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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성현의 예언

한명국 목사의 회상록

한명국 목사
예사랑교회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하늘 천(天) 따 지(地) 집 우(宇) 집 주(宙)” 곧 천자문을 가르친 후 명심보감과 사자소학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공자님과 인의예지 교훈에 대하여 가르쳤다. 조선은 소국이라 공자(孔子) 맹자 노자 같은 성현의 호칭인 자(子)의 호칭을 붙일 인물이 나오지 않았으나 중국의 5000년 역사에는 제자백가의 인물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 공자는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예수와 세계 사대성자로 불리지만 공자님이 가장 높은 성현이라 가르쳤고 나는 자연스레 공자님의 추종자가 됐다.


공자는 태어나자 부친이 죽고 6세에 어머니마저 죽어 천애의 고아로 유랑자가 되었으나 학문에 뜻을 두어 열심히 공부하여 30세에 노나라 정공의 초청으로 중도읍의 읍장이 됐고, 그 후 사공(건설부장관)이 됐고 나중에 대사구(법무장관)에 임명됐으나 뜻이 맞지 않아 위나라로 갔고 그 후 14년에 걸친 유랑생활로 “상갓집 개와 같다”는 혹평도 받았으나 수많은 문하생이 따랐고 염옹, 자로, 자공, 안희(아연) 등의 수제자들을 두고 73세의 천수를 누린 후 세상을 떠났다고 배웠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드나들던 양남댁 스님이 큰아들이 잘 돼야 한다고 어머니를 꾀어 나를 억지로 데리고 울릉도 성인봉 아래 봉래폭포 위의 주사골 절간으로 가면서 냇물에 목욕을 두 번이나 하고 산골절간 앞에서 어머니가 세 번째 목욕하면서 나도 목욕하게 했다. 나를 부처님께 팔기 위해 목욕 제례를 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와 같이 부처님 동상, 나무아미타불상, 제 보살상 및 북두칠성단 앞에 각각 일곱 번씩 도합 28회 공손히 절하고 그날부터 공자로부터 떠나 석가모니의 추종자가 됐고, 매년 모친을 따라 사월 초팔일과 몇 번 절간에 가서 절을 하고 내려왔다.


그런데 4학년 때 외사촌 전근술이가 공자의 만화책을 준 후 석가의 만화책도 줘 잘 읽어봤다. 기원전 6세기 네팔 가까운 중인도 히말라야 산 밑 룸비니의 샤카족 가뵐라 성주인 정반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성하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29세에 출가해 보리수 밑에서 7년간 수도 끝에 싯다르타는 35세 되던 12월 8일에 크게 깨닫고 석가모니가 됐고 불교의 윤회설과 해탈을 가르침의 근본이 되었다고 배웠다.


공자와 석가의 만화책을 잘 본 뒤 하루는 사촌이 또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만화책을 줬다. 아버지가 신봉하는 공자에서 떠나 엄마 따라 이제는 석가모니를 나도 신봉하는데 더욱이 예수쟁이 친구들을 놀리든 터인지라 좀 꺼렸으나 마지못해 받아 만화책이니깐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예수는 왜 그렇게 좋은 말씀도 하고 병자도 다 고쳐주며 귀신도 쫓아내 주며, 음식도 기도로 먹여주고, 죽은 사람도 살리며, 바람과 풍랑도 잔잔케 하며, 고통의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고개를 숙여 죽는 만화 그림이 너무도 애처롭고 도저히 이해와 납득이 안 되는 최후였다.


공자는 73세에 석가모니도 80세에 수많은 제자들 앞에 영광스레 영민했는데 예수는 노총각으로 33세에 비극의 절명에 제자들은 다 도망가고 같이 십자가에 달린 죄수의 조롱까지 받으며 죽으시는가!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 있을 때 70여세의 임부춘 전도사님의 집회에서 공자와 석가의 놀라운 역사적 예언에 큰 감동을 받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확신을 더했다.
공자는 “후에 나실 이를 두려워할지니 오실 그이가 금세의 우리와 같으리요”라고 했다. 제자들이 공자님께서 자주 언급하는 도에 대해서 물었을 때,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라고 말했다.


공자의 제자인 ‘안자의 실기’에 기록된 내용이다. 공자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온 세상을 두루 다니셨다. 서쪽 땅을 가셨을 때 갑자기 서쪽 하늘을 우러러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서쪽 하늘을 바라보는가?” 제자들은 다 알지 못했다. 아연이 대표로 나아와 말하기를 “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함은 어찜이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금후 1000년 이래에 온 세상의 성현이 탄생할 징조이니라.” 아연이 묻기를 “그분은 스승이나 우리와 같으신 분인가요?” 공자님이 대답하시기를 “우리들은 그에게 이를 수 없느니라.” 역사는 성현으로 예수탄생의 예언을 한 위인이었다.


석가는 “그 이름은 하나님이시니 너희는 그에게로 돌아가라”고 했다. 석가는 무연중생 제도불능이라 했다. 그는 40년간 중생을 제도했으나 자기와 인연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기의 뜻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업보중생 제도불능이라 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반드시 보응을 받아야지 용서함을 받을 길은 없다는 말이다. 또한 삼세중생 제도불능이라 했다. 석가는 자신이 깨달은 지혜를 가지고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 등 삼세를 구언해 보려고 노력했으나 되지 않았다고 한다. 불교의 ‘신화경’에 말하기를 “이후에 반드시 미사아라는 사람이 탄생할 터인데, 우리는 그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망할 것이다. 우리는 기름 없는 등과 같으니라”고 했다. 임부춘 노종은 미사아는 곧 메시아라고 해석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가장 많이 메시아 예수에 대해 예언한 고매한 선지자로 대학시절 문창권 교목으로부터 잘 배웠는데, 공자와 석가도 예수의 탄생을 예언했으니 역시 두 성현은 성자 예수를 알아본 위대한 예언자로 보게 됐다. 공자와 석가의 추종신봉자였던 나는 일단 예수를 믿고 중학교 1학년으로 교회에 나간 지 5개월에 침례를 받은 이후 오늘까지 하나님의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가 됐고 목회자가 됐으니 남은 여생 죽도록 충성하려고 늘 다짐해 왔던 것마저 주님의 아가페 사랑과 은혜로 부어진 것을 감사하고 복음전도에 승리의 여생이 되기를 결단해본다.


다음은 대학시절에 철학교수의 지시로 어거스틴과 선다싱의 감명 깊은 전기를 리포트로 제출하고 발표한 일이 있는데 아래에 선다싱을 소개해 본다.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성자 선다 싱(Sunder Signer)의 전기를 보면 한번은 히말라야 티벳 고원에서 전도를 하다가 라마승 추장에게 붙잡혀 깊은 구덩이에 던져진 일화가 있다. 물 없는 깊은 웅덩이에 수많은 뼈와 살 썩는 냄새 속에 3일 밤낮 인사불성으로 기도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사명 다할 때까지 나를 지켜 주옵소서!”
사망의 웅덩이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왼쪽 높은 곳에서 자물쇠 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 “밧줄을 내리니 그것에 매달리시오!”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 말을 듣고 밧줄을 잡아 나온 뒤 다시 자물쇠가 채워졌으나 거기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천사의 구조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읍내에 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했다. 관장은 다시 선다 싱을 체포하고 사람들을 불러 열쇠를 훔쳐간 자를 처벌하라고 엄명했다. 그런데 열쇠는 라마승의 허리띠에 단단히 달려 있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능력에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어, 온 마을 사람들은 선다 싱에게 마을을 떠나달라고 했다.


선다 싱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가 16세 때 예수님을 믿게 되니 인도에서는 싱(Singer) 가문은 귀족 계급이라 결코 기독교를 믿을 수 없다고 부모님은 그를 설득하고 위협했다. 그러나 끝내 아들이 말을 듣지 않자 아버지는 내 아들이 아니라고 쫓아내려 하다가 그에게 독약을 먹여 죽였다. 그러나 선다 싱은 주님의 도움으로 해를 받지 않고 깨어나 죽음을 피해 가출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캘커타에서 20만명이 모인 집회를 할 때 그의 모습은 마치 예수님의 모습과 같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한 복음 전도자요, 인도의 성자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