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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에 대한 두 가지 비유

김종훈 목사/ 오산교회

대체 ‘목회’란 뭘까? 쉬운 걸까? 어려운 걸까? 사소한 걸까? 위대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회는 어렵지만 위대하다. 얼마 전, 결혼생활에 대한 주제로 주일 말씀을 나누며 묵상해 본 것인데, 생각해보니 결혼도 목회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결혼생활에 대한 두 가지 오해를 생각해 보자. 첫째, 사람들은 결혼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과 같다”고만 여기는 경향이 많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인생에 이보다 더 가슴 뛸 일이 어디 있나? 죽도록 사랑하는 이와 죽기까지 함께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벅차다. 게다가 더 넓은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랴.


하지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에는 꼭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거기 살려면 각오할 것도 많다. 예컨대, 초원이다 보니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길을 다녀야 하고, 새로 산 신발도 더러워질 수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돋아나는 마당의 잡초 역시 수시로 뽑아주어야 한다. 온갖 벌레와의 전쟁도 치러야 하고, 소똥 냄새에도 적응해야 하며, 외로움도 달래야하는 수고가 동반된다. 그것을 해낼 각오 없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은 유지하기가 힘들다. 저절로 되는 일이란 아무데도 없다.
그러니 결혼생활도 낭만과 환상적일 거라고만 여기는 건 금물이다. 가꾸고 유지하는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고, 질퍽거리고 더러워지는 나 자신에 대한 수용도 필요하다. 끝없이 가정의 밭에 돋아나는 잡초도 수시로 함께 뽑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목회도 마찬가지. 많은 사람 앞에서 멋있게 설교하고, 가는 데마다 인사받고 대접받고 존경받는 일이 목회가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일이 목회이다. 매일 참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매순간 죽기도 해야 한다. 내 안의 잡초를 수시로 뽑아야 하고, 질퍽거림도 각오해야 하며, 외로움도 달래야 한다. 그래야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 같은 목회는 멋쟁이 높은 빌딩도 부럽지 않은 행복 공간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오해는 사람들이 결혼을 “사진 한 장에 그랜드캐년 담기”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랜드캐넌의 깊이 파인 1,5km 계곡과 420km 길이의 장엄한 장관은 절대로 사진 한 장에 못 담는다. 찍은 사진 한 장으로 다 설명할 수도 없다.
게다가 그 찬란한 석양이 만드는 초절정의 경이로움과 벼랑 끝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 깊은 계곡을 내려 보는 아찔함과 경비행기를 타고 계곡 사이를 누비는 아슬아슬함 그리고 콜로라도의 강바람이 주는 그 상쾌함은 더더군다나 사진에 못 담는다.


그런 점에서 결혼도 마찬가지. 내가 경험한 사진 한 장 같은 결혼생활이 결혼이란 제도가 원래 가진 풍성함이 절대로 아님을 명심하라. 그 행복과 가치는 나의 부족함으로 아직 다 맛보지 못했다. 그러니 결혼이 이런 것이었다면 난 애초부터 안했을 거라고 판단하지도 말아라. 아직도 당신은 더 맛볼 것, 더 누릴 것이 있음을 알고 잘 진단해보라. 
그러고 보면 목회도 그러하다. 내 목회가 뜻대로 펼쳐지지 않는다고 원래 목회가 이런 것이라고 평가절하하지 말아라. 내가 경험한 목회는 하나님이 나를 목회자로 부르실 때 그가 품으셨던 풍성함, 행복, 위대함, 보람, 경이로움의 전부가 아니다. 내 목회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결혼도 그러하듯, 목회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상상을 넘는 위대함이 분명코 있다. 그러니 잘 진단해보고, 더 겸손하게 기도하고 성실하게 사역하며 때를 기대하며 기다리자. 그랜드캐넌의 장엄함을 현장에서 보는 감격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감격을 반드시 부르신 그분께서, 보내신 그곳에서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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