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주간지 ‘비바’ 최신호 인터뷰에서 ‘더 행복해지기 위한 10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교황은 “아이와 식탁에 앉는 순간 TV 스위치부터 꺼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그림 그리고 책 읽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일요일만큼은 반드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라”고도 조언했다.교황은 또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태도를 받아들이고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것이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인생은 다들 ‘자기 방식대로 사는 것(Live and let live)’이라는 것이다. 부정적 태도는 건강을 위해 빨리 버리는 것이 좋다는 얘기도 했다.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교회가 지금까지 성장해 온 것은 개종(改宗)을 강요해서가 아니다”며 “대신 매력을 발산해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교황은 10가지 행복비법을 아래와 같이 제시했는데 그것은 행복10계명이었다.①다른 사람의 삶을 인정하라 ②관대해져라 ③겸손하고 느릿한 삶을 살아라 ④식사 때 TV를 끄고 대화하라 ⑤일요일은 가족과 함께 ⑥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줘라 ⑦자연을 사랑하고 존
“날씨가 더운데 넥타이를 매면 체온이 3도가 오르고 또 불편해서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의논하자면 넥타이를 풀고 회의하자는 여론이 팽배하여 앞으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10여년 전 김원기 국회의장 초청으로 영빈관에서 기독교 지도자 20여명과 오찬을 나눈 뒤 오고가는 대화 중에 나온 말씀이었다. 김준곤 목사님은 김의장 좌편에 앉으면서 저를 BWA부회장이라고 해서 우편에 낮으라고 자꾸 권했으나 사양하고 김 목사님의 좌편에 가서 앉았기에 그의 귀에 대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시기를 권했지만 그는 싱긋 웃고 그냥 계셨고 맞은편의 지도자들도 듣고만 계셨다. 김원기 의원은 10여년 넘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교제를 통해 젊잖고 예절 바른 신사 국회의원으로 존경해온 분이셨다. “김의장님, 제 소견으로는 그러면 안됩니다. 외람되게도 하나 물어보겠어요. 국회의사당이나 분과위원 회의실에 냉방장치가 없습니까? 아니면 절전을 하고 있습니까?”, “아, 절전도 아니고 냉방장치야 잘 되어 있지요”, “제 생각으로는 양복을 입을 땐 넥타이가 정장의 매듭이라 혹시 비뚤어져도 바로 고치는데 3도 오르는 체온이란 핑계에 불과합니다. 언제가 초선의원으로 넥타이를 안 매고 의사당 앞에 나와 경망하
술취한 운전자가 운전대리 업자를 부른다. 가정을 갖고 있는 신학생이 야간에 ‘운전대리’ 알바를 하면서 요지경 세상을 배운다. 지금은 온 세상이 대리다. 직장에서 실제직함에 못 미치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서 주는 직함이 ‘대리’이다. ‘사장대리’ ‘상무대리’ ‘과장대리’….젊은 시절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친구를 예비군 훈련에 대리로 참석시키고 서로 품앗이를 했다. 지금도 낮에 바쁘면 아내를 동사무소에 대리로 인감증명서를 띄워오라 한다. 그런데 이제는 ‘대리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일만 아니라 교육연수도 대신 참석하고 인간의 감정까지도 대리로 위탁 관리하는 회사까지 생겨났다. 나 대신 사과하면 대행비용 15만원을 지불하면 된다. ‘감정 대리업’은 업무상 실수로 고객과 마찰이 생기면 직접 사과하려니 복잡하고 그래서 대행을 신청하면 고객으로부터 싫은 소리 친절히 들어주고 돈을 받는 직업이다.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는 의뢰인을 위해 대신 사과하고, 사법 처리되지 않는 선에서 누명도 대신 써 준다.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를 대신해 등·하교 길을 동행해 주는 것이다. 내밀한 인간적 감정의 영역인 사과와 감사, 사랑과 이별의 영역까지 서비스 상품이 되고 있다. 예전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은 한국문화에 정통한다. 의도적으로 배우지 않고도 한국말을 하며 연습하지 않고도 한국풍습에 익숙하다. 한국인에게는 김치와 된장냄새는 하늘이 내려준 향기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듣다보니 한국문화와 역사에 익숙하다. 애국가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의 작곡가는 고 안익태 정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무찌른 장수는 이순신 장군이고 안중근 의사가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처리한 애국자라는 것을 다 안다. 6:25 전쟁은 공산당 북한의 남침으로 시발되었고 그 전쟁에 3년이나 끌면서 수백 만 명의 군민간이 죽어간 슬픈 역사도 안다. 그 앞에 일제 36년 일본의 강제식민지 생활의 고통도 다 알고 있다. 2002년 월드컵 축구 4강도 알고 있다. 무슨 이런 상식적인 생활이야기를 이렇게도 장황스럽게 늘어놓느냐고 그리고 이런 상식적인 국민의 수준을 알아보기 위한 시험문제는 어느 시험에도 출제되질 않는다. 왜 한국인에게는 이런 사실들이 상식화되어 있느냐가 의도적인 연구를 통해서 과외선생을 모시고 배우고 익히고 닦아서 아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한국인은 한국 땅에서 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이사벨 여사의 사랑의 새 생명1970년 부산 동래의 거제리 남문침례교회 개척 시절, 생활고로 인하여 나는 당시 이사벨 여자중학교의 유금종 교장을 찾아가 개척교회 사정을 얘기하고, 이사벨 여중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후 여고에서 송광옥 교목을 도와 성경을 가르치게 되었다. 나는 당시 신동혁 목사의 인격과 덕성 그리고 유금종 교장의 성실함과 고매한 신앙심에 감동을 받은 바 있다. 유금종 교장의 부군이신 신동혁 목사님은 이 학교의 이사장이고 「죽으면 죽으리라」의 저자인 안이숙 여사와는 이종사촌으로서 “복음 선교회”를 설립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성경교육을 통해 여중고생들과 여러 가지 복음의 증거의 좋은 추억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학교의 설립에 공헌한 뒷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미국에 사는 이사벨(Isabelle)이라는 부인은 첫 아이를 해산하다가 갑자기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하는 불치의 병에 걸렸다. 그 부인은 치료를 위해 많은 재산을 들여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병이 더욱 악화되자 병 치료를 그만 포기하고, 기도하는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왈레스(Dr, William wallance)기념 침례병원은 미국의료선교사로 중국에서 일생을 봉사하다 순교한 의사 빌 왈레스의 숭고한 뜻을 기념하고 6.25 동란 중 어려움에 처한 처참한 우리 민족을 돕기 위하여 1951년 11월 22일 미국 침례교 한국선교회에서 부산에 설립했다.현재 508병상을 갖춘 부산의 대표적 종합병원으로 성장한 침례병원은 지난 60여년간 일반진료, 복음전도 사업과 함께 극빈자 무료진료, 무의촌 진료, 33개의 개척교회를 세웠으며, 의료선교 및 우리나라 국민보건향상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그동안 전국에 침례교 목회자로 사역하다 병들면 돈이 없어도 일단 치료 먼저 해주었고, 지금까지 50% 치료비를 감면해주는 일에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혜택을 받아왔는지 모른다. 지난 주간 우리부부는 침례병원에 입원하여 그동안 불편했던 몸을 샅샅이 검진하고 여기저기 고장 난 부분을 치료 받았다. 60여년 간 사용했으니 고장도 나는게 정상이려니 생각하면서도 막상 MRI와 초음파 측정기 앞에서니 그동안 하나님이 주신 육체를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대한 평가를 받는 것 같아 결과가 나오기 까지 약간 긴장이 됐다.천국 문 앞에 서면 이런 기분이 들까? 내가 너에게
가수 밥 말리의 조국은 자메이카다. 그 나라는 어떤 나라였던가? 언론보도에 의하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나라였다. 자메이카는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사이, 카리브해 북구에 있는 나라다. 16세기부터 스페인과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를 가졌지요, 또한 1830년대에 서인도제도에서 흑인 노예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노예무역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다. 1962년에야 영국 연방내의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랫동안 스페인과 영국의 지배를 받은 탓으로 허약한 나라이며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못한 나라였다. 그런데 이 나라가 우사인 볼트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때문에 유명해졌기도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온 세계 사람들의 정서에 다가 그 나라를 기억하게 만든 것은 레게(Reggae)음악을 퍼트린 가수 밥 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밥 말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던가? 모 일간 신문에는 다음과 같이 밥 말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밥 말리는 1945년 자메이카 수도인 킹스턴의 빈민가에서 백인 아버지와 흑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일찍 아버지를 여읜 말리는 가난하고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그는 쓰레기통에서 찾은 잡
“양남댁”이라 부르는 여승은 절간에 드나드는 길에 우리 집에 자주 오셔서 염불도 하고 식사대접을 받으셨다. 여승은 어머니에게 자식들이 잘 되어야 하고 특히 큰 아들이 잘 되어야 집안이 잘 풀린다고 하면서, 큰 아들을 보니 북두칠성 정기를 타고 났으니 절간에 있는 ‘칠성단’에 팔아야 한다고 꼬셨다.귀가 솔깃해진 어머니는 국민학생인 나를 꼬셔 주사골 봉래폭포 위에 있는 석굴 절간으로 데리고 가면서 목욕을 세 번이나 하고 쌀 한 말을 머리에 이고 올라가서 여승이 시키는 대로 큰 부처, 작은 부처, 보살 부처상 앞과 칠성단에 각각 7번씩 모두 28번 절을 했더니 절간에 내 이름이 그날부터 오르고 나는 소위 “불자”가 되었다. 1948년 이후부터 나는 어머니를 따라 절간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다.그런데 유교신봉자인 부친이 사귀 들려 고치려고 불공, 무당굿, 병원, 신침, 부적 등 온갖 일을 다 했으나 효험이 없던 차 저동침례교회에 나가서 낫자 온 가족이 교인이 되었고, 양남댁의 며느리 정수희 자매도 그 즈음 사귀병에 걸렸는데 불공은 말할 것도 없이 드렸고, 한의사 덕산 어른에게 귀신 떼는 신침도 효험 없고 아버지처럼 온갖 수단을 다했으나 낫지 않았다.양남댁 여승의 불공
어느 날인가 환자심방을 준비하면서, 요한복음 5:2~9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 있던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는 곤란해 하시거나 못 고치신 영육간의 병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보니까, 베데스다 못가에는 수많은 병자들이 있었음에도 38년 된 병자만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병자는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서 물으시고 고쳐주셨습니다. 이런 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확실한 것은 이 환자는 병에서 낫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위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단과 열망이 이 병자를 38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베데스다 못가를 찾아오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열망에도 38년간 문제를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공하는 인생의 핵심은 “열정”이라고 말합니다. 열정이 있는 인생이 무엇이라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듯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정직하게 둘러보면, 누구보다도 열정을 가졌으면서도 어떤 영향력도 없이 스스로에게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생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뭔가 보다 근원적인 것이 빠진 것입
(2012-2013)3월에는 일본의 쓰나미 피해 지역을 세명의 아시아침례교 여성연합회 임원들이 방문해 위로했다. 일본 침례교 총회와 여성연합회들은 피해 지역에 캠프를 설치하고 자원 봉사자들을 파송하여 열심히 돕고 있었고 우리의 방문을 매우 고마워했다. 또한 그 지역의 크지 않은 한 침례교회가 열심히 쓰나미로 가족과 모든 것을 잃은 피해자들을 돌보고 있었고 우리는 그 교회의 사역을 견학하며 목회자 부부와 성도들과 함께 쓰나미 피해자들을 방문 위로하는 기회를 가졌다. 주일 예배 중 설교시간이 됐는데 목사님이 갑자기 단위에서 내려오셔서 한국과 대만, 필리핀에서 온 우리 임원들 앞에서 일본 조상들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허리를 굽히셔서 우리는 당황했지만 한편으론 큰 감동을 받았다. 일본을 떠나오며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령의 쓰나미를 일본 땅에 보내 주시어 일본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고 그들이 주님을 만나 살 소망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그 땅을 떠나 왔다.6월 25일부터 30일까지 칠레에서 세계연맹 여성부 실행이사회를 개최했는데 우리는 모든 회의를 마치고 그 지역 여성들을 초청해서 가지는 여성 모임 장소로 이동하기 전 지진 지역을 방문하고 교회와 여선교회를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