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로 출애굽 중에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던 중 에돔 땅을 둘러 행하므로 저들의 마음의 불안으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므로 백성 중에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니 죽은 자가 많게 되자 모세는 백성을 위해 회개의 기도를 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민21:8)고 말씀하셨다. 모세는 말씀대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5~16)고 증거하 시고 구원의 요절 말씀을 주셨다. “너희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율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 임이니라”(출16:26)라고 첫 번째 여호와 라파(치료자)임을 선
석탄광산지대가 석탄산업의 하락으로 폐광산촌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 부부가 그곳들을 방문했을 때 그 옛날 시커먼 광부의 퇴근하는 모습이나 쌀가게 선술집 가게에 들리던 광촌민이 생각난다. 그런데 광산업 하락으로 쓸쓸한 공허촌이 되자 정부가 지역경제 살리자는 차원에서 적극 지원책을 펴서 광촌을 살리자고 했었다. 정선읍 사북과고한 폐광촌과 삼척군 도계읍 광촌을 향해 정부가 지원할 테니 남은 지방민의 소원을 말하라고 했겠다. 두 폐광촌민이 흥분했다. 사북고한 사람들은 카지노를 요구했고 도계사람들은 대학촌을 요구했다. 정부는 그들의 요구대로 했었다. 사북 고한에는 도박학교가 세워지고 도계 에는 국립대학분교가 세워졌다. 이런 선택의 결과가 무엇인가. 사북 고관의 강원랜드지역의 참상을 신문은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내국인도 출입 가능한 국내 유일의 카지노 강원랜드는 석탄 산업 몰락 후지역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 아래 1998 년 설립됐다. 연평균 1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리지만 설리 취지와 달리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지나가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부유했던 이 마을은 강원 랜드가 들어선 뒤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 자살자는 연 초
흰옷을 입고 인물이 훌륭한 사람이 웃는 얼굴로 나타나서 손을 주머니에 넣더니 무엇인가 집어내어 손바닥에 놓고 나에게 보이는데 동그란 은전으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500원짜리 보다 조금 더 컸다. 그를 쳐다보니 모퉁이가 조금 찌그러진 것이지만 ‘고쳐서 사용하라’는 뜻으로 나의 손바닥에 놓고 사라지는 꿈늘 꾸고 눈을 뜨니 새벽 5시였는데 이상한 꿈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영몽(영적인 꿈)이라서 무슨 뜻인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다. 신약시대 로마제국의 은화로 데나리온과 그리스의 은화가 생각났다(마 22:19). 예수께서 무리에게 가르치신 후에 연보궤를 향해 앉으셨는데 부자는 많이 넣었으나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시고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12:43)라고 칭찬하신 것은 생활비 전부였음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두 렙돈은 그리스 도의 동전이고 한 고드란트는 로마의 은전으로 같은 값어치였다. 예수님은 작은 빚으로 호리라도 다 갚을 것을(눅 12:59) 말씀하셨는데 무게는 1.7g으로 앗사리온의 1/8이요 고드란트의 1/2에 해당된다(막12:42).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의
흰 옷을 입은 멋진 사람이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무엇인가 집어내어 손바닥에 놓고 보여주었다. 500원짜리 은전 모양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뜯겨나 가고 찢겨진 것으로 못 쓰는 돈이었다. 그를 쳐다보니 고쳐서 사용하라는 뜻으로 보여주고 떠나가는 꿈을 꾼 후 눈을 뜨니 새벽 5시였다. 조금 이상한 꿈을 꾸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다. 신약시대 로마제국의 은화로 데나리 온과 그리스의 드라크마 은화가 떠올랐 다(마 22:19). 예수께서 무리를 향해 가르치신 후 연보궤를 향해 앉으셨다. 부자는 많이 넣는데 어떤 가난한 과부는 와서 연보궤에 두 렙톤 곧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시고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막 12:43) 라고 칭찬하셨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드렸음을 아셨기 때문이었다. 두 렙톤은 그리스의 동전이고 한 고드란트는 로마의 은전으로 같은 값어치의 호리로 번역되어 있다(눅 12:59). 무게는 1.7g으로 앗사리온의 8분의 1이고 고드란트의 절반에 해당된다(막 12:42).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톤의 헌금은 당시 유대에서 통용되고 있던 청동화로 가장 작은 값어치의 동전인데 오늘 우리의 동전과 같
코로나 사태로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이 병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강한 분노로 거리로 나왔다. 과잉진압으로 인한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은 차별과 불평등이라는 뿌리 깊은 사회적 이슈를 건드렸고 쌓여왔던 분노의 뇌관이 됐다. 정의를 부르짖는 사람들이 평화시위로 모이기 시작했고, 또 다른 이들은 폭동으로 반응하기 시작했다. 한인사회도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듯 폭동에 희생이 되기도 한다. 성도님의 가게가 부서지고 도난당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면서, 불안한 현실은 뉴스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 코 앞까지 훅 침범해 들어왔다. 이 사태는 우리에게 주어진 권위와 파워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힘은 영향력이다. 삶의 자리에서 우리는 모두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받고 영향을 미치며 산다. 우리가 선 자리는 그 위치에 따르는 권위를 가진다. 우리에게는 교회의 리더로서, 직장의 일원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로서 힘을 갖는다. 심지어 아주 어린아이들도 어떻게 해야 부모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내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자녀들이 가진 파워가 부모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가
어느 날 밤 뉴스를 보니 코로나19 의 세계적인 확진자 수가 지난달보다 1,000만 명이 증가 되어 4,0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그날 이탈리아 에선 1만 1000명이 발생했다고 했으며, 각 나라에선 수천 명 내지 수백 명이 늘어나다보니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전염 병이 전세계인을 더욱 불안하게 만드는 팬데믹이 됐다. 이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의료진은 마스크 쓰기,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 환기시키기 같은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확실한 백신이나 치료약이 좀 더 빨리 개발되길 모두가 안타까움과 조급함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다면 심각한 현재의 상황이 어느 정도 해결되거나 근절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에 있는 지인이 건강이 좋질 않아서 혹시 코로나19에 전염된 것이 아닌가 염려하며 병원을 찾은 적이 있었 다. 진단 결과 코로나19가 아닌 폐렴 증세이니 다행이라고 의사가 말해주었다. 그 이유는 폐렴이나 결핵 같은 세균성 질병은 항생제가 있어서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사스, 메르스, 에볼라, 에이즈 등과 같은 바이러스 질병으로 확실하게 효능성 있는 백신이나 치료약이 아직 없어서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고
어느 날 아침에 아내가 주방 에서 큰 주전자에 물을 넣었다 뺐다를 여러 번을 반복했다. 콩나물을 기른다는 것이었다. 시루나 콩나물 기르는 그릇이 아닌 주전자에 콩을 넣고 아침 저녁으로 똑같은 일을 반복한 결과 주전자 속에는 수북한 콩나물이 담겨있었다. 신기하듯 콩 담음 그릇에 물을 부으면 다 빠져 나간 것 같은데 어느새 콩나물이 자란 것이다. 진도에서 목회를 하며 시작했던 노인 분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학교가 이제 초등학력 인정 문해학교가 됐고, 이제 올해만 마치면 정규 교육부 인정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다. 벌써 삼 년이 지난 것이다. 삼 년 전 처음 문해학교를 시작한다고 하니 “우리가 언제 삼 년을 공부한데요? 이제 공부해서 뭐에 쓴데요?”라고 하던 분들이 벌써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공부를 하면서도 “해도 소용없어요, 문만 나가면 다 잊어 부러요, 선상님만 헛수고 하는 거라요.”고 하셨던 분들이다. 그때마다 “콩나물 기를 때 물주면 다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여도 어느 날 뚜껑 열어보면 콩나물이 자라있는 것 아시잖아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 같지 않고 배우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것이 쉽고 빠른 연세에 있는 문해학교 학생들에게 콩나물에 물 주
물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은 무엇이나 잡아들이는 본능이 발동한다. 구제하러 들어갔던 사람을 껴안고 놓아주지 않기에 함께 익사하는 경우도 있기에 구제자는 뒤늦게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일찍 절망하고 죽음의 물속으로 들어가자고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익사하기엔 아직 빠르다. 익사하려 하지 말라. 살기를 포기하지 말라. 그냥 기다리다 보면 안전한 구원자가 있다. 사람이 사람을 일찍 포기하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다. 자기가 자기에게도 너무 일찍 포기하지 말고 그 측근자도 상대에게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성도 지인을 모처럼 거리에서 만났다. 반가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지인의 딸을 문안했다. 그 지인의 딸은 30이 넘었는데 어린 시절 부터 뇌성마비로 인해 완전히 신체장애 자였다. 딸을 휠체어 태워 부모님이 교회에 들리는 것을 보았다. 다음은 그 딸의 아버님의 말씀이었다. “딸을 데리고 이번 추석에 설악산관광을 갔더니 내 딸이 너무 좋아하지 뭡니까” 나는 이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아주 감동적이었다. 부정(父情)의 발로! 건강한 남의 집 딸이라면 가정을 꾸리고 손자를 뵈어드릴 테지만 이 집 딸은 그것이 아니잖는가? 그러나 이
1960년 3월 대학교에 입학하니 교수는 웃으면서 말했다. 1학년은 신입생 풋내기로 “Freshman”, 2학년은 조금 배웠다고 “Sophomore”, 3학년은 아직 손아래 미숙 “Junior”, 사가독서학년은 손위의 잘난 고참 “Senior”라고 했다. 인상 깊은 말이었는데 2학년에서 3학 년에 걸쳐 시건방진 나는 별도의 사전 없이 읽을 수 없는 미국인 최초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교수 의 걸작 “사랑과 법“(Love and Law)이란 책을 읽고 학보에 논문을 기고했는데 뒤돌아보면 정말 나의 인생과 목회에 가장큰 영향을 준 위대한 스승의 글이 됐다. 지난번에 기고한 글에 이어 “사랑과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칼 바르트(Karl Bart)는 독일의 위대한 신학자로 그의 교의학(Dogmaitc)에서 뜻깊은 문구를 인용하면 “다만 믿음”(Sola Fide)으로 “다만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 우리의 응답인데 “유한은 무한을 포함하지 못한다”(Finitum non capax infiniti)였다. 신대원에 들어와 그의 글을 읽으며 그의 몇 마디 단순한 신학사상의 표현이 오늘에 이르는 감명이겠다.
아내 할멈은 기침약을 먹고 대낮에 잠에 떨어져 버렸고 나는 거실 소파에서 복음송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잠 깨우지 않도록 신경을 쓰면서 고요의 방 분위기를 지켜주고 있었다. 그런데 잠자던 아내가 놀란 듯이 벌떡 일어나더니 부엌싱크대로 달려가면서 또 외친다. “어쩌면 좋아 솥이 까맣게 다 타버렸네” 나도 달려가 보니 아들이 선물한 독일제 솥이 검게 타 버렸다. 기침에 좋다는 무슨 열매를 끊이려고 올려놓은 솥이었는데 아내의 곤한 잠 때문에 시간을 놓쳐 솥이 타 버린 것이다. 연기도 났다. 나도 코가 막혀 그 냄새를 잃었다. 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여기 있다간 아내로부터 불똥을 맞을 테니 도망치자. 주섬주섬 대강 책을 정리해서 가방에 넣고 허겁지겁 아파트 문을 열고 달아났다. 달아나면서도 뭘 내가 잘못한 것이나 있나 생각해 봤다. 그 솥이 타 버린 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굳이 범인으로 끌고 들어간다면 함께 있으면서 왜 타도록 모르고 있었느냐 일 것이다. 하여간 나는 아파트를 빠져나와 달아나고 있었다. 구리지구촌교회 목양실로 피난처를 정했다. 후유, 잘 도망쳐왔지. 계속 미련스럽게 집에 있었더라면 아내 할멈으로부터 무슨 책임추궁에 꾸지람을 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