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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불순종(삼상13:1~23)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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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간다고 공원길에서/ 살금 살금 데이트만 하고 와서는/ 밀린 숙제 못하고 끙끙대더니/ 그만 그만 사르르 잠이 들었네/ 시끄러운 찻집에 홀로 앉아서/ 메모지에 낙서만 하고 있다가/ 시험지를 받아드니 아는 게 없어/ 또르 르르 연필만 굴리고 있네” ‘안 되는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90년대 쿨 시스터스의 노래인데 우리 존재의 부끄러운 단면을 보여준다.

 

몰라서 저지르는 잘못알면서도 저지르는 잘못이 있는데 본문에 알면서도 잘못을 범한 불순종의 사람이 등장한다. 사울 왕이다. 급상승하던 사울 왕이 급전직하로 추락한다. 화려한 등장은 잠깐일 뿐, 사울은 곧바로 긴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알면서 저지른 잘못

사도행전에 사울의 집권을 40년이라고 했지만 그 40년은 모세부터 사무엘, 다윗, 솔로몬 등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연대일 수 있기에 정확히 얼마동안 집권했는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청년 시절에 기름 부음 받고, 아들 요나단이 활발히 활동하고 손자까지 봤다면 꽤 오랜 세월을 왕위에 있었을 셈이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1) 라 한 것도 히브리 성경에는 40이라는 숫자마저 나오지 않고, 표준새번역에서는 30세라 했다. 성경은 사울의 나이나 재임기간보다 사울의 실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울의 실패는 알면서 저지른 잘못에서부터 시작됐다. 암몬과의 전투에서 대승했지만 블레셋과 전쟁을 앞둔 이스라엘군의 모습이 형편없었다면 암몬과의 전쟁 때도 군사력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군사 삼천 명, 그마저 오합지졸(烏合之卒)일 뿐이었다.

 

고대 전투에서 전쟁은 신에게 제사를 드리거나 신탁을 물었다. 그런데 사무엘이 7일을 기다려도 오지 않고 군사들은 흩어지자 다급한 마음에 사울은 그만 자기가 제사를 주관한다(8~9).

 

그런데 묘하게도 사울이 번제(a burnt offering)를 마치자마자 사무엘이 나타난다(10). 사울은 부득이하여번제를 드렸다고 상황을 설명한다 (11~12).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이지만 사무엘은 단호하게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며 망령된 행동이라 한다. 아무리 왕이라도 권한 제한이 있는데 직권남용죄(職權濫用罪)를 범했다는 것이다.

 

급해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조급함이 죄를 낳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짜 조급해야 할 것은 일의 성취가 아니라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성경에 보면 사무엘의 책임추궁이 무섭다. 우리 대한민국 형법 제123조에 의하면 직권남용은 5년 이하의 징역과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지만 대통령은 마치 적용 대상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사무엘은 즉각 탄핵(彈劾)을 선언한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14).

 

단 한 번의 실수였지만 왕 노릇이 끝났 다는 심판이며, 다른 사람을 찾아 왕위에 세운다는 가혹한 선언이다. 알면서 저지른 불순종이었기 때문이다.

 

변명의 여지가 있다?

문제는 사무엘이 약속대로 7일 안에 길갈에 도착하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 라는 것이다. 백성들도 동요했다. 그래서 부득불 대신 드린 제사, 왕의 권한을 뛰어넘는 월권(越權)이자 직권남용일수 있지만 부득이한 긴급조치(緊急措 置)였다는 것,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같다.

 

번제가 끝나자마자 사무엘이 도착했다는 것도 좀 이상하다. 마치 시험하기 위해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나타난 것 같은 느낌이다. 혹시 그게 사실이라면 충분히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국난이 일어난 때였기 때문이다. 왜 순진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놓고 함정을 만들어 빠지게 하고, 뒤에서 흔드나? 그리고 약속보다 늦게 온 것에 대한 “I am sorry”도 없다. 그뿐인가? 단 한 번의 실수인데 바로 탄핵은 너무 하지 않나?

 

덮어주지는 못할망정 너무 엄격하고 가혹하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바로 폐위를 선언한다. 개인적으로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1절을 보면 이 일은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2년만에 일어났다고 했다.

 

만일 사도행전의 언급대로 사울이 40년을 집권했다면 그는 사무엘의 심판 선고 후로도 38년을 더 집권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은 사울에게 회개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울 왕이 회개했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만일 회개 했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울은 회개는 커녕 15장에 보면 아말렉 족속과 그 소유를 모두 진멸하라는 명령을 또 어기고, 자기 생각대로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며 숨긴다. 알면서도 잘못을 반복한 것이다. 그는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했다. 이 사건도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좋은 것을 자기가 챙기려 한 게 아니고 하나님께 드리려고 남겼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사건은 대표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 언급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이유는 사울의 삶이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데 실패한 불순종 때문이다. 다음 왕인 다윗은 사울보다 더 큰 죄를 짓는다. 간음하고 살인 까지 교사한 사람, 당연히 탄핵감이고, 구속감이지만 눈물로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받는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하신다. 사울도 변명의 여지가 있다고 합리화하기보다 회개했다면 최소한 불순종의 대명사로 낙인찍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시라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이스라엘은 사무엘부터 다윗 시대에 이르기까지 주변에 있는 적들 중 가장 강력했던 블레셋이라는 강국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병력이 비교가 안 된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3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5). 숫자만 많은 게 아니고, 병거가 3만이라 했다. 병거는 오늘날의 전차, 탱크 정도가 아니다. 그때가 청동기에서 철기로 교체되던 시기였기에 당시 철기문명은 최첨단 무기였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정규군은 고작 삼천 명, 그것도 민병대 수준이다. “그를 따른 모든 백성은 떨더라”(7), 백성들은 겁을 먹고 숲속에, 바위틈에 숨었다. 그것도 요단강 건너편으로 달아나고 남은 군사는 겨우 600명가량이다 (15). 블레셋은 세 방향으로 특공대를 보내 조직적으로 공격하는데 무기도 상대가 안 된다.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22). 그들은 그저 농기구 들고 싸웠다.

 

그런데도 싸움을 이만큼 이끌었다며 사울이 뻐기면 안 된다.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에벤에셀의 하나님, 여기까지 도와주셨다. 생각해 보라. 언제 이스라엘이 군사력으로 이긴 적 있나? 암몬과의 싸움도 군사력 때문에 이긴 게 아니지 않나?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매”(11:6), 백성들이 한 사람같이 일어난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이었다.

 

문제는 지금 블레셋과의 싸움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이다. 다급하다고 자기 생각대로 할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렸어야 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죄를 지을 게 아니라 순종하는 믿음을 보였어야 했다는 말이다.

 

별것 아니야.”, “별문제 없을 거야.” 혹시 사울은 이렇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이렇게 영혼의 문을 열어주면 사단이 밀고 들어온다. 뒤늦게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후회해도 소용없다. 그런데 사울 왕은 최소한의 반성도 없다. 끝없이 자기합리화만 한다.

 

우리도 지금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신앙생활이 위축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그런 자세도 안 된다. 하나 님은 아무리 거센 격랑이 일어도 잠잠케 하실 수 있고, 그 어떤 폭풍도 잠재 우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코로나19를 핑계 대며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후회하는 인생이 되지 말고 순종하는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이희우 목사 / 신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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