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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순교의 역사를 기억합니다”

총회, 강경서 신사참배 거부 기념예배 드려

 

우리교단 총회(총회장 김인환 목사)는 지난 5월 10일 충남 강경 옥녀봉 ㄱ자 교회터에서 침례교 신사참배거부 기념예배를 드렸다.


교단의 신사참배 거부 역사는 1942년 6월 10부터 9월 11일까지 교단 대표 32인이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이중 전치규 목사는 옥중에서 순교했다. 


결국 일제는 1944년 5월 10일 함흥재판소에서 교단 폐쇄령을 내렸고 이로인해 전국의 침례교회가 폐쇄되며 재산이 몰수되고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투옥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에 우리교단은 지난 2015년 105차 정기총회에서 매년 5월 10일을 교단 신사참배 거부 기념일로 정하고 2016년 5월 10일 첫 예배를 드린 바 있다. 


이날 행사는 교단 관계자와 강경 지역 교단 목회자, 논산시 관계자, 순교자 32인 후손 등 200여 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기념예배는 총 4부에 걸쳐서 진행했다. 1부 감사예배는 총회 전도부장 백승기 목사(백향목)의 사회로 2부총회장 강명철 장로(산양)의 기도, 김승 목사(이레)의 특송, 총회 군경부장 정희량 목사(광정)가 성경봉독한 뒤, 김인환 총회장(함께하는)이 “자랑스런 역사를 이어가는 도전”(계 2:1~7)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했다.


김인환 총회장은 말씀을 통해, “자랑스러운 선진들의 믿음의 고백으로 오늘의 침례교회가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뜻깊게 여기고 있다”며 “교단의 참혹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도 침례교단의 그 역사를 잊지 않고 계승해 나갔으며 이제 오직 성경, 오직 복음으로 이 시대에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교단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어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가 광고하고 (사)역사신학회 이사장 임공열 목사(세종송담)의 축도로 감사예배를 마쳤다.


2부 기념식은 총회 농어촌부장 조용호 목사(칠산)의 사회로 신사참배 거부 기념일에 대한 경과보고, 한국침례교회사연구소 오지원 박사(한국침례신학대학교 겸임교수)가 신사참배거부로 수난당한 침례교 대표 32인에 대해 보고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사)침례교 역사신학회가 발간한 ‘신사참배 거부로 수난당한 침례교 대표 32인’의 저서를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다.


이어 김인환 총회장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32인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공로패는 대표로 고 전치규 목사, 고 전병무 목사, 고 이종근 감목, 고 김만근 장로, 고 김주언 장로에게 수여했으며 김의철 목사와 최선희 목사, 김종국 장로, 김병윤 장로가 대신 받았다.


축하의 시간은 백성현 논산시장과 71대 총회장을 역임한 유영식 목사(동대구), 한국침례신학대학교 피영민 총장이 축사를 한국교회사연구소 윤석일 목사가 격려사를 전한 뒤, 김인환 총회장의 폐회기도로 기념예배를 마쳤다.


참석자들은 옥녀봉에서 도시락으로 식사한 뒤, 펜윅 선교사에 이어 교단 2대 총회장을 역임한 이종덕 목사의 순교터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이종덕 목사는 1883년 충남 공주 이인면 신영리에서 출생했으며 1912년 펜윅 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 활동했다. 1914년 2대 총회장으로 북방선교와 간도지역 개척 등 해외선교에 힘쓰며 신약성경 출판, 남북분단 이후 교단 재건기에도 총회장을 역임하며 교단 재건에 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와중, 1950년 9월 28일 공산군에게 총살당해 순교했다.


김인환 총회장과 총회 임원, 역사신학회 임원들은 이날 순교터에서 함께 이종덕 목사의 순교의 뜻을 기리며 침례교회가 순교의 정신을 본받아 정진해 나갈 것을 다짐하며 합심으로 기도했다.

강경=이송우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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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