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딸이 한 청년을 사랑한다는데 엄마의 눈엔 영 아닌 것 같다고 충고해 주어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하나?담임목사가 보기엔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권면해 주어도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성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애굽을 탈출한 200만 명의 히브리 민족과 그에 따른 수많은 짐승 떼가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지나가면 쑥대밭 될 것이 염려된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시켜 히브리민족에게 저주의 예언을 하여 이 지역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부탁한다.처음엔 발락의 초청을 거절하던 발람 선지자는 거듭된 요청과 많은 은. 금에 미혹되자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하신다. 모압을 향해 가는 길에 발람을 태운 나귀가 칼을 들고 그를 죽이려는 여호와의 천사를 보고 황급히 밭으로 들어가자 발람은 채찍으로 때린다. 나귀는 또다시 발람의 발을 담벼락에 짖눌러 다치게 해서라도 죽음을 모면하게 하는데 영적인 맹인 발람은 화를 내며 더 세차게 채찍질을 한다. 왜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하시고 나귀타고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죽이려 하셨을까? (민22:20-23) 떼쓰는 사람이 선택한 길은 결과가 참혹하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주께서 꿈들로 나를 놀라게 하시며 환상들을 통해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욥7:14)작년 11월26일 새벽 처음으로 예수님의 꿈을 꿨다. 60년이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꿈에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가끔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성흔을 받은 성 프란시스를 비롯한 여러 성자들에게 환상으로 나타났고, 신약성서 속에서는 부활하신 후 보이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순교하는 스데반 집사에겐“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행7:55)으로,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겐 음성과 밝은 빛으로 보이셨고, 그 후에도 사도 바울에게 두 번이나 (행 18:9, 23:11) 보이셨고, 밧모섬의 사도요한에게는 영광스런 만왕의 왕의 위엄으로 나타나셨다(계 1:13-16) 그런데 저에게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보이셨다. 어떤 사람이 오른 쪽에서 걸어와 서는데 옷은 회색과 청색, 검은색이 섞인 작업복, 죄수복 및 환자복 같은 상하의를 입으셨고, 저 앞에 다가와 서더니 고개를 돌려 잠깐 저와 정면으로 주목했는데 조금 검은 노동자의 얼굴이었으나 온화하고 밝은 눈빛이었고, 아무 말 없이 우측으로 몸을 돌려 뒷모습으로 멀리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꿈인데도 풍기는
지난 2월 12일 새벽 온 세계가 흥분 속에서 지켜보고 있는 순간, 빙판 위의 이상화의 눈빛은 매서웠다. 총성 소리와 함께 전력질주한 그녀는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37초 28 기록으로 1위에 올랐다.이전 기록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서 캐나다의 르메이돈이 작성한 37초30이었다. 12년 만에 0.02초를 단축시킨 것이다. 숫자로 표기된 0.02초는 인간의 평범한 감각으로 느끼기 어려운 시간이다.2위 러시아의 올가 파트쿨리나는 이상화에 비해 불과 0.36초 늦었고, 네덜란드의 마고 보어는 0.78초 뒤처져 동메달을 획득했다. 채 1초도 안 되는‘찰나’에 금.은.동이 결정됐다.피니시라인에 스케이트‘날’을 좀 더 빨리 넣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우리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총성과 동시에 튀어 나가야하는 스타팅 순간의 순발력과 피니시라인을 통과할 때까지의 집중력이 모두 합쳐져야 1/100초의 짜릿한 우위를 느낄 수 있다.이 1/100초의 시간까지 같아서 공동 금메달을 수상한 사람들도 있다.알파인 스키 여자활강에서 슬로베니아의 티나 메이즈와 스위스의 도미니크 자신은 똑같이 1분41초57으로 골인했다. 적외선 장비를 통한 정밀분석으로도 우열은 가려지지 않
나는 겸손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순창군에 있는 성동 보건진료소장으로 부임하여 3년반을 시골 주민들의 영육을 돌보는 일을 했다. 외진 시골에 들어가 내 마음에 품었던 세상욕심 다 내려놓고 의료 선교사가 될 준비를 했다. 진료하고 마을을 방문하는 시간외에는 성경읽고 기도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드렸다. 내 생애중 가장 주님을 가까이한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어느 날 이사야 54장을 읽던 중“나는 네 남편”이라는 말씀에 나는 대성통곡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술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실상은 일에 심취해 뛰어 다녔던 지난날에 대해 깊은 회개가 나왔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통회하고 자복하였는데 그 순간 성령님이 나의 등 뒤에서 나를 감싸시며 위로하는 경험을 하였는데 나의 마음이 깊은 평강을 경험하는 놀라운 성령 체험을 했다. 그것은 이미 하나님께서는 나를용서하셨으며 나와 함께하시며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계신다는 표현이셨다. 나는 이사야서 54장 말씀을 통해 큰 힘과 선교에 대한 비전을 얻게 됐다.그 곳으로 나를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 일을 잘 감당하도록 시작부터 나를 세심하게 도우셨다. 도시의 큰 병원에서 일하던 사람이 시골에 와서 고생한다고 지역
그동안 한국교회가 남북한 통일운동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잘못이 있다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하며, 좋은 점은 계승해야 한다. 그럼 한국교회가 정부의 통일정책에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지 살펴보자.첫째, 해방이후부터 50년대까지는 이승만 정권의 제 1공화국 시대에 해당된다. 이 시기 정부의 북한을 향한 공식정책으로 ‘북진통일론’이 있었다. 이 시기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한국기독교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김창준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좌파가 있었고, 김구와 김규식의 남북협상 노선을 따르는 중도파가 있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우파였던 대부분의 한국교회 노선이다.둘째, 60년대 통일논의는 남북 교류협상론 등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좌파는 한국 전쟁으로 남한의 기독교에 신뢰를 주지 못했고, 우파로 단순화된 한국교회는 신학적 성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극단적 ‘반공’에 의해 그 정체성이 규정됐다. 이 시기 한국교회 대다수의 흐름은 여전히 반공노선을 견지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60년대 새로웠던 것은, 강원용, 박성중, 박형중, 문익환 목사 등에 의해 공산주의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의 방식으로서 교회 내부의 혁신과 사회내부의 개혁이 강조되었다는
나는 27살에 자격도 안 됐는데 성일교회(현 임마누엘교회)의 집사로 직분을 받았다. 부족하지만 그냥 순종했는데 하나님께서 서울에서 내려온 한 선교단체의 책임자를 내가 섬기던 교회로 보내 주셔서 말씀 훈련을 잘 받고 직분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게 해주셨다. 바쁜 가운데서도 주일학교 교사, 중고등부 교사, 청년지도교사, 여선교회장까지 맡겨주시는 데로 순종하고 고산면에서 전주까지 수요예배와 금요 철야기도회까지 참석했는데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던 것 같다. 나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일을 맡기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마25:21).남장로교 선교 병원인 전주 예수병원이 침례교인인 내게 참 많은 신뢰와 혜택을 준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6년 반 동안 그 병원에서 일했는데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홍콩, 일본, 미국의 농촌 보건의료 사업을 견학할 기회를 줬고 스리랑카와 페낭에서 개최된 아시아 태평양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해 일하는 의료인 회의에 참석할 기회를 제공해 줬다. 나는 간호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했기에 죽을 때까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려고 노력했다.그러나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2013년 말을 기준으로 한국 선교사의 파송 현황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선교사 2만5천여 명이 169개국에서 활약하고 있다.2012년 2만 4,742명으로 매년 1천 명 이상씩 증가하는 추세다. 함께 거주하는 선교사 자녀 수도 지난해 1만 7,618명으로 크게 늘었다. 대륙별로는 동북아시아 6,360명, 동남아시아 5,9명, 북미 3,149명이다.이들의 주요 사역은 교회 개척(10,693명), 제자 훈련(8,612명), 캠퍼스 사역(2,499명), 교육(1,361명) 복지 및 개발(819명), 의료(515명) 등이다.우리 침례교단은 타 교단이 부러워할 만큼 지역을 선택하고 집중해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연합해 선교하고 있다. 지난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여의도교회 한기만 목사님은 그동안 수십억 원을 투자하며 해외선교회를 이끌어 오면서 일관된 정책을 펼쳐 오늘날 700여명의 침례교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일에 쓰임 받다가 영원한 나라로 상급을 받으려 떠나셨다. 선교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다. 이 명령에 순종하여 130여년 전 서양의 선교사님들이 수많은 순교의 피를 이 땅에 뿌렸
같은 재능을 가졌지만 그 쓰임은 다르다는 것. 다 같은 기술을 가졌으나 그 기술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칼로 요리를 할 수 있건만 흉측스럽게도 그 칼로 범죄도 저지를 수 있지 않는가.달마도(達磨圖)의 대가로 꼽히는 법주스님이 있다. 그가 선묵화 40년을 돌아보는 고희전을 2013년 10월 16-22일 서울 인사동 한국 미술관에서 갖는다. 그는 홍익대 미대 서양학과 4학년 때 대학생불교연합회의 해인사 여름 수양회에 참가했다가 발심하여 출가해서 스님생활을 하게 되었고 주로 달마도를 그려재켰다. 용화사와 해인사 등에서 참선에 몰두하던 법주스님은 “내가 가진 특기를 살려보자”고 작심해서 달마도를 그려왔다. 그는 미술 특기를 그렇게 달마도 그리는데에 썼다.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누구나 다 알겠지만 그의 스승인 보톨도 지오바니라는 사실은 아마도 잘 모를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14살 때 지오바니의 제자가 되고자 방문했을 때 선생은 그를 데리고 술집 앞에 있는 조각상을 보여주고 그 다음엔 교회당으로 인도해서 교회의 조각상을 보여 준 뒤 네 기술과 재능을 무엇을 위해 쓰기를 원하느냐 질문을 던졌을 때 미켈란젤로는 주님을 위해 사용하겠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시 34:4,6)헌트(Hunt)목사님께 전화가 걸려왔다. 그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레이 증후군이 발생했던 것이다. 레이 증후군이란 소아에게 흔히 있는 치사적인 뇌장애를 말한다. 그런데 그가 교회에서 가르친 로라 양도 이 병에 걸렸고 이미 11명에게 발병해서 9명의 어린이가 죽었다는 것이다. 로라 어린이도 지난 여름성경학교 때부터 교회에 출석했다. 이때는 로라가 병에 걸리기 6주전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 예수를 믿은 로라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기도밖엔 별도리가 없었다. 로라가 속한 교회학교 어린이와 헌트 목사님은 로라가 빨리 일어나 주님의 복음증거를 위해 살아나도록 간구했다. 금요일에는 로라의 병세가 호전되었고 토요일에는 눈을 떠서 병실에 있는 아버지를 알아보았다. 살아난 로라 어린이는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셨어요!”라고 기뻐했다. 두 주일 후 로라의 전 가족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다. 1974년 4월 3일 지방신문 1면에 “기도가 살렸다!”는 대서특필의 제목으로 상세한 내용이
설문 결과를 보면 고령층·저학력층 일수록 한 민족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저연령층·고학력층일수록 안보불안 해소 이유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였음을 알 수 있다. 넷째,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74.5%로 다수이며, 우리나라 군사안보 상황에 대해서는 위험하다는 의견이 71.8%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민족의 분단 현실은 반드시 극복돼야 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은 반드시 성취돼야 한다는 당위론이 출발점이다. 왜냐하면 남북통일은 민족의 정의롭고 평화로운 생존과 번영을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여론조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통일의 열망과 관심이 고조되어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교회가 민족의 화해와 남북통일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성경에서 남북통일의 원리를 찾아내고 이를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은 그동안 통일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되어 왔으나, 통일신학은 사회과학적 분석에 치우친 진보주의자들의 전유물로 간주됐다. 이 문제를 정부에 의하여 주도 되고 정권에 의하여 제시되는 남북통일의 방법이나 사회과학적 분석이 아닌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관점에서 남북 간의 통일의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