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은진입니다. 오늘 이 귀한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북한 땅에서 행하셨던 일들을 나눌 수 있게 되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와 제 남편은 특별한 인연으로 만났습니다. 저는 북한의 가장 북쪽 끝에서 태어났고, 제 남편은 남한의 가장 남쪽 끝에서 태어났습니다.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길을 따라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뉴코리아교회를 섬기며 복음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의 신앙은 할머니를 통해 전수되었습니다. 북한에서 저희 아버지는 양복점을 운영하셨는데, 덕분에 항상 손님이 끊이지 않는 환경이었습니다. 그 손님들 틈에 섞여서 신앙인들이 북한 정부 몰래 저희 집으로 모여들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할머니를 통해 신앙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기에, 우리 집안의 신앙이 단순히 할머니로부터 시작된 줄로만 알고 살았습니다.

신앙의 뿌리, 증조부 김대남 목사
진정한 신앙의 뿌리를 알게 된 것은 탈북하여 중국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저희 사돈할머니와 조선족 교회 목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저희 신앙의 연원이 할머니보다 훨씬 위쪽인 증조할아버지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온 뒤 저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북한교회 재건 자료집인 ‘무너진 재단을 다시 세웠다’라는 기록에서 증조할아버지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자료집에는 증조할아버지께서 함경북도 선봉군 사회침례교회에서 사역하셨던 김대남 목사님이라는 사실이 명확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증조부께서는 1952년 공산당 대원들이 신앙인들을 색출해 숙청할 당시, 밤중에 주무시다가 끌려가신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하셨습니다. 한국에 와서야 자료집을 통해 증조부님의 사역 흔적과 교회가 세워졌던 지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친가와 외가 모두가 철저한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이 없을 것만 같은 저 북한 땅에서도 여전히 역사하고 계셨으며, 해방 전에 심어놓으신 복음의 줄기를 자녀들을 통해 면면히 이어오고 계셨습니다.
목숨 걸고 지켜낸 가정 예배와 ‘천당’의 찬송
북한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입니다. 밖에 나가 복음을 전하거나 찬송가를 마음 놓고 부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정 안에서만큼은 찬양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며, 신앙인들이 오셔서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드렸던 예배가 1994년 12월까지, 90년대 초반까지도 저희 집에서 계속되었습니다. 북한 정부가 아무리 핍박하고 색출하려 해도, 말콤 펜윅 선교사님이 시작한 토착 선교의 정신을 이어받은 성도들은 발각되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참된 진리를 자녀들에게 목숨 걸고 전수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린 자녀들도 죽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부모님들은 천당의 소망을 전해주셨습니다.
할머니를 통해 배운 찬송가 가사들은 한국 교회에서 부르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국에 와서 찬송가집을 아무리 찾아봐도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곡들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말콤 펜윅 선교사님의 자서전을 통해 그 뿌리를 찾게 됐습니다. 펜윅 선교사님의 자서전과 ‘복음찬미’ 속에 제가 북한에서 배웠던 찬송가들이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는 제가 북한에서 부르던 찬송가들이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한 곳, 장례식장에 가니 제가 북한에서 배웠던 찬송가들이 흘러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광야 같은 북한 땅에서 할머니가 우리 손주들에게 바라셨던 것은 딱 한 가지, 천국의 소망이었습니다. 험악한 우상을 섬기는 헛된 세상에서 우리가 천국 백성임을 잊지 않기를 바라셨기에, 우리가 배운 찬송은 모두 ‘천당’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천당에서 온 가족 다시 만나자”
할머니께서는 저녁마다 성경 말씀과 찬송가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때마다 강조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기에 하나님을 대하듯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 세상 책처럼 아무 데나 낙서하거나 찢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말씀을 볼 때 본인의 세상 지식이나 이론으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곱씹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과 깨달음을 통해 믿음을 키워가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할머니께서는 세상이 점점 험악해져서 말씀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고 찬송을 부를 수 없는 때가 온다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의 말과 머릿속 생각까지 감찰하시는 분이시며,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를 바르게 믿어 하늘나라 천당에서 다시 만나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잘 믿는다고 해서 너희가 거저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바르게 잘 믿어야 저기 천당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할머니가 바라는 건 딱 하나, 우리 온 가족이 저기 천당에서 만나는 것이다.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천당에 있는데, 너희들이 못 오면 우리가 얼마나 슬프겠느냐? 너희가 예수님을 잘 믿어서 다시 만나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매일 저녁 저에게 찬송가를 불러주시고 말씀을 들려주시고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잠들기 전에는 항상 저희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 이 아이들 마음 가운데 심은 믿음의 씨앗이 쑥쑥 자라게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동시에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철저한 보안을 강조하셨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부터 집안에서 있었던 일은 전혀 모르는 일이다. 누가 물어봐도 너희가 할 대답은 오직 하나, ‘모릅니다, 모르겠습니다’뿐”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희는 그 약속을 철저히 지켰고, 덕분에 한동안 예배가 지속될 수 있었습니다.
발각된 예배와 할머니의 유언
저희는 밖에 나가서 막 신나게 놀다가도 찬송가 멜로디가 흥얼흥얼 나올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정말 하나님께서 저희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셔서 지켜주셨기 때문에 정말 실수하지 않고 어른들이 약속했던 대로 잘 지켰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밖에 나가 실수 안 하고 약속을 잘 지키면 그냥 집안에서 예배가 계속 지속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1994년 김일성이 죽고 난 후, 저희 집에도 위기가 닥쳤습니다. 북한 보위부 직원들이 들이닥쳐 작업실에서 일하던 아버지를 끌고 갔습니다. 집 안에는 도청 장치가 설치돼 있었고 우리가 예배드렸던 모든 기록이 이미 진술서로 작성돼 있었습니다. 저희는 조사 중에 이미 작성된 12장의 진술서에 지장을 찍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온 가족은 정치범으로 몰려 산골 추방지로 쫓겨났습니다. 아버지가 불려 가시고 보름 만에 할머니는 앓아누우셨고, 추방되기 직전에 조용히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습니다.
추방되기 전, 어른들은 밤마다 떠날 차비를 하셨습니다. 언제 차가 와서 우리를 실어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이불에 곡식 종자를 조금씩 넣고 양말 속에 비상약을 챙기며 짐보따리를 싸셨습니다. 저희가 울고 있을 때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런 고통을 주려고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죽음도 없는 저 천당에서 온 가족이 모여 살자고 전한 것이다. 성경에도 예수를 믿으면 고난이 온다고 돼 있지만, 이 세상은 잠깐이고 본향은 하늘나라기에 이겨낼 수 있다”고 저희를 위로하셨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 제가 땅에 파묻어두었던 필사 성경책과 찬송가집을 다시 꺼내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어머니에게 그것들을 아궁이에 넣어 태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울면서 안 된다고 막아섰을 때,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상황을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신다. 성경책이 없어진다고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게 아니다. 너희 마음판에 말씀을 깊이 새기고 살아라.” 성경책은 타서 없어졌지만, 그 말씀은 저희 가슴에 깊이 박혔습니다.
10년의 유배 생활과 기적 같은 탈출
그 후 추방지 산골에서 10년을 감시 속에 살았습니다. 숨 쉬기조차 힘든 고통이었지만, 오직 ‘천당에서 온 가족이 다시 만나자’는 믿음 하나로 견뎠습니다. 혹여나 이 고난 때문에 믿음이 흔들려 천당에서 가족들을 만나지 못할까 봐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추방된 지 10년째 되던 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중국으로 나갔던 한 30대 자매가 조선족 목사님이 건네준 핸드폰을 들고 저희 집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 전화기 한 대를 통해 북한과 중국이 연결됐고, 마침내 저희는 탈북해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가족을 추방지로 옮겨 생명을 보전하셨고, 결국 대한민국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 가양동에서 탈북민 성도들과 함께 복음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불러주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정리=범영수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