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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펜윅을 기다리며

이 땅의 대학·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를 두고 시대적 상황의 현 주소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주일학교를 다닌 학생 대다수가 중고등부, 대학청년부 등을 거치는 과정에서 정착하는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고 한다. 한 선교단체에서 조사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대학청년 복음화율은 5% 미만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청소년이 붕괴된 교회학교 교육은 그대로 청년 사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에 젊은이들이 없다’ ‘교회에 헌신해야 할 자원이 떠나고 있다’ ‘중직자들의 자녀들이 교회를 기피하기 시작한다’ 등의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겨울과 여름이 되면 교회마다 다양한 대학·청년 사역들을 전개한다. 단기선교를 비롯해 수련회, 비전캠프, 영성캠프 등 수많은 행사들이 치러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 사역으로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있다는 소리는 듣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다음 세대를 세워나가기 위한 디딤돌은 청년들이다. 청소년들의 본이 되고 장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대상이 청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들의 부재 속에 있다. 이들을 붙들기 위해 교회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을 진행하고 있지만 좀처럼 변화된 삶,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이끌어 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땅의 청년들은 입시, 청년 실업, 결혼 등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신앙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며 나름대로 준비해 나가고 있지만 교회생활로 인해 세상 현실과 맞지 않은 부분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교회가 청년들의 이같은 고민들은 알고 교회 안팎의 사역으로 이끌어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교회는 청년들을 무조건 사역의 현장, 헌신의 현장으로 몰아세워서는 안 될 것이다. 교회는 청년들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을 말씀 안에, 복음 안에 이뤄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예언자적 역할과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또한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방향성도 함께 제시할 필요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교회는 복음의 공동체이기에 세상 프로그램에만 집중할 수 없다.
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이 땅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치열한 삶의 현장이나 고민과 혼란의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자체로 큰 위안으로 삼게 해야 한다.


19세기 말 광풍처럼 몰아친 다윈의 진화론과 라우센부쉬의 사회복음이 정통교리에 도전장을 내밀 때, 미국의 수많은 신학교와 교회들이 자유주의 사상을 수용하고 세상과 타협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복음주의 진형은 미국의 나이아가라의 퀸스 로얄 호텔에서 사경회를 열고 복음으로 무장되고 세계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이들을 발굴해 냈다. 그 중에 한없이 부족하고 작은 자 한 명이 자원해 한반도를 복음화 시킨다. 그가 바로 말콤 펜윅 선교사이다. 130년 전이 아닌 오늘 우리는 또 다른 말콤 펜윅을 기대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꿈꾸며 소망해야 한다. ‘자녀들이 예언하며 청년들이 환상을 보고 아비들이 꿈꾸는 교회’를 말이다. 새해를 맞아 교회마다 청년사역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침례교 공동체에 속한 청년들을 통해 세상을 땅 끝까지 복음화 시키는 그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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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