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길을 가게 되었나? 생로병사는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일어나는 일이다. 특별히 마음과 육신의 모든 질병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고칠 수 있다. 이 세상은 누가 창조하셨나? 하나님이 창조하셨다.(요1:1~3) 무엇으로 창조하셨나? 말씀으로 창조하셨다.(창1:1~4)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말씀으로 세상을 붙들고 계신다.(히1:3) 이것을 과학에서는 열역학 제1의 법칙, 다시 말해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고 한다.(느9:6) 최초의 사람은 어떻게 창조되었을까? 사람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창조하셨다.(창2:7)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은 영(spirit)과 혼(soul)과 육(body)으로 되어있었다. 최초의 사람 아담(Adam)은 영이 살아있었다. 그러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영이 죽어버렸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람은 태어날 때 영이 죽은 채로 태어난다.(창2:16~17) 영이 죽어서 태어난 사람은 나중에 육이 죽게 되고, 육이 죽으면 혼이 떠나가게 된다. 사람의 영이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살리시는 영인 하나님의 영이 그 속에
장례식에 모시고 갔던 부모님의 사진이 담긴 두 액자를 책상위에 올려놓았기에 가끔 쳐다볼 때마다 살아있을 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물론 책장의 제일 높은 곳에 어린 양을 안고 계신 예수님의 사진을 볼 때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주님의 높은 뜻을 되새기고 한 영혼 구령에 충성을 다하려 하고, 가시면류관을 쓰신 예수님의 작은 조형물도 볼 때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 어떤 고난도 이길 능력이 용솟음침을 느낀다. 건강할 때 열심히 복음사역에 매진하고 젊을 때 더욱 충성하지 늙고 병들면 못한다. 좋을 때 잘하고 기쁠 때 나누고 만났을 때나 기회있을때 복음을 전하라. 그 지위에서 영향력이 있을 때 겸손히 잘 해 주고 대접하고 덕을 쌓으라.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하고 선행에 최선을 다하라. 구두쇠가 되지 말라. 알뜰히 죽을 고생하며 모은 재산 홀라닥 날려버리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메스콤을 통해서도 더 많이 보았다. 약이 입에는 쓰나 몸에는 좋고, 충언이 귀에는 거슬리나 국정에는 유익하며, 주님의 말씀이 실천하기 힘들고 역설적이라 마음에 맞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실천하면 30,60,100배의 기적을 베푸신다. 있을
미국의 어느 실버타운에서 8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생명이 위급할 때 심폐소생술·인공호흡· 영양공급 등을 받겠냐?”는 질문에 400명 중 단 한 명만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합니다.중환자실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각종 기계장치를 달고 생명을 연명하느니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인데.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생 지출하는 의료비의 50%를 죽기 한 달 전에, 그리고 25%를 죽기 전 사흘 동안에 쓴다고 합니다. 만약 당신이 지금 인공호흡기를 매단 채 호흡을 유지하고, 시간마다 찾아오는 통증에 몸부림치며 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또 자신에게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낀다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사전의료의향서는 본인이 뇌사 또는 심각한 질병으로 죽음을 앞두거나, 노환이 심한 경우 등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를 위해 작성해 제출하면 보건복지부 지정 생명윤리정책센터에서 보관하며, 주민등록증 크기의 증명서를 준다고 합니다.“저 000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을 마무리 할 시간이 찾아온다면 가능한 평화롭고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인생을 평화롭게 마무리하는 것은 제 인생을 완성하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확실히 노인인가 보다. 시내 나들이 하던 중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내가 지갑을 분실했는지 모른다. 거기엔 주민등록증과 국민은행카드 그리고 몇 만원의 현금이 들어 있었다. 대전 아들에게 분실을 알리니 즉각 모모전화를 가르쳐 주면서 본인이 직접 전화하라기에 했건만 무슨 놈의 안내가 얼마나 복잡한지. 1번 누르라 해서 누르니 뭐라 뭐라 하고선 2번 누르라고 하고 누르니 또 뭐라 뭐라 하기에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시간이 지났습니다.”하는 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대전 아들이 마침내 대리해서 분실신고를 마쳤지만 왠지 기분이 씁쓸하기만 했다.친구에게 이 현실을 이야기 했더니 친구 曰. “그래야만 쓰리군(소매치기)도 먹고 살고, 전화국 직원도 일거리가 생겨서 월급 타 먹고 살지 않소.”라고 한다니까. 동사무소에 들려서 주민등록증 분실 신고를 하고 재발급을 부탁하니 최근 사진 찍어 오란다. 사진관엘 갔다. 사진관 주인이 아주 기뻐 맞이하는데 주민등록증용 증명사진이라고 말하니까. 그 주인은 말 안 해도 안답시고 나를 의자에 앉히고 이리저리 자세를 코치 주더니 “찰칵”하고 30분 후에 찾으러 오라기에 사진촬영대금 1만5천원 지불하고 나왔지. 30분 후에 가서 사진을 찾으
현재 재미목회중인 박창근 목사는 당시 강경교회를 시무하면서 강경교회와 지난 역사를 확실하게 밝히고 성역화에 앞장선 내용을 1992년 7-12월호까지 성광지를 통해 기고한 바 그 일부를 간추려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가 강경교회임을 말한다.한국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최초의 침례교회는 언제,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어떤 연유로 시작되었을까?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침례교단의 역사적 자료들을 종합 분석해 보면 1896년 2월 9일(주일), 충남 강경(江景) 북정 136번지 지병석씨 소유의 개인 집에서 미국북침례교회 소속 선교사들인 폴링(E.C Pauling)부부와 아멘다 갈데린(Miss Amanda Gardeline), 그리고 한국 사람 지병석과 그의 아내 천성녀, 이렇게 5명이 모여서 드린 강경침례교회 개척 예배가 우리 한국 땅에서 최초의 침례교회 시작이요, 오늘의 기독교 한국 침례회 총회 소속 약 3000여 교회들 중에서 첫 열매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펜윅선교사는 1889년 12월 8일 한국 땅 인천에 도착했는데 그 보다 5년 이상이나 뒤늦게 한국에 찾아온 폴링이 어떻게 강경까지 내려와서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웠을까?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2012년 독일의 축구국가대표팀이 빠듯한 훈련 일정 가운데에도 엄숙한 얼굴로 찾은 곳은 공동 개최국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였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 홀로코스트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는 인종청소라는 명목 아래 약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들이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이 되었다.몇 해 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예고 없이 폴란드인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오랜 시간 동안 나치의 만행에 대해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모습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주어 그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 후에도 그는 이스라엘 방문을 통해 나치의 만행에 대해 항상 진심으로 사죄를 하며 용서를 구하므로 독일인들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했다. 최근 일본을 방문한 앙겔리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아사히신문이 주최한 강연에서 “파괴와 부흥이라는 말은 전후 70년을 맞은 올해에도 공통점이 있다. 우리 독일인은 과거 유럽과 세계에 고통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화해의 손을 내밀어준 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며 독일과 마찬가지로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강조했다. “과거 정리는 전쟁 가해국과 피해국 간 화해를 전제한다. 독일이 2차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일들과 사고를 만나지만 특별히 마음과 육신의 질병이 오면 하던 일을 멈춰야 한다. 생로병사는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이다. 건강하게 살고 싶고 무병장수하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현대과학은 사람의 평균수명을 150세까지 가능하다고 추측한다. 하지만 성경은 인생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고 했다(시90:10). 하나님이 사람을 이 땅에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먹을거리는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맺는 나무의 열매였다. 먹을거리가 채소와 과일이었을 때는 사람이 평균 700세를 살았다. 그러다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육식을 허용하셨는데 그때부터 사람의 평균 수명은 70~80세가 되어버렸다. 필자가 건강과 질병, 그리고 그에 관련된 자연의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30년이 넘었다. 20대 때는 어머니의 몸살을 간호하기 위해 독학으로 익힌 지압술을 어머니에게 해드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십대와 삼십대가 자연의학에 관한 워밍업 시대였던 것 같다. 건강에 관한 책들도 숱하게 읽었다. 삼십대 중반에 목사로서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때부터 신학과 성경에 몰두했다
어릴 때 저는 함석지붕 끝에 더하기 나무막대기가 달려 있는 것을 보았다. ‘저 집은 더하기를 좋아하는구나? 빼기(-)보다는 낫고 나누기(÷)보단 더 좋으나 곱하기(X)보다는 못하구나’라고 생각했었다. 2학년 때 구구단을 잘못 외워서 한달간 교실청소의 벌을 받고 고생한 터였다. 선생은 서양서 건너온 “야소교”가 요사이 늘어나고 있다곤 했다. 그리고 “예수쟁이”가 바로 야소교 교인이라 했다. 10살쯤 되었을 때 외사촌 전 근술이가 만화책을 갖다 주었는데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였다. 당시 저는 어머니를 따라 절간에 나가는 소위 “불자”인데 야소교 만화라서 크게 거부감이 왔지만 워낙 만화책을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읽고 있었던 때라 상관없이 재미있게 읽어보았다. 당시의 만화책은 갈색종이에다 글씨나 그림이 똑똑하지도 않고 기법도 별로였다. 그런데 예수는 좋은 말씀도 하고, 병자들도 많이 고쳐주며, 귀신 들린 자도 고치고, 음식도 기도로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고, 죽은 자들로 살려내고, 풍랑을 잔잔케 하며 바다 위를 걸으신 선하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데 왜 십자가의 형틀에 맥없이 달려 가시관을 쓴 채 고개를 떨어뜨리며 피흘려 죽으셨는가?! 너무도 애처롭고 알 수 없는
군(軍)에서는 각 종교의 3대 절기라는 것을 종교업무에 포함시켜 놓았는데, 거기에 보면 기독교는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각 절기를 지내고 있는 성도들을 보면, 가끔은 성도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절기를 지나고 있을까가 궁금해집니다.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성탄절은 “기쁘다 구주 오셨네”가 그 중심 분위기로, 추수감사절은 결실에 대한 감사로, 부활절은 “주님께 영광 할렐루야!”로 그 특화된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지내니까 사실 별로 생각할 것이 없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의 판단과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과연 적절한지 한번쯤은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중 부활절은 사순절이라고 하는 기독교의 무시할 수 없는 긴 절기의 끝에 찾아오는 절기로, 그 마지막 주가 고난주간으로 되어 있고 그 마지막을 부활절로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 사순절과 고난주간의 중심 분위기는 또 “고난당하는 어린양 예수”입니다. 그러다보니 각 절기마다 성도들이 지어야 하는 표정이 어느 정도 정해져있는 것만 같습니다. 성탄절과 부활절은 마냥 웃고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으면 집안이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 보니 베란다 방충망에 굵은 똥파리 두 마리가 붙어 있었다. 앗 차, 저 놈들을 잡아야지. 나는 어디인가 숨어 있는 F·킬라 살충제통을 마침내 발견해냈다. 그걸 들고 베란다로 나아가서 똥파리 두 놈에게 정 조준하여 “쏴~아”하고 살충제약을 뿜어 재켰다. 이놈들은 더운 여름 날씨에 시원했던지 처음엔 살충제약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하긴 받아들였는지 불가항력적으로 얻어맞고 있는지는 내가 파리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한 알바는 아니지만.똥파리 두 놈은 처음에 앞발을 모아 무슨 Sign인지 비는 형상을 하더니, 다음엔 방충망에 붙어 있기가 힘이 겨웠던지 비실비실 거리기 시작하더군. 그러더니 안간힘을 다해서 방충망에 붙어있기를 노력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거 어이된 일인지. 그놈들은 방충망에 붙어있기를 포기했는지 그냥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유심히 똥파리 두 놈을 내려다보니 자기들끼리 무슨 약속을 하는 것 같았다. “야! 이거 어이된 판이야. 정신이 좀 몽롱하지. 마치 술 취한듯한 기분 같기도 하고. 정신이 빙 도는 것 같은데.” 아마도 저놈들의 대화가 그랬던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똥파리 두 놈은 이래서는 안되겠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