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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더불어함께하는 더함이야기 - 12

김준영 전도사
더함교회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친구들 모두가 옥천으로 고등학교를 가던 시절, 저는 혼자 타동네 보은으로 떠났습니다. 사립학교였지만,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어머니와 좀 알고 있던 음악 선생님이 클라리넷으로 S대 보내준다는 엄청난 소리에 그곳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리곤 아는 사람도 어른도 없는 그곳에서 늘 어려웠던 우리 가정의 경제와 부모님의 손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이 시작되자, 제 안에 감추어 있던 분노와 늦은 사춘기 혈기가 끝없이 나돌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때리고 맞고, 싸우던 1학년때부터 특기생 명목으로 야간 자율학습을 빠져 나와 저녁이 되면 기본으로 남들 모두 하는 야간 자율 학습 때, 관악부실에서 연습을 빼먹고, 3m 담을 훌쩍 뛰어 넘어 학교를 나와 아르바이트를 해 모아 둔 돈으로 태권도 장, 검도장, 그리고 유도까지 하루에 최소 3시간씩 운동만 하고 그렇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유일하게 집중했던 수업시간이 있었는데 바로 문학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하도 싸우고 다녀서, 꼴통이라고 눈길도 주지 않을 때, 그 당시 모든 학생에게 까다롭기로 소문났었던 문학 선생님께서 제가 수업시간에 써낸 시를 읽고 감탄을 하시며, 모든 반마다 들어가셔서 제 시를 칭찬해주셨고, 제가 쓰는 글마다 무한 격려와 칭찬으로 모든 아이들조차 꼴통으로 바라보던 저를 박수 받게 하셨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문학 선생님을 고3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습니다. 그리곤 한 달 만에 제 모든 실체를 아셨던 선생님이 저를 교무실로 부르시곤 이야기하셨습니다.


“난 준영군 시와 글을 볼 때마다 감동이었고, 깊이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으니 공부 좀 하자. 운동을 하던 음악을 하던 공부는 해야 해.”라는 선생님의 모든 기대를 저버리고 맘껏 나돌아 다니며 그렇게 속을 썩이다가 마지막 6개월 정신 차리고, 성악을 공부해 침례신학대학교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졸업식날 선생님께선 저를 안아 주시고,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준영이 10년후에 꼭 훌륭한 목사가 되어서 만나자.”
그리고 얼마 전 제가 원없이 방황했던 그 지역, 매일 같이 싸우고, 때리고 맞던 그 동네에서 그 지역 청소년 연합 집회에 강사로 초청받아 가게 됐습니다.


까마득한 고등학교 후배들과 그 지역 중고등 학생들 60여명이 모인 곳에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22살부터 더함교회가 알려지기 전까지 약 50여회 집회를 인도했었고, 더함교회가 알려진 이후 2년간 약 30여회 청소년 장년 집회 인도를 했습니다.
수천명이 모인 교회에서도 초청받아 말씀을 나눴던 경험으로 이젠 강단에 서는 긴장감은 거의 없는데, 이 집회는 가장 부담되고 어렵고 실제로 환경도 막상 가보니 초등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청년까지 모여있는 기막히고 코막히는 집회였습니다만, 인도하심따라 함께 말씀을 나누고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13년만에 고등학교 담임선생님께 당당히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저 은혜입니다.
세상 온갖 열등감과 분노조절 장애가 있던 인간을 그나마 이정도 분리수거하신 우리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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