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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신앙생활, 옵션인가 필수인가?

뉴노멀 시대의 교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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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목회자들은 회중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만 설교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한 두 주하고 끝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카메라 앞에 섰을 것이지만, 이제는 카메라 앞에서 설교한 지도 1년이 넘어서고 있다.

어쩌면 회중도 없이 혼자 설교하는 모습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속으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온라인 환경과 생활에 더 집중하고 있고,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서 2020 도쿄올림픽이 열렸다. 무관중 경기라는 희대의 올림픽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집에서 TV로 올림픽을 봐왔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무관중 경기는 별 의미가 없다. 그냥 TV로 보던 대로 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것처럼, 온라인 일상과 온라인 신앙생활도 점점 우리 삶에 매우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팬데믹이 시작될 때 우리는 온라인 예배가 가능할까 의구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온라인 예배과 신앙생활도 하나의 예배와 신앙생활의 형태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온라인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사역 모델을 만드는 그룹도 등장했다. 필자의 후배 목사 중에도 ‘따라하는 기도’라는 유튜브 콘텐츠로 팬데믹 상황에서는 설교보다 기도가 더 효과적임을 보여주고, 새로운 사역을 모델을 개척하는 목회자도 등장했다.

 

이제는 온라인으로 부흥회를 하기도 하고 기도회를 하기도 한다. 대형교회 중에는 새벽기도회를 온라인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을 고려하는 교회도 생겨나고 있다. 이제 온라인이 단순히 코로나19 상황을 타개하는 임시 방편이나, 설교 영상을 다시 보는 도구가 아니라, 상황과 시간을 뛰어넘어 성도와 교제하고 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편이 되어 가고 있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는 백신과 치료제가 속히 개발되어서 이전과 같은 대면 예배와 대면 목회로 돌아가는 것을 대부분의 목회자가 기대했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 달리 팬데믹은 2년 차로 가고 있다. 어쩌면 이런 온라인 상황이 고착화 될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왔다.

 

왜냐하면 이런 온라인 신앙생활에 익숙해져 가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세대는 젊은이와 장년 혹은 노년층으로 구별되는 세대가 아니 라, 온라인 신앙생활을 익숙하게 여기는 모든 신앙인들이다.

젊은 그룹이 될 수도 있고, 건강이 불편한 노년층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 숫자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이들의 숫자는 많을 수 있다.

 

이 세대는 코로나 종식이 오더라도 여전히 온라인 신앙생활에 머무를 수 있다. 최소한 대면 예배와 전통적인 목양의 세계로 다시 이끌고 갈 때, 매우 힘들 수 있다.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에서 다시 오프라인 신앙생활에 집중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쉬운 예로 코로나 기간을 지내면서 찬양대를 없애는 교회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처음에는 ‘몇 주 조심합시다.’ 하면서 모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시 조직을 세우고 성도들에게 동기부여 하기에는 힘이 든다고 느끼는 교회들이 많아졌다.

 

게다가 코로나가 잘 마무리되면 온라인 사역을 정리하고 오프라인에 집중하겠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시작된 온라인 사역을 줄여 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온라인 사역은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에는 온라인 신앙생활을 돕는 교회들이 많다. 사실 모든 신앙생활이 온라인으로 가능하게 만들었다. 성도들은 온라인으로 설교 듣고, 소그룹 모임하고, 목회자는 온라인으로 양육한다. 게다가 코로나19는 온라인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주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 매우 진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온라인 교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디까지를 교회로 볼 것인가? 교회 건물인가? 건물과 관계없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즉 가상의 공간인가?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사람이 성도인가? 그리고 더 정확히는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신앙을 가진 성도들을 어떻게 진정한 제자와 전도자로 만들 것인가이다.

 

얼마 전에 목회자 모임을 다녀왔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팬데믹 상황에서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가?’였다. 특히 영상 설교와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됐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설교 영상을 만드는 것에서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나 방법이 비슷했다. 그런데 헌금에서 만은 두 가지 의견이 나왔다.

헌금이 줄어든 교회가 있는 반면, 헌금이 늘어난 교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대면 예배를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더 정확히는 대면 예배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교회의 헌금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두의 생각과 달리 헌금이 늘어난 교회들이 있었다. 그것도 꽤 높은 비율이었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지만 교회는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성장하고 축복된 미래를 누리는 교회는 등장할 것이다. 그러니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미래를 뜻하는 영어 단어는 “Future”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미래학에서는 미래를 단순히 “Future”라고 하지 않는다. 미래학에서 미래는 “Futures”다. 복수형으로 “s”를 붙인다.

 

왜냐하면 결정된 한 개의 미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복수명사 “Futures”를 사용한다.

 

즉 최악의 미래만 존재하지도 않고, 고난의 미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믿음의 사람들에게 미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그리고 미래학에서는 현재 허황된다 (ridiculous)고 여겨지는 생각이 오히려 해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왜냐하면 미래의 의외성과 예외성을 인간이 예측하기를 어렵기 때문이 다. 그리고 슈퍼 컴퓨터나 학자들이 연구해서 내어 놓는 통계적으로 예측되는 미래(Probable Futures)는 학문적으로만 가능할 경우가 높다. 미래학에서는 이러한 통계적 미래가 달성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본다.

실제로 2020년에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심각한 변화를 겪을 것을 예측한 정부나 기업은 하나도 없었다.

과학적 기법을 동원하고 최고의 석학들이 일하지만 미래는 늘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어리석고 허황된 일이라고 세상이 손가락질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한다면 온라인 신앙생활도 매우 강력한 목양의 툴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지혜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궁인 목사 휴스턴 새누리교회 코스타(KOSTA)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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