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침례신학대학원에 입학할 때 나의 마음은 졸업 후에도 집사로 섬기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신 집사 직분을 사랑했고 집사 직분에 대한 자부심이 컷었다. 그래서 대전 대흥 침례교회를 출석하며 처음 2년 동안 고등부 교사로 섬겼다. 그러나 신대원에서 공부하는 동안 어느 순간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역자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3학년 때는 전여회에서 목회 실습을 하며 서울 집에서 가장 가까이 있었던 대광교회의 협동 전도사로 섬겼다.나는 새로운 분야의 학문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학부 출신 신대원생들은 학부 때 배운 것을 신대원에서도 똑같이 가르친다고 불평이 많았다. 나는 부지런히 젊은 학생들의 도움을 청하며 매 학기를 마치느라고 비지땀을 흘렸다. 나는 유학을 할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학점에도 신경을 써야했다. 지금도 대가 없이 나의 학업에 도움을 주었던 젊은 동기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신대원 시절 어려운 동기생들을 보면 마음이 참 안타까웠다. 학비 때문에, 생활비 때문에, 어떤 학생들은 식권 살돈도 없어서 힘들어하고... 그런데 뜻밖에 전에 있던 병원 프로젝트에서 강의 부탁이 가끔 들어 왔다. 나는
사람들은 무릇 관광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릇 모든 동물들의 재주 부리기의 속사정을 알턱이 없다. 저 곰이 어쩌면 저렇게 재미있게 춤을 추나 했는데, 그것은 곰을 생포해서 일단 발톱과 이빨을 뽑아 버리고 입, 코, 머리를 관통하는 쇠줄을 넣은 다음 말을 듣지 않으면 줄을 당겨 고통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는 조련사의 쇠갈고리가 무서워 열심히 재주놀이를 한다는 것이었다. 대게 사람들은 그 동물들이 잘먹고 잘자고 재주만 부리는 선택된 행운아 인줄로 생각하는 경우가 혹 있지만 세상에 더할나위없는 불쌍한 것들은 비로 그들이다. 왜 그렇게 재주를 잘 부렸던가? 그것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하는 고통 때문이다.이하에 모일간지에 실린 기사를 그대로 옮겨본다 : (한국일보 2013,11월 30(토)지평선에서) 인도에서 ‘춤추는 곰’은 400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오락산업이다. 야생에서 곰을 생포해 발톱과 이빨을 뽑은 뒤 입과 코, 머리를 관통해 줄을 넣는다. 말을 듣지 않으면 줄을 당겨 고통을 준다. 뜨겁게 달궈진 철판 위에 곰을 올려놓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관객들은 “곰이 춤을 춘다”며 즐거워한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들은 불훅(bullhook)이라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6:19~21)최고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안전한 투자가 있다면 사람들이 몰려와 아마 북새통을 이루며 문전성시가 될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거늘 우리가 생명을 구원하는 투자 곧 영적 생명보험에 다함이 없는 천국의 상급에 투자한 사람들을 살펴본다. 우리의 몸과 가진 것, 시간과 재능을 바쳐 투자하는 것 보다 더 보람있는 최고수익의 보상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1. 수입의 절반을 바쳐시카고의 택시 기사 밀톤 브라운스테인(Milto Brownstein)씨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에게 전도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카드에 인쇄하여 차내에 부착하고 누구든지 그 중 하나를 맞췄을 때는 요금을 면해주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장애자들은 무료로 태워다 주며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널리 알려지고 사람들의 찬사를
병원의 승진 제의와 남아달라는 제의를 단호히 뿌리치고 나는 대전 침례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40이 다 된 나이에 시작된 신대원생 생활은 또 다시 나를 다 내려놓아야 하는 훈련의 시간이었다. 나는 다 내려놓고 그곳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가 다 내려놓는 또 다른 훈련의 시작이었다. 보건진료소장은 그때 당시 공무원이 아닌 별정직이라 퇴직금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전여회에서는 주거와 학자금과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었다. 전여회는 나에게 1년쯤 침례 신학대학원을 다니다가 유학을 가라고 제안했다. 1989년 당시 우리 교단 총회는 미국 루이지아나 주 총회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었고 여선교회 끼리도 자동 자매 결연을 맺고 서로 교류하고 있었다. 전여회는 나를 위해 미국 남침례교단 국제선교회(IMB)에서 장학금을 약속받아 줬고 루이지아나주 여선교회가 있는 뉴올리안스 신학대학원으로 가도록 준비를 해 주었다. 그런데 그 곳에 입학하려면 토플 550점이상 받아야 한다고 연락이 왔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신대원 공부라 젊은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그 사람들보다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토플 공부까지 하려니 상당히 힘들었다. 영어 공부는 방학때 밖에 할 시간이 없었는
복음의 길은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무척 껄끄러운 통로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기에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다음과 같이 권고하지 않았던가?“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 그런데 이 복음의 길을 사람들로부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정상복음 통로를 마구 뜯어고쳐 온갖 갈래의 길을 터놓았다는 것이다. 복음의 길을 단지 편안하게 걸어가도록 하기 위해, 칼날같이 갈라놓고 솜같이 감싸는 복음의 정체를 마구 뜯어고쳐 놓았다는 것이니. 복음은 율법과 은혜를 무자비하고도 냉정하게 그리고 사정없이 갈라놓고,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만으로의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복음의 길을 제시했건만 사람들은 이 복음이해가 율법세계에 찌들어온 사람에게는 먹혀들지 않으니, 복음의 외길에 수많은 샛길을 만들어 놓고 편한대로 복음의 길들(?)을 걸으라는 선심공세 성심공작을 감행한 오늘의 교회란 말이다. 나는 우연히 모일간신문 분수대란에 노재현(논설위원, 문화전문기자)씨가 “계단, 난간 투성이. 너무 친절한 등산길. 이건 산이 아니다.”라는 칼럼을 읽고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35:1~3)하나님의 명령 따라 야곱처럼 누워있거나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듯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일어나 따라가자! 예수님은 회당장의 죽은 외딸의 시신을 향하여 “달리다쿰”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막 5:41, 눅 7:15)고 명령한 즉 소녀가 곧 살아서 일어났다.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의 장례 행열을 가로막고 관에 손을 대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눅 7:14)하시니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했다. 죽은 지 4일이 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너라”(요 11:42)부르시매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일어나 나왔다. 사도 베드로도 “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지난 60년의 한국교회의 통일운동이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진보주의 진영이 정치적이고 민족적인 특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면, 보수주의 진영은 선교적 측면에서만 통일을 이해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양 진영은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기고 함께 통일을 이루어 평화적으로 발전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교회의 연합된 노력을 해야 한다. 4. 통일에 대한 교회의 사명분단이 장기화되어 갈등과 이질감으로 적대적인 관계의 남북 분위기가 미약하나마 호전되고 있는 이 시점에 한국교회는 통일을 기대하며 화해를 위한 노력에 경주해야만 한다. 특히 한국교회가 북한 복음화를 위해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사명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통일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다음 다섯 가지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교회갱신의 사명이다. 이미 자정 능력을 잃은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교회의 물량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기복주의, 교권주의, 직분의 계급화 현상, 개교회주의, 파벌주의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교회에
나는 전국 여성선교연합회가 주최한 소녀회 캠프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했지만 전여회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1978년 아시아 침례교 여성대회가 서울에서 개최 되었을 때 그 대회의 응급 분과 위원장이었던 부산 침례병원의 브래넘 선교사로부터 응급 분과위원으로 봉사해 달라고 부탁받아서 그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어느 해인가 전여회 여름 수련회시 초청을 받아 간증을 한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준 전국여성선교연합회 때문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나는 간호가 천직이라고 믿었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또 다른 부르심이라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즈음 대한 간호협회가 4년만에 한번씩 개최하는 전국 간호사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는데 각 분야에서 패널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가 전국의 보건진료원들을 대표하여 패널리스트중 한 사람으로 초청됐다. 그리고 동시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김화중 교수(후에 보건사회부 장관으로 섬김)로부터 방문 요청을 받았다. 그분은 내가 그 대학원에 와서 공부하기를 여러번 권면했다. 나는 서울에 갈 기회가 생겼기에 조혜도 총무님을 행사 전
대학생 딸이 한 청년을 사랑한다는데 엄마의 눈엔 영 아닌 것 같다고 충고해 주어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어떻게 하나?담임목사가 보기엔 옳지 않은 결정이라고 권면해 주어도 끝까지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성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애굽을 탈출한 200만 명의 히브리 민족과 그에 따른 수많은 짐승 떼가 자기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을 지나가면 쑥대밭 될 것이 염려된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시켜 히브리민족에게 저주의 예언을 하여 이 지역을 지나가지 못하도록 부탁한다.처음엔 발락의 초청을 거절하던 발람 선지자는 거듭된 요청과 많은 은. 금에 미혹되자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하신다. 모압을 향해 가는 길에 발람을 태운 나귀가 칼을 들고 그를 죽이려는 여호와의 천사를 보고 황급히 밭으로 들어가자 발람은 채찍으로 때린다. 나귀는 또다시 발람의 발을 담벼락에 짖눌러 다치게 해서라도 죽음을 모면하게 하는데 영적인 맹인 발람은 화를 내며 더 세차게 채찍질을 한다. 왜 하나님은 ‘일어나 함께 가라’하시고 나귀타고 가는 길에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죽이려 하셨을까? (민22:20-23) 떼쓰는 사람이 선택한 길은 결과가 참혹하다. “오직 그 어리석은 자는 죽은 자들이
“주께서 꿈들로 나를 놀라게 하시며 환상들을 통해 나를 두렵게 하시나이다”(욥7:14)작년 11월26일 새벽 처음으로 예수님의 꿈을 꿨다. 60년이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꿈에 예수님을 보았다는 사람들의 얘기는 가끔 들은 적이 있었지만, 지난 200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도 성흔을 받은 성 프란시스를 비롯한 여러 성자들에게 환상으로 나타났고, 신약성서 속에서는 부활하신 후 보이시고 승천하신 후에는 순교하는 스데반 집사에겐“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행7:55)으로, 다메섹 도상의 사울에겐 음성과 밝은 빛으로 보이셨고, 그 후에도 사도 바울에게 두 번이나 (행 18:9, 23:11) 보이셨고, 밧모섬의 사도요한에게는 영광스런 만왕의 왕의 위엄으로 나타나셨다(계 1:13-16) 그런데 저에게는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보이셨다. 어떤 사람이 오른 쪽에서 걸어와 서는데 옷은 회색과 청색, 검은색이 섞인 작업복, 죄수복 및 환자복 같은 상하의를 입으셨고, 저 앞에 다가와 서더니 고개를 돌려 잠깐 저와 정면으로 주목했는데 조금 검은 노동자의 얼굴이었으나 온화하고 밝은 눈빛이었고, 아무 말 없이 우측으로 몸을 돌려 뒷모습으로 멀리 사라졌다. 희한하게도 꿈인데도 풍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