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봄 새벽 3시,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 공동체교회 담임목사 사택에 전화벨이 울렸다. 조심스럽게 교회 밖을 살펴보니 생선박스 안에 있는 아기를 발견했다 아직은 싸늘한 봄날, 이 새벽에 아기가 혹시 죽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상자를 펼쳐보았으나 살아있었다.그 후 목사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2009년 12월 교회 앞에 베이비 박스(Baby Box)를 설치했다. 지금까지 무려 561명의 아이가 베이비 박스를 통해 살아났다. 지난 주간에 유명한 필립 얀시 부부가 이곳을 방문했다. 캐나다에서 신문을 통해 이 베이비 박스 소식을 듣고 꼭 한번 방문하고 싶었다며 한국을 방문한 하이라이트라고 했다. 그는 “아기들은 목소리를 낼 수 없어서 누군가 그들을 대변해야 한다. 영어에 ‘애드버킷(advocate)’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준다는 의미다. 구약에서도 의인은 약자를 위해 목소리를 대변했고 예수님은 우리의 에드버킷”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외국인 아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주 노동자 160만명 시대에 일자리를 찾아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낳은 아기를 이곳에 버리고 가는 것이다. 현재 신고 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의 외국인 부모에게 태어
(2007-2008)전여회는 해마다 8월 연차 총회에서 선출된 실행이사들과 장학이사, 회관관리 운영이사, 사랑의 집 관리 이사들을 위해 9월에 훈련 연수회를 1박 2일로 개최하는데 이 해에는 용인 에버랜드 홈브리지 힐사이드 호스텔에서 개최했다. 연수회에서는 먼저 전여회의 사역과 실행이사들과 이사들의 사명과 역할이 무엇인지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실행이사회를 개최하여 각 분과위원회 위원들을 선출한다. 또한 한 해 동안 받은 사명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나님께 약속드리며 총회 평신도 부장님을 초청하여 헌신예배를 드린다. 특별히 이 해에는 땅밟기 기도에 대한 훈련도 받았는데 에버랜드에 가서 삼성을 위해 기도하며 직접 땅밟기 기도 실습을 하기도 했다. 길고 힘들었던 무더위도 지나가고 아침, 저녁 소슬 바람이 가을의 문턱에 왔음을 실감나게 할 때 무더위만큼이나 온 국민들의 가슴을 졸이며 땀 흘리게 했던 아프간 인질 형제, 자매들이 풀려나 추석 명절을 마음 편히 보낸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순교한 배 목사님에 대해서는 모두가 마음 아파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영
자기의 불행과 실패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을 매우 교양 있는 인격자로 모두 치부한다. 반면에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가 남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면 못난이의 변명이라고 수근 거린다.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을 전적으로 100%로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이 과연 정확히 옳은 판단인가? 나의 이런 불행상태가 조금은 남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일까. 물론 자기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탓임에는 부정할 수 없으나 약간은 남 탓도 아닐까?가령 나라경제가 어려워져서 내가 실직했다고 할 때 그 원인이 실직자 나에게 100% 있단 말인가? 물론 여러 직장인 중에 자기만이 퇴출당했을 땐 자기 탓이 있겠지만 나라경제가 잘 돌아갔더라면 약간의 결점 때문에 자기가 퇴출되었을까. 그건 아닐 것이다.강원도 제자가 해주는 옻닭을 나는 극구 아내에게도 먹으라고 강권하다싶이 했다. 위장병에 특별히 좋다하기에 위장이 약한 아내를 위해 뒷생각은 못하고 우선 앞생각만 해서 먹으라고 강권했다. 아내는 혹시라도 옻독이 오르면 어쩌나 하면서도 일단 옻고기를 만지기 시작 했는데 손에 아무런 징조가 없었더라는 것. 그래서 나의 강권에 의해서가 아니라
1974년 1월 9일 긴급조치 발동 후 2월 21일(?)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기도하고 나오는 나에게 검은 복장의 젊은이가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어서 대답하자 잠간 얘기할 것이 있다고 해서 루삥집이지만 들어오시라고 했더니 밖에 잠깐 나가자고 해서 길가로 따라 갔더니 검정색 새단 차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오더니 뒤쪽 좌석 문을 열고 밀어 넣어 들어갔다. 놀란 나는 말을 잠깐 하자더니 왜 차에 태우느냐고 했더니 우리는 중정 기관에서 나왔는데 가보면 안다고 하며 나를 태우고 부산 수영에 있는 군용공항으로 데려가 비행기에 태우고 한 시간 후에 서울 김포공항에 내렸다. 큼직한 핸드폰으로 본부에 연락하기를 잘 압송했다고 하자 지시대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이송해갔고 높은 사람 앞에 세우고 소개한 다음 그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는데로 오른쪽으로 따라 내려가 지하 작은 방에 들어가 수사관과 고된 이틀을 지났다. 22일 조서를 쓰고 저녁 11시경에 풀려나 세종호텔 앞에서 버스로 서울역에 와서 밤기차로 귀가했다.3월 10일 아침에 갑자기 검정색 옷차림의 압송으로 세단차를 타고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 내려 남산 중정으로 가서 지하에 내려가 아무런 수사 없이 열손가락
(2007)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회는 미국에 있는 한인 침례교회들과 한국의 침례교회들과 함께 세계선교 전략을 위한 모임을 시작했다. 미국 한인 침례교회, 한국 침례교회, 미국 남침례교 국제 선교회가 돌아가며 모임을 주관했는데 5월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남침례교 국제선교회 초청으로 교단 총무님, 기관장님들, 침미준 목사님들과 함께 전여회에서는 이정자 회장과 내가 참석했다. 국제선교회 선교사 훈련원에 방을 배정 받아 여장을 풀고 다음날 선교사 훈련에 관한 많은 것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다. 또한 국제 선교회 본부를 방문해 국제 선교회의 사역에 대해 배우는 기회도 됐다. 미국 남침례교단의 협동 프로그램의 협동 기금의 50%와 해마다 성탄절에 드리는 라티문 성탄 헌금으로 선교훈련과 선교사들의 모든 것이 지원 되는 것을 보며 아직도 선교사 자신들이 모금해야 하는 한국 침례교 선교사들의 어려움을 되돌아봤다. 우리교단도 속히 선교사들이 모금에 대한 부담 없이 사역에 전력할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교회들이, 목회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면 가능한 일일 것이다.우리 교단은 하나님 은혜로 20년 전에 미국 남침례교 국제 선교회의 도움으로 침례신학 대학교 내에 세계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가 6월 달에 한창이다. 거의 지구촌 식구들의 삼분의 일에 해당되는 약20억의 지구촌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자국이 이기면 춤을 추고 자국이 패하면 축 늘어진 어깨가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일본이 코트디부아르와 일전을 벌였다. 나의 가장 먼저 떠오른 기대는 제발 일본이 이겼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뿐이고 재빨리 내 마음 속에는 다른 주문이 나를 압박했다. “왜 일본이 이겨야 하느냐?”고. 내가 처음 일본의 승리를 기원했던 것은 일본은 오대양육대주 중에 아시아 주에 속하고 바로 이웃에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의 다른 주문은 답을 내리고 있었다. “일본은 패해야 한다.”라고.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고 해방직전 다섯 살에 귀국했는데 그땐 일본의 강점기였고 그 나라로 인해 나라에 설움과 압박을 당하던 때였다. 지금도 한일관계는 껄끄럽기 제한이 없다. 내 마음은 결단을 내렸다. “일본 지거라, 일본 패하라.” 거의 응원이 나왔고 상대 코트디부아르 나라를 도왔다. 생각대로 1 : 2로 일본은 역전패 당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한국의 승리 못지않게 일본의 역전패가 기뻤다. 아내도 나와 같은
전국을 다니면서 모금활동에 나섰는데 대전에 들렀을때 대흥교회 안종만 목사의 배려로 뷔페식당에 모임을 가졌다. 누군가 큰 소리로 “한 목사님, 축하합니다!” 했다. 잘못들었는가? 생각하는데 가까이 오신 분은 전 신학대학 정진황 학장으로 또 다시 웃으시며 “축하합니다”하셨다.‘이런 인사가 있는가? 세상에 인사치고는! 저의 딱한 처지를 어떻게 보고 하신 말씀인지? 농담도 지나친 농담이니 농담으로 듣기엔 아닐테고.... 화재에 대하여 부정적인 별의별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는 축하의 소리도 듣는구나!’ 그날 저녁 권혁봉 교수의 집에서 잠들기 전에 깊이 생각해 보니 화재 다음주에 욥의 설교를 했다가 화상부모들로부터 욕설 전화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구약학 교수로 욥기를 가르치신 정학장의 축하의 뜻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1990년 BWA 세계대회 준비 차 국내에 체류 중인 Isher Head 박사의 연락으로 BWA로부터 5,000불을 도왔고 선교사들의 만 여불에 침례교단 내의 200여 교회와 교인도 개별적으로 도왔는데 특히 영안교회 안경선 집사와 이제순 목사가 상경하여 500만원 헌금이 기억되고, 외부인사로 중구유치원협회의 100만원와 동양그룹
(2006-2007)2006년 11월에는 미국 남침례교 선교사로 파송되어 부산 왈레스 기념 침례병원에서 원장으로 섬기다가 은퇴하신 우기수(Charles Wiggs) 목사님과 사모님이 15년 만에 서달수(Cloys Starns) 목사님 부부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셨다. 육이오 한국 전쟁 직후 수많은 난민들을 치유하기 위해 미국 남침례교단 해외선교회에 의해 부산에 세워진 침례병원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오늘날의 침례병원으로 발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환자들을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며 많은 의료인들을 훈련하는 기관으로 부산지역에 침례교회의 위상을 높이 들어내어 왔다. 오늘의 병원이 있기 까지 초창기 병원을 위해 수고하셨던 많은 선교사들의 수고를 우리 교단은 늘 기억해 드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단 유일의 침례 병원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서달수 선교사님 부부는 부산, 대전, 서울에서 사역하시며 교회들을 도우셨던 분들이다. 사역하셨던 기관들과 교회들을 방문하시던 중에 11월 15일에 그 분들이 전여회를 방문하셨다. 우기수 원장님과 서달수 선교사님 사모님 두분 모두 초창기 전여회와 동역 하시며 전여회 발전을 도우셨을 뿐만 아니라 내가 침례병원 특진실 간호사였
남자들의 눈은 변화무쌍한 조명을 지닌 것 같다. 시시때때로 바라보는 대상이 밉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게 보여 지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남자가 아닌가 싶다.목사인 나도 남자임에 역시 여느사람과 다름없는 변화무쌍한 눈을 가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내가 그런 눈을 가졌다는 것을 어느 광고의 표지판에 실린 20여명의 미녀들의 화보를 감상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나의 눈도 예쁨을 바라보는 눈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화보를 설명하면 대강 이렇다. 2014년 아시아인천경기대회를 광고하는 장면인데 거기 20대의 미녀 20여명이 한복을 입고 한국지도가 박힌 기(旗)를 흔들면서 뭔가 환호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화보를 우연한 장소에서 입수하여 나의 화장실 문에 부착했다.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그 화보의 20여명의 미녀들을 바라본다. 아내는 영감이 뭐 이런 화보를 붙여 놓았느냐고 성화를 부리지만 그것은 나와 아내의 문화차이라고 엄청난 선을 그어놓고 고집스럽게 그 화보를 지금까지 부착해 놓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이 20여명의 미녀 중에 누가 제일 미인일까 하고 선발하는 일인데 어느 날은 이 미녀가 선발되
이인수 장로의 옥중 “고난에 대한 유익”(시119:71) 의 간증을 전교인이 감격스럽게 들은 다음 주간 1989년 10월 16일 이른 새벽에 평생 처음으로 험악한 꿈을 꾸다 땀을 흘린 일이 있어 아침에 모인 사역자들에게 오늘은 좋지 않으니 연기하자고 했으나 송 목사를 위시해 모두 다 예약 준비되어 있는데 미루지 말고 가자고 독촉해서 억지춘향으로 끌려가다 싶이 했다. 우리 사역자들은 90년 목회계획을 세우고 기도하기 위해 강원도 인제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들려온 황급한 전화는 유치원에 불이 나서 13명의 어린이가 중화상을 입어 서울시내 여러 병원에 흩어져 치료중이라 해서 우리는 차를 돌려 황급히 교회로 돌아왔다.돌아온 우리는 이미 본당에 모인 30여명의 교인들과 저녁 특별기도회를 가졌다. “환란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말씀으로 교회의 모든 모임마다 먼저 환란극복 위해 기도하기를 간곡히 부탁했다. 화재의 원인은 5가지로 추정할 수 있으나 검사는 학생의 방화로 결론을 내렸다. 1층 난로에서 일어난 불길이 2층으로 오를 때 겁이 난 담담 현OO 교사는 당황하여 출입문도 잠그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
(2006)내가 청년이었을 때 우리 교단에는 침례교 청년 연합회가 조직되어 여름에는 전국 침례교 청년 수련회도 개최하여 교단의 청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비전을 나누며 서로 교제하던 때가 있었는데 언제 부터인가 그 모임이 없어졌다. 그런데 침례신학대학교의 이현모 교수님을 주축으로 교단의 청년 대학생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고 선교 헌신자들을 배출하기 위해 2년에 한 번씩 뱁티스트 비전을 개최하게 되어 전여회도 인적, 물적으로 그 운동을 지원하며 동참했다. 교단 해외 선교사님들 가운데 뱁티스트 비전에 참석했다가 선교의 부름을 받고 선교사로 헌신한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그 운동이 점점 약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전여회는 자원하여 여성 뱁티스트 비전을 2006년 7월에 침례신학대학교에서 개최했다. 주 강사는 지구촌 교회 이동원 목사님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적은 수의 여학생들이 참석해 강사님께 너무 많이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 대회에서 장기 선교사 25명, 단기 선교사 21명, 중보기도 및 선교적인 삶의 헌신자 15명등 많은 선교 헌신자가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 후 뱁티스트 비전은 끝났으나 해외선교회
사람은 한번 넘어진 일에 다시 넘어질 확률이 높습니다. 한번 다친 발목을 다시 다치듯…. 그래서 형사들은 범죄의 흔적을 보고 그 범인을 추적합니다.마가 요한은 도망가는데 익숙한 청년입니다. 자기 집 다락방에 120명이 함께 기도할 만큼 넓은 집을 가진 부잣집 아들이라서 그런지 어려움이 오면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할 때 대제사장의 군사들이 검과 몽치를 들고 나타나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있다고 벗은 몸으로 도망쳤고,(막14:51~52)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선교 여행을 떠났다가 어려움이 오자 밤빌리아에서 외삼촌 바나바의 만류를 뿌리치고 끝내 집으로 돌아갔습니다.(행13:13) 바울과 바나바가 2차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마가를 또다시 데려 갈 것인지를 상의하다가 크게 다투며 서로 헤어졌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바나바는 영적인 은인으로 다툴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믿음 좋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일에 앞장섰던 사울이 다메섹 길목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속죄하는 마음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찾아 갔으나 사도들 중에 아무도 그를 만나주지 않을 때 바나바가 나서
강원도 산속에서 청정하게 키운 닭을 또 그곳에서 청정하게 자란 옻잎과 함께 요리한 일명 옻닭요리를 제자가 짐짓 멀리서 집까지 선물해 왔었다.“교수님, 이거 옻닭입니다” 그가 자신 있게 말해 왔다.“그런데 이거 먹어도 괜찮은가?”라고 나는 꽤나 의심스럽기도 하고 불안해서 물었다. 왜냐하면 옻을 넣은 요리를 먹었다가 온몸에 옻독을 받아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왔기 때문이었다.그 제자는 “암,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에게는 O,K입니다. 하나님이 아무탈도 없이 끝까지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이 옻닭요리를 먹으면 위장에도 좋고 혈압에도 좋다는 등 온갖 병을 예방하는데 좋다는 설명까지 붙이기에 나와 아내는 용기를 얻어먹기로 했다. 언제나 철저하게 기계적인 아내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정말 이것 먹어도 될까요.” 나는 아내의 의문스러운 불안 질문에 자신 있게 먹어 보라고 거의 윽박지르다 싶이 권했다. 그 제자가 위장병에 좋다는 말에 위장이 약한 아내가 그만 이미 먹기로 작정하고 있었다.그날 나와 아내는 아침에 옻닭요리를 맛있게 먹었다. 옻나무잎과 잎줄기가 어설프게 닭고기와 혼합되어 있는 것을 우리 부부는 자신 있게 먹어 재켰다. 정
전철 노인석에 앉았는데 나이 많은 부인이 바퀴달린 의자에 100kg이나 되는 거구의 남자를 모시고 힘들게 밀며 들어오는 것을 보고 즉시 일어나 자리를 양보한 후 인사를 나누고 물었더니 남편이 중풍으로 쓰러진 후 4년간 그렇게 모시고 다닌다고 했다. 집안에 있기 싫어해 한 주에 두 세 번씩 전철을 타고 외출을 준비할 때 일으켜 세워 휠체어에 앉히고 또 내리는데도 힘들지만 집안에서 화장실 시중보다 외출할 때 시중드는 일이 얼마나 더 힘든지 모른다고 조용히 말했는데 그녀의 초췌한 모습에서 효부의 따뜻한 마음을 엿볼수 있었다. “돈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고 건강을 읽으면 다 잃는다”는 말이 귓전을 스쳐갔다. 生老病死(생로병사)지난주에 말한 “99 88 23 21”제목에서도 언급했지만 장수에 고종명이 얼마나 좋으련만 예부터 生老病死라 했으니 병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다가 고종명하는 사람을 병원도 많고 약국도 많은 좋은 세상에도 보기 힘들다. 또한 병들어 눕게 되면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다. 돌보는 가족의 안타까움에 고통은 물론 병자 본인도 밤낮으로 휴식, 기쁨, 평안 및 행복들은 도적질 당하고 불안, 염려, 걱정, 두려움, 고통, 의구심, 나약함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영혼 구원이라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영혼 구원은 절체절명의 사명이다.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은 품속의 외아들을 죽음의 자리에 내주셨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대속의 제물로 죽어야 할 만큼 영혼 구원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왜 영혼 구원이 중요한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 인간을 만드셨다. 따라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존재이다. 이 땅에서 육체를 가지고 살다가 어느 날 죽으면(영과 육이 분리되면) 그 영혼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인격을 가지고 내세로 들어가게 된다. 참으로 놀라운 인생의 비밀이다.내세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뉜다.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다. 맑은 생명수가 흐르고 생명 과일이 풍성히 열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질병과 사망이 없는 곳이다. 갈등, 근심걱정, 고독, 다툼이 없는 곳이다.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곳이다. 영생복락만 누리는 곳이다. 지옥은 천국과 반대되는 곳이다. 불못이다. 불을 소금 치듯 하는 곳이다. 물이 없는 곳이다. 고통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소멸되지 않으니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다. 참으로 처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