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10,000~5000년 사이를 신석기 시대(Neolithic)라고 부른다. 수렵생활을 하던 인류가 드디어 농사를 짓기 시작했던 시기이다. 그러니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정착생활, 집단생활, 또 그에 필요한 도구들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정교하게 발전했을 것이고, 집단생활을 효과적으로 영위하기 위해서 그에 따르는 사회조직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석기시대 후반부(주전 6400~5800)에 이르러 사람들은 드디어 흙을 이용해서 다양한 크기의 토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 이런 문화는 이스라엘 어느 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출애굽 당시 성경에 등장하는 여리고 도시가 그중에 하나였다. 여리고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시대의 도시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석기 후반부(주전 6400~5800)의 토기 문화가 가장 왕성하게 발달하고 근동지역에서 최초로 가장 혁신적인 농사 문화의 발전을 이루고 선도했던 도시는 따로 있었다. 그곳은 갈릴리 호수 남쪽에 위치한 장소였다. 신석기시대 후반부에 이 지역에서 일어난 문화를 학자들은 ‘야르묵키안 문화’(Yarmukian culture)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욕심 많은 사람에게 ‘놀부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의심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도마와 같은 사람’(Doubting Thomas)이라고 합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의심했던 제자 도마’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도마는 더 이상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의심이 변할 수 있었을까요? 의심이 찾아올 때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요 20:24) 도마가 원래 의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부활에 대해 말씀하시자 자신도 함께 죽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경험하는 자가 되겠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의심이 많은 도마가 됐을까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구멍 난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시며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려주셨을 때 그 자리에 도마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니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문이 닫혀 있을 때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창 22:20) 브엘세바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삭의 결혼이었을 겁니다. 미리 정해 놓은 결혼 상대자가 없었으니 신부가 될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한 군데 정착하지 않고 이곳저곳 떠돌며 살아온 아브라함이었기에 신붓감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웃한 부족은 문화도 다르고 종교 차이도 커서 알아보고 싶지 않았을 테고, 집안 식구 가운데 이삭의 배필을 찾으면 좋겠는데, 고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됐고 가장 가까운 친척이었던 롯 가족이 몰락하고 나니 그마저도 불가능했습니다. 바로 그때 뜻하지 않게 동생 나홀에게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창세기 11장 족보를 살펴보면 데라에게 아브라함, 나홀, 하란의 세 아들이 있었다고 나오는데, 하란은 일찍 죽었고 데라가 갈데아 우르를 떠날 때 아브라함과 더불어 하란의 아들 롯을 데리고 나왔다는 기록이 있을 뿐 나홀의 행적은 따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뒤에도 나홀은 여전히 고향에 남았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제야 근황을 알게 된 것이죠. 소식을 가져온 사람을 만난 자리에서 아브라함은
사랑해요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날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으신 예수님 십자가의 사랑이 이 죄인을 살리셨으니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십자가 보혈로 나의 죄 사하신 예수님 하늘나라 영광을 나를 위해 예비하시니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사랑합니다 사랑해요 사랑해요 예수님 사랑해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막으신 예수님 영생 천국 향하여 그날까지 인도하신 온 마음을 다해 주님 사랑합니다
1884년 이후 조선에 들어온 북장로교 선교사들은 단순한 부흥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순수한 학자 집단도 아니었다. 그들은 성경의 권위를 확신했고, 개혁주의 교리를 소중히 여겼으며, 동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사람들이었다. 대표적인 선교사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모펫(Samuel Austin Moffett), 윌리엄 베어드(William Martyn Baird) 등은 모두 이러한 전통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선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교회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성경을 번역하고, 학교를 세우고, 교역자를 양성하고, 신학 교육의 기초를 놓는 일이었다. 그 결과 초기 한국교회는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됐다. 성도들은 성경을 배우기 위해 먼 길을 걸어 사경회에 참석했고, 말씀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웠다. 성경을 아는 것이 곧 신앙생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모습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선교사들이 가지고 온 개혁주의 전통의 열매였다. 1901년에 설립된 평양신학교는 초기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중심지였다. 이곳에서는 성경 연구와 설교, 교리 교육이 매우 중요하게 다뤄졌다. 신학생들은 단순히
정부 차원에서 경구용 유산 유도제, 이른바 낙태약의 허용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오면서 생명 윤리를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국무회의에서 모자보건법 개정 전 입법 공백기 동안 의사 재량이나 약품 판매를 허용하는 방안을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자, 태아 생명보호 운동 단체와 교계는 즉각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나섰다. 정부는 낙태약을 무조건 금지할 경우, 인터넷 직구 등을 통한 음성적인 유통이 판을 치고, 이는 적절한 진료 없는 약물 복용으로 이어져 여성의 건강을 더욱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차라리 국가가 제도권 안에서 관리 영역으로 끌어들여 위험성을 낮추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적 판단에 기반한 조치는 생명의 시작과 태아의 생명권을 엄중하게 바라보는 기독교계와 생명운동 단체들의 본질적인 반발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태아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거룩한 생명이며, 어떠한 정책적 편리함이나 관리의 효율성보다 우선시해야 할 절대적 존재다. 더욱이 자궁외임신 확인이나 출혈·감염 관리 등 고도의 의료적 관리가 필
하늘비전침례교회(한재성 목사)는 지난 7월 12일 해외선교회(FMB)와 공동으로 “만만세 선교축제”를 개최하고, 온 성도와 다음세대가 세계선교의 비전을 새롭게 정립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하늘비전교회는 지난 2016년부터 캄보디아를 중심으로 단기선교를 지속하며 특정 지역과 선교사를 집중적으로 섬겨왔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혔던 시기를 제외하면 선교팀의 규모와 상관없이 꾸준히 캄보디아를 찾았다. 여러 국가를 짧게 순회하기보다 한 선교지를 택해 장기적으로 동행하는 선교를 선택한 결과다. 특히 하늘비전교회는 현지 선교사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선교지의 사역 방향에 철저히 맞춤형으로 단기선교팀을 훈련해왔다. 현지 사정과 무관한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다, 선교사의 장기 사역 마스터플랜 안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분담할 수 있을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이 과정에서 단기선교에 동참한 성도들은 캄보디아의 어린 학생들이 청년과 장년으로 성장하며 믿음의 뿌리를 내리는 전 과정을 목격하는 영적 보람을 누리고 있다. 이번 선교축제는 그동안 교회가 걸어온 선교적 궤적을 돌아보고, 성도들의 심령에 새로운 헌신의 불씨를 지피는 자리로 준비됐다. 뜨거운 찬양과 8개국 미전도종족을
115차 총회(최인수 총회장)는 지난 7월 13~15일 제주서부침례교회(임헌규 목사, 자성교회 수양관)에서 전도부(부장 박한성 목사)가 주관한 100만 뱁티스트 전도운동에 참여한 교회 중 우수 10개 교회 목회자 부부와 목회 멘토로 참여한 목회자, 특강 강사가 함께한 멘토링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에는 최인수 총회장과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 총회 전도부장 박한성 목사(세종꿈의), 재무부장 이병탁 목사(시온성)가 동행했다. 또한 논산한빛교회 강신정 목사가 전체 행사 일정을 총괄했으며 교회 평신도 스태프들이 참석자들을 섬기며 헌신했다. 이번 행사는 참석 인원이 3개 조로 나눠 집중 멘토링으로 진행했으며 교회 부흥과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의견을 나눴다. 또한 일회적 세미나를 넘어 후속해서 지속적인 모임으로 이어갈 예정이다. 행사는 2박 3일간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최윤종 목사(홍성), 이영환 목사(한밭제일), 박보규 목사(청주상록수), 임헌규 목사(자성), 이황규 목사(주우리), 강신정 목사(논산한빛) 등이 중심 강의를, 이어 조별 멘토링, 지역 관광, 사모들을 위한 ‘그림으로 그리는, 나’ 등을 진행하며 쉼과 나눔의 시간을 가졌다. 최인수 총회장은 환영
우리교단 교역자복지회(회장 서광선 목사)는 지난 7월 16일 서울 교역자복지회 사무실에서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번 교역자복지회 이사회는 115차 총회(총회장 최인수 목사)가 파송한 이사와 감사가 참석한 가운데 교역자복지회 규약에 대한 개정 및 운영 방안에 대해 논의한 자리였다. 이날 이사회는 ◇은퇴·원로교역자 뿐만 아니라 현직 교역자를 포함하는 복지체계 구축 ◇교역자 자녀 장학 사업 ◇의료지원, 긴급 지원 및 재난 지원 등 실질적인 복지사업 확대 방안 ◇병원 및 관련 기관과 협력체계 구축 ◇세부사업에 대한 세칙 및 연도별 사업계획 등을 다뤘다. 우선 은퇴·원로목사 위로회는 오는 8월 20일 오전 11시 대전 유성 계룡스파텔에서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총동창회(회장 엄기용 목사)와 교단 기관 및 단체의 후원으로 진행하기로 했으며 정기총회 참석 원로․은퇴 목사 부부의 숙박 및 식사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서광선 목사는 “교역자복지회가 그동안 은퇴․원로목회자를 위한 지원 방안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시대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다 다각적인 지원과 협력 방안이 필요함을 이사들과 논의했다”면서 “앞으로 교단 목회자의 복지 지원 혜택 방안을 체계적으로 구상해서 총회와 협
우리교단 해외선교회(이사장 김종성 목사, 회장 주민호 목사)는 최근 국내 주요 전문 선교사역단체들과 잇따라 업무협약을 갱신하며 교단 선교사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협력관계를 재확인했다. 해외선교회는 성경번역선교회(대표 김현 선교사, GBT)를 시작으로 호프선교회(대표 서에스라 선교사, HOPE), 한국해외선교회 개척선교회(대표 이권덕 선교사, GMP), 국제프론티어스 한국선교회 등 4개 단체와 각각 업무협약 갱신을 진행했다. 이번 협약은 이중 멤버십의 기존 협약 기조를 유지하면서, 현 흐름에 맞게 내용을 재정비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선교사 이중 멤버십은 한국선교 초기 선교단체들이 상호 간에 각자의 특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력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이며 교단 선교부는 파송과 후원의 든든한 기반을, 전문 선교 단체는 고유의 전문 사역 역량을 제공하면서 서로의 강점을 추구하는 제도다. 하지만 한국 선교가 시간이 흐르고 성숙의 길을 걸어가면서 교단 선교부와 선교단체 사이의 특성과 경계가 점차 흐려짐에 따라 양 기관의 명확한 협력과 연합을 재확인하고 특히 성경번역 사역과 같은 고도의 전문화된 사역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상호 협력 방안이 필요하기에 해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