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근 목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셨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읽어보니 예수님도 말세 또는 종말을 예언하셨고, 사도 바울도 임박한 주의 날을 거듭 강조했고, 베드로 사도 역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사도 요한도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다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이르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줄 아노라“(요일 2:18)고 경고 했는데, 그러면 2000여 년 전에도 말세였고, 지금도 말세라고들 떠들고 야단이니 헷갈립니다.” 이 목사님은 “그때는 말세의 시작이고 그동안은 말세의 진행이며 2000년이 가까워진 지금은 末世之末世 또는 말세지말세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쉽게 말하면 개의 꼬리는 말세의 시작이고 지금은 개의 꼬리의 끝부분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되겠군요” 라고 대답하셨다. 1961년 이었으니 52년 세월이 흘렀는데··· 1992년 다미선교회의 날짜 짜맞추기 종말예언이 빗나갔기에 마귀의 선수제압으로 정말 오늘날엔 종말에 대한 말도 못 꺼내는지?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징조를 볼 때 “자다가 깰 때”인 것만은 짐작하고도 남고, 아무래도 성경의 많은 예언은 이 시대의 모습에
1. 들어가는 글인권(Human Rights)은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인권은 사회뿐만 아니라 성서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 하고 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존중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인권은 기독교윤리의 중심주제이며, 교회에게 주어진 아주 중요한 실천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잊혀 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경험하면서 교회는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회의 실천과제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인권이란 용어는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저서 ‘인간의 권리’에서 처음 사용되어 졌다. 인권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인권사상은 근대 서구의 사회운동 및 정치적 투쟁을 통해 생성됐다. 사람들이 인권을 요청하게 된 실제적 배경은 각종 불법에 대한
202 병기단 88 대대 서진원 군목은 황 사병이나 김 일병을 제쳐두고 중요한 일은 가끔 이등병인 나와 상의를 했다. “한 전도사, 지금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겠노?”라고 하루는 내게 말을 걸어 오셨다. 내가 즉시 “죽어가는 사람은 우선 살려놓고 볼 일이 아닙니까?”라고 대답하자, 잠깐 사유 설명을 하시더니 “그러면 지금 나와 같이 가자”고 해서 원주 1군 사령부 앞 101후송병원 정문 맞은 편, 길 건너에 세탁소 가게를 찾아 작은 방에 들어가니 벽에 큰 글씨로 “왜, 나를 일찍 예수님을 믿게 해 주지 않았느냐?”라고 벽지 위에 쓴 글씨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는 장마철로 1964년 7월이었다. 16세 김익심 소녀는 원주여중을 졸업하고 서울 이모 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자니 진학도 못한 처지에 홀어머니와 언니의 눈치가 싫고 해서 그만 무작정 춘천으로 가서 시청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던 중, 인생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 충동으로 봉이산에 올라 양잿물을 마시고 죽어 있는 것을 야간 순찰 중에 헌병이 발견하고 입원시켜 회생시킨 후 집에 돌아왔다. 그때서야 교인들의 권고로 태장감리교회에 나가다가 드러눕게 되고 차츰 식도가 오그라지고 말라져 가게
몇 해전 뉴욕의 9.11테러 현장 [Zero ground]를 방문하여 T.V에서 보았던 그 참담했던 상황을 그려봤다. 피하라고 외치며 용감하게 현장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산화한 수백명의 소방대원들의 명단을 봤다. 목사님들과 함께 그곳을 막 지나는데 가이드가 목사님들이시니 알려드린다며 저 건너편 작은 건물이 전에는 교회였는데 지금은 술집이라고 들려줬다. 돈을 좀 더 주면 강단에서 마실 수 있다고 했다.유럽의 교회들이 건물 유지를 감당하지 못해 팔려 나가는 것은 다반사고 영국에 그 유명한 스펄젼 목사님이 시무하셨던 거대했던 메트로폴리탄 타버너클’(Metropolitan Tabernacle) 교회역시 초라하게 줄어들고 있다. 한국교회는 120년의 역사 속에 수많은 순교의 피값으로 세워진 교회들이 전 세계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부흥을 이뤘지만 조로증(早老症)에 걸려 주일학교부터 점차 사라지고 있다. 중.고등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머리가 하얀 노인분들만 앉아 오래된 찬송가를 느린 템포로 부르고 있는 교회들이 너무나 많다.매주 전도되어 등록된 교인이 없이 우리끼리 예배드리는 일에 익숙해진다면, 아니 오히려 그들이 우리 목장에 오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중국의 왕수인 곧 왕양명(王陽明)은 “하늘에 새가 나는 것은 막을 수 없으나 우리의 머리 위에 새가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무슨 뜻일까? 오늘날 세상사를 볼 때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나아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종말이나 특권층들이 양심의 선악판별과 의지의 결단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도, 새의 둥지를 뒤집어쓰고 고통을 겪는 감옥에 가도 둥지를 깨뜨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몽고의 침략으로 이민족의 원나라 통치가 끝날 무렵 홍건적을 무찌르고 등극한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의 밝은 “明”자는 280년 후 만주족의 누르하치에 짓밟혔고, 300년 뒤 신해혁명으로 “淸”나라는 종지부를 찍는다. 明 나라 말 주자(주희)의 높은 이론과 중원의 학문에 통달한 왕양명이 병부상서에 올라 개혁을 진언한 결과 당시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한 내시의 세력에 몰려 투옥되고 40대의 매와 곤장을 맞았다. 그러나 후일 왕양명을 알아본 안화왕은 환관장 유근을 길거리에 내쳐 주살하고 백성에게 시체고기를 쪼개어 은 한전에 팔았다. 그간 쌓은 뇌물을 조사하니 금 24만개, 은 500만개, 보석 두 말 등등 헤아릴 수 없었다고 했다. 명나라의 멸망은 내시들이 공모하
엊그제 신문에 무더위 탓인지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재래시장과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형 할인마트 내부 사진이 점점 외면당하는 재래시장 상인들의 한숨석인 인터뷰와 함께 실려 있었다. 주차장과 냉방 시설 없는 재래시장이 점점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다.누가 식사하자고 하면 난 망설임 없이 도심 밖으로 나간다. 도심 한 복판 주차할 곳을 찾아 빙빙 돌 생각을 하면 짜증스럽기 때문이다. 20년 전 개척하면서 앞서가는 미국 교회들의 ‘교회 부흥 10대 조건’ 중엔 예외 없이 ‘주차장 확보’가 들어 있어서 좀 의아해 했는데 이젠 우리도 현실이 되었다. 전에는 아파트를 지을 때 1가구 1주차를 예상했지만 지금은 1가구 2대다. 한국의 자가용 보유대수, 영화관객수, 애완견 사육수, 주말 해외여행객수를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교회가 큰 예배 공간을 만들어 한 번에 전 성도가 함께 예배를 드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주일 2.3부로 나뉘어 드린다. 이때 불가피하게 따르는 것이 주차난이다. 특히 예배 인터벌이 짧은 시간대에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이 엉키면 큰 혼란이 생긴다. 하여 교회 마다 주차 안내 요원들을 배치하는데 교회 중직들이 자원하여
도안교회와 이원교회에 이어 노영식 목사의 간청에 못 이겨 세 번째로 문을 닫을 지경이 된 남문구교회에 1970년 9월 첫 주에 부임했다. 3일간의 교회당 청소 후, 교회의 이름부터 남문침례교회로 고치고 장기간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12명의 교인이 30명으로 늘어났고 또 누가 누구인지 잘 아는 터였는데, 주일 아침 김선영 자매가 친구를 인도해 옆자리에 앉힌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그녀의 얼굴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영적으로 직감했다. 김선영 자매는 전북 시골소녀로 부산에 와서 일했는데 동료 공장직공을 인도해 온 것이다. 예배 후 즉시 새신자 상담을 청했는데 삼교대 근무에 들어갈 시간이라 오늘은 안 되지만 오는 수요일 저녁에는 꼭 나오겠다고 하여 이름만 알고 보내었다. 그런데 수요일 기도회에 이 양은 나오지 않았고 금요일에 김선영 자매가 뛰어와 급보를 알리었다. 그 내용은 전셋집 주인이 3일만에 이상히 여겨 안으로 잠긴 문을 박차고 들어가 보니 이 양이 활활 타는 연단 두 개를 방안에 놓고 연탄가스에 질식사해서 송장냄새가 지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긴 유서에 군수기지창고의 군인과 제대할 때까지 임시 계약으로 동거했는데, 그가 제대한 것을 숨기고 도망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서운 단어 “나 중(中)3”이라고 한다. 전혀 예측할 수 없이 튀어 오르는 럭비공처럼 중3은 사춘기의 절정이다. 엊그제까지 너무나 착하고 학업에 충실하던 내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해 하루 종일 PC방에서 시간을 보낸다.예전엔 서서히 타락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곧바로 낭 떨어지로 굴러 떨어진다. “내 딸이 원조교제라니….” 집나간 딸의 컴퓨터에서 발견된 흔적들을 바라보고 망연자실하는 부모들….이제는 더 이상 힘으로 제압할 수도 없다. 때리면 때릴수록 불티처럼 반항한다. 부모들이 외출 할 때면 집밖까지 울면서 따라 나오며 귀찮게 하던 내 자식이였는데 이제는 귀가하는 자녀를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의 품을 외면하고 피곤하다며 쾅! 문 닫고 자기 방으로 직행한다. 엄마의 가슴이 서늘해 지면서 자기 삶을 지배했던 자녀들로부터 서서히 이별을 준비한다. “그래 홀로서기를 훈련하는거지. 나도 그랬잖은가?” 이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으로 금년 여름 필리핀 단기선교를 계획했다. 1인-3명의 중보 기도자를 선정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고, 현지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통해서 감사를 배우게 하고, 글로벌 시대에 외국 여행을 통하여 견문도 넓히고, 섬김을 통한
농구에서 마지막 버저와 함께 터지는 극적인 골을 버저비터라 하는데 이것이 역전골이라면 자국팀은 열광의 환호성으로 상대팀은 초상집으로 돌변한다. 버져비터의 비결은 마지막 1초까지 놓치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최선의 노력의 결과이다. 선수들은 이 한순간의 슛팅을 위해 수백 수천 번의 피땀 어린 슛을 연습한다.몇 주 전 새벽 강단에 특별한 감사헌금 봉투가 하나 올라왔다. 남편이 홀인원을 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골프 입문 단계인 나는 홀인원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잘 모르지만 일생 일대 단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일이라 하니 감사헌금도 낼만한 일인가 보다.지난 주 저녁 식사를 마치고 산책길에 집사님 부부를 길거리에서 만났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홀인원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곁에 섰던 남편 집사님이 얼마 전 자기도 홀인원을 했다는 것이다. 홀인원이 이렇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닐텐데…. 함께 축하해 주고 헤어졌다. 다음날 사택 문 앞에 유명 골프채 한 세트가 놓여있었다. 성도가 홀인원하면 목사도 덩달아 신나는 일이 생기니 더 자주 생겼으면 좋겠다.인생에 버저비터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그 일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일은 아닐
세계 인구는 급속도로 팽창하고 있는데 우리의 복음전도와 구령사역은 너무 미미한 편이다. 아담으로부터 예수님 당시까지의 인구를 도합하여 10억으로 보면, 예수님 당시의 세계 인구는 2억에 불과했다. 1,800년 후 1830년에 와서야 10억, 100년 후인 1930년에 20억, 30년 후인 1960년에 30억이 되었고, 20년 후인 1980년에 40억, 10년 후인 1990년에는 50억이 되었는데, 2000년에는 60억을 넘었다. 그리고 앞으로 2050년이 되면 90~100억으로 팽창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오래 전 미국교회의 실태조사를 보니, 기독교 인구 중 5%는 교적에 있으나 교회에 출석하지 않고, 10%는 교회예배에 불참하고, 40%는 일반헌금을 하지 않고, 50%는 교회학교에 불참하고, 60%는 저녁예배에 불참하고, 70%는 선교헌금을 안하고, 75%는 교회활동에 불참하고, 80%는 기도회에 불참하고, 90%는 가정예배를 안 보며, 95%의 교인은 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육체보다 귀한 영혼프랑스의 루이 9세는 한 사람의 영혼을 매우 귀히 여긴 왕이었다. 그는 궁전 부엌에서 일하는 가난한 아이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