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로티 문

로티 문 선교사는 미국 남침례교(SBC) 선교의 전설이다. 해마다 남침례교 교회들은 성탄절 헌금으로 로티 문 선교사의 이름을 딴 ‘로티 문 헌금’(Lottie Moon Offering)을 드린다.


로티 문 선교사(1840∼1912)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격변기의 중국에서 헌신적 선교를 했다. 그는 선교지에 나간 여성 선교사는 아니었지만, 그 누구보다 ‘영향력 있는’ 최초의 여성 선교사다. 7남매 중 넷째로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로티는 남북전쟁 전에 남부 아가씨에 걸맞은 교육과 귀족들이 누렸던 특혜를 받으며 자랐다.

로티 문이 1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믿음이 신실하신 어머니는 자녀들을 좋은 신앙인으로 키워냈다. 로티의 오빠 토머스와 언니 오리아나는 훌륭한 의사로, 막내 여동생 에드모나는 미 남침례교회가 파송한 최초의 독신여성 선교사 2명 중 1명이다.


로티의 사역은 1872년에 중국선교사로 파송된 동생 에드모나 선교사를 돕는 일부터 시작했다. 1873년, 로티 문은 중국 북부에 도착해 여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교사 일보다는 로티는 중국 현지 담당자에게 전도와 교회개척 분야를 희망했으나 그 요청이 거절되자 그는 홀로 핑투로 가서 교회를 개척했다. 로티 문은 중국에서 20년 동안 1000여 명에게 침례를 줬고 남침례교단은 핑투를 중국에서 가장 큰 선교센터라 불렀다. 1890~1912년 로티 문은 촌락을 다니며 전도했고 산둥성에서 선교사들을 훈련시켰고 미국 본토에 선교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1900~1910년 질병과 기근이 중국 북부를 강타했다. 로티 문은 구호물자를 준비했지만 워낙 타격이 컸고 기근에 허덕이는 중국인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돈까지 전부 썼다. 결국 로티 문 선교사는 1912년 성탄 전야에 굶어 죽었다.


로티 문이 세상을 떠났을 때 해외선교지(Foreign Missions Journal)는 그녀를 “선교사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했다. 그는 중국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하나님께 다 드렸다. 하지만 빛도, 명예도 없이 자기가 서있는 곳에서 섬기는 다른 선교사들처럼 그가 남긴 사역은 그의 사후에 드러났다. 해외 선교를 위한 재정후원 요청은 남침례교단에서 여선교회를 결성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로티 문이 1888년에 시작한 성탄절 헌금으로 매년 수억 달러가 모이고, 이 특별헌금액은 지금까지 총 수십억 달러라고 한다.


도심 곳곳에서 빨간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자선냄비 앞에서 금색 핸드벨을 흔들고 있다.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위기가정 등 어려운 이웃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기 위해서다. 한국구세군(사령관 김필수)은 최근 서울 광화문 북측광장에서 ‘자선냄비 시종식’을 열고 전국적인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5만 70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오는 31일까지 전국 76개 지역 440여곳에서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펼친다. 올해 거리모금 목표액은 145억원이다.


우리교단 해외선교회(FMB)는 최근 로티문 광고를 본보에 냈다. 1년 내내 기억될 성탄 선물이 바로 그것인데 “전 세계에서 사역하는 750여명 침례교 선교사들의 최소한의 안정장치인 해외여행자보험 갱신과 다음 세대 선교를 위해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며 개 교회는 성탄 감사헌금의 1/10(십일조) 또는 후원금을 FMB 협동선교계좌로 보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믿음의 동역자인 로티 문 선교사를 기억하며 1년 내내 기억될 성탄 선물에 모든 침례교 공동체가 동참해 선교사 모두에게 그 혜택이 돌아갔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총회

더보기
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