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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그리고 매너

김형윤 목사의 새벽이슬-42

우리는 지구촌이라고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좋은 시대에 태어나 예전의 세대가 누리지 못한 혜택을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가깝게 느껴지는 요즘, 어디를 가나 한국인을 볼 수가 있고 또 어디서나 만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나라와 민족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모든 게 하나로 뒤섞이는 시대가 되어 음식도 문화도 융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연히 존재하는 나라와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특정지역이나 나라에 가면 그곳의 문화와 매너를 알고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친구가 될 수 있고 하나가 되어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고 어울릴 수가 있게 됩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걸쳐 형성된 것이므로 그 배경을 알고 그들의 전통을 준중해주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대체로 아르헨티나는 유럽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세운 나라이기에 유럽의 문화적인 전통과 유산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어느 면에서는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은 조금 낮을지라도 문화적인 수준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약간 그 지역이나 사람들을 무시한다거나 그들이 볼 때, 무례한 언행을 하는 경우도 있어 눈살이 찌푸려지는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을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곳의 문화적 수준은 우리와는 다르지만 우리보다 훨씬 아름답고 좋은 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허례허식적인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무례하고 오만불손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은 게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이곳 사람들은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이 들어올 때까지 문을 열고 기다려주고 승강기를 탈 때도 노약자나 여성이 있으면 그들에게 양보하고 특히 장애인이 있으면 무조건 양보합니다. 그리고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가볍게 인사를 보내거나 친절한 태도를 보입니다.


청소를 할 때도 우리는 안에서 밖으로 쓸어 가는데 남미는 밖에서 자기 쪽으로 쓸어 모은다고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세심한 배려가 엿보입니다.

문화는 무엇입니까?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겉으로 표현되어 모두가 좋아하는 전통이라고 봅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문화와 전통은 경제가 성장하고 돈을 벌었다고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일본 격언에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여주는 것만큼 실제적인 좋은 교육은 없습니다. 사람은 말로 변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말없이 보여주는 것이 가장 웅변적이고 진한 감동을 줍니다

 

문화적인 사람일수록 매너가 좋습니다. 매너는 무엇입니까? 배려하는 것입니다. 상대를 이해하고 그의 입장에 서주고 공감해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저 자신도 그러지 못해서 부끄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특히 여행을 하다보면 본성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문화의 옷은 단번에 갈아입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배려가 손쉽게 나오지 않은가 봅니다. 서로 노력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교만하고 이기적이며 무례하고 버릇없는 사람들을 보시면서 가슴이 많이 아프셨을 겁니다. 길이 참고 노하지 않으시고 기다려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형윤 목사 / 서울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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