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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지 말자

시대를 읽는 지혜-7
임원주 목사
진리교회 협동

2021년 2월 무렵부터,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만들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관련 기술이나 요령을 하나도 모른 채 시작했다. 동영상을 어떻게, 무엇으로 촬영하느냐는 것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손에 든 핸드폰으로 시작했다. 어떻게 편집하는지도, 어떤 편집 프로그램이 좋은지도 몰랐다. 당장 필요한 것부터, 하나 둘씩 유튜브에서 찾아 시청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점점 구체적이 되고, 무엇보다도 내가 만든 동영상의 문제점들이 너무 잘 보이니, 온갖 종류의 잘 만들었다고 할만한 동영상들을 반복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가 유명하다는 뮤직비디오 동영상까지도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최근에, 중소 연예기획사가 키워낸 ‘걸그룹’ 하나가 출범 1년이 안 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돌연 걸그룹 멤버들이 기획사 대표를 상대로 ‘전속계약 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일이 벌어졌다. 음악과 동영상, 그리고 프로모션에 관련된 업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전한 싸움이 되다보니, 비록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배울만한 기본적인 기량들이 자연스럽게 발휘된 동영상들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보니, 유튜브 자체가 관련 동영상이 수도 없이 추천하고, ‘동영상 제작기술’에 더욱 관심이 있음에도 결국 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됐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이 사건을 관통하는 핵심은 ‘배은망덕’이다. 걸그룹이 되겠다는 2류 급의 아이들을 뒷받침해준 중소규모의 연예기획사 대표는 천사처럼 선량하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쏟아붓고, 심지어 90세의 노모가 평생 모은 9000만 원까지 탈탈 털어다가 뒷받침을 해, 결국 그들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아이돌’이 되도록 만들었다는 신화적인 성공스토리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성공의 열매를 수확하기도 전에, 혼자 먹을 욕심에, 연예기획사 대표를 배신했다. 그래서 은인의 뒤통수를 쳤다는 뜻의 ‘통수돌’ 배신했다는 뜻의 ‘배신돌’ 황금알을 낳는 오리의 배를 가르고 알을 꺼내는 어리석음을 범했다는 ‘할복돌’이라는 말이 돈다.


착잡했다. 저 ‘걸그룹’ 구성원들과 부모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뱀의 혓바닥처럼 혀를 놀려댔을 ‘사기꾼’같은 제3의 세력을 생각해서가 착잡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 곁을 스쳐 지나갔던 어리석은 신학생들, 목사들, 그리고 작금의 교단 현실의 어두운 그늘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신학생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잘못은, 탁월한 기량을 가진 목사들, 신학적으로 탁월한 교수들, 괄목할만하게 성장하는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순방하며, 탐색하며, 매의 눈으로 그 성장의 비결을 간파해, 그 비결들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면 된다는 단순 무지한 생각이다. 


물론, 공부를 해야 한다. 선배들로부터, 교수로부터 철저히 배우고 익히려는 열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기본이다. 핵심은 ‘피, 땀, 눈물을 흘리는 수고를 제대로 했는가?’ ‘정당한 것을 배우되 그 대가를 정당하게 치르고자 하는 열정은 있는가?’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각오와 실천은 어떠한가?’에 있다. 하나님은 구름 위에 앉아 계시고, 구름 아래의 세상사에는 조금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발상은 전혀 기독교적이지 않다. 하나님은 존재하실 뿐만 아니라 세상사를 섭리하시고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시다. 이 명제를 철학적 명제로만 인식하거나 겉치레뿐인 ‘고백’으로 남겨두지 않고, 그 하나님과 하나님다움을 철저하게 체득하고, 그 앎을 인생의 근본가치이며 기준으로 삼는 과정이 신학을 배우는 과정이어야 하며, 그 철저한 실천의 삶이 평생토록 변함이 없어야 한다. 신자와 목회자의 삶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삶은 그 출발점이 ‘배은망덕에 빠지지 않기 위한, 자기와의 싸움’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승리는 ‘자기부인’이 기본 관건이며, 반대로 패배의 지름길은 ‘자기 이익의 도모’에 있다. 


내게 찾아와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싶다고 간절하게 청원하던 신학생들이 제법 있었다. 참 황송한 일이다. 하지만 내게 무엇인가 배울만한 것이 있다고 여겨, 반드시 배우겠다는 학생이 있으니 그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고, 그토록 배우고 싶다는 학생을 거절한 적이 없었다. 몇 년의 시간을 동고동락하듯이 가르치듯, 교제를 나누듯 하던 학생이 왜 내게 그것을 배우겠다고, 그렇게 배워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이 몇 번 있다. 처음에는 좋은 사역자가 되고 싶다는 답변이었는데,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공부에 대한 집요함이 더욱 커지면서 나온 답변은 ‘필자를 이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겨도 소용없는 것을 이기겠다는 것은 미련이요 어리석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이기고야 말겠다는 고집은 ‘집착’이라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제자가 스승을 이기고 최고의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제자가 스승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하게 정당한 경우란 스승이 배움도 가르침도 포기하고 인생을 정리한 뒤일 뿐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더욱 생각해서도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제자는 스승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서 스승보다 더 멀리 보고 다가올 자신의 시대를 준비할 뿐이다. 어깨를 내어주는 스승이 있다는 고마움을 잊고, 스승의 어깨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누린 감사를 배신하고, 그저 스승을 이기겠다는 생각을 품는다면, 스승을 이기지도 못하지만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며, 더 깊은 불행으로 나아갈 뿐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이다. 


스승조차 이기겠다는 이런 사람, 이런 마음은 그가 아무리 성공적인 규모의 목회를 한다고 한들 자신의 성공과 과시를 위해 주변의 사람들조차도 희생시킬 사람이다. 결국, 그 사람은 나와의 관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그 책임을 내게 뒤집어씌우고, 내게서는 배운 것이 없다고 하길래 떠나보냈다. 몇 년 뒤에, 우연히 접한 지인을 통해, 그 사람이 어떤 이단 종파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실제로는, 평생토록 적극적으로 희생하며 헌신한 목사들 중에서도 노년에 접어들면서는 교회를 자신의 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도구로 전락시킨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를 잘 세웠다고 자부심을 내비치지만 사실상 교회를 팔아치우거나 세습하거나 하고, 이처럼 교회를 이용하려는 목사의 악행을 막고자 하는 성도들과 추악한 싸움을 벌이는 이도 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만, 그의 손과 발과 눈짓은 그 혀를 놀려 자신과 자기 가족의 왕국을 세우는 목사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배은망덕이다. 그런데도 정말 멋지게 성공했다면서 부러워하는 목사들도 있다. 이 또한 배은망덕이다. 다윗은 시편에서 자신은 결코 그런 배은망덕한 자들, 악인들의 꾀를 부러워하지도 시기하지도 않고 오히려 혐오하면서 멀리 떠나, 심각한 고난의 길을 감수하는 것을 자랑한다. 그런 다윗은 실패자인가? 다윗의 인생이 성공적인 인생이라면, 그 성공은 은혜를 알고 감사할 줄을 알고, 결코 배은망덕의 길을 가지 않는 충실한 신자에게 넘치도록 베푸시는 하나님의 상급으로 말미암은 성공이라고 다윗이 노래하지 않는가? 잠언의 중심적인 교훈이지 않는가?


이제 총회정치의 계절이 다가왔다. 교단정치의 요직을 차지하겠다는 정치력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적극적 정치행위를 하든, 총회대의권 한 표를 행사하든, 목사요 신자의 선택이니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지 말자. 하나님께서 그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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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2024년 부활절을 맞이하여 3500침례교회와 목회 동역자. 성도들 위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과 기쁨과 회복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가 죄인으로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입니다. 이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며 이제는 구원의 완성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몸소 가르치시고 보여주시기 위해 그의 아들을 보내주신 사실을 믿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으며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고난 받는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셨습니다. 그 회복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 믿음의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부활의 놀라운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복음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