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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밤은 세상의 낮보다 아름답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용기 박성근 지음/ 두란노/ 296쪽 / 15,000원



우리가 걷는 인생여정은 쉽고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서 세상 한가운데 벌어지는 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현실의 삶 속에서는 경제 불황으로 직장을 잃고 가게가 문을 닫고 집을 빼앗긴 채 거리로 내몰리게 될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치병이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좌절하는 사람, 이혼과 깨어짐의 아픔에 신음하는 가정도 있다


 이런 밤의 현실 속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이 책은 폭풍이 멈추기를 기대하거나 시련의 벽돌이 사라지길 기다리지 말고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으라고 말한다.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기적과 이적 치유를 경험하고 들어 안다. 회당장 야이로도 열두 살 짜리 딸의 중병을 낫게 하려고 예수님을 모시고 집으로 간다. 예수님은 야이로와 군중들과 함께 움직이다가 갑자기 멈춘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것이다. 수많은 인파들이 예수의 옷을 스쳤지만 예수님은 안다. 그녀가 오랜 시간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 왔고, 그녀의 믿음을. 야이로의 입장에서는 한시도 기다릴 수 없었지만 예수님은 기다린다.


이처럼 혈루병 걸린 여인, 야이로의 딸 사건에서의 예수님의 멈춤은 우리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 역시 길이 막혔을 때 육신의 병이나 환경의 변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던 길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멈춰 서게 하실까? 저자는 더 소중한 것을 알게 되는 축복과 믿음을 강화하는 축복,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되는 축복을 주기 위함이라고 강조한다.

예수님은 소외된 자들-여자, 혈루병 환자-에게 관심을 잊지 않으신다. 성공보다 한 영혼을 돌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는 가치관을 몸소 힘없는 이웃에게 보여 주시며 우리 또한 인생에 멈춤을 주실 때 소중한 것들을 다시 살펴보라고 말한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절망스러운 상황이 예상치 못할 때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럴 때 예수님은 당황하지 말고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한다.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에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보장하지 않는다. 다만 두려움 대신 믿음을 선택하라고 한다. 함께 어울려야 하는 인간에게도 갈등이라는 방해물이 존재한다. 갈등이라는 한자어를 보면 칡나무와 등나무를 뜻한다. 두 넝쿨식물은 반대방향으로 감아 올라가기 때문에 서로에게 감아쥐는 힘이 크기에 고통을 안겨 주게 돼서 이것을 갈등이라 부른다. 이 책은 부부사이 부모 자녀사이 직장 동료사이의 갈등 교회공동체 속에서의 갈등을 넘어서는 비결을 귀띔한다.


바울은 좋은 집안 출신에 학식과 능력을 갖추고 사역의 열매를 맺은 믿음의 사도이다. 하지만 그는 예수님의 12제자가 아닌 자칭(?) 사도에 지나지 않는다. 대적자들은 이를 핑계로 공격하였지만 그는 예수님을 직접 만났고 직분 받은 것에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저자는 진정한 가치를 회복하려면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바울 또한 자신을 대적하고 배신했던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은혜와 평강을 선포한다. 끝으로 갈등을 넘어서기 위해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과 죄인인 우리 사이의 예수님의 생명주심을 잊지 말고 공생애의 삶을 본받아 갈등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평화를 나누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특별히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의 낮과는 다른 우리에게 허락하신 밤을 걸어가면서 새벽을 깨우는 생명력 강한 신앙인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 이한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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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