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죄 짐 맡은 우리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2. 시험걱정 모든 괴롬 없는 사람 누군가, 부질없이 낙심 말고 기도드려 아뢰세 이런 진실하신 친구 찾아 볼 수 있을까, 우리 약함 아시오니 어찌 아니 아뢸까 3. 근심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1886년 8월 10일, 캐나다 라이스 호수(Lake Rice) 지역 주민들에게 짙은 먹구름 같은 슬픔이 들이닥쳤다. 존경받던 한 주민이 싸늘한 시체가 되어 호숫가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조셉 스크리븐(Joseph Scriven)이다. 66세인 그는 라이스호 지역에서 40년간 살아왔다. 스크리븐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친구들의 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았다. 그런 그를 잘 알던 동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에서 태어난 스크리븐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는 더블린의 트리니티대학을 졸업하고 어여쁜 아가씨와
내 너를 위하여(새311/통185) 작사: 프란시스 하버잘 (Frances Ridley Havergal, 1836-1879) 작곡: 필립 블리스 (Philip Paul Bliss, 1838-1876) 불에 타지 않는 종이 1.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2. 아버지 보좌와 그 영광 떠나서 밤 같은 세상에 만백성 구하려 내 몸을 희생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3. 죄 중에 빠져서 영 죽을 인생을 구하여 주려고 나 피를 흘렸다 네 죄를 대속했건만 너 무엇 하느냐 4. 한없는 용서와 참 사랑 가지고 세상에 내려와 값없이 주었다 이것이 귀중하건만 너 무엇 주느냐 몸이 아주 허약한 아가씨가 한 미술관에 앉아있었다. 22세 된 영국인 프란시스 하버잘(Frances Havergal)이었다. 하버잘은 아버지의 권유로 학교를 쉬며 여행을 하던 중 친구 집을 방문하기 위해 독일 뒤셀도르프에 머물고 있었다. 미술관을 둘러보다 곧 피곤을 느낀 그녀는 우연히 십자가에 달려있는 예수님이 그려진 그림 앞에 앉아쉬게 되었다. 그림에는“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에케 호모)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작사 새뮤얼 스테넷 (Samuel Stennett, 1727~1795)작곡: 토마스 헤이스팅스 (Thomas Hastings, 1784~1872)5대를 이어 목회한 가문1.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2.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없는 자비를 뭇 천사소리 합하여, 늘 찬송 드리네3.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4.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5.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한 젊은 목사는 런던 ‘리틀 와일드가 침례교회’에서 10년 동안 부목사로 섬겨왔다. 31세가 된 그는 이제 막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 담임목사인 조셉 스테넷 2세(Joseph Stennett II)가 세상을 떠나자 교회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온 젊은 부목사를 새로운 목회자로 청빙한 것이다. 그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전 담임목사의 아들 새뮤얼 스테넷(Samuel Stennett) 이었다. 젊은 새뮤얼 스테넷은 자신이 전임자만큼 좋은 사역자가 되어야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사역을 물려
10월의 달력을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책상 위에 달력에는 올 해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작은 글씨로 ‘종교개혁일’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고대 켈트인의 삼하인(Samhain) 축제에서 비롯된 할로윈 데이라는 지극히 미신적인 축제일과 겹치는데 그래서 이 날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마틴 루터가 1517년 비텐베르크 성안 교회당 정문에 95개조의 논조라는 문서를 붙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 종교개혁일이라는 것이 보편적인 사전적 이해이다. 그러나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 되심이 다시 선포되고 복음이 제대로 전달되어 질 수 있는 통로가 만들어 진 날이기에 세월이 지나도 기독교인들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날이다. 이 날의 중요성과 의미를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가 있다. 바로 독일의 작곡가,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이다. 유대인이지만 개종한 기독교인으로 평생을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한 작곡가 멘델스존은 5개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그 중 마지막 5번 교향곡이‘종교개혁 교향곡’작품 107번이다. 이 작품은 1830년 종교개혁 300년을 기념 축
작사: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1707-1788) 작곡: 시메온 마쉬 (Simeon Butler Marsh, 1798-1875) 멈추지 않고 찬송을 쓰다 1.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높이 일 때에, 사랑 많은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2.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구주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오니,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3. 전능하신 예수께 나의 소원 있으니, 병든 자와 맹인을 고쳐주심 빕니다 나에게는 죄악이 가득하게 찼으나, 예수께는 진리와 은혜 충만 하도다 4. 나의 죄를 사하는 주의 은혜 크도다. 생명수로 고치사 나를 성케하소서 생명수는 예수니 마시게 하시옵고, 샘물처럼 내맘에 솟아나게 하소서 1788년 3월 29일 따스한 봄날이었다. 80세의 찰스 웨슬리는 런던의‘시티 로드 채플’(City Road Chapel)에서 마지막 설교를 마쳤다. 그의 임종은 가까워 왔고, 29명의 친구들이 마지막을 함께하기 위해 찾아왔다. 가까운 지인들에게 둘러싸인 찰스 웨슬리는 시편 한 구절을 읊었다. “내게 호흡이 있는 동
작사: 주요한(1900-1979) 작곡: 구두회(1921-)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고 명령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한 약속입니다”(엡 6:1~3).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부모님은 마음과 정서의 고향이다. 몇 년 전 상영된 영화‘엄마’는 어지럼증으로 차를 타지 못하는 늙은 어머니의 이야기이다.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라도 해남에서 목포까지 이백리 길을 3박4일 동안 걸어서라도 가신 분이 우리의 어머니이다.“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또한“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25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자녀는 낳아주신 부모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시어머니의 기쁨이 된 룻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시어머니인 라오미는 무엇하나 해 줄 능력도 없고 희망도 사라져 룻에게“살길을 찾아서 이제 내 곁을 떠나라”(
아침저녁으로 느껴지는 제법 서늘한 기운은 이제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고 했던가? 가을은 뒤를 돌아보게 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이상한 힘을 가진 계절이라는 의미라는 뜻인 것 같다. 아무튼 가을이 오면 우리는 뭔가에 이끌리듯 감성적인 많은 일들을 하려고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이 거는 마법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식을 치르며 조금 씩 가을이 물들어간다.누구나 조금은 쓸쓸해지고, 또 조금은 차분하게 가라앉는, 이런 가을을 위해 작곡된 것 같은 음악이 있다. 바로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클라리넷 협주곡 K. 622번이다. 이 작품의 2악장은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85년 영화, “Out of Africa”의 배경음악으로 등장해 더 유명해 진 음악이다.클래식 작곡가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에 한 사람인 모차르트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18세기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신동 음악가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그가 지나치게 열성적인 아버지와 음악에 재능을 나눈 누나가 있었고 4살의 어린 나이에 대중 앞에서 연주를 하였을 뿐 아니라 작곡까지 했을
8월은 일년 중 가장 더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또 태양의 열기만큼 뜨겁게 나라와 민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달이다. 그 이유는 8월의 가장 중심에 광복절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이를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행사가 계획되어 있어 더욱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35년간의 일제 강점기는 민족의 자주성과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파괴된 치욕의 세월이었지만 수많은 분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희생으로 나라의 정체성과 자주성을 다시 찾게 되었다. 연약하고 피폐해도 내 나라이기에 소중했기에 감사함으로 재건된 대한민국은 비록 동양의 작은 모퉁이에 있지만 불과 70년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내며 명실공이 경제와 문화의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70년의 시간 속을 지나면서 우리는 너무 쉽게 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린 채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우리나라가 있음이 주는 자유의 감사함에 무디어 진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된다. 8월 한 달 만이라도 우리들의 조국을 돌아보며 그 소중함과 감사함을 회복하고 이 땅을 위해 기도하는 기간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서양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작
작사: 윌리엄 페더스톤 (William Ralph Featherston, 1846~1873)작곡: 아도니람 고든 (Adoniram Judson Gordon, 1836~1895) 소년이 남긴 걸작1.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합니다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2. 주 날 사랑하사 구하시려고, 저 십자가 고난 당하셨도다 그 가시관 쓰신 내 주 뵈오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3. 내 평생에 힘쓸 그 큰 의무는, 주 예수의 덕을 늘 기림이라 숨질 때에까지 내 할 말씀은,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4. 그 영광의 나라 나 들어가서, 그 풍성한 은혜 늘 감사하리 금 면류관 쓰고 나 찬송할 말,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고든(Adoniram Gordon) 목사는 런던 찬송가 (1864)를 뒤적거리며 찬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던 고든은 아름다운 찬송시를 발견했다. 작가의 이름은 없었다. 시에 붙여진 멜로디를 흥얼거려본 그는 음악이 시를 망가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틴 루터가 음표는 가사를 살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미국 뉴햄프셔에서 태어나 고든은 27세에 뉴턴 신학교를 졸업하며 안수를 받
최현숙 교수의 문화나누기바흐의 권면 :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병의 위협과 맞서 싸우느라 그 어느 해보다 혹독한 6월을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이다. 올해 여름은 아직 제대로 더위와 씨름하기도 전에 이미 몸과 마음이 다 지쳐가는 듯하다. 중동발 신종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불안과 공포 속에서 어수선했던 한 달을 견뎌왔기에 올 해 여름은 조금 더 버거워질 것 같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바이러스 앞에서도 이렇듯 무기력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며 만물의 영장이라며 자연 앞에서 얼마나 자만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건강한 몸은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의 건강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말고 소중하게 여기고 잘 돌봐야한다. 몸도 몸이지만 우리들의 정신을 망가뜨리는 많은 유해 요소들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영적인 면연력을 길러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1세기를 지배하려는 종교다원주의, 미국 전역이 동성애인들의 결혼을 합법화할 정도로 타락한 도덕성, 인권이라는 허울 좋은 미명아래 자행되고 있는 많은 영적인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잘 이길 수 있는 힘이 그 어느 시대보다 절실하게 필요한
찬송에 숨겨진 이야기인애하신 구세주여(새279/통337)작사: 패니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1820-1915)작곡: 윌리엄 도언(William Howard Doane, 1832-1915)불쌍한 눈먼 얘야 1.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후렴) 주여 주여 내가 비오니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2. 자비하신 보좌 앞에 꿇어 엎드려 자복하고 회개하니 믿음 주소서3. 주의 공로 의지하여 주께 가오니 상한 맘을 고치시고 구원하소서4. 만복근원 우리 주여 위로 하소서 우리 주와 같으신 이 어디 있을까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가 태어난 지 6주쯤 되었을 때 감기에 걸렸다. 뉴욕 퍼트넘 카운티의 의사는 감기로 눈이 부어있는 아기에게 겨자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잘못된 치료로 아기는 평생 동안 조금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행한 인생이 시작되었다.크로스비가 5살이 되었을 때 이웃사람들은 돈을 모아 밸런타인 모트 박사에게 보내주었다. 뉴욕의 유명한 외과의사 모트 박사는 어린 소녀의 눈을 진찰했다
1. 예수가 거느리시니 즐겁고 평안하구나 주야에 자고 깨는 것 예수가 거느리시네(후렴)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 주 날 항상 돌보시고 날 친히 거느리시네2. 때때로 괴롬당하면 때때로 기쁨누리네 풍파 중에 지키시고 평안히 인도하시네3. 내 주의 손을 붙잡고 천국에 올라가겠네 괴로우나 즐거우나 예수가 거느리시네4. 이 세상 이별할 때에 마귀의 권세 이기네 천국에 가는 그 길도 예수가 거느리시네 1862년 3월 26일 수요일 밤이었다. 미국 여러 지방의 주들은 아직도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고, 아브라함 링컨의 노예해방도 선언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들은 싸우는 이유조차 확실히 모른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무도 언제쯤 이런 험악한 상황이 끝날지 몰랐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할 뿐이었다.그런 환경 가운데 조셉 길모어(Joseph Gilmore) 목사는 필라델피아의 ‘제일침례교회’ 수요일 밤 예배에 설교 초청을 받아 “주님이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제목으로 시편 23편의 말씀을 전했다. 그날 밤은 말씀을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가 이전에 느낄 수 없었던 은혜를 체험했다. 예배를 마친 후 길모어 목사는 토마스 왓슨 집사의 집에 초대받았
어느새 일년의 절반이 지나가려한다. 한 해의 정 중앙에 있어서인지 6월은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달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6월이 오면 유난히 차분해 지는 다른 이유는 아마도 6월은 보훈의 달이기도 해서일 것 같다.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많은 분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보훈의 달, 그래서 6월이 되면 우리 마음에 나라에 대한 생각이 특별한 자리를 잡기도 한다. 모국이라고, 내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가 있음에 우리는 얼마나 감사하고 살았는지 잠시 반성해 보기도 하면서 6월을 맞는다. 200년 전쯤 폴란드의 한 음악의 천재가 있었다. 감수성 예민하고 음악에 대한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이 젊은이는 음악 뿐 아니라 자신의 나라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많은 곡절을 겪은 나라, 폴란드가 결국 주위 여러 나라에게 지배되며 독립적 자주성을 잃었던 시기에 태어나 성장한 피아노의 시인,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이 바로 그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유순하고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던 쇼팽은 요란하고 큰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나라를 깊이 사랑하고 그 나라를 향한 심정과 아픔을 음악을 통해 표현했던 작곡가였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새94/통102)작사: 리아 밀러(Rhea F. Miller, 1894~1966)작곡: 조지 쉬아(George Beverly Shea, 1909-)1.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은 내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수 밖에는 없네2.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이 전에 즐기던 세상일도, 주 사랑하는 맘 뺏지 못해3.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유혹과 핍박이 몰려와도, 주 섬기는 내 맘 변치 않아 찬송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예수님을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까? 물질과 명예, 부모자식 그리고 건강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하십니까?” 이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제부터 예수님만을 기뻐하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우리는 입술로 이 찬송을 노래하지만 마음은 세상의 것들을 기뻐하며 살았기에 지나온 삶이 부끄러워 마음껏 부를 수 없다고 고백할
봄이 왔다. 그 길었던 겨울은 아직도 미련이 남은 듯 꽃샘추위로 심술도 부려보고 난데없는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결국 겨울은 떠나고 그 자리에 찬란한 봄이 왔다. 자연은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아래 순리에 따라 언 땅을 뚫고 새싹을 틔워내고 꽃을 피워낸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시작한 봄도 시간이 지나면 또 여름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우리 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 떠남의 과정이 힘들어도 억지로 순리를 거역하거나 고집부리지 않는 자연의 흐름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또 왜 우리는 그런 자연의 모습을 닮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된다. 흔히 요즘 세대를 극단적 개인주의의 자아를 가졌다고 진단한다. 자신의 생각만 절대적인 선이며 정의이며 옳음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방법만이 정의 구현의 참된 길이라고 고집한다. 그 과정에서 상처받고 아파하는 타인의 입장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의 어떤 정의도 절대적일 수는 없다. 자신의 옳음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가끔씩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이 아닐까? 깊어가는 봄을 보며 때가 되면 자리를 내어주는 계절처럼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살만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