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마치신 하나님과 천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만 해도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 아들을 낳는다는 약속을 주시기 위해 방문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신 하나님께서 저 멀리에 있는 소돔을 바라보더니 혼잣말을 시작하시는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혼잣말이 아니라 대화였는데 대화 상대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 나누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사이의 대화와 유사해 보이기도 하죠. 이 장면은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와는 확실히 달라 보입니다.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생각하지 못하던 때에 불쑥 나타나셔서 말씀을 주시고는 홀연히 사라지곤 했으니까요. 그때마다 아브라함은 최선을 다해 말씀에 순종했고, 이것은 영락없이 명령하는 주인과 받드는 종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양상이 됐습니다. 17절을 보면 아브라함을 종이나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사역 파트너로 생각하시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초보 신자로 좌충우돌하던 과거 아브라함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네요.
하나님께서 파트너가 없어서 일을 못 하실 리 없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는 동업자 같은 파트너 관계라기보다 사역 비전을 함께 나누는 공유자에 가깝죠. 이런 관계는 먼 옛날 에덴동산에서 아담, 하와와 함께하실 때 이미 보여 주신 바 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인간에게 비전을 나눠 주시고는 친밀한 대화 속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주셨죠. 지금은 아브라함이 과거 아담과 하와가 맡았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브라함을 파트너로 대하시면서도 왠지 말씀하기를 주저하셨다는 겁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망설이셨을까요?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창 18:20~21)
하나님께서 내려오신 또 다른 이유는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홍수와 같은 전 지구적 심판을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기에 인류 전체를 멸망시키지는 않겠지만 소돔과 고모라만큼은 심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그들 상태를 직접 확인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어떤 까닭으로 먼저 아브라함에게 오셨을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 심판하기를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주민에게 분명히 문제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심판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싶으셨을 겁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적극적으로 말릴 줄 아셨기 때문에 먼저 찾아와 넌지시 알려 주셨겠죠. 그에게 심판 계획을 이야기하면 틀림없이 소돔과 고모라를 구해 주시기를 간구하리라고 짐작하셨을 겁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어떤 상태였기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려 했을까요? 그들이 범한 여러 가지 죄가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단지 죄만 문제였다면 심판은 좀 더 미뤄질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성읍이라고 해서 죄 없는 곳이 있었을 리도 없고요.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받게 된 데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어찌나 시급한지 하나님께서 직접 내려와 확인해야 할 정도였죠.
해답은 20절에 언급된 ‘부르짖음’입니다. 죄도 싫으셨지만, 그들이 범한 죄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부르짖음을 더는 들으실 수 없었습니다. 18장 20절에서는 심판 이유를 부르짖음과 죄로 설명하시는데 19장 13절에는 죄에 대한 언급이 없고 오로지 부르짖음으로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죄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으나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부르짖음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소외된 사람, 아파하는 사람, 괴로움에 빠진 사람을 돌아보는 일에 절대 소홀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작은 신음까지 들으시고 전능하신 손을 펼쳐 세상에 의로움을 다시 세우실 테니까요.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창 18:23~24)
두 천사를 소돔에 보내고 홀로 남으신 하나님께 아브라함이 조금은 당돌해 보이는 부탁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설득해 심판을 막아 보려는 의도였죠. 아브라함이 펼친 논리는 소돔과 고모라 성 전체에 심판을 내린다면 의롭게 살던 적은 수의 사람까지도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일리는 있지만 이런 사실을 하나님께서 모르셨을 리가 없습니다.
참으로 인상적인 장면은 아브라함의 설득을 이유없다고 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들어주시는 모습입니다. 오십 명 의인이 있다면 심판하지 말아 달라는 청을 받아 주셨다가 사십오 명으로, 사십 명으로, 삼십 명으로, 이십 명으로, 십 명으로 줄어들 때마다 아브라함이 요청한 그대로를 받아 주셨죠. 이제 큰 성읍 소돔과 고모라의 운명은 의로운 열 명이 있는지에 달리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알고 계셨을 겁니다. 소돔이 범한 죄가 무엇이며, 어떤 부르짖음이 있었으며, 심판받는 사람 중 의인이 있을 수 있다는 것도요. 그런데도 아브라함과 대화를 이어가며 계속된 설득을 받아 주셨고, 19장에서 보듯 굳이 천사를 보내 실상을 확인하시고는 주저하던 롯 가족을 구원하셨죠.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사람 심판하기를 원치 않으셨음을 보여 줍니다. 아브라함이 설득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소돔 주민처럼 타락한 백성에게서도 희망을 찾고 계셨습니다. 숫자를 줄여가며 어떻게든 심판을 미룰 명분을 찾으려 했던 아브라함과 나눈 대화가 이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내죠. 과연 소돔에는 하나님 마음을 돌이킬 의로움이 남아 있을까요? 하나님을 설득하려는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을 롯 가족이 소돔과 고모라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