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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의 기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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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체설은 떡과 피가 직접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본질적 실체로 바뀜으로 그리스도가 임재한다고 설명했다면, 공재설은 떡과 포도주는 그대로 있지만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하심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과 떡과 포도주가 공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루터는 삼위일체의 연합(일치)과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떡과 포도주의 연합은 유사한 신적 신비로 이해했다. 그가 떡을 분배할 때 그리스도가 그의 몸을 먹도록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고 명료하게 기술한 본문이 지금 여기에 있다.

 

이것 위에 우리는 주의 만찬에서 우리가 참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취한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믿고 가르친다. 그러나 어떻게 이것이 발생하거나 어떻게 그가 떡에 존재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속박하거나 측정하는 것 없이 우리가 믿어야만 한다. 우리의 눈으로 그 떡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 현존한다는 것을 우리의 귀로 듣는다.

 

공재설은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주의 만찬을 이해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플라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질적 세계는 참된 실체인 이데아(ideas) 세계의 그림자로 이해했다. 루터교 전통은 떡과 포도주를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한 상징으로 인정하는 동시에 믿는 자들과 그리스도를 연합하게 하는 매개체로 이해한다. 루터는 성서적 측면과 철학적 근거로 화체설을 거부했다. 성서는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에 침묵한다. 그러므로 화체설은 성서에 의한 가르침이 아니라 성서가 질문하지 않는 질문에 대한 사변 철학에 불과하다.

 

그러나 루터가 화체설을 분명하게 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징적 기념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루터의 공재설은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의 임재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는 가톨릭의 전통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루터의 공재설 역시 헬라 철학적 사고에 근거를 둔 화체설의 설명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체 공존설의 성서해석학적 문제점은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실재로는 상징적 해석도 문자적 해석도 아닌 모호한 해석학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떡과 포도주가 곧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붙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떡과 포도주라는 물리적 음식을 먹고 마신다는 입장과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이중적인 논리를 펼치는 것에 불과하다.

 

칼빈의 개혁교회 전통의 주의 만찬의 이해

개혁교회의 선두 주자인 칼빈의 견해를 이해하는 것은 개혁교회 전통의 주의 만찬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렇지만 주의 만찬에 대한 칼빈의 견해를 명확하게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루터는 가톨릭의 화체설과 쯔빙글리의 기념설의 중도에 위치하고 있었다면 칼빈은 떡과 포도주에 그리 스도가 현존한다는 공재설을 주장한 루터와 기념설을 주장했던 쯔빙글리 간에 있었던 주의 만찬 논쟁에서 중도적 입장을 취했다.

앤쏘니 래인(Anthony Lane)은 중도적 입장에 있었던 칼빈의 개혁주의 전통의 사람들에 대해 “칼빈 진영의 마음은 루터에 가까웠다면 그들의 머리는 쯔빙글리에 기울어져 있었다”고 평가했다.

 

칼빈은 주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통해 그리스도가 실재로 임재하심을 주장했다. 칼빈의 임재설이 화체설이나 공재설과 다른 점은 칼빈은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일치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상징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칼빈은 떡과 포도주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그리스도의 영적으로 임재하기 때문에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임재를 위한 상징적 실체임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주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를 주신다는 것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눈에 보이는 표징을 주시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받았을 때에 그 몸 자체도 우리에게 함께 주어지는 것임을 확실히 신뢰해야 할 것이다.” 물리적인 떡과 포도주가 육체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과 같이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는 그리스도가 만찬 참여자에게 영적으로 자신의 몸과 피를 영혼의 양식으로 주시는 매개체이다.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임재를 상징한다는 것을 강조한 점에서 칼빈은 루터의 공재설보다는 쯔빙글리의 기념설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의 임재설은 쯔빙글리의 기념설에 반대하는 논쟁에서 시작됐다.

개혁교회의 선두 주자들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천상의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가 공간적으로 주의 만찬이 시행되고 있는 지상에 내려오실수 없다는 것에 동의했다.

 

칼빈은 가톨릭의 화체설은 천상의 그리스도를 끌어내려 이 땅에 있는 떡과 포도주에 속에 집어넣거나 또는 그것들에 붙어 있다고 꾸며낸 미신을 확산시키려는 사단의 교묘한 방법으로 취급했다.

개혁교회 주의 만찬 전통은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천상의 그리스도가 어떻게 지상의 주의 만찬에 실재로 임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의 답변이 칼빈의 실재 임재론에 의존되어 있다. 칼빈은 천상에 있는 그리스도를 이 땅으로 내려오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하여 믿음으로 참여자들이 하늘의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올라가는 것으로 이해했다.

 

칼빈은 주의 만찬에서 실재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떡과 포도주가 아니라 참여자의 믿음과 성령의 역할이라는 두 요소가 필연적이다. 칼빈은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자의 측면에서 주의 약속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것처럼 주의 만찬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를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그리스도의 임재의 효력이 나타난다. 믿음이 없이 행해지는 주의 만찬의 무효력에 대해 칼빈은 “성체(the sacraments)로부터 믿음이 분리된 사람은 몸으로부터 떠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같이 행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믿음이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임이 틀림없지만 성령의 도움 없이 참여자들이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칼빈에 의하면 믿음마저도 성령의 선물이다. 성령의 능력이 주의 만찬의 참여자들에게 침투하여 영혼의 문을 열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실체 화한다. 그러므로 칼빈은 성령의 능력 없이는 성만 찬의 능력은 전혀 효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주의 만찬에 참여자들은 그리스도의 임재에 실재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과 성령을 통해 주의 만찬의 참여자들은 떡과 포도주에 실재적으로 임재하신 그리스도와의 영적 연합에 참여한다.

칼빈은 주의 만찬의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가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게 하는 도구임을 강조했다. 칼빈은 말씀 안에서 그리스가 현존하는 것처럼 주의 만찬에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 나의 피다”라는 주의 말씀 안에서 그리스도가 실재로 현존하며, 비록 그리스도가 천상에 계시지만 만찬의 참여자들이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영혼의 양식이 되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받게 된다고 했다.

 

칼빈의 임재설은 떡과 포도주를 죄사함을 얻게 하는 양식으로 비유하는 주의 만찬에 대한 그리스 도의 재정의 말씀에 근거한다(고전 11:24; 마 26:~28; 막 14:22~24; 눅 22:19~20). 또한 우리는 성찬의 매우 강력한 - 그리고 거의 모든 - 힘이 바로 “너희를 위하여 주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이라는 말에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몸과 피가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하여 이미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면, 그 몸과 피가 지금 나누어 받는다고 해도 별 유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떡과 포도주로 그것들을 나타내도록 한 것은 그것들이 우리의 것임을 물론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주어진 것임을 배우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떡과 포도주가 육신의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상징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참여자들은 영혼의 양식을 섭취하게 되는 유익을 얻게 되므로(요 6:45, 55)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능으로 구원, 의, 성화, 영생 등을 주의 만찬을 통해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최선범 교수 / 한국침신대 신학과(신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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