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0˚에서 얼음이 되고 100˚에서 끓는 현상을 우리는 생활에서 마냥 보고 지나친다. 그야 물이니까 그런 거지라고. 이런 현상은 무슨 힘에 의해 생겨나는 것일까. 저절로 얼고 저절로 끊는다는 자연주의적 사고로 만족할 수 있을까. 대개 사람들은 현상만 받아들일 뿐 그 배후는 생각해보려 하지 않는다. 그야 전문가가 다룰 문제라고 더러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묻노니 현상이 먼저냐 현상되게 한 원리가 먼저냐? 즉 물이 늘 그러하니 그것이 원리가 되었는가? 아니면 물이 늘 그러하도록 하는 배후의 힘으로 원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들은 원리보다 현상에 생각을 집중하고 여기서 더 나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상을 추구해 원리 같은 것이 있노라고 결정하겠다는 것이 소위 귀납적(歸納的)방법이라 한다면, 현상 배후의 어떤 원리 혹은 법칙이 있어서 현상이 나오게 됐다고 생각하는 바가 소위 연역적(演繹的) 방법이다. 과학은 귀납적이고 철학은 양자수용적이고 신학은 연역적이라는 것이 학문의 성격에 의한다. 선원리(先原理) 후현상(後現象)은 성경적 교리이다. 세상만사가 있어서 창조주를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가 계셔서 세상만사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 창조론 사상이다. 현상
80고령 나의 친구들은 이미 60대에 틀니 신세를 졌다고 하는데 나는 80이 넘어서야 틀니를 넣고 다니게 됐다. 따라서 틀니와 나와의 친숙 관계는 매끄럽지 못하다. 어느 때는 틀니를 집에다가 빼어놓은 채 집을 나섰다가는 뒤돌아 와서 다시 틀니를 착용하곤 한다. 그때 틀니는 외롭게 주인을 불러도 주인은 말없이 제 가실 길 가시다가 되돌아와서 다시 그를 알아 모실 때 틀리는 외롭지 않단다. 틀니의 존재 이유는 나 아니고는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밤낮 틀리는 내 생각에 자고 깬다. 내가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틀리는 보기도 흉측스럽고 따분하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틀니를 아주 달갑게 여기지도 않는다. 아직 그것 이용에 서투른 만큼 밤에 빼어 뒀다가 아침에 착용할 때마다 이놈의 외계물이 왜 입에 틀어 와야 하느냐는 심리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착용한 지가 몇 개월밖에 안 되어서 그 틀니가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썩 좋지 않는다. 다른 생니들도 이질감을 느낀다. 그러나 틀니도 이런 감정들을 알지만 자기의 존재 이유가 천래(天來)의 생니 사이에 보존 역을 해야 한다는 치공 틀의 제조 목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싫어도 들어와야 되고 미워도 다시 한 번 미움 받아도 들어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서 베드로의 배를 빌려 가르치시고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5:4)고 해 그들이 나가 두 배 가득하게 고기를 잡았고, 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요21:6)고 했을 때 순종했더니 153마리를 잡았다. 수가 성 우물가의 여인이 5명의 전 남편이 있었던 것과 현재 남편도 제 남편이 아닌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요4:17~18) 지적해 그녀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는 눈을 뜨게 하시어 구원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어 3일 만에 다시 살 것을 여러 번 예언하셨다. 사도행전에서 성령 충만한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교회에서 약속한 헌금을 빼돌린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베드로는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행5:3),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행5:9)고 책망했다.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가이사랴의 빌립 전도자 집에 유할 때 네 딸도 유언자로 있었는데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될 것을 허리띠로 예언했다(행21:8~12). 바울이 배 타고 로마로 가는데 행선에 하물과 배 및 생명에도 타격이 있을 것(행27:10
사라 윈체스터(Sarah Winchester)의 남편은 소위 그 유명한 ‘윈체스터 총’을 만들어 팔아서 큰 부자가 됐으나 1918년 유행성 감기에 걸려 죽은 후 부인 사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로 이사했다. 사라는 고통과 슬픔 중 강신술에 대한 오랜 관심으로 말미암아 죽은 남편을 접촉할 수 있다는 무당을 찾아가게 됐다. 무당은 그녀에게 “당신이 계속 집을 짓는 동안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사라는 그 무당의 말을 믿고 이미 17개나 방이 지어진 미완성의 저택 한 채를 사서 이를 확장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집을 지어갔다. 이 건축비는 무려 500만 달러나 됐다. 당신 하루의 인부 임금은 50센트(500원)였다. 오늘날 하루 임금을 50불로 계산할 때 화폐가치가 100배가 됐으니 건축비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그 저택은 방이 150개, 욕실이 13개, 문짝이 2,000개, 벽난로가 47개, 창문이 무려 10,000개나 됐다. 그리고도 사라 윈체스터는 80년 이상 건축을 계속할 수 있는 건축자제를 남겨 뒀다고 한다. 그 집은 단순한 관광명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내가 그곳을 구경하러 갔을 때
이집트 하면 고대문명의 신비를 간직한 태양의 나라로서 인류 최초의 농경이 이뤄진 나라 중 하나이고 B.C 3000년경 인류 최초의 빵을 만든 나라 아닌가. 그런데 지금 국민 8000만 명에 이르는 이집트는 세계 최대 밀수입국으로 전략가는 바람에 온 국민이 굶주리고 있다. 왜 농경 국가가 밀 생산을 못하는가. 농업 경시 풍조다. 밀 생산을 가볍게 봤던 것이다. 주식인 밀을 대신에 딸기, 멜론, 수박 등을 재배해 그것을 판돈으로 밀을 수입하겠다는 정책을 폈다. 전 농림부장관 유세프 왈리의 정책이었다. 밀의 나라는 오직 제일 먼저 밀부터 생산해서 많은 빵을 만들 수 있어야 했다. 딸기나 멜론이나 수박은 간식은 되어도 주식이 못 된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와 같은 영적 영양실조와 기아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무슨 이유인가? 성경에서 나오는 말씀의 결핍 때문이다. 성경 설교가 없어졌다. 대신에 ‘딸기 설교’ ‘멜론 설교’ ‘수박 설교’가 행해지고 있다. 그것들은 주식이 아니잖나. 빵이 주식 아닌가? 밥을 마다하고 딸기만 먹으며 살고 있나. 당연히 영양실조 아닌가. 생명이 없는 타 종교에는 수다한 종교 행사가 요란스럽다. 그들은 내어 놓을만한 진리가 없기 때문에 갖가지
황성옛터는 바벨론으로 대치되고 봄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벌어지는 하늘 천국으로 대치해보면 어떨까. 내가 황성옛터 유행가를 즐겨 부르는 이유는 요한계시록 18장의 멸망하는 바벨론과 19장의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대비시켜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황성옛터 가사 전체를 실어본다. 제목 : 황성옛터(1930년) 작사 : 왕평 작곡 : 전수진 노래 : 이애리수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이뤄 /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 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엽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나는 가리라 끌이 없이 이 발길 닿는 곳 /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정처가 없이도 아 한없는 이 심사를 가슴 속 깊이 품고 / 이 몸은 흘러서 가노니 옛터야 잘있거라. 쇠락해 버린 황성옛터를 찾은 나그네의 서러움이 극에 달하지만 별 수가 없단다. “덧없는 꿈의 거리를 헤매며 있노라”는 나그네였다. “이몸은 흘러서(?) 옛터야 잘 있거라” 작별하는 나그네였다. 우선 계시록 18장의 패망하는 바벨론을 보자. 도무지 바벨론은 무
대학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그의 글이 잊혀지지 않는다. 덴마크의 실존주의 철학자 소렌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oard)는 서커스 장소에서 일어난 화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커스 주인은 불을 끄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해 맨 먼저 만난 광대를 붙잡고 빨리 동리에 나가서 화재 진화를 요청하라고 했다. 이 광대는 서커스 준비로 이미 무대 연기를 위한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을 벗을 여유 없이 곧장 동리로 달려가 “불이야!” 하면서 서커스 장에 불을 꺼 달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광대의 행동이 연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하여 모두 마음껏 박수를 치며 웃었다. 광대가 더 광분하고 불을 꺼 달라고 소리쳐 호소할수록 사람들은 그 열렬한 연기에 더욱 크게 웃었다. 결국 서커스 장을 태운 불길은 온 동리를 덮쳐 불 속에 파멸되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요단강을 건너 휘황찬란하게 아름다운 천국에 이를 때에, 우리를 통해 구원받은 수많은 영혼들이 몰려나와 나팔 들고 환호하고 영접하는 아우성을 들으리라!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환영합니다!” 성령을 받아 모신 우리의 지상과업은 예
1950년대에 초등학교에서는 회충 제거 약을 무료로 공급해 줬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변변치 못한 영양섭취에 그놈의 회충이 갉아먹으니 아이들의 얼굴은 거의 노랑 색깔이었다. 그때 학생들에게 나눠주신 알약은 대게 5개 정도였다. 저녁은 굶고 밤에 회충약 5개를 다 먹고 아침에 회충이 몇 마리가 나왔는지 담임선생님에게 필히 보고케 했다. 홍길동? 6마리요. 김춘배? 4마리요. 박석태? 10마리요. 권혁봉 2마리요. 출석부를 보고 호명하고 결과 보고를 듣는 장면이 일제말엽 잔재 군국주의 시대의 끝머리임이 틀림없다. 학생들은 약간 창피스럽게도 여겨지지만 어떤 경우에는 많이 나왔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내 경우엔 어머님의 의학 지식이 문제였다. 어머님은 회충이란 놈이 배 안에 있어서 식욕을 증진시킨다는 것이다. 그놈이 밥 먹자고 하니 식욕이 당겨서 밥을 많이 먹게 되는데 만약 회충이 싹 죽어 없어지면 식욕감퇴가 된다는 것이 어머님의 의학지식이었다. 그러니 회충 한 마리 정도는 둬야만 식욕도 당기고 또 그놈이 씨를 퍼트려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우습고 가엾은 어머님의 의학지식에 따라 나는 5개 중 1개의 알약은 먹지 않았다. 이런 의학지식은 나의 어머니뿐만 아니
바울 사도는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째 서신 서두에 말씀했다. 옛날 읽은 십자가의 글이 떠오른다. 영국 에딘버러(Edinburgh)시의 프린스 거리에 있는 어떤 예술품 가게에 한 신사가 십자가의 그림 앞에 움직이지 않았다. 십자가의 그림을 보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십자가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그에게 치밀어오는 고통을 감내하며 참고 있었다. 그 때 한 거지 아이가 옆에 서서 지켜보며 십자가의 예수님에 대하여 얘기했다. “십자가에 달려있는 사람은 예수님이고 죄 없이 양손과 양발에 대못으로 박히고 머리엔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고 있지요! 그 앞에서 눈물로 바라보는 어머니 마리아와 여인들이 함께 있지요. 죄 없으신 예수는 나를 위해 돌아가셨고 여기 모인 우리들의 죄를 위해 돌아가셨지요!” 듣고 있던 신사는 감격에 찬 거지의 차분한 얘기에 큰 깨달음을 받고 예수의 십자가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게 된 후에 복음의 증인이 됐다는 것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아내와 나는 요사이 사사기서를 시작하는 아침 QT를 하고 있었다. 본문을 읽고 약간의 해설을 나눈 뒤 기도로 들어갔다. 내가 처음 시작한 기도는 아래와 같았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신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나라가 극히 위험한 상태에 놓였습니다. 우리나라는 마치 태풍 앞에 흔들리는 촛불 같습니다. 이 촛불이 꺼지지 않도록 제발 보호해 주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기도 중인데 아내가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왜 촛불을 보호해 달라는 거요, 촛불은 꺼져야 돼요.” 나는 당황했다. 기도 도중에 이거 무슨 변이냐 싶어서 눈을 뜨고 아내를 바라봤다. “예수 이름으로 이만 기도드립니다.”라는 마무리도 못한 채 나는 아내에게 “왜 촛불이 꺼져야만 되나요.”라고 하니 아내가 서슴지 않고 말을 받았다. “광화문에 가보세요. 태극기와 촛불이 싸우지 않소.” 나는 아내의 첫 발언에 아차 이거 시사 문제구나 하고 느꼈다. 평상시 이미 알고 있지만 아내는 소위 우파에 속하는 국민의 한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나는 좌파에 속한 국민의 한 사람도 아니지만. 아내는 나의 오늘 기도가 썩 잘못된 것이라는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아내는 촛불은 좌파들의 상징이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