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2월 침신대학보에 “다양한 창조론”이란 글을 보고 놀라움과 함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신학과 3학년이라고 소개한 글의 저자는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창 1:1)는 창조론은 진리이고,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신학교 강의 중에 교양필수인 ‘자연과학이해’를 통해 창조론을 강의하고 있다”며 글을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창조이론에 대한 몇 가지 이론들을 나열하며 왜 신학교에서 “옳고 그름을 떠나 성서와 과학과의 관계에 다양한 창조과학에 대한 해석”이 있으니 “"공평하게, 각자 신앙에 따라 다양한 창조이론을 탐구하며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하고 성경의 창조론을 믿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획일적인 것을 주장하지 말고 다양함을 인정하자는 다원주의로 불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가득한 것이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모든 과목의 근본적 교과서는 성경이다. 성경을 제외하고 어떤 학문이나 과목이 있을 수는 없다. 물론 비교종교나 수많은 이론을 통해 토론하고 고심하고 고뇌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기준은 성경이 돼야 한다.
얼마 전 대형교회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의 어느 기독 일간지에 실린 글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훌륭하고 실력을 가진 후배 한 사람이 찾아와 “절대 교회 생태계를 보호하는 사역이나, 연합사역 같은 일로 힘을 낭비하지 마세요.”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어차피 유럽과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이런 흐름은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기도하고 복음을 잘 전하는 일입니다.”라는 말에 안타까웠다고 토로하셨다.
PC(Political Correctness)는 어학사전에 ‘차별적 표현을 쓰지 않는 것’, ‘정치적 공정함’, ‘차별적 표현에 대한 과도한 반응’이다. 그것을 일부에서 ‘정치적 옳음’, ‘정치적 정당성’이란 말로 해석하면서 마치 그것이 옳고 정당한 것처럼 비춰진 것이다.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모든 가치와 문화는 동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당한 비판조차도 ‘혐오주의자’, ‘차별주의자’, ‘꼰대’, ‘극우’라며 대적한다. 차별 없이 다양함을 인정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변형이다.
영국교회에 이어 미국교회가 무너지고 이제 한국교회마저 흔들고 있는 PC의 쓰나미다. 창조론을 믿는다는 말로 성경을 믿는 것 같지만, 성경 외에 다른 이론도 다 부정하지 말고 믿어야 한다는 말이 한국교회에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 영향이 앞에서 소개한 신학생의 “진화적 창조론이나 젊은 지구창조론, 오랜 지구창조론 등 중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이론이 존재할 수 있으며, 창세기 1장의 6일 창조를 문자적이거나 과학적인 진술이 아니라 신학적인 진술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하나다. “믿느냐?” “안 믿느냐?”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책에서 이제만 선교사는 창조과학탐사여행을 참여했던 진화론을 믿었던 생물학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43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기를 초청하는 자리에서 그분이 입을 열어 “내가 여러분의 나이에 이런 프로그램에 참석했더라면 하찮은 일에 수십 년을 허비하지 않았을 겁니다”며 “우리의 미래가 성경적 생각으로 채워져 있는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고 한 말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우리는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 오로지 복음만 전하고 목회에만 충실하겠다”고 말하며 반기독교적 악법에 대항하여 성경을 고집하지 않았던 유럽과 미국의 영향이 한국교회에 쓰나미로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계의 그리스도인이 코웃음을 하는 “어머니 하나님”이 등장한 것은 아닐까? 이럴 때 한국교회가 고집해야 하는 것은 “오직 성경”이다. 정확무오하며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집해야 한다.
주님, 교회를 흔들며 믿음을 흔드는 세상
풍조에서 오직 성경을 붙들고 승리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