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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상담의 이해와 실제(1)


 

한국은 지난 세기에 빠른 근대화와 경제성장을 이루며 발전을 거듭했다.

이제는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됐다. 그러나 물질적·외적인 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이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빈부의 양극화, 연애도 결혼도 집도 포기하는 포기세대의 등장, 극심한 노사갈등, 세대갈등, 젠더 갈등이 난무하는 피로사회위기사회가 됐다.

 

각종 폭로와 비방, 고발과 대립이 사회 전반에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선 사람들의 초점이 자기 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타인들에 대한 존중이나 인정,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근래에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강남역 살인사건, 이수역 폭행 사건, 불법 몰카, 미투 폭로 등의 사회현 상들은 이런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상대를 찍어내지 않으면 자신이 당한다고 생각하는 정글 같은 사회, 자기중심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개인주의적이라고 알려진 서구보다도 한국의 공동체성이 더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교회가 인간 곤경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전략이라는 맥락에서 이웃을 돌아보고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을 방문하고 돕는 심방사역을 조명한바 있다. ‘심방혹은 방문은 현대인들에게 양면성이 있는 개념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과 만나거나 찾아가는 것을 원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나 낯선 사람들과는 바쁘고 피곤해서 혹은 자신의 일상이 타인에 의해 침해되거나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찾아가거나 찾아오는 것 또한 원하지 않는다. 교회에서도 심방사역은 부담스러운 기피활동 내지 잊혀진 전통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현재 진행 중이며, 관련 연구도 많지 않은 실정이다.

 

하지만 일반사회에선 다양한 이유로 가족이나 이웃,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방치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방문과 지원, 돌봄상담이 요구되고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자기 스스로 돌보지 못하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건강하게 관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다시 삶의 기능을 회복하고, 고립된 삶으로 부터 벗어나 참된 자기와 주변의 의미 타자들과 연결’(connecting)되는 영성적 필요가 강조되는 시대이다. 그런데 교회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늘 감당해왔던 바, ‘잃은 양을 찾아내고 돌보는 사역이 21세기에 들어와 잊혀진 전통이 되어가는 것은 아쉽다. 이웃사랑과 돌봄의 사회적 필요와 그러한 요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필자는 교회의 전통적인 심방사역을 21세기 현대인의 변화된 사회문화적 환경을 반영한 돌봄상담 사역으로 활성화할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이러한 접근을 목양적 방문상담으로 개념화하고,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으로서 교회의 심방 전통을 사회적 방문상담으로 연결하는 공동체적 접근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먼저 방문상담에 대한 개념적 이해를 시도하고, 방문상담의 필요성과 고려 요소들을 탐색한 후 방문상담의 실제 진행 과정을 다루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잊혀가는 심방사역이 21세기 방문상담 사역으로 거듭나고 확장되는 기본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1. 목양적 방문상담

상담은 기본적으로 어떤 관계적인 어려움(relationship)이나 정서적 문제 (emotion), 행동(act)이나 심리적 (perception) 혹은 영적인(spirituality) 도움이 필요한 내담자가 상담사를 찾아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상담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증가하며 활성화되고 있지만 다양한 이유로 상담사를 찾거나 상담소에 내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방문상담, 문자 그대로, 이런 사람들을 찾아가 돌봄과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방문상담 대상자의 동의와 참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 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필요한 돌봄을 제공하고 문제해결을 하도록 지원하는 방문상담의 성서적 원형은 곤경에 처한 인간을 찾아오신 하나님에게서 찾을 수 있다.

 

구약성경은 이 하나님을 목자’(Shepherd)의 모습으로 소개한다(23:1; 34:15). 목자는 때를 맞추어 양을 찾아가고 인도하며 돌본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안내하며 필요를 채우도록 지원한다(23:2). 자기를 스스로 지키거나 위험으로부터 방어할 능력이 없는 양들을 찾아가 지켜주고 보호하며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양들은 다양한 이유로 건강의 어려움을 겪거나 다투고 심지어 무리에서 이탈하여 잃어진 존재가 되기도 한다(53:6). 소외되고 단절되어 희망이 없는 절망적인 위기상태에 놓이곤 한다. 목자 되신 하나님의 모습이 신약성 경에선 거친 들판에 혹은 위험한 산속 가시덤불에 걸려있는 잃어진 양을 찾아가는 선한 목자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선한 목자는 긍휼한 마음을 갖고, 생명을 주되 풍성한 생명을 주기 위해 양들을 찾아 나선 다(10:10~11, 14; 13:20). ‘잃은 양을 찾아가는 이 목자의 이미지야말로 돌봄사역의 핵심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후 수제자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다(21:15~17). 그리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은 그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맡기신 사람들을 찾아가 영혼의 곤고함과 마음의 아픔, 인생의 문제들을 돌보는 목자의 사역 즉 목양활동을 성실하게 수행해 왔다.

 

목회신학자 수어드 힐트너(Seward Hiltner)는 이 목양사역을 돌봄’(care)이라고 봤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러한 돌봄을 안내’(guiding)유지’(sustaining), ‘치유’(healing)화 해’(reconciling) 등의 사역으로 구분했다. 이러한 돌봄사역은 교회의 특정한 안수 받은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궁극적으로 서로를 돌아보고 가정을 방문하며, 이웃을 돌보고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어려움과 곤경을 이겨내도록 돕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감당 해야 할 사명이었다(6:2; 10:24~25). 그리고 어느 때보다 개인 중심적이고 파편화된 삶을 살며 내면적· 관계적 갈등과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 시대에는 전통적인 돌봄 사역에 더해 특정한 문제나 이슈를 정하여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공식적이고도 조직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 도록 지원하는 상담접근이 강조되고 있다.

 

목자의 이미지와 돌봄사역은 오랫 동안 교회의 핵심적인 기능의 하나로 인식되고 실천되어 왔다. 목회자와 리더들은 성도들을 방문해 예배드리고 관심사를 나누며 돌보는 심방을 매우 중요한 사명이요 책임으로 알고 실천했다.

 

교회에서 먼저 어려운 사람들을 방문해 관심을 나누고 필요를 돌보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부여되지 않은 예 외적인 특권이요 책임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성장과 함께 목양적 방문, 즉 심방사역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하지만 이런 돌봄사역은 한국사회의 빠른 경제적 성장과 포스트모던 시대 진입과 함께 전환기를 맞게 됐다.

 

사람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권위적 대상의 일방적인 방문이나 가르침을 중요시하지 않게 됐다. 그보다는 복잡하고 힘든 삶의 환경 속에서 자기 필요를 살피고, 자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 졌다.

 

여러 사람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방문하는 것에 대한 시간적, 경제적 부담을 갖게 되고, 자신의 가정이나 생활수준이 노출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생활 관련 비밀보장이 안 되는 경험을 하면서 목양적 방문사역, 즉 심방을 기피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여기에 교회 사역자들 또한 방문사역에 따르는 시간과 에너지 고갈의 문제와 성도들의 기피 현상을 접하며 방문사역이 필수적이기보다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하면서 교회의 방문사역은 점차 잊혀진 전통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전요섭은 십방사역이 결국은 상담에 흡수될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아직 그런 현상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예배와 가족 상황에 대한 간단한 대화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심방사역이 약화되고 있다고 해서 목양적 방문상담이 활성화되고 있지는 않다. 필자는 이런 현상이 한국 교회의 정체현상 및 영향력 약화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성도들이나 사회가 더이상 자신들의 필요나 문제, 곤경을 해결하는데 교회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속>

 

유재성 교수 한국침신대(상담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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