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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옷 수거하시는 선생님

김종훈 목사의 목회 이야기 -82

유난히 칼바람 매서웠던 어느 월요일 이른 아침, 음식 쓰레기를 내다버리러 1층 수거함에를 갔더니 마침 헌옷 수거 차량이 와있었다. 헌옷들과 신발들까지 분리하여 정리하는 기사님의 모습이 능숙하고도 빨랐다. ‘잠깐 쓰레기 버리러 나온 나도 이렇게 추운데 얼마나 추우실까라는 생각에 한마디를 건넸다.

아저씨 수고 많으십니다.” “. ~.” 아저씨는 멈춤없이 그대로 고개를 떨군 채 그렇게만 짧게 답하셨다. “이렇게 운전도 수거도 혼자 다 하시는 거예요?”라고 재차 말을 건넸으나, 여전히 ~”만 하실 뿐 고개는 들지 않으셨다. 실례지만 이렇게 하루에 얼마나 다니세요?”라고 또 건넸더니, “하루에 아파트 단지로는 4~6군데, 수거함 개수로는 20개 내외 정도 됩니다.”라고만 하신다. “아이고 그럼 너무 힘드시겠어요?”라고 또 건넸더니, 그제야 아저씨는 고개를 들고 날 바라보고 답하셨다. 약간의 미소와 함께. “힘들긴 해도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바로 그 말, 그 말씀에 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오늘도 그 일을 하신다니 그 고백이 내겐 참으로 놀라웠다.


버리는 사람 따로, 줍는 사람 따로, 내다놓는 사람 따로, 가져가는 사람 따로인 세상에, 어느 누가 버리는 사람 되고 싶지 주워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까마는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일에 감사하며, 그 추운 날 아침에도 그 일을 묵묵히 하고 계심이 얼마나 존경스럽던지.

그 존경스러움에 나도 마지막 말을 건넸다. “그럼 선생님 수고하세요.” 처음에 아저씨라고만 호칭했던 것조차 죄송해서 그렇게 마지막엔 선생님으로 불러드렸다. 실제로 그 아침 내게 한 수를 가르쳐주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덕에 그날 하루 종일 그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특별히 이 사회를 가장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계신 분들에 대한 생각. 누군가 버린 것들을 다시 주워가는 분들처럼, 이 사회의 얄궂은 뒤처리를 도맡아하시는 분들에 대한 생각. 드러나 보이진 않지만 반드시 계셔야하고, 조명 받는 곳은 아니지만 필요한 곳엔 꼭 있는 분들, 남들 쉴 땐 일하고 남들 잘 땐 깨어있는 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이는 이들을 비추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드러난 이들을 드러나게 하시는 분들에 대한 생각. 사실 이들 까닭에 이 사회도 국가도 돌아가는 게 아닐까? 아름다운 게 아닐까?

그렇다면 교회도 마찬가지. 사실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은 조명을 받는 사람은 담임목사인 . 어쨌든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다. 물론 그건 참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감사를 표해드려야 하는 이가 어디 뿐인가?

부교역자들도 있고, 직원들도 있다. 교회학교 선생님들도 있고, 목자 부목자들도 있다. 주방봉사자들도 있고, 성전 청소하는 이들도 있다. 운전으로 섬기고, 주차로 섬기고, 헌금 계수로 섬기고, 중보기도로 섬기는 이들도 있다. 늘 긴장해야 하는 방송실 사역자들도 있고, 예배를 악기로 돕거나 찬양으로 돕는 성가대와 찬양단도 있다. 강단을 꽃으로 장식하는 이들도 있고, 화단에 물을 주는 이들도 있다. 붕어빵을 구워 전도하는 이들도 있고, 커피로 섬기거나, 도시락 봉사로 섬기는 이들도 있다. 그 외에도 드러나지 않는 숨은 봉사자들은 곳곳에 있다

 

그러니 담임목사의 관심도 때로는 어딜 향해야 할까? 따뜻한 위로가 누구에게도 필요할까? 바로 그분들이다. 그러니 담임목사부터 그들을 챙겨야 한다. 진심어린 사랑과 감사를 때때로 그분들에게도 표해야 한다. 당연한 듯 나만 대접 받으려 해선 안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 모두가 그 몸의 지체라면, 그 어느 지체 하나도 필요 없는 지체는 없고, 요긴하지 않은 지체도 없다. 그러니 그 고마움을 알고, 담임목사도 그들을 섬길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처럼.

김종훈 목사 / 오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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