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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eu 2019!

<최현숙 교수의 문화 나누기>

최현숙 교수
침신대 피아노과

한해를 새로 맞이하고 기대와 각오로 그 첫날을 시작하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마지막 며칠을 남겨두고 있다. 새해를 맞고 또 때가 되면 그 해를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되어 해가 바뀌는 것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연말연시가 되면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꿈을 꾸려는 노력을 위한 결심을 하기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한해의 마지막이 왔고 나의 과거의 시간들과 이별을 해야만 한다.


내가 살아낸 한해, 나의 모든 것을 함께 한 과거 시간들을 잘 보내주고 새로운 시작과의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마음을 비워야 할 시기가 바로 연말연시인 것 같다. 한해의 맨 끝자락에서 듣고 싶은 음악, 문득 하이든의 기적교향곡을 떠올리게 된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잘 알려진 프란츠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은 고전교향곡의 형식과 구조를 완성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과 같은 후세의 작곡가들에게 창작의 방향을 제시한 선생의 역할을 한 작곡가이기도 한 하이든이 서양음악사에 남긴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이든이 작곡한 100여 곡이 넘는 교향곡에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이 많은데 그 제목들이 모두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제목의 작품이 바로 96번인 “기적교향곡”이다.


이 작품은 1791년 런던의 청중들을 위해 작곡된 12곡의 런던 교향곡 중 가장 먼저 작곡된 작품이다. 당시 런던에서 가장 추앙을 받았던 작곡가였던 하이든은 유례없는 앙코르 연주를 원할 만큼 청중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이런 하이든이 새로운 작품을 연주한다고 하니 연주 당일 연주회장 근처는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의 하이든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인 많은 군중들은 연주회장 안에 들어서자 조금이라도 하이든을 가까이 보기 위하여 자신들의 지정석을 마다하고 무대 앞쪽에만 몰려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연주 도중, 연주회장 중앙 천정에 있던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대형 사고가 일어났는데 청중들이 앞쪽에 몰려있어 인명피해가 하나도 없었고 그 중 누군가가 “이건 기적이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 후 이 작품은 “기적교향곡”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의 소망을 전해주는 음악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매일이 기적이다. 숨 쉬는 것도, 심장이 뛰는 것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주어진 일이 있다는 것도 모두 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그들이 주는 작은 즐거움들도 역시 기적과 같은 일이다.


 서로를 향해 갖게 되는 그 마음은 억지로 만들어서 넣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기적인 셈이다. 이런 엄청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기적을 우리는 잊고 산다. 그것을 잊어버린 채, 세상이 불의하다고, 현재가 불행하다고 원망하고 절망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한 해 동안 우리가 겪은 기적들을 하나하나 다시 생각해보며 한해와 작별하면 좋겠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생각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는 사람을 곁에서 볼수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작은 일을 아직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적의 모습이고 행복의 근원임을 기억하며 이제 2019년의 추억을 고이 접어 마음의 장롱에 넣어 두어야겠다. 하이든의 “기적교향곡”의 선율에 내가 살아낸 한해를 살포시 담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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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