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공관복음서 구원론 : 하나님의 나라/천국-5

“인간의 죄들을 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의 나라는 먼저 인간과 세상의 구원과 치유와 회복과 재건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의 행동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권능의 행동은 하나님의 영혹은 성령으로 불리어지는 존재로써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에 의해 이뤄진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성령에 의해 이뤄지는 하나님의 권능의 행동인 것은 그의 침례와 함께 임한 성령 강림의 체험과 그 이후에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으신 것과 유대 광야에서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고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예수님은 그의 공생애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메시아의 사명 (직분)을 주시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권능으로 기름 부어주셨기 때문에 시작됐다고 제시하셨다(4:18~19).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치유하시는 권능의 역사를 감당하신 것이다(10:38).

 

예수님의 사역 속에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은 먼저 그의 가르치는 사역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가르치기를 시작하셨을 때 그의 교훈을 들은 사람들이 크게 놀랐는데, 그 이유에 대하여 마가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라”(1:22)고 말하여 서기관들과 비교되는 예수님의 권위를 부각시킨 반면, 누가는 그의 말씀이 권위가 있었음이라”(4:32)고 말하여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를 부각시켰다.

 

예수님의 말씀의 권위는 회중의 영혼 속을 뚫고 들어가는 권위를 보여줬으며 그 결과로 영혼을 지배하고 있는 더러운 영(귀신)”의 존재가 드러나게 하고 그 더러운 영(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그의 권위를 나타내셨다.

 

예수님의 귀신축출의 권위를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하여 마가는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1:27)라고 말하여 서기관들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인간의 영혼에 감동과 충격을 주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새 교훈의 국면을 부각시킨 반면, 누가는 이 어떠한 말씀인가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령한 즉 그들이 (쫓겨) 나가는도다”(4:36)라고 말하여 권위와 능력으로더러운 귀신들을 명하여 쫓아내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을 부각시켰다.

 

마태는 이 가버나움 회당 설교 사건을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이 산상강화의 긴 말씀들을 마치셨을 때 무리가 그의 교훈에 크게 놀랐는데 왜냐하면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7:29)고 말하여 권위 있는 교훈을 전달하는 면에서 서기관들과 대조시킨 마가의 입장을 따라간다.

 

예수님의 사역에 담긴 권능의 국면은 그의 치유 사역에서 더 선명하게 제시됐다. 혈루병 여인 치유 사건에서 그 여인이 예수님의 겉옷에 손을 대어 치유를 받았을 때 마가는 예수님이 그의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5:30)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하 여, 예수님은 그의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간 것을 스스로 알고 계셨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설명했다.

 

반면에 누가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내가 앎이니 라”(8:46)고 말하여 치유의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나가서 그 여인을 치유했다는 것을 예수님 자신이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것을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통해 직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그가 소유하신 치유의 능력에 의해 일어난 사역이었다. 누가는 예수님의 이런 치유의 능력을 강조하는 관점을 갖고 중풍병자 치유 사역의 묘사에서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5:17)는 구절을 추가했고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을 때 즉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은 바로 예수님에게 있던 치유의 능력의 나타남인 것을 부각시켰다(5:25).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권능은 보다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권능으로 표현됐다. 그것은 예수님에게는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서 갖고 있는 근원적이고 근본적 문제인 죄의 문제곧 인간이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죄와 죽음의 권세 아래 살다가 심판 받고 멸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권능이 있었다.

 

마태는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자라는 것을 제시했다(1:21). 인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만이 갖고 계신 것으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알고 있었던 죄를 사하는 권위가 예수님에게 부여됐다는 것이 중풍병자 치유 사건에서 생생하게 제시 됐다(2:1~12; 9:1~8; 5:17~26).

 

중풍병자를 데려온 사람들과 중풍병자 자신은 먼저 중풍병에서 치료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데려왔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선언하시는 것이었다: “작은 자야 네 죄들을 사함 받았느니라”(2:5; 9:2; 5:20).

 

마가와 마태가 사용한 작은 자는 원어로는 자녀’(child)를 의미하는 중성 명사다. 남자든지 여자든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가리키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누가는 그런 의미에서 보편적 인간을 가리키는 용어인 사람’(human being)을 사용했다.

 

따라서 중풍병자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남자든지 여자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나온 인간을 향하여 너의 죄들이 사함을 받았다라는 선언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은 무엇보다도 죄들의 사함을 위해 오셨다는 것이며 이 죄사함의 역사는 앞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완성될 것이다.

 

이 사건을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던 사도들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에 담긴 신학적 의미(대속/속죄/어린양의 죽음)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사건을 전달한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죄들의 사함을 주시어 하나님과 단절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구원자이시다.

 

예수님의 선언을 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판단하게 됐는데, 왜냐하면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이 그런 하나님만이 행사하실 수 있는 권위를 사칭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그들이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을 벌써 아시고 그들에게 질문하셨다: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2:8~9; 9:4~5; 5:22~23). 예수님은 둘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질문하셨지만, 그것은 둘 다 인간은 감히 말할 수없는 오직 하나님만이 말하실 수 있는 권능의 말씀이다.

 

어느 사람이 감히 동료 인간을 향해 네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느 사람이 감히 중풍병자를 향해 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그 말이 그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이 두 가지 선언을 다 하실 수 있는 권능이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겠다라고 하시면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 네 상을 자지고 집으로 가라”(11; 9:6; 5:24). 그러자 그가 일어나 곧 상을 들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갔다. 마가와 마태는 그가 일어난 것에 대하여 수동태 동사를 사용하여 예수님의 말씀의 권능이 그에게 임하여 일으킴을 받은 것을 부각시켰다. 누가의 묘사는 더 생생하다.

 

누가는 그가 즉시일어났다는 것과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누워있던 침상을 번쩍 들었다는 것과 그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의 집으로 갔다고 묘사한다.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자 그 말씀이 그대로 그에게 이뤄진 현장의 모습이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목적은 그가 하신 말씀과 같이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겠다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일어나 네 상을 들고 걸아가라라고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뤄진 것과 같이 앞에서 사람아 네 죄들이 사함 받았느니라라고 하신 말씀도 이미 그에게 이뤄진 것을 입증하는 사건이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들을 사하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 받은 하나 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김광수 특임교수 / 한국침신대



총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