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달은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질병을 극복하게 하며 일상의 많은 부분의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다. 편안함과 안락함, 육체와 정신의 풍요로움은 문명사회가 주는 큰 혜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과연 편리함과 풍족함이 삶의 질까지 높여주었을까? 혹은 풍요로움은 곧 행복이며 정신적인 평안까지 책임지고 있는 것인가? 현대에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을 보며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가정은 붕괴되고 개인의 내면은 피폐되어 자살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공동체마다 불신이 깊어 갈등은 계속되는 현상들을 볼 때 우리는 가장 풍요로운 문명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가장 삭막하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불편해도 마음을 합하여 극복하고 조금 가난해도 정으로 이겨내었던 아날로그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회적 현상을 보는 안타까움에서 생겨난 듯하다. 삶의 편리성은 높아져도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지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의 부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말은 우리 시대에 올바른 스승이 없어서라는 의미라기보다 스승을 스승으로 대하지 못하는 굳어진 마음들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시온성과 같은 교회(새210/통245) 작사 : 존 뉴턴(John Newton, 1725-1807) 작곡 : 프란츠 조셉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 장군은 37세였다. 키는 180센티미터가 넘었고 체격은 우람했다. 길게 기른 수염과 밤색 머리카락은 언제나 빗질이 되어있지 않았다. 군화는 낡았고 챙이 처진 모자에 빛바랜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전쟁터에선 겁이 없었지만 대표 기도를 할 땐 무대 공포증에 찌든 사람처럼 기어들어가는 가냘픈 소리로 기도했다. 하지만 늘 혼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그의 부하들은 “장군님은 전투 중이 아니면 기도 중이시죠”라고 할 만큼 장군은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감사기도를 하지 않고서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을 정도로 그의 신앙생활은 철저했다. 주일에는 편지 한 통을 읽지도 쓰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가 자연과학, 군사전술학을 가르친 미국 버지니아 렉싱턴에 있는 “버지니아 군사학교”의 강의실에서 그는 신자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었다. 또한 흑인 어린이들도 주일학교를 마음대로 갈 수 있도록 “흑인침례주일학교”를 세우고 지속적으로 운영비를 지불했다. 장군은 전투에 나가 있거나 기도를 하고 있
하나님의 크신 사랑(새15/통55) 작사: 찰스 웨슬리 (Charles Wesley, 1707-1788) 작곡: 존 준델 (John Zundel, 1815-1882) 수잔나 웨슬리(Susanna Wesley)는 19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 중 아홉 명은 아주 어려서 잃었다. 그녀는 살아남은 열 자녀(3남 7녀)를 바르게 교육하려고 힘썼다. 수잔나는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철저한 계획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했다. 자녀들에게 말을 처음 가르칠 때는 주기도문을 따라하게 함으로써 가르쳤고 아이가 정확히 다섯 살이 되는 생일부터 알파벳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읽게 하는 문장은 창세기 1장 1절이었다. 어머니 수잔나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마음속 깊이 새겨 놓았다.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를 먼저 알게 하는 하나님 중심의 가정교육이었다. 그렇게 자라난 존과 찰스 웨슬리에 의해 영국에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찰스 웨슬리는 수많은 찬송을 만들어 영국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고, 존 웨슬리는 전례 없는 설교사역으로 영국을 새롭게 했다. 감리교를 만들어 영적부흥을 일으킨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영향은 곧
매년 봄의 시작은 그 어느달보다 숙연해지는 3월과 함께 시작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3월이 왔나 했더니 어느새 3월은 가버렸다. 나라사랑이야 1년 내내 같은 마음이겠지만 그러나 유난히 봄에 더 나라에 대한 생각을 깊어지는 계절이 봄이라는 느낌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일까? 그런 점도 있겠지만 아마도 봄의 시작을 삼일절과 함께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일 년 중 그 어느 때보다 조국에 대해, 민족에 대해, 그리고 자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계절이 봄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세대가 바뀌고 10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삼일절을 비롯한 우리민족만이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념일들이 갖는 의미가 희미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래도 예전에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우리 민족이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날을 위한 특별한 노래를 가르치고 부르게 해서 일 년 중 나라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는데 요즘의 어린 학생들은 지나치게 과열된 학습 경쟁 속에서 공부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도, 시간도 없는 현실이 더욱 안타깝다. 뼈아픈 과거를 교훈삼고 조국의 시련 앞에서 결연하게 일어섰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특정한 날의
큰 죄에 빠진 날 위해(새282/통339) 작사: 샬롯 엘리엇(Charlotte Elliot, 1789~1871) 작곡: 윌리엄 브래드버리(William Batchelder Bradbury, 1816~1868) 프랑스의 시인이자 목회자인 헨리 말란(Henri Malan)은 영국 브라이튼에 있는 친구의 집을 찾아갔다. 절친한 사이인 성공회 신부 헨리 엘리엇의 몸이 불편한 여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방문한 것이었다. 친구의 동생 샬롯 엘리엇(Charlotte Elliot)이 어렸을 때는 밝은 성격과 믿음을 가진 예쁜 소녀였다. 그러나 30세 쯤 됐을 때 병에 걸려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불구자가 됐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불평이 늘고 세상을 비관하기 시작했다. 성격은 날카로워졌고 신앙을 내동댕이치기에 이르렀다. 집 밖에는 나오지도 않고 방안에서 혼자 지냈으며, 식구들과 대화조차 끊어진지도 오래였다. 그야말로 엘리엇은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엘리엇에게 멀리서 온 말란 목사의 말이 한마디도 들릴 리 없었다. 모든 말들이 허공에 메아리칠 뿐이었다. 그렇지만 말란 목사가 시를 쓰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자 그녀의 닫힌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2017년을 정신없이, 어수선하게 맞아 아쉬웠던 참에 설 연휴를 지내면서 1월을 떠나보내게 된 것은 어쩌면 다행한 일일수도 있다. 설을 맞아 한해를 새롭게 맞이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주어졌기 때문이다. 올 해는 대체공휴일까지 있어서 그래도 조금은 여유로운 명절을 보내는 행운까지 겹쳤으니 나를 돌아보고 내일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기에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텔레비전 방송들은 명절이 되면 지나간 시절의 영화를 많이 보곤 하는데 오래전 어느 명절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연휴에 봤던 영화가 문득 생각이 났다. 바로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제목의 뮤지컬 영화였다. 1954년에 제작된 이 영화는 1923년, 독일 하이델베르그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인데 독일의 극작가, 빌헬름 마이어포르스터(Wilhelm Meyer-Forster, 1862~1934)의 중편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영화의 내용은 하이델베르그로 잠시 유학을 온 황태자와 하숙집에서 일하는 여성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고 있는 진부한 것이었지만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 영화였다. 특히 남자 주인공인 황태자가 부르는 노래들의 목소리는 당대 최
어서 돌아오오(새527/통317) 작사: 전영택(1894~1968) 작곡: 박재훈(1922~) 아들 하나를 뒷바라지하며 시골에서 어렵게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망나니 같은 자식은 어려운 살림이 지겹다며 나이 많으신 홀어머니를 두고 집을 뛰쳐나갔다. 얼마 후 방황하며 다니던 자식이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인적이 드문 새벽인데 대문은 열려있었고 방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벽에 기댄 어머니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가만히 계셨다. 깜짝 놀란 아들은 급히 들어가 어머니를 흔들었다. 어머니는 앉아서 졸고 계셨던 것이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어머니께 용서를 빌었다. “엄마, 밤에는 무서운 산짐승도 내려오는데 왜 문을 열어 놓으셨어요?” 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문을 열어 놓고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고 하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크게 뉘우치는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 집을 떠난 이유는 상관이 없다. 집을 떠나있을 때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도 문제가 안 된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쁜 것이다. 다시 말해 아들은 돌아온 사실 하나만으로 실수와 잘못과 모든 과거를 용서 받은 것이다.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벅찬 감사함과 설렘이 있었다. 지난해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또 한 해의 기회를 얻었음에 감사하고 앞으로 할 일들을 계획하고 상상하며 설레어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7년, 정유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예년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지난 한 해동안 겪어야 했던 많은 일들 때문에 마음이 산란하고 가슴이 답답해서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서일까? 아무튼 2017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온전히 환한 꽃밭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해는 우리 앞에 펼쳐졌고 하나님은 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통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이것이 은혜이고 사랑인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새해이기에 그래서 올 한해는 더더욱 감사함으로 시작할 수 있는 것 같다. 흔히 신년에는 밝고 힘찬 음악들을 많이 연주하는 것이 보편적이고 필자 또한 위풍당당한 음악을 통해 에너지를 전하려고 했는데 올해에는 조금 다른 음악을 소개하고 싶다. 19세기의 교회음악을 선도했던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의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들으며
성탄절이 있는 12월은 언제나 설렘과 기쁨의 계절이었다. 어릴적 성탄절의 기억은 아주 따뜻하고 행복한 것이었다. 트리에서 빛나는 불빛과 예쁜 장식들,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어 갖던 성탄카드와 선물, 그리고 조용히 새벽을 깨웠던 새벽 캐롤 등 춥지만 마음은 훈훈해 지는 계절이었다. 어릴 때는 성탄의 의미를 잘 모른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선물을 받는 날이라고 좋아했다. 철이 들고 예수님을 만난후, 성탄절은 감격과 감사의 계절이 되었고 그 감사를 담아 성탄 카드를 쓰고 선물을 나누었었다. 적어도 예전의 성탄절은 그랬다. 거리마다 곳곳에 성탄 추리와 성탄 캐롤이 울려 퍼지며 평화와 기쁨의 인사를 나누는 정겨운 순간들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성탄의 의미는 희미해져가고 그저 놀고 즐기는 하루 쯤으로 변해가는 현실을 보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올해 대한민국의 성탄절은 유난히 힘들고 허전하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다. 촛불의 물결 속에 성탄 트리의 불빛이 바래고 성탄의 기쁨조차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안타깝기도 하다. 그러나 빛이고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의 소식이 상처난 우리들에게 위로의 선물이 될 것이라는
구주 예수 의지함이(새542/통340) 작사: 루이자 스테드 (Louisa M. R. Stead, 1850-1917) 작곡: 윌리엄 커크패트릭 (William James Kirkpatrick, 1838-1921) 영국 도버에서 태어난 루이자 스테드(Louisa Stead)는 어릴 적 예수님을 영접했다. 그녀는 건강이 좋지 않아 서원했던 선교사의 꿈을 포기했지만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예쁜 딸 릴리(Lily)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1879년 어느 휴일에 스테드 부부는 네 살 난 릴리를 데리고 뉴욕 롱아일랜드의 바닷가로 휴양을 떠났다. 드넓게 펼쳐진 바다를 보며 세 식구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소년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 스테드는 생각할 틈도 없이 소년을 구하기 위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파도는 거칠었다. 물에 빠졌을 때 흔히 그렇듯이, 허우적거리던 소년은 스테드를 세게 끌어당겨 둘 다 꼼짝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루이자와 어린 릴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 바라보던 가족과 주위사람들의 바램을 멀리하고 그들은 그만 물 밖으로 나오질 못했다. 두 사람이 거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