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 19일 교단 연합 구국기도회 대한기독교회는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장로교, 감리교와 함께 구국기도회를 공동 개최하고, 전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하루 한 시간 나라를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했다. 1905년 11월 19일자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광고와 기도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長老會와 浸禮會와 美美會에셔 公同 聯合會를 團結야 祈天永命의 主旨로 獨一 無二 시고 全智全能신 造物主大主宰上帝耶和華케 爲國祈禱를 虔恭至誠으로 日日 設行다 其日日誦 禱 全文이 如左더라.… 祈禱時間은 每日申時(午後三時와 四時)오 祈禱文이 如左니 萬王의 王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 韓國이 罪惡으로 沈淪에 드럿스 오직 하나님 밧게 빌 업사와 우리가 一時에 祈禱오니 韓國을 불샹히 녁이시 耶利 未亞와 以賽亞와 但以理의 自己나라 爲야 懇求을드르심 갓치 韓國올 救援사 全國人民으로 自己罪를 悔改고다 天國百姓이 되어 나라이하나임의 永遠 保護밧아 地球上에 獨立國이 確實케야쥬심을 耶穌의 일홈으로 비나니다.…” 위 기도문의 내용은 국가가 멸망에 처한 때 예레미야, 이사야, 다니엘이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듯이, 한국 기독교인들도 회개하
암은 섭씨 42도의 온도에서는 성장을 멈추거나 괴사한다고 합니다. 열을 통한 암 치료에 대한 역사는 매우 오래됐으며, 기록상으로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최근 개발된 전형적인 온열치료 방법은 전기장을 이용해 암세포 주위의 전해질의 균형을 깨뜨리면서 통과되는 전류에 의해 세포 주위의 온도가 상승하고 이 때 형성된 온도에 의해 에너지가 흡수되면서 암 세포막이 파괴되어 암 세포가 괴사됩니다. 이들 온열치료는 특히 췌장암, 복강 종양암, 두부 및 경부암, 골암, 폐암, 뇌암 등에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열 치료를 처음 사용한 의사는 히포크라테스로 불이 고도의 능력과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그리스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요즘에는 대형병원에서 열 치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국소부위 온열치료의 원칙을 간추려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국소부위 즉 암 덩어리가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열을 가함으로 암 덩어리를 괴사시킨다는 것인데 온열치료 대한 의료인들의 주장이니, 이 원리를 이해하고 온열치료에 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문적인 온열치료법은 전문의와 상담을 통해 전문적 치료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임으로 환
[주일예배] 죽어야 살아납니다 마태복음 26장 26~32절 안희묵 대표목사
[주일예배] 호산나를 외친 이들 마가복음 11장 8~10절 고명진 담임목사
[주일예배] 자기 자신에게 꽂힌 인생 전도서 1장 16~23절 김관성 담임목사
[주일예배] 베드로 타임! 마태복음 14장 22~27절 최인선 담임목사
[주일예배] 이 날을 기념하라 출애굽기 12장 1~14절 국명호 담임목사
[주일예배] 세 가지를 찾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1, 13, 19절 최병락 담임목사
[주일예배] 바람아 멈추어 다오 전도서 1:12~15 김관성 담임목사
[주일예배] 빈 배도 만선도 결론이 아니었다. 누가복음 5:8~11 최인선 담임목사
[주일예배]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는 여덟계단_2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는 계단 베드로후서 1:4~7, 로마서 1:17 최병락 담임목사
[주일예배] 살리는 성도의 영적 습관 사무엘상 26:7~25 안희묵 대표목사
[주일예배] 나의 기적을 더하리라 출애굽기 11:1~10 국명호 담임목사
고려 17대 왕, 인조 때의 일이다. 높은 벼슬을 하고 있었던 임원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의 딸이 결혼을 하게 됐다. 평소에 눈여겨봤던 똑똑한 젊은이 김인규의 아들 김지호를 선택해 딸을 결혼시킨다. 드디어 결혼식 날이 되어서 결혼식을 진행하는데, 신부집에 신랑 김지호가 도착하자 신부가 갑자기 병을 얻어 쓰러지면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없게 됐고, 임원후는 결국 결혼식을 무효화시켰다. 신부가 결혼식 때에 쓰러지게 된 원인은 그녀의 할아버지 이휘라는 사람에게 있었다. 이휘라는 이 분이, 손녀가 태어날 때 태몽을 꿨다. 손녀가 태어나기 며칠 전 할아버지 이휘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용 한마리가 내려와서 자기 손녀를 감싸 안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이었다. 그 꿈을 꾸고 난 이후에 손녀가 태어났는데, 당시에 용은 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할아버지 이휘는 손녀가 태어날 쯔음에 용꿈을 태몽으로 꾸었기 때문에, 그는 손녀가 왕의 아내 즉, 왕비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손녀가 어렸을 때부터 틈만 나면, 손녀에게 “너는 앞으로 자라 왕의 비가 될 것이다. 너는 앞으로 자라 왕의 비가 될 것”이라고 말해 줬다. 반면에 아버지는 평범한 귀족
폴링은 강경 출신 포목장사꾼 지병석을 전도해 1895년 여름 한강에서 침례를 베풀었고, 지병석의 권고를 받아들여 충청도로 선교지를 옮기기로 했다. 폴링은 강경과 공주에 선교 본부를 마련했고, 1896년 2월 9일에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인 강경교회를 세웠다. 1896년 4월 프레더릭 스테드맨(Frederick W. Steadman), 새디 에클스(Sadie Ackles), 알마 엘머(Arma Ellmer) 등 제2진 엘라씽선교사들이 내한하여 가세했다. 서울 내자동 선교 본부는 미남감리교 선교부에 매각했고, 감리교 선교부는 그곳에서 1898년 10월 배화학당을 시작했다. 씽 집사가 1900년 사망한 후 상속인들은 선교 지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 결과 엘라씽선교회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1901년 4월 한국선교를 종료하고, 펜윅에게 재산과 사역을 이양했다. 1906년에 이르러 전국에 31개의 교회들이 존재했고, 교회들은 그해 10월 6일 강경교회에서 제1차 대화회(총회)를 개최하고 대한기독교회를 조직했다. 대한기독교회는 교단명을 여러 차례 바꿨다. 일본이 “대한”이라는 단어를 문제 삼자, 1921년 “동아기독교회”로 변경했다. 1933년에 ‘성별된 무리’를 뜻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