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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될 남자(삼상16:1~23)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17

숀 코넬리 주연의 ‘왕이 되려 한 남자’(The Man Who Would King)라는 영화가 있었다. 007의 사나이, 숀 코넬리는 가장 제임스 본드다운 제1대 제임스 본드다. 그 영화가 나온 지 3년만인 1978년에 타임지(Time)가 영국 찰스(Charles Windsor) 황태자를 표지 모델로 선택하면서 제목을 ‘왕이 될 남자’(The Man Who Will Be King)라고 붙였다.

 

하지만 43년이 지났는데도 찰스 황태자는 아직도 왕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왕이 될 남자로 남아 있다. 그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는 올해 만 94세이고, 본인도 나이가 만 71세나 됐으니 정말 왕이 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본문 사무엘상 16장에도 ‘왕이 될 남자’가 등장한다. 다윗이다. 다윗도 왕이 되는 과정이 쉽지 않다. 왕은커녕 오히려 죽을 것 같은 위기들이 도사리고 있다. 15세에 기름 부음 받지만 왕이 된 것은 30세, 긴 세월 동안 ‘왕이 될남자’로 힘겹게 지낸다. 그러나 결국은 왕이 될 남자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히든카드로 등장하면서 다윗 시대가 시작된다. 왕이 될 남자 다윗, 이제부터는 사무엘서의 역사는 다윗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를 왕으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지기 때문이다. 사울의 실패 때문에 사무엘이 낙망해 있을 때 하나님이 “사울은 내가 이미 버렸다”며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하시며 그를 일으켜 세우신다(1절). 하나님이 반전을 주도하신 것이다.

 

암울할 때마다 그냥 버려두지 않으 시는 하나님, 결국 히든카드를 뽑아 들며 다음 왕을 세우신다. 왕이 될 남자를 보셨다며 사무엘에게 이새에게로 가라고 하신다(1절). 사무엘은 주저한다(2절). 사울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당연히 새 왕을 세울 것이라는 사무엘의 말에 잔뜩 긴장하고 사무엘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 왕 몰래 비밀리에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 하신다. 제사 올리러 가는 척하며 사울을 속이라고 하신다(2절).

 

속이라시는 하나님. 꾀를 내라고, 거짓말을 하라고 하신다. 어찌보면 하나님 답지 않은 지시다. 결국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이 될 남자를 찾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첫선을 보았던 장남 엘리압은 용모가 준수하고 키가 컸던 모양이다.

 

사무엘이 만족해 했지만 하나님은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며 아니라고 하신다(7절). 마치 사울 때 용모와 키를 보고 뽑았던 것이 시행착오였음을 인정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엔 외모보다 중심!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이다. 외모는 그 사람의 신분과 출신, 인생을 살면서 쌓은 업적을 말한다. 건장한 체격, 늠름한 모습, 카리스마…. 세상은 외모에 열광하고, 카리스마에 열광하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순전한 마음, 중심이다.

 

기름 부음 받다

다윗의 등장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1절에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새의 아들 중에서 왕이 될 남자를 ‘보았다’고 하셨지만 그 사람이 바로 다윗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한 명씩 일일이 확인한다. 그러나 장남 엘리압부터 순서대로 보는데 일곱 아들이 다 지나갔음에도 하나님은 계속 아니라고 하신다.

 

사무엘은 다른 아들은 없는지를 물었고, 이새는 양을 지키고 있는 막내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막내’라는 말은 다분히 하찮은 존재,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뉘앙스다. 아버지조차 자격 미달이라고 생각했던 막내, 아니 아예 잊고 있던 괄호 밖의 아들,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새는 그 아들이 다윗이라고 이름조차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무엘이 기다렸다가 그 막내를 볼 때 하나님은 그때서야 “this is the man”이라 하신다.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12절), 다윗이 ‘왕이 될 남자’라는 말씀이다. 놀라운 것은 이때까지도 다윗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13절에서야 처음으로 그 이름이 등장한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마치 소중한 보석과 같이 감추어져 있던 이름, 다윗이란 이름이 드디어 나타난다. 그만큼 왕이 될 남자 다윗을 아끼시는, 히든카드였다는 뜻이다. 다윗은 훗날 하나님의 기대대로 통일왕국을 이루고 이스라엘의 영토를 확장하고 중동의 제국으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그는 무엇보다 메시아의 표상이 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윗의 능력이나 신화가 아니다. 성경은 다윗이 하나님과 함께 했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다루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 받는 순간부터 왕이 될 때까지 그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이 16장 말씀에 대사 한 마디도 없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 하셨다는 사실만 강조된다(18절).

 

양을 치는 목동, 집안의 말째, 다윗은 작고 연약한 존재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쓰신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1:27) 이 표현 그대로다. 그렇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것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다.

 

다윗은 하나님께 선택받는 순간 그용모가 빛이 났다(12절). 원래 없던 표현이다. 하나님이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고 하셨고, 아버지 이새 또한 다윗을 자신 있게 소개하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하나님의 인정, 하나님의 선택 이후 성경은 다윗을 빛나는 인물로 표현한다.

 

이거다.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인정이다. 인정받고, 선택받는 것이 사람을 빛나게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다윗도 그랬다. 사람이 달라 보인다. 왕의 그릇이 따로 있을 수있지만, 왕 대접하면 정말 품성이나 능력이 왕처럼 되는 것 같다.

 

반면에 사울은 하나님의 인정을 잃은 그 순간부터 빛을 잃었다. 왕의 품성이 다 무너졌다. 칭찬과 인정은 고래도 춤추게 하지만 외면은 사람을 추하게 만든다는 말 그대로 되고 말았다.

 

수금 타며 정계에 입문하다

이제 다윗은 왕이 될 남자다운 능력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첫 입문이 의외 다. 사울을 위해 수금 타는 시종으로 입문한다. 사울 왕이 악령에 시달릴 때였다. 성경은 그냥 악령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라 했는데 같은 표현이 14절, 15절, 16절에 연달아 나온다. 성경은 하나님이 악령을 부리신 것보다는 그때 수금을 잘 타는 음악가로 알려진 다윗이 왕의 곁으로 갔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그게 다윗이 정계로 진출하는 발판이었기 때문이다.

 

기름 부음 받은 이후 긴 시간을 보낸 다윗이 충분히 연단 받고 준비 기간을 가졌다면 졸지에 왕이 되었던 사울은 그 무게감에 짓눌려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증상을 보면 아마 심한 조울증 (Bipolar disorder), 감정 기복이 심하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서 나타난 증상, 그는 지금 추락하고 있다. 비참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런 사울을 치료해 준 것이 바로 다윗의 수금이다.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23절). 단순한 음악의 힘일까? 아니다. 다윗의 연주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그래서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악령이 떠나가고 우울하던 사울이 기적처럼 상쾌해졌다. 회복된 사울은 다윗을 크게 사랑하며 그를 무기 드는 최측근으로 삼는다.

 

치유자가 된 것이다. 치유자 다윗! 다윗은 사울뿐만 아니라 병든 이스라엘을 치유할 사명자, 그의 찬양은 동서고금을 넘어 모든 사람의 영혼을 치유한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 공감과 위로를 주고, 절망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믿음과 희망을 준다.

 

왕이 될 남자 다윗, 이제 왕위 수업이 시작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다윗은 사울 왕 곁에서 왕의 자세와 통치술을 배우고 인맥을 만들어간다.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왕이 될 남자와 다를 바 없는 ‘왕 같은 제사장’, 주어진 일과 상황에 정성껏 반응하다 보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머잖아 어느새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서게 될 것이다. 우리도 ‘왕이 될 남자’이기 때문이다.

 

이희우 목사 / 신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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