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도 잘 들리던 우측 귀가 먹통이 되었다. 하나님이 두 귀를 주신 이유는 한귀가 사고 났을 때 비상용으로 두신 것이었다. 콧구멍이 두개인 것도 감기가 걸려 코가 막힐 때 한 콧구멍만 막히고 다른 콧구멍으로 숨을 쉬라는 하나님의 인체조직에 관련된 섭리이다. 두 눈이 있는 이유도 그렇고 양팔 양다리가 있는 이유도 그렇다. 하여튼 내 경우에는 우측귀가 먹통이 되어 좌측 귀로 듣긴 하는데 아무래도 두 귀로 듣는 것만 못하다. 결국엔 나머지 한 귀도 못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노인의 귀가 어두워지는가 그 이유는 알고 보니 무슨 대오(大悟)나 한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시로 썼다 : 제목 : 노인이 귀 어두운 이유 노인이 귀 어두운 이유는 세상소리 이제 그만 들으라한 것. 보청기는 왜 달고 있느냐 무슨 소리 더 들을려고. 세상소리 듣고자 하거든 관세음(觀世音)하라.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하늘 귀 돋우어 하늘소리 들어 보게나. 사람 사노라면 물리치기 보다는 차라리 받아들임이 더 평안할 때가 많다. 공격보다는 방어자세가 더 전략적일 때가 많다. 공격이나 방어나 간에 다 전투에 필요한 양면이지만 살다보면 “아니요, 싫소”보다는 “예, 좋
“십자가로!”(Ⅱ) “한 전도사, 내 배 두들겨봐!”해서 다가가서 두드려보니 “통통 둥둥”소리가 났다. “한 전도사가 나에게 시킨대로 오늘 문막교회 가서 설교하고 저녁은 국수(냉면)를 주는 대로 세 그릇 다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언젠가 훌륭한 선교사가 되려면 한국인 영혼을 사랑하고 한국말 잘 배우고 음식도 주는 대로 잘 먹어 한국 문화에 적응해야 된다고 충고했었다. 나는 그가 십자가를 지는 모습에 눈여겨 보았는데 과연 일동 선교사가 되셨다. 군대시절 원주군인 복지센터에 근무할 때, 하다윗(David Howle) 선교사는 농담으로 목사님을 “목사놈”이라 부르곤 했다. 혹시 나를 만날 때나 김학준, 심영근 전도사를 만날 때 “한 전도사놈, 김 전도사놈, 심 전도사놈”이라 해서 처음에는 ‘선교사치고 교양 없이 잘못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그 후는 ‘그러려니’하고 웃었다. 그가 선교사로 나와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2년간 배울 때 말이 서툴고 발음이 잘못 나와서 목사님을 “목사놈, 목사놈” 이라 해서 큰 실언을 했었는데 농담으로 가끔 “전도사놈”이라 했으나 전도사놈의 “놈”이 안되어야겠다는 경종의 말로 나는 이해하고 받았다. 주일 학교 때부터 그 교회 다닌 소위
어렵고 배고픈 가난한 장곡교회에 부임하셔서 철없는 저희들을 위해 섬기셨던 목사님. 목사님 사택에 양식이 떨어진 줄도 모르고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 먹어 치워도 한번도 “없다”소리 안하시고, 목사님은 드시지 않고 “나는 금식중이다.”하시면서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제가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서울로 떠날 때 목사님의 자상한 보살핌은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서울 갈 차비는 있는지 목사님도 없는 형편에 챙겨 주시고, “침례는 받고 가야한다”하시면서 자신은 전도사라 집례 할 수 없기에 이웃교회로 함께 가서 어린 나를 위해 찬송 불러주시고 꼭 안아주시면서 기도해 주신 말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어딜 가든지, 아무리 어려워도 주일 성수하고, 십일조는 꼭 해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그 소리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떠나시다니요. 안정되고 성장한 장곡교회를 떠날 때 모든 교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더 어려운 개척 교회를 세우기 위해 대천으로 떠나셨던 목사님. 한 사람, 한 사람, 눈물겨운 수고와 땀을 통해 이렇게 아름답고 큰 교회를 세우시고 욕심도 없이 깨끗하게 후임자에게 위임하시고 어려운 농아들을 돌보는 사역을 하시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나의 집 구리시 교문중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혀있는 가로 벽에 두어 사람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가로 벽에 페인트칠한 것이 비바람에 바래어져서 희미해진 몰골이 보기가 미웠던 차에 구리시에서 손을 보기 시작해서 페인트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 바랜 가로 벽에 페인트칠을 해나간 뒤를 보니 아름다웠고 마음이 시원하기도 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청년 두어 사람이 큰 붓을 페인트 통에 덤벙 적시었다가 꺼내어 벽에 다가 척척 바르는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청년, 그대는 페인터(painter)요”라고 내가 던지니 말에 청년은 힐끗 나를 보긴 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청년은 화가요”라고 알아 듣게 말했다. 그제야 청년은 화가는 무슨 화가라고요, 그냥 페인트공인 데요 라고 자기 신분을 소개해 왔다. 나는 또 작업하고 있는 그에게 노인다운 설명을 했다. 화가는 영어로 painter, 즉 페인트칠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페인트공이 아니라 화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그 청년은 화가는 따로 있고 자기는 그냥 벽에다가 페인트칠만하는 작업인이라고만 했다. 자기는 일당을 받고 고용된 페인트회
“한 목사님의 목회비결이 무엇인지 아세요?” “글쎄요.” “사모님이 목회를 돕고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오시면서 그걸 몰라요?” “잘 몰라요.” “우리들이 듣기로는 ‘그러려니’란 말로 전해 들었지요.” 엄 사모가 신태인교회의 초청을 받아 신앙간증을 한 뒤 조 목사님과의 대화에서 오간 내용의 한 토막이었다. 언젠가 군산교회, 전주시의 대흥교회, 소망교회 등에서 설교한 중에 나왔던 말이 목사님들 사이에서 흘러갔던 모양이리라 짐작된다. 서울교회 유치원 화재 사건에 밀려나지 아니하고 어떻게 수습하고 극복했는지 말씀해 달라고 초청되어 먼저 택사스 연합집회를 잘 마쳤더니, 샌프란시스코 연합회에서 또 어떻게 그 환란을 극복했는지 초청되어 첫날 저녁집회를 마치고 교회당 입구에서 인사를 좀 나눈 뒤 내려오는데 어떤 여 집사가 다가와서 잠깐 얘기를 하자고 해서 따라가니, “강사 목사님, 오늘 저녁 설교 중에 ‘죽는다’는 말을 15번이나 얘기했으니 15불을 내어주세요!” 당황하면서 “왜 그러세요?” 했더니 “우리교회에선 ‘죽는다, 죽인다. 죽어라’같은 말을 하면 한번에 1불씩 벌금을 받고 있어요”했다. 강사에게 설교 중에 말 잘못했다고 벌금받는 이상한 교회도 있구나 생각하면서 교회
건강, 목회자에게는 영원한 딜레마(dilemma)다. 너무 건강에 신경 쓰면 신앙이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모든 것을 신앙으로만 풀어가다가 건강에 이상이 오면 신앙도 떨어지지 않던가. 만사에 균형이 중요하다. 어쨌든 건강, 특히 여름철 건강을 유지하려면 긴장하거나 분노하지 말아야 한다. 긴장, 분노, 좌절감, 적대감, 흥분 등 인체의 생리기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감정이 스트레스(stress)다. 비록 스트레스의 수치적 객관화는 현대과학이나 의학으로 불가능하지만 만병의 원인이라는 것은 수많은 실험과 임상결과로 확인된다. 스트레스 중에서도 특히 지나친 긴장이나 분노는 인체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모든 생리기능을 순간적으로 멈추게 하거나 역행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멈춤이나 역행의 시간이 길거나 잦을수록 그만큼 몸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바로 뇌의 교감신경으로 전해져 즉각적으로 온몸에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령을 내린다. 이렇게 되면 내장과 근육은 물론 인체의 모든 자율신경까지 순간적으로 기능을 멈추고 교감신경의 명령을 따른다. 물론 그 시간은 0.1초 또는 0.01초 정도의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때론 목숨을 잃을 만큼 치
나의 집 구리시 교문중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혀있는 가로 벽에 두어 사람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가로 벽에 페인트칠한 것이 비바람에 바래어져서 희미해진 몰골이 보기가 미웠던 차에 구리시에서 손을 보기 시작해서 페인트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 바랜 가로 벽에 페인트칠을 해나간 뒤를 보니 아름다웠고 마음이 시원하기도 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청년 두어 사람이 큰 붓을 페인트 통에 덤벙 적시었다가 꺼내어 벽에 다가 척척 바르는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청년, 그대는 페인터(painter)요”라고 내가 던지니 말에 청년은 힐끗 나를 보긴 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청년은 화가요”라고 알아 듣게 말했다. 그제야 청년은 화가는 무슨 화가라고요, 그냥 페인트공인 데요 라고 자기 신분을 소개해 왔다. 나는 또 작업하고 있는 그에게 노인다운 설명을 했다. 화가는 영어로 painter, 즉 페인트칠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페인트공이 아니라 화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그 청년은 화가는 따로 있고 자기는 그냥 벽에다가 페인트칠만하는 작업인이라고만 했다. 자기는 일당을 받고 고용된 페인트회
오늘은 대단히 기분이 나쁘다. 오늘 같이 구름 낀 날도 있는가? 제발 이런 날이 없었으면 한다. 그것은 “목사양반들, 지금 뭘 하고 있소?”라는 탄식 섞인 소리가 뱃속에서부터 나오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런 힐책은 한국교회의 절대다수의 목사를 향한 것이 아니라 절대소수의 목사를 향한 것이라는 것을 미리 말해 둔다. 첫째로 오늘 기분이 상했던 것은 내가 모 목사의 아들 결혼주례자 된 것으로 시작된다. 아비목사와 그의 아들 그리고 후보며느리가 결혼식 전에 주례자를 찾아뵙는 것까지는 좋았다. 네 사람이 커피 잔을 나누면서도 통 이상한 기류가 흐리고 있었다. 뭔가 안 통하는 데가 있는데. 그래서 아들에게 이리저리 영적 탐색을 하니 이제부터 교회 출석하겠다는 답이 나왔다. 목사의 아들이 교회 출석도 안하고 살았다고? 며느리감은 결혼하고 나면 교회 출석할 작정이라고? 며칠 후 결혼예배순서를 보내었더니 아드님께서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순서는 빼달라는 전갈이 아비목사를 통해 왔다. 그냥 주례사를 하되 결혼선포와 축복기도는 끝에 가서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목사는 자기와 아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해 오기에 나는 앞으로 자식교육을 잘하라고 거의 명령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3) 우리 집은 원래는 불교 집안이라 예수님을 접할 기회가 없었다. 유치원 다닐 때와 성탄절에 몇 번 교회 나간 것이 전부였다. 우리 의사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라 유달리 이기적인 데가 있고 자만심이 강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주위에 꽤 많이 있다. 나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때마다 의사로서의 인간적인 한계를 느꼈다. 그들 중 의학적으로 치료해서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은 선한 일을 했든지 악한 일을 했든지 어떤 힘에 의해서 죽고 산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이고 또 우리의 삶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높으신 분이 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믿고 있었던 나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 때마침 아내가 갑자가 교회에 나간다고 했다. 아이가 서울교회 부속 유치원에 다니는데 사모님의 인도 아래 자모들끼리 성경공부도 하고 교회도 몇 번 나가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너무
나의 침실은 안방 침대방과 서재 방이다. 침대에서 자고 났을 땐 거의 항상 내가 이불을 침대위에 가지런히 펴놓는 것은 아내가 일찍 부엌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네모반듯하게 이불을 침대전면에 쫙 펴놓고 내려다보면 아침부터 내 마음도 구김이 없이 쫙 펴진 것을 느낀다. 기분이 상쾌하다. 밤새 이불이 나를 덮어주고 감싸주고 할 때 나는 깊이 잠들고 있었다. 이불은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 내가 추울세라 감기 걸릴세라 나를 덮어 주는 불침번 이불이었다. 그렇게 밤새 신세를 진 이불인데 아침이 되었다고 아무렇게 이불을 둘둘 말아 버리거나 구긴 채로 던져놓는 것은 적어도 이불에 대한 나의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어느 누구인들 이불정돈을 잘하겠지만 적어도 나의 아침에는 이불을 다독이는 것이 나의 첫 과제로 되어 왔다. 서재에서 잠을 자고 난 아침엔 어떻게 이불에게 예의를 갖추는가라고. 그땐 이불을 한쪽으로 겹쳐 둘둘 말아서 마치 군대 내무반의 이불정돈처럼 네모지게 만들어 방한구석에 잘 모셔 놓는다. 이렇게 깍듯이 서재방 이불에게 예의를 표한다. 침대이불이나 서제이불이나 모두 나의 어김없는 깍듯한 예의에 감사를 표하면서 오늘저녁도 잘 모신다고 웃어준다. 이불을 향한 나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