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표절이 지금 조국교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생명언어설교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90%의 목사들이 표절설교를 한다고 한다. 많은 목사들이 무심하게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베껴서 설교한다. 그러다 교인들에게 발각되어 교회에서 면직을 당한 목사들도 있다. 또 그 문제로 교회가 분란에 휩싸인 경우도 있다.어느 대형교회 담임목사는 설교표절을 했다가 교인들에게 알려져 설교를 중단하고 몇 개월 동안 근신한 일도 있다. 이대로 묻어두어야 하나 민낯을 드러내야 하나? 나는 어떤가. 당신은 어떤가.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우연의 일치로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작가에게도 표절의 책임을 뒤집어씌워서는 안 된다. 사상뿐 아니라 말도 표절될 수 있다” 한때 표절 시비에 휘말린 바 있는 작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말이다. 표절의 범주를 상당히 느슨하게 잡은 것이다. 역사적으로 표절시비는 종종 있어왔다.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1955년 보스턴 대학교에서 조직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보스턴대학은 1989년부터 1990년까지의 재조사를 통해 킹의 논문 가운데 삼분의 일이 졸업생의 논문을 베낀 사실을 적발해냈다. “나에게는
그러나 1858년 9월 일리노이 주 찰스턴에서 한 연설은 노예 해방에 대해 완전히 다른 견해를 담고 있다. “나는 어떤 방법으로든 백인과 흑인이 정치·사회적으로 평등하게 되는 것을 찬성하지 않으며, 찬성했던 적도 없다. 흑인에게 선거권이나 배심원의 권한을 주는 것, 그들이 공식적인 지위를 갖는 것, 또한 백인과 결혼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와 함께 머무르고 있는 한 그들이 우리처럼 살 수 없으므로 상층과 하층 계급은 반드시 존재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 가지로 나도 상층의 지위는 백인들에게 활당되어야 한다는 데 찬성하고 있습니다”링컨의 생각은 단순했다. 단일 연방의 유지야말로 미국 정부가 지켜야 할 궁극적인 목표이며, 노예제 폐지는 정치적 이해에 따라 찬성 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결국 그는 노예제도에 관한 소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1861년 4월 12일 섬터 요새에 대한 남부의 공격으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전쟁이 시작되었어도 노예 문제에 대한 링컨의 태도는 여전히 모호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군들이 점령 지역에서 노예제를 즉각 폐지하자고 건의
본 기고는 지난 7월 1일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사)침례회 포럼(이사장 지덕 목사, 대표회장 이봉수 목사)에서 발제된 원고를 바탕으로 요약 정리한 글이다.편집자주동성애는 유전도, 선천적인 것도, 치유불가능도 아니라는 사실과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며 에이즈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동성애자는 불행하다는 사실도 알려야 한다. 동성애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것은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동성애자들이 차별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고, 동성애를 비윤리적이라고 인식하는 건전한 성윤리를 가진 국민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이다. [3] 동성애자의 권리와 건전한 성윤리를 가진 국민의 권리가 충돌할 때에, 동성애자의 권리만을 옹호하고 건전한 성윤리를 가진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는 제한 또는 금지함으로써 법의 형평성을 잃고 역차별을 한다. 예로서 2002년에 미국 목사는 동성애는 죄라는 견해로 영적 폭행을 저지른 자라고 동성애단체가 주장했고, 시의회는 그의 반동성애 의견은 정죄돼야 한다고 결의했다. 미국 뉴멕시코 인권위는 레즈비언 커플의 웨딩촬영을 거부한 사진사에게 벌금형을 내렸고, 미국 캘리포니아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대해서는 면세혜택 박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동성애
기독교한국침례회 제104차 임원회 출범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새로운 임원들은 교단의 많은 현안들을 안고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됐다. 정기총회에서 결의된 안건들이 많다. 이 모든 사안들을 집행하기 위해서는 총회 대의원들의 절대 다수의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대의원의 결의와 총회 규약을 무시하고, 개인적인 사건이나 인정에 매달려 규칙을 벗어나게 되면 많은 저항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기억해야 할 것은 매 회기마다 시작할 때 각오와 결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초심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소견대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대의들에게 실망을 안긴다는 것이다.더 나아가서는 회기 말에 이를 때 많은 목회자들에게 실망과 좌절감을 안겨줬다. 시작이 좋았으면 끝도 좋아야 한다. 시작 때의 각오가 끝까지 지속돼야만 성공한 총회장과 임원들이 될 수 있다. 선거 운동할 때에 마음가짐이 당선되고 일 년 동안 변함없이 초심을 잊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총회를 섬기고, 대의원들과 교회를 섬기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매번 경험하는 것이지만 총회에서 결의된 안건이 무시되고 몇 사람들의 사견에 의해서 백지화 되는 것을 보면서 교단의 미래가 없음을 개탄하지 않을 수
본 기고는 지난 7월 1일 대전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열린 (사)침례회 포럼(이사장 지덕 목사, 대표회장 이봉수 목사)에서 발제된 원고를 바탕으로 요약 정리한 글이다. 편집자주 6. 동성애자의 삶에 대한 고찰동성애자의 삶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미화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남성 동성애자의 교제는 주로 내부적인 요인에 의해 깨어지며, 남성 동성애자 교제의 60%는 일 년 이내 깨어지고, 대부분 여성 동성애자 교제는 3년 이내에 깨어진다.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의 사귀는 평균기간이 대략 2.5년이며, 5년 이상 지속되는 것은 드물다. 동성애자의 관계는 이성애자보다 2배 정도 성(性)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에이즈가 발견된 후에 에이즈에 대한 교육을 받고 친구들이 에이즈로 죽는 것을 보면서도 모르는 사람과의 성관계를 가진다는 사실이 그들의 성행위가 중독임을 나타낸다. 남성 동성애자 모임에 가면 성에 대한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동성애자들은 나이가 들면 가족이 없어 외로움에 시달린다. 1998~2001년 사이에 진행된 4개의 독립적인 연구결과에서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보다 최소 2배 더 알코올에 의존하고, 남성 동성애자가 남성 이
긴장감이 감도는 회의장 분위기도 동역자들과의 반가웠던 만남도 산적한 교단의 문제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청명한 가을하늘에 숨기어져 지나가버린 시간이 되었지만, 다시 돌아올 시간을 위하여 총회소감문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다.금번 총회를 앞두고 필자는 2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첫째는 ‘사명과 의무’에 관한 문제로 대의원의 의무를 성실히 다 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는데, 24일(수) 오전에 중요한 위문예배가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필자가 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 공영제에 관한 문제를 총회 게시판에 수차례 제기한 바가 있어서 금번 총회에서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이 보다도 필자의 심정을 더욱 압박해 오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단신으로 강하게 추진하다 보면 이미 선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교단 정서상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감에서였다. 과거의 경험에서 보면 진리의 싸움터에서 교단 교회와 목회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섰던 일도 강한 추진력 덕분에 강성 이미지란 훈장을 달게 되었다. 그로인해 상처와 절망 속에 오랜 시간동안을 고통 해 했으며, 그 이미지를 벗고자 수
한국교회의 위기가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위기가 다가 왔음을 직감하고 있다. 현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에는 대형 교단 신학대학에서 뿐만 아니라 중소교단 신학교와 몇 교회 있지도 않는데 교단을 창설한 군소교단 신학교가 무자격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것이다.이렇게 과잉생산하다보니, 신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고, 교회를 개척하자니 여러 가지로 조건이 맞지 않아 사역할 자리가 없다. 또한 낮엔 교회, 밤엔 대리운전을 이른바, “투잡”을 하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0시에 식당으로 출근해 근무 오후 10시까지 12시간 일을 한다. 예배가 있는 수요일은 오후 8시 퇴근해 예배를 인도하고, 금요일 예배는 목사부인이 인도한다고 한다. 주일은 온전히 교회 예배와 사역을 한다. 그리고 어떤 목회자는 밤엔 대리운전 기사, 편의점 아르바이트, 새벽엔 물류회사 하역, 우유, 녹즙 배달원 그리고 낮엔 목회자(목사),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이 같은 현실은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성돈 교수가 목회자 9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밝혀졌다.조 교수는 이메일과 페이스 북, 그리고 전화설문을 통해, 모두 904명의
오늘 이 시대를 이끌어 가는 인물들의 리더십을 보면 둘로 나눌 수가 있다. 지배자형과 지도자형이다. 지배자형 리더십은 남을 이기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사람이다. 정복자의 모습인 것이다. 일평생 남을 이기는 것이 성공인 줄 알고 살아간다.그러나 지도자형 리더십은 다르다. 싸움이 남과의 싸움이 아니고, 자기와의 싸움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도자는 자기와의 싸움에 모든 힘을 쏟는다. 남을 이해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를 끊임없이 탐문하면서 바로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친다. 때로 우리는 용기가 없어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눈을 감는다. 귀찮아서 잘못된 일을 보고도 눈을 감고 못 본채 한다. 잘못된 일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정직이고 의를 세우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피해간다. 더군다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이라면 당연히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때로 우리 사회에 “너나 잘 하세요” 라는 아주 냉소적인 분위기가 있다. 교회의 지도자라면 진실한 마음으로, 정직한 마음으로, 사리사욕을 버린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에 선 자세로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하나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8월은 평년에 비해 비가 많이 내리고 덥지 않았다고 한다. 벌써 바람이 선선하고 하늘이 높아지고 한 해를 갈무리하는 이 시점은 오곡백과를 삼삼오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가위와 맞닿아 있기도 하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이쯤 되면 자연스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말이 어디선가 흘러나오고 눈에 들어온다.중국의 장자는 자신의 친구인 혜시를 두고 평가한 데에서 말미암은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이 있다. 대장부는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녀평등의 시대가 됐으니, “지식인을 자처하려는 사람은 모름지기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을 읽어야 한다”로 옮기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다섯 수레 분량의 책은 몇 권이나 될까? 옛날 수레는 보통 소나 말이 끌었기 때문에 사람이 끄는 수레보다는 훨씬 많은 양의 책을 실을 수 있었다. 정확한 통계가 전해 오는 것은 아니지만, 수레 하나에는 약 1,500~2,000권의 책을 실을 수 있다고 하니, 평생 읽어야 할 책은 약 7,500~10,000권에 이른다. 사람의 평균 수명을 75세로 잡으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달에 평균 8~11권을
조선 수군의 주력선 판옥선이 일본 배 안택선을 충파라는 전술로 모두 깨어 부수듯이 영화 ‘명량’이 그동안의 영화 흥행 기록들을 산산이 깨뜨리고 있던 8월의 여름 중순, 대한민국의 심장인 광화문 광장에 카톨릭 신자를 비롯한 시민 약 17만 여명이 운집 한 가운데 교황 프란치스코는 시복식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자들을 숭배했다. 임진왜란으로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란 듯이 서 있는 곳에서 아무런 부끄러움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도리어 그들은 자신의 검은 죄를 감추기 위해서라도 더 위장된 거룩과 의식으로 포장하면서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Society of Jesus or Jesuit)의 회원으로 제수이트 첫 교황이다. 바로 이 제수이트, 즉 예수회가 일본에 조총을 선물해주면서 임진왜란을 일으키도록 풍신수길을 유혹한 세력이다. 예수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후 기독교를 탄압하기 위한 목적과 함께 교황 중심으로 세계 경제 및 정치 장악과 세상 종교 통합을 목적으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Ignatius Loyola)가 루시퍼를 숭배하는 프리메이슨과 연관하여 1534년 설립 후 1540년 교황 비오3세의 승인을 받은 수도회로 로마 카톨릭 내 검은
마음이 바쁘다.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무엇을 말하는지, 왜 이것이 ‘가정을 해체’하고 ‘기독교를 몰락’시키는 지름길인지를 모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먼나라 이야기, 쓸데없는 정치적 참여, 괜한 걱정의 과장된 생각, 왜곡된 선전선동, 사회적 강자들의 기득권 유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잘못된 신념 등으로 몰아세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영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우리나라에서 이 법이 통과된 이후에 일어나게 될 상황 또한 종잡을 수 없다. 우선, 필자가 최근에 영국에서 온 한 교포로부터 직접 들었던 사례를 소개하면서 심각성과 긴박성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 북 아일랜드의 유명 제빵 회사는 동성애자 단체에서 “동성애자 결혼을 지지한다”라는 문구를 넣어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을 거부했다. 그 이유는, 그 회사의 경영진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었고, 성경에서 동성애가 죄라고 가르치기 때문에 동성애 지지 문구를 넣은 케이크 팔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고소를 당했다. - 동성애자들이 동성애 관련 잡지 인쇄를 의뢰했는데, 크리스천인 주인이 거절을 해서 현재 법정에 고소당한 상태이다. - 어떤 병원에서 동료 동성
제104차 정기총회가 곧 다가오고 있다. 제103차 총회 의장단과 임원들에게 우선 침례교회를 이끌면서 여러 고초를 겪고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며 침례교회를 위해 노력한 점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잘하고 칭찬받는 일보다 잘못한 일이 사람들에게 더 많이 기억난다고 하지만 지난 제103차 총회도 나름 열심을 다해 섬기고 헌신해 온 것은 인정한다.물론 지난 총회 회기를 돌아볼 때, 우리는 과연 침례교회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물을 때가 되지 않나 싶다. 최근 몇 년간의 끊임없는 송사와 논쟁으로 허비한 시간은 우리에게 성장과 성숙의 동력을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교단의 성장은 정체되고 미 자립교회는 점점 쇠락의 길을 걸으며 교회 문을 닫고 교회 지도자의 교체로 인한 갈등으로 법정 분쟁까지 벌어지며 세월호 대참사로 주목받은 구원파가 우리 교단과 흡사한 단체명을 사용하고 있어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기도 했으며 은퇴 목회자가 은퇴 이후 어떠한 대비도 하지 못해 방황하고 어려움을 겪는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분을 놓치며 자랑스러운 침례교인의 이름을 내세우기 부끄러운 상황이 작금의 우리 상황이다. 지금 침례교회는 무엇보다 준비된 지도자와 지도력, 리더십의 부재를 겪고
한가위라고 불리는 추석은 신라시대에서 유래된 우리나라 최대의 고유 명절이다. 그런데 추석이 유교 문화와 결합되면서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날로 자리 잡게 됐다. 그래서 제사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곤혹스러운 문제로 다가오기도 한다.추석이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로 성도와 불신자가 함께 쇠는 날이라면 우리 그리스도인은 기독교적 정신에 의거하여 추석을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추석은 민족 최대 명절로 전해져 오지만 사실상 전혀 상반된 슬픈 역사적 사실이 숨겨져 있다. 백제 고구려 삼국시대 말기 삼국이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신라가 당나라의 100만 대군을 끌어들여 9년간의 전쟁 끝에 마침내 백제에 이어 고구려까지 멸망케 하여 그 승리를 기념하게 한 서기 668년 9월 10일 7백년 고구려 역사가 마감하는 날이기도 하다. 신라입장에서는 당시 승전기념일이지만 고구려나 백제 유민들의 입장에서는 나라가 망하고 망국의 백성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날 이였기에 슬픈 역사가 깃든 날이 추석이기도 하다. 기독교 입장에서 볼 때 달은 피조물이고 또한 달이 빛을 내는 것이 아니고 태양에 반사되어 비치는 것이기 때문에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기에 창조주를 믿는 신앙인으로서는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하나님은 우주보다 크시다. 그런데 그 크신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도 계신다. 이것이 기독교의 신비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예배를 통하여 만나주신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어디를 가도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성전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거창하게 거행했다. 성전을 건축하는데 걸린 기간은 칠 년이나 걸렸다. 그날 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이러한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왕상8:27) 우주 보다 크신 하나님을 작은 성전에 가두어 두려고 하나님께 대한 한 자신의 그릇된 생각을 회개하며 드리는 기도다.그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
회색 빛 하늘이 무겁다. 올 해도 말없이 속도를 내고 있다. 69번째 광복절을 맞이했지만 온통 잿빛하늘이다. 의미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것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살아있으니까 살아왔나보다”하고 생각하는 것이 숫제 편할 것이다. 가시덤불길이란, 우리들이 걸어온 역사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명분은 언제나 주인은 국민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겉치레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슬픔은 국민에게만…. 지금, 우리는가슴을 가라앉히고 작금의 현실을 보자. 하루라도 편히 지낸 날이 있었는가? 우리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죄를 지었기에 이다지도 슬픔과 눈물의 역사를 살아야 하는가? 일제 강점기와 이념의 전쟁과 경제성장을 위한 희생, 민주화의 불행 속에 살아오면서도 백성들은 “내일은 달라지겠지”하는 기대와 소망으로 살아왔다. 시련과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백성들은 죄 없는 죄인 모양으로 그래도 앞만 보고 걸어왔다.사람은 잊어버리는 동물이다. 만일 인간이 잊어버리는 동물이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지난 날 피어린 상처와 멍들었던 아픔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불행을 이기는 인내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