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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혹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는가?

하늘붓 가는대로 –178

 

마지노선은 1934년 프랑스가 독일국경에 만들어 놓은 요새선(要塞地)으로 근대 축성(築城)의 획기적인 축성인데 전쟁 중 독일 공군에 의해 파괴됐다. 독일군이 이 마지 노선만 넘으면 프랑스에 큰 타격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노선은 넘어서는 안 될 절대경계선이다. 이것을 빗대어 우리 생활에도 마지노선을 넘었으니 어쩌니 하고 있다. 우리는 마지노선을 넘지 않았나? 그 선은 지켜야 할 생명선이다.

 

성경에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의 마지노선이 있다. 하나님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은 마지노선을 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거역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란 마지노선을 범한 것이다. 일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일찍이 마지노선을 범했다. 마지노선 이전에 있어 야할 그가 그만 선을 넘었다. 그게 타락이요 범죄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 니라”(2:17) 이게 하나님의 마지 노선이다.

 

그런데 여자가 범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마지노선을 범한 후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던가?

 

이에 그들이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아더라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3:7~8) 그래서 하나님은 어떤 조치를 취하셨나.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하지만 이 마지노선을 범한 조상들에게 하나님은 최후 사랑을 베푸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니라”(3:21) 두로 왕이 또 마지노선을 넘었다고 했다. 마지노선을 넘은 그에게 슬픈 운명이 따랐다. “내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내가 영화로으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요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왕들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28:17) 성경의 역사에서 마지노선 범한 것을 살피면서 현재의 우리는 또 마지노선을 범하고 있지 않나 보자. 남남 남녀 이성 간의 마지노선은 정결이다.

 

 

아무리 남남이성간의 여타 관계로 친숙한다 해도 정결의 선을 넘으면 그 관계는 마지노 축성의 붕괴다. 친한 벗 사이에도 다각도로 친교 하지만 금전 마지노선이 있다. 금전거래의 부정함은 친우관계의 축성을 붕괴시킨다. 모든 인간관계는 여러 형태의 마지노선 들이 있다. 신뢰받고 존경받는 사람은 얼마나 마지노선들을 잘 지켰나에 의한다. 내가 어떤 지인과 마지노선을 깨본 경험이 있다.

 

개척교회 하던 중 건물을 짓기 시작해서 완성할 즈음 IMF가 터진 것이다. 은행 융자의 이자가 당황할 만큼 높아지고 있었다. 평상시 나를 존경한다 하면서 따르는 것 같은 지인을 찾아가서 금전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부터 일체 모든 관계가 두절됐다. 지금까지 교제가 없다. 그 지인과 나 사이의 금전 마지노선을 내가 범한 것이었다.

 

우리 주위에 둘러 쌓인 마지노선을 잘 지켜줄 아는 자가 분수(分數)를 파악하는 자일 진데 목회자와 성도 간에도 마지노선은 있지 않나. 노사문제도 마지노선의 유지 문제가 아닐까.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마지노선은 하나님은 창조주 시고 우리 인간은 피조자라는 마지 노선이 있다. 하나님은 의이시고 우리는 죄라는 마지노선이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아들로 말미암아 마지노선을 다치지 않고도 경과토록 했으니 이런 신비가 또 어디에 있으랴. 그의 피가 마지노선을 해결했었지 않았나. 마지노선을 파괴하지 않고도 마지노선을 넘어가는 이 사건을 은혜 구원 사건이라 하지 않는가.

 

권혁봉 목사 한우리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