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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으로 보는 신학교 이사회의 미래

박지원의 ‘허생전’ 마지막 장면에서 허생은 이공에게 세 가지 계책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공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며 “어렵다”고 말한다. 삼고초려도 어렵고, 떠돌이 백성을 살리는 일도 어렵고, 나라의 장래를 도모하기 위한 과감한 선택 역시 어렵다. 그러자 허생은 분노하며 묻는다.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못한다 하니 그러고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지난 12월 16일 열린 학교법인 한국침례신학원 이사회는, 이 고전의 장면을 오늘의 현실로 소환했다. 총회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 파송한 이사 전원을 부결시킨 이사회 결정은, 단순한 인사 갈등을 넘어 학교법인의 존립과 자율성을 스스로 무너뜨린 선택이었다. 교육부가 수차례 경고해 온 ‘레드라인’을 넘는 결정이었고, 그 결과 관선이사 파송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을 자초했다.


115차 총회의 입장에서 답답할 노릇이다. 학교법인 이사회를 초청해 간담회까지 열며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총회장과 총장 명의로 학생 모집을 위한 신문광고까지 진행하며 학교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사회 정상화는 여전히 안개정국이 됐다.


이사회는 무엇을 지키기 위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는지 묻고 싶다. 법을 지키기 위함도 아니고, 학교를 살리기 위함도 아니며, 신학교의 미래를 위한 선택도 아니었다. 할 수 없는 이유만을 늘어놓은 채, 결국 가장 위험한 선택을 택했다. 이는 허생 앞에서 연신 “어렵다”고 말하던 이공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부결이 무능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된 선택이라는 해석이 교단 안팎에서 공공연히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이사회는 스스로 학교법인의 자율과 침례교 목회자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라는 위치를 포기하는 길을 선택했다. 허생의 말처럼 “가장 쉬운 일 하나”조차 하지 못한 셈이다.


‘허생전’에서 허생이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 대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예법과 명분만 앞세우는 사대부였다. 머리 모양과 옷차림은 지키되, 나라를 살릴 결단은 회피하는 모습이다. 오늘의 이사회 역시 법과 책임, 학교의 공공성이라는 본질 대신, 내부 논리와 계산에 갇혀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외면했다.


학교법인 이사회는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가 아니라, 책임을 지는 자리다. 결정을 미루거나 거부함으로써 중립을 지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위험한 방향으로 적극 개입한 것이다. 관선이사는 외부에서 갑자기 들이닥친 재앙이 아니라, 내부의 선택이 만들어 낸 결과다.


허생은 끝내 말한다.

 

“이런 놈은 베어 버려야 하겠군.”


이는 폭력을 권하는 말이 아니라, 무책임한 권력에 대한 준엄한 윤리적 판결이다. 지금 한국침례신학원이 마주한 질문 역시 같다. 할 수 없다는 말로 모든 책임을 회피한 이사회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지금 필요한 것은 변명도, 책임 떠넘기기도 아니다. 스스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사실을 인정하고, 학교와 교단 앞에 분명히 설명하며, 책임지는 자세로 사태 수습에 나서는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사회는 허생이 꾸짖었던 그 이공처럼 역사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신임받는 신하”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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