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인도네시아 침례교여성 지도자 강습회가 끝난 후 배성연 해외선교진흥부장님과 나는 정재교 선교사님과 정영명 선교사님 가정이 사역하고 있는 족 자카르타로 이동했다. 처음으로 선교사님들의 사역지를 돌아보게 되어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고 바쁜 사역에 지장을 드리지나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성령의 인도로 각 가정과 정말 좋은 교제의 시간을 가졌고 사역의 필요들을 보게 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족자공항으로부터 살라띠가에 있던 정영명 선교사님 댁으로 차로 이동중 경험했던 일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우리가 지나가던 도로에 큰 돌들을 깔아놓고 있었는데 조금 가다보니 도로에 불을 지르고 곧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 같이 분위기가 험악했다. 옆길로 피해 가는데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아본 인도네시아 청년들이 우리가 탄 차를 세웠다. 정선교사님이 약간의 지폐가 든 봉투를 주고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지만 정말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땀이 쫙 나는 순간이었다. 말로만 듣던 선교지의 위험을 피부로 경험한 순간이었다. 바로 그런 것들 때문에 우리가 선교사님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매일 기도
쌀은 우리 민족의 주 양식이다. 그래서 모든 식품 중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 경로 우대 대상인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분들은 대부분 매우 가난한 시대를 겪었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세대이다. 그런 이들에게는 쌀은 여전히 아주 소중한 주 양식이다. 그래서 쌀은 진실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되는 것이다.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의 환경을 살펴보자. 그들의 문화를 들여다보자. 결코 짧지 않은 인생 여정을 살아오는 동안 많은 굴곡과 시련이 있었다. 이미 배우자를 잃은 사람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도 많이 있다. 생활이 넉넉지 않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쌀은 정말 더 없이 중요한 양식이 된다. 어느 날 우연하게, 실버 예배에 참석하는 어르신들 중에 수원, 인천, 부천, 강서구, 은평구에서도 오시는 분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분들에게 “어떻게 그 멀리에서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어부교회에서 쌀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 왔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가 서울 강동구에 있으니 대략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왕복 4시간이다. 거기다가 예배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로스 시간까지 감안
아내가 내 차를 몰고 나가 사고를 냈다. 좁은 골목길 사거리에서 일어난 경미한 접촉사고 인데 9:1의 가해자란다. 상대방이 병원에 입원하면 골치 아프니 우리 쪽에서 다 수리해주는 조건으로 일단락 지었다. 신호등도 없는 좁은 골목길에서 일어난 접촉사고에 9:1의 판결이 좀 억울한 면이 있지만 이렇게 처리하는 게 현명하다니 어쩔 수 없다. 내 차에 여러 군데 흠집이 생긴 것은 아내가 내 곁에 있다는 증거로 생각하며 산다.월드컵 축구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예술에 가깝다. 어떻게 그 작은 틈바구니 사이로 통렬한 골을 성공시키는지 슬로우 비디오로 다시 보면 더 기가 막힌다. 그렇게 피 땀흘리며 기량을 갈고 닦았는데 심판의 잘못된 오심으로 패배를 당하고 짐을 싸게 하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열광하는 그 나라 온 국민의 가슴에 대못질이나 진배없다. 그래서 금번 월드컵에서는 골 판독기를 도입했다. 순식간에 골대를 맞고 골라인 안쪽으로 떨어졌다가 튕겨져 나온 공을 14대의 고속 카메라가 공의 위치를 파악해 1초 안에 골 여부를 판명해 심판이 착용하고 있는 손목시계에 “Goal”을 선언한다. 코스타리카와 프랑스의 골이 그렇게 선언되었다. 지난 주 신문은 10개월이나 복역을 마치
(1999)이 해에 처음으로 시작된 또 다른 한 가지는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던 여성선교사들을 전여회 행사에 초청하는 것이었다. 8월 여름 수련회를 시작으로 전여회 행사시 마다 남녀 선교사들 중 해외 선교회의 추천을 받아 한 분을 세워 선교보고를 듣고 여성선교사들을 초청해 교제의 폭을 넓히고 선교 현장의 소리를 듣고 선교사님들을 위로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12월에는 안식년 선교사 가족들을 전여회 회관에 초청하여 송년음악회를 개최하여 위로하는 사역을 1998년부터 시작했다. 전국 교회의 여선교회에 부탁하여 몇 달 동안 수집한 남녀의류, 생필품, 악세사리, 가방, 구두, 악기, 건어물 등 무엇이든지 선교사님들이나 선교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모아 선교사님들이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했는데 어떤 여성선교사님이 세상에 태어나서 돈 안내고 마음껏 물건을 가지게 된 것은 처음이라고 너무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안 잊혀 진다. 실행이사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해 와서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에스더 선교 합창단이 송년 음악회를 준비하고 때로는 찬조 출연자도 초청하고 선교사님들도 출연하며 즐거운 시간을 준비해 드렸다. 그리고 자녀들을 위해 가정 당
나의 동역자 그 목사가 밤에 음주하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는 어릴적부터 술을 먹기 시작했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께서 먹다 남은 식은 밥에 누룩을 부어 놓고 하룻밤만 지나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술이 되는데, 한참 보리 고개 배고픈 시절이라 그것을 그냥 밥 먹듯이 퍼먹었던 것이 술 먹기 시작이라고나 할까. 시중에 판매하는 알코올성 술이 아니라 그냥 감주 같기도 하고 어쩌면 술 같기도 한 것을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었을 따름이었다. 그래도 술은 술인지라 머리가 휑하니 돌기도 하는데, 담임선생님은 그 사정도 모르고 어린것이 벌써부터 음주냐고 야단치지만, 그는 우선 배부른 것이 다행이었을 뿐이었다. 그 목사에게는 그렇게 해서 술이라는 것에 아무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본인도 그렇게 자란 경험이 있다. 그런 그가 목사가 되었다. 하나님의 종이요 교인 앞에 선생인 공인(公人)인데 음주를 미덕으로 아는 한국교계에서 내놓고 밝힐 것은 못되었다. 그 목사는 음주를 끊기로 했다. 술에 취한 자도 아니고 더더구나 중독된 자도 아니다. 어린시절 배고파 먹던 술막지를 지금처럼 배부른 시절에 먹을 이유가 없지 않는가? 그런데 그 목사는 자주 찾아오는 두통과 수면장애 때문에
1. 엽기 토막 살인과 총기 난사성경의 제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출 20:13)미혼 여성인 고 양(36세)은 가끔 인터넷 채팅방에 들어가 뭇 남성들과 채팅했다. 유부남인 조 씨(50세)도 호기심에 자주 채팅방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채팅방에서 만난 것은 지난 5월 25일로 조 씨가 먼저 “우리 애인할까요?”라고 제안해서 둘은 이튿날 통일전망대 인근 도로상에서 만났고 조 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근처에 세워놓고 고양의 외제 승용차에 몸을 담고 파주 무인모텔로 이동했다.채팅 하루 만에 이루어진 성관계 기회에 고양이 미리 핸드백에 숨겨둔 흉기로 조 씨의 시선이 흐트러진 순간에 사정없이 마구 목과 가슴을 무려 30여 곳을 난자했다. 전혀 무방비 상태의 조 씨는 결국 비명 한번 제대로 못 지르고 반항 없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한순간의 쾌락의 유혹에 끌려간 비극의 종말이었다. 조 씨를 살해한 고양은 시신을 토막 유기하기 위해 인근 상점에서 전기톱과 여행용 가방과 세제 등을 구입해서 욕실에서 상반신 몸통과 다리 하반신으로 자른 후 몸통부분은 검은 가방에 넣고 하반신 다리는 비닐로 겹겹이 둘러쌌다. 세제용으로 핏자국은 닦아내어 피 흔적도 지웠다. 시신을 옮겨 유기할 준
성도 수가 약 100여 명 되는 모 교회에서 실버처치를 하게 됐는데, 이 교회 담임 목사님은 교회 등록(숫자)에 대하여 집착을 많이 하시는 분이었다. 그래서 “실버처치는 절대 등록을 서두르시면 안 됩니다. 어르신들에게 그런 눈치를 줘도 안 됩니다.”라고 몇 번 권면을 드렸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실버처치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안 되어서 “주일에 교회 오고 싶은 분은 주일에 나오셔도 됩니다.” 하며 등록을 서두르셨다. 그래서 주일에 4~5명이 나오게는 됐다. 하지만 나머지 어르신들이 부담이 되어 나오지 않게 되었고, 얼마 안 가 실버처치의 문을 닫게 됐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믿음이 자라기도 전에 교회 등록을 서두르면 와해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절대 등록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우리 교회는 실버 예배를 드린 지 3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오시는 어르신들의 이름도 성도 물어 보지 않았다. 어디에 사는지, 교회는 다니는지도 묻지 않는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다. 오직 “매주 교회에 와서 예배 잘 드리고, 예수님 잘 믿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다가 꼭 천국에 가세요.”만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일체의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편하게 열심히 교회
(1999)4월 총회가 끝난 직후 나는 최태옥 제1부회장과 배성연 해외선교 진흥부장과 함께 교단 해외선교회 인도 선교지 개척 여행을 다녀왔다. 우리 일행은 회의 때문에 먼저 출발하였던 유병기 당시 해외선교회장님 일행과 태국의 방콕 공항에서 만나서 인도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행기 출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유 회장님 일행은 도착을 하지 않아 우리는 할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분들은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발을 구르고 계셨다. 시작부터 영적전투가 대단했다.우리일행은 방글라데쉬의 다카 공항에서 콜카타 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는데 전여회팀 삼인은 안내를 잘못 받아 우리만 공항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나오니 방글라데쉬 아이들이 벌떼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구걸을 하는데 우리는 혼비백산했다. 다행히 경찰이 다가와 우리를 에스코트해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리는 불법 입국자가 되어 경찰에 넘겨지고 있었다. 놀란 우리는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며 상황 설명을 하여 겨우 콜카타 행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8명의 우리 일행이 콜카타에 도착하니 톰다니엘 선교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해외선교회에서 그 분에게 이번 여행안내 일체를 맡겼다
“하버드 대학 도서관 벽에 붙은 명언 40가지”를 읽다가 앞서가는 사람들의 삶이 참으로 치열함을 깨달았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공부할 때의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 “공부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지금 흘린 침은 내일 흘릴 눈물이 된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 뛰어야 한다.” “오늘 눈이 감기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꿈이 없는 10대는 틀린 문장의 마침표와 같다.” “실패는 용서해도 포기는 용서 못 한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쓰면 쓸수록 강해진다”일하다 그만 두고 싶은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일하는 동기가 생존(生存)을 위한 것이면 비참하나,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한 것이면 고상하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使命) 때문에 일 한다.일하다 중도에 포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들어서...”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가치있는 일들은 다 힘든 일 아닌가? 힘들어도 가치있는 일이기에 선교사는 어린자식 데리고 척박한 선교지로 유서를 써놓고 떠난다. 이 땅에 엄마들이 그처럼 힘들게 입덧을 하
지난 3월 26일은 천안함 피폭으로 한국의 귀한 아들 군병 46명이 전사한 4주기가 되는 날이다. 조국을 위해 귀하게 산화된 아들들 앞에 온 국민은 숙연할 수밖에 없지만, 자살하는 목사 앞에서도 우리는 숙연해야만 하고 있을까?내가 신학교 재직 중 아주 말썽을 일으킨 학생들 중의 한 학생이 졸업 후 목회라 한답시고 목회하던 중 어느 날 자기 예배처 대문에 목메어 자살을 했었다. 솔직히 자살이라 하면 그만인데, 목회하다가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으니 동정어린 위로금을 모아야한다는 단체가 나타나 나는 더 앞이 캄캄했다. 성경의 모든 사도들은 극한 어려움 속에서 모두 순교했었지 자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가룟 유다만이 예수 선생님을 팔아먹고 스스로 죽어갔다고 했을 뿐이다. 목사의 자살?! 설교나 강연에나 글에서도 거론하기 거북한 말이리라. 소위 건덕상 삼갔으면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도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미덕이요 경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구차한 구실로 목사도 자살하고 있다는 말은 아끼다보니 실제로 자살하는 목사가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고 있는 것도 현실 아닌가? 자살하는 목사가 가끔 있다고 하자. 즉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