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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속에 숨겨진 이야기>불공평하지만 공평하도다

김남수 교수
침신대 교회음악과

작은 키에 볼품없는 외모를 가진 아이작 와츠는 그의 아름다운 시를 읽고 찾아온 엘리자베스 싱어(Elizabeth Singer)를 사랑하게 됐다. 와츠는 37세에 열렬히 사랑하는 싱어 양에게 청혼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거절당하고 말았다. 실망한 그는 결혼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려버렸다.


세상의 사랑에는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며 그는 “세상은 허무하도다. 불공평하지만 공평하도다”라고 자신의 푸념 섞인 속마음을 짧게 적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는 ‘마크 레인 교회’의 사역에 더욱 매달렸다. 와츠 목사의 마음이 많이 상해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런던시장 토마스 애브니(Thomas Abney) 부부는 축 처져 있는 그를 런던 교외의 저택으로 초대했다. 그를 일주일정도 푹 쉬게 하면 기분이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저택에 머물면서 애브니 부부의 세 딸들과 정이 든 와츠는 어린 딸들을 위해 “바쁜 아기 꿀벌”과 “멍멍 짖고 물어대는 강아지”라는 시와 다음과 같은 자장가를 써주었다. “쉿! 아가야 곤히 자거라. 거룩한 천사들이 네 침대를 지켜준단다.(Hush! my dear, lie still and slumber; Holy angels guard thy bed.)”


와츠는 일주일간의 짧은 휴식을 계획하고 방문한 애브니 부부의 저택에 36년 동안 머물렀다. 잠시 쉬러간 곳에 아예 정착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73세에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국찬송의 아버지로 불리는 와츠 목사는 신약성경의 관점에서 시편을 보았다. 시편을 복음의 눈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많은 찬송은 시편을 의역한 것이다. 그는 예수님의 구속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시편 72편을 복음적으로 의역했다. 바로 “햇빛을 받는 곳마다”(새138)이다.


햇빛을 받는 곳마다
주 예수 다스리시고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그 나라 왕성하리라
 
이 찬송은 하나님의 좋으심과 능력에 대한 와츠의 확고한 믿음에서 우러나온 고백으로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 5:45)는 말씀처럼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에게 베푸시는 일반은총을 감사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민족이 주 예수를 섬기게 되길 바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고 찬양해야 한다. 누구를 왜 그리고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 그분을 찬송할 이유와 목적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 성경이다.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시며, 전능하시고,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시며, 공의로우신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와츠가 지은 대부분의 찬송은 성경에 나타난 이야기를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고백으로 표현된다. 이와 반대로 “저 장미꽃 위에 이슬, 아직 맺혀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새442장)는 아주 주관적인 찬송이다. 이슬이 맺혀있는 이른 새벽 산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한 개인적 경험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햇빛을 받는 곳마다”처럼 가사내용이 객관적인 찬송은 모든 피조물이 시간과 환경을 초월해 부를 수 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실패했을 때나 성공했을 때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하는 성경 속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햇빛을 받는 사람이라면, 죄인에게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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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