비기독교인들은 이 시간에 휴대전화로 뉴스
이번 주간은 범세계적으로 성서주일을 지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수 있도록 정성어린 헌금과 더불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서주일이 있는 이유는 성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함이라 할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성서주일은 1889년 5월 성령감림주일에 처음 지키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국교회에서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54년부터였다. 이때부터 날짜를 5월에서 12월 둘째 주로 옮겼다. 왜냐하면 세계교회가 12월에 성서주일을 지키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성서주일을 처음 지킬 때부터 남다른 모습이 있었다고 한다. 1991년 영국성서공회의 연례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교회들은 성서주일을 지킨 후에 102원 36전을 모아서 대한성서공회에 성경보급 사업을 위하여 쓰도록 기부했다는 것이다. 1901년에는 성서주일을 지키면서 141원을 기부했다 고 한다. 사실 102원 또는 141원은 많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나라는 어려운 시기였다. 그렇게 가난한 나라에 세워진 교회들이 얼마나 재정적으로 어려웠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보급을 위해 성서주일에 기금을 모았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영국성서공회 연례보고서에는 이 부분을 높이 평가
과거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은 목회자의 설교와 교회운영 능력, 탁월한 지도력이 그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국교회의 병폐는 지도자의 독선적인 운영이 교회를 병들게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야 할 것인데 교회 안에서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동역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요즘 왜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지 깊이 성찰하고 건강한 교회가 되어 ‘떠나가는 교회’가 아니라 ‘돌아오는 교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많은 수가 예수는 좋지만 교회는 싫다고 말라며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교회가 오히려 비리와 부패, 오만과 독선으로 지탄받는 일이 많아지자 실망한 교인들이 교회를 등지고 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왜 교회를 떠나는가?’하는 질문에 믿음이 없어서 떠난다고 단정하고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물론 근본의 신앙문제 일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떠나는 사람에게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교회 내부의 문제가 교인들에게 실망과 상실감을 안겨 주고 있음을 부인한다면 해결의 방법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목회자의 독선적인 교회운영에
기독교 2,000년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복음적인 전통과 비성경적 사이비 신학과 신앙으로 인해 기독교 정통적인 복음주의 신학이 흔들리고 신자들은 혼란을 겪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떠나거나 사이비 종교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있다. 과거에도 유사종교가 기승을 부렸지만 현재도 기생하는 사이비종교로 인한 피해사례가 큰 교회나 작은 교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사종교의 영역에는 유사성과 사이비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유사성은 모방과 의사성을 내포하지만 사이비성은 권모술수가 심한 집단이거나 반사회성을 지닌 집단들이다. 유사종교는 기존 종교의 전횡에 탈피하려는 시도와 교주의 논리를 실현하려는 의도, 기존종교나 타종교의 취득 섭취, 흡수, 조화를 이루려한다. 그러나 사이비종교는 거짓과 권모술수는 물론, 종교의 본질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웅숭배 교를 형성, 현실 기준이 없는 무조건적 반대와 현실부정, 항상 일정기간을 설정하고 목적을 위해 기간이 수시로 변하는 것이 사이비종교의 특징이라 할 것이다. 주된 특징은 원시종교 즉, 현실 사회에 존재하지만 미개사회로 회귀하려는데 그 본질이 있다하겠으며 또한 표면적으로는 합리성을 추구하나 내면에는 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