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추수감사절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지난 11월 18일 주일을 추수감사로 지켰다. 추수감사절의 시작은 구약시대 맥추절부터다. 맥추절(the Feast of Harvest)은 5월 중순에서 6월 중순 밀 추수가 끝날 무렵에 좋은 것으로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추수 감사제이다(출 23:16, 34:22). 한국교회는 1904년에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을 지켰고, 1914년에 와서 11월 셋째 주일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일부 교회와 성도들은 한국식으로 추석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도 눈에 띄지만 여전히 많은 한국교회가 11월을 추수감사주일로 지켜오고 있다. 사실 지금의 추수감사절로 자리 잡게 한 일등공신은 북미 대륙을 개척한 청교도들(Pilgrims)이다. 청교도들은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을 떠나면서 “나라는 있어도 왕이 없고, 교회는 있어도 교황이 없고, 영어를 사용하고, 기름진 땅과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에 도착하도록” 뜨겁게 기도했고, 그 꿈에 그리던 정착지가 바로 북미 대륙이었다. 청교도들은 미국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등 이런 저런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1621년 가을 플리머드에서, 하나님께 첫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렸다. 추수한 첫 곡식들과 채소들 중 최고로 좋은 것들인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렸다. 미국은 현재 매월 넷째 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지켜오고 있다.


첫 추수감사절 당시 첫날인 주일에는 하루 종일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렸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묵상했다. 둘째 날에는 칠면조 요리, 감자, 옥수수 요리 등을 만들어 서로 나눴다. 셋째 날에는 인디언 추장 등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고 청교도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인디언들과 친교했다. 원주민인 인디언들은 칠면조를 구운 요리와 호박파이를 가져와 청교도인과 함께 교제했다. 그것을 기념해 오늘날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고기와 호박파이가 빠지지 않는다. 청교도들은 정착당시 통나무들을 잘라 먼저 교회를 짓고, 학교를 지은 다음에야 자기들의 집을 지었다. 그들은 그렇게 북아메리카의 개척자들이자, 믿음의 선조들이 됐다. 또한 그들은 철저한 주일 성수, 십일조, 경건생활 등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다. 전국 곳곳의 교회들마다 추수감사절이 예전과 같지 않다고 아우성이다. 우리 경제가 어렵더라도 교회는 감사의 표시인 헌금이 줄지 않았는데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올해는 많이 줄었다고 말한다. 추수감사주일에 헌금이 줄었다는 걱정보다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교회에서 사라져 가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이다. 성도들마저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기도가 응답받지 않아 감사하지 않는다는 말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감사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닌 개인의 유익이 돼 버린 악한 시대에 살고 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생명·건강·신앙·의식주·햇볕과 공기 등 수많은 것들을 대가 없이 줬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감사를 모르고 산다. 추수감사주일은 환경이야 어떻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할 것으로 가득 차야 한다. 성탄트리 점등식이 지난 11월 17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온 땅에 새해 초까지 인류를 구원한 예수 탄생의 불빛이 계속 이 땅을 밝힐 것이다. 우리는 해마다 오는 추수감사주일이 잃어버린 영혼들을 교회로 초청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 최고의 감사이자 열매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총회

더보기
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