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빙자한 사기꾼의 노래몇 년 전 어떤 교회에 모 호텔 지배인을 자처하는 사람이 찾아왔다. 깔끔한 양복차람에 키도 훤칠한 잘 생긴 남성이었다. 자기도 모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라고 했다. 용모단정하고 성실한 여자 청년을 소개해 주시면 취업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취업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할 때 명함까지 내밀며 정중하게 부탁하는 그 젊은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교회 담임목사는 당장 마음에 떠오르는 여자 청년을 소개했다. 그리고 곧 바로 그 청년의 집으로 연락을 취했다. 연락이 되지 않았다. 잠시 출타중인데 곧 돌아온다는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휴대폰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일단 부사역자를 청년의 집으로 보냈다. 그 동안 목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에 가서 그 호텔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 지배인은 없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소름이 돋은 그는 즉시 자칭 호텔 지배인에게 와서 따졌다. 낌새를 눈치 챈 그는 손쓸 틈도 없이 큰 걸음으로 도망 가버렸다. 유괴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 사건을 접한 모든 교인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4.3.21. 헌금하면 천국에 보내주겠다고 사기를 친 이모 여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하나님의 때는 크로노스가 아니라 카이로스라고 한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시간에 매이지 아니하시고 시간을 주관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는는 때가 하나님의 때인 것이다.그래서 성경은 때가 차매 예수님께서 오셨고, 때가 찼을 때 우리의 구원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새해를 맞이하기에 저절로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가져야 새해를 맞는 것이 됨을 알아야 한다. 필자는 이런 저런 이유로 한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의 게으름에 대해 독자들의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며 새해 첫 주제를 “목회자의 사명”으로 잡았다. 목회자란 교회의 머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따라 교회가 주어진 지역사회 속에서 교회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다운 교회, 참 교회를 성취하도록 교인들을 일깨우고 인도하는 지도자이다. 신약성경은 여러 교회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중에 가장 문제 많고 복잡한 교회가 고린도교회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에 고린도서에 나타난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목회론을 진술하고자 한다. 고린도전서 첫머리에 깃들어 있는 목회자의 사명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목회자에
(A Study of the Trends and the Tasks of Contemporary Preaching After the New Homiletics )신설교학은 연역적 방식을 탈피하여 귀납적 방식으로 설교를 전달하는 것이 마치 현대설교가 안고 있는 전달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책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이 시대의 청중을 위한 가장 좋은 설교 전달법이 오직 귀납적인 것만이 되어서는 안된다. 헤롤드 브라이슨(Harold Bryson)은 이야기체이든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형태이든지 설교의 방식이 어느 한 가지 틀에 얽매이게 되면 청중은 거기에 길들여질 수 있으며 그러한 긴장감의 결여는 청중으로 하여금 실체를 놓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문제는 다양성이다. 현대 청중이 요청하는 것은 설교 전달 방식의 다양화이다. 귀납법이 연역법에 비하여 이 시대의 청중을 위한 보다 효율적인 설교 전달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의 형식으로 고착된다면 청중은 또 다른 설교 방식을 찾게 될 것이다. 연역적 논증 형식도 장점을 가진다. 연역적 설교는 본문에 충실함으로서 견고한 성서적 설교를 창출해내는 데 유용하다. 특히 서신서와 같은 장르의 말씀을
동성애(5) -성경의 교훈-소돔의 멸망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수간(獸姦), 남색(男色), 동성애 등의 이상 성애와 남창(男娼)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율법으로 금하였다. 성경의 대표적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다:1) 레위기 18:22-23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2) 레위기 20:13,14(15,16절 참조)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 돌아가리라.”3) 신명기 23:17,18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4) 열왕기상에는, “그 땅에 또 남색 하는 자가 있었고(14:24),” “남색 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15:12)”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의 남색은 ‘카데쉬’(qadesh)로서 단순히 ‘남색 하는
저작권법(著作權法)저작권은 넓은 의미에서 창작물에 대한 저작자의 배타적 사용권을 의미하며;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복제(인쇄 녹음), 공연, 송신, 전시, 배포, 개작, 편집, 양도 할 권리와 그에 따른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저작권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1) 저작권법 제정: 이 법은 “베른협약”(1886)을 시작으로 “세계저작권협약”(UCC,1952)과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저작권조약”(WCT,1996)의 체결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2) 저작권의 발생: 저작권은 “무방식주의”를 채택한 베른협약에 따라 저작물을 발표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발생한다.3) 저작권의 종류: 저작권은 인격권(Moral Right)과 재산권(Economic Right)으로 구분된다. (1)재산권은 저작권법의 기본으로서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유 무상으로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있는 권리이며, (2)인격권은 저작물 공표권, 성명 표시권, 및 동일성 유지권을 의미한다. 동일성 유지권이란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창작물의 내용을 변경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인격권은 재산권과는 달리 저작자에게만 해당되고 양도와 상속이 되지 않는다. 4) 저작물의 범위: 문예 창작물, 편집물
요한복음에서 부활현현의 체험과 부활신학(10)필자는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두 번째 현현 사건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이 사건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관심의 초점은 부활에 대한 의문을 가진 도마를 향해 있었다. 예수는 도마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그로 하여금 예수의 전인적 부활에 대한 믿음을 촉구한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20:27). 예수는 도마의 요구를 수용하여 그에게 신체적 증거를 제공한다. 사람의 마음의 생각과 비밀을 아시는 예수의 통찰력은 이미 그의 공생애 사역에서 강조된 부분이다(1:47~50; 2:24f.). 여기서 예수의 현현에 관한 표현은 도마가 요구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지는 않다. 도마는 예수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자기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보며 자기 손을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에 넣어보기를 원했다. 예수의 현현 묘사에서 손과 손가락에 관한 언급은 유지되지만, 못 자국에 관한 것은 생략되었다. 비록 예수의 현현이 도마가 요구한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지는 않지만, 예수는 그의 손과 손가락
3. 삶에 대한 유언(Living Will)유언이란 자기의 사망으로 인하여 효력을 발생시킬 것으로 하여 일정한 방식에 따라서 행하는 상대방 없는 단독의 의사표시를 말한다. 이것은 ‘삶에 대한 유언’, ‘자연사 선택 유언’, ‘종명유언’이라고 불리운다.삶에 대한 유언은 두 가지의 경우로 쓰여진다. 하나는 명백히 치료될 수 있음에도 자연사 선택유언을 하는 경우와 명백히 치료될 수 없는 경우에 자연사 선택유언을 하는 경우이다. 이 공식문서에 의해서 아직 건강하고 활동할 수 있는 동안에 자신이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을 때 어떻게 취급되기를 원하는지 분명히 밝힐 수 있다.만일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의사들이나 가족과 대화하는 능력을 잃게 되면, 삶에 대한 유언이 자신의 바램을 미리 자세히 밝혀 주며, 의사들과 가족들은 분명한 지시를 받게 되고, 만일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면 판사들은 유언장을 통해 직접 그의 말을 들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삶에 대한 유언은 치료를 중단하고자 할 때 필요한 최소의 구비조건이다.즉 스스로가 의사표시의 능력이 있을 때, 이후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시행될 의료의 내용에 있어서 사전에 자신의 희망을 전하는 것이며, 연명적 의료거절의 의사가
신설교학 이후에 나타난 현대설교의 동향과 과제-6(A Study of the Trends and the Tasks of Contemporary Preaching After the New Homiletics )현대 설교자들은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인정하고 그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생명을 바쳐 복음을 전했던 성서시대 사도들의 정신을 이어받았다. 짐 쉐딕스(Jim Shaddixc)에 의하면, 기독교회의 설교는 초대교회 시절에서부터 언제나 강해설교를 근간으로 하였다. 구약의 회당예배에서 율법서를 읽었던 전통은 초대교회에 들어서 구약성경에 대한 낭독과 사도들의 편지를 읽고 강해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 시기의 교회들은 본문 중심의 설교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음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 설교는 처음부터 강해설교로서 모든 기독교의 가르침과 교훈은 반드시 읽혀진 본문으로부터 나와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다.” 오늘 하나님의 인간 구속의 역사에 참여하고 있는 현대 설교자는 성서의 권위를 내려놓거나 말씀 선포자로서의 권위를 포기하여서는 안 된다. 지난 세기 척박한 조선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훗날 이 땅
‘유’달리 더운 6월. 마치 8월의 한 여름 같다.‘유’머 한마디라도 주고받아야 치솟는 불쾌지수도 내려갈 듯 싶다.‘유’쾌한 사람 하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 되고 힘 될 텐데‘유’치한 웃음으로라도 밝게 한 번 웃고 싶다.‘유’채꽃 만발함보다 웃음꽃 만발함이 더 그리운 세상. ‘유’모차 속 잠든 아이 하나가 내 마음을 알 듯 내 얼굴을 환하게 펴준다.‘유’망한 사람보다‘유’명한 사람보다‘유’식한 사람보다‘유’실수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더 좋은 세상. 모두가 행복할 터. ‘유’토피아가 따로 있나? 그들과 사는 세상이 천국이지. ‘YOU’의 소중함도 다시 생각해볼 6월. ‘유’익하든 무익하든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존귀하고 소중한 가족과 이웃들.‘유’통업자가 되자. 그들을 위한 축복의 유통업자가 되자.‘유’무상통의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자.‘유’언비어엔 속지도 말고 퍼트리지도 말자.‘유’감 좀 있더라도 ‘유’별나게 나쁜 사람처럼 보여도 ‘유’난히 용서가 안되는 사람이어도 그래도 용서하자. 할 수있다면 모든 사람과 평화하자. ‘유’한한 나의 한계도 다시 절감해 보는 6월.‘유’혹에 자주 넘어지는 연약한 나. ‘유’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병든 나.‘유’행 따라
2. 터미널 케어(Terminal Care)터미널 케어란 회복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 받은 말기 환자가 겪거나 느끼고 있는 고통, 예를 들면 통증, 호흡곤란, 구토 등을 주로 모르핀을 사용하여 완하시키는 치료법을 말한다. 현대의료는 검사·진단·치료·연명(延命)이라는 4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입원한 환자는 수많은 검사를 받고, 그 검사의 결과와 진찰의 결과 종합적인 판단 아래 진단이 내려진다. 그리고 진단에 따라 치료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현대의료는 치유가능한 병인 경우에는 커다란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진행된 암과 같이 현대의료의 첨단기술로도 치료할 수 없는 질병에 걸린 환자에 대해서는 마땅한 치료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시간적인 연명을 하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실정이다.터미널 케어의 목적은 ‘환자를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으로서 영국에서부터 시작되어 여러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1985년에 WHO(세계보건기구)는 「암 통증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책자를 통해서 기본 약품의 명시와 투여 방식에 관하여 다음의 원칙을 밝히고 있다.A. By mouth : 가급적 경구로 투여한다. 경구 투여가 불가능할 때에는 장내에 투여하며, 그것도 불가능할
신설교학 이후에 나타난 현대설교의 동향과 과제-5(A Study of the Trends and the Tasks of Contemporary Preaching After the New Homiletics )2. 논증방식의 문제신설교학이 안고 있는 다른 하나의 문제는 귀납적 전달 방식을 필요 이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설교가 청중에게 보다 더 잘 전달되기 위한 목적으로 신설교학이 필요하였다면, 굳이 그 전개 방식을 전통설교와의 대비 방식을 통해서 과거의 설교 방식은 전적으로 연역적(명제적) 방식이었다고 규명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전통 설교에서도 논증 방식을 연역적 방식과 귀납적 방식을 동시에 주요 방법론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성서적 개념을 정확하게 싫어 나르기 위한 목적을 가지는 강해설교의 경우 하나의 주어진 본문의 문학적, 역사적, 그리고 상황적 해석의 결과를 조직화하여 청중에게 전달할 때, 그 논증 방식은 반드시 연역적이지 않다. 얼마든지 청중으로 하여금 설교의 무대에 적극 참여하도록 귀납적 논증 형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교에서 귀납적 논증 방식이 가지는 여러 가지 장점이 인정된다. 그렇다면 모든 설교를 귀납적으로 하는 것이 최
필자는 요한이 제시하는 부활현현 이야기에 담긴 부활의 신학을 살펴보고 있다. 요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 요소인 부활의 예수를 믿는 신앙이 부활현현의 체험을 통해 이루어진 것을 강조하면서 제자들이 받은 부활현현의 체험을 세 번 전달한다. 이것은 한 사건을 세 번씩이나 말함으로써 그 사건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려는 유대교의 표현법에 따른 것이다. 요한에 따르면, 제자들은 세 번에 걸친 부활현현의 체험을 통해 확고부동한 부활신앙을 갖게 된 것을 제시한다. 이런 점에서 누가 역시 사도행전에서 바리새인 사울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하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부활의 예수를 만난 사건을 세 번씩이나 전달함을 통해(행 9, 22, 26장) 사울의 체험이 그 자신을 위해서는 물론 기독교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 복음 전파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사건인가를 제시한다. 요한은 예수의 두 번째 현현에 관한 이야기를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와 관련하여 제시한다. 사복음서에서 도마와 관련된 사건은 요한복음서에만 나온다(11:16; 14:5; 21:26). 도마는 매사를 운명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둔감하며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비록 그는 깨닫는 것이 느리지만,
호스피스는 모든 환자를 거의 본능적으로 살려 내고자 하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빈센트 배리(Vincent Barry)는 “죽음을 경험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고독, 두려움, 고통과 의구심 등이다. 더 이상 쓸모없고 버림받았다는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을 통제하거나 억제할 수 없고, 더 이상 참여할 수 없다는 것, 모욕감 등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안락사에 대한 최선의 대안으로는 죽어 가는 사람을 인정을 지니고 지속적으로 보살펴 주는 것이다. “수용할 수 없는 고통으로 죽는 환자들의 숫자는 고작 1%미만”이라는 통계가 있다. 호스피스 활동은 인간 생명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며, 하나님의 형상대로 태어난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이어지는 사랑에 찬 봉사 행위이다. 호스피스의 목적은 신체적 죽음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연속하는 것이기에 적극적인 치료 방법은 사용되지 않는다. 단지 죽음에 대한 고요한 통찰력을 내포하고 임종 환자가 그의 마지막 생을 가족과 친지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하게 최종의 날을 맞도록 하는 것이며, 인간이 죽기 전에 머물면서 쉬고 생을 정리하고 완
3) 설교자의 권위를 배제한 자유로운 결론크레독은 이 시대의 설교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그 한 원인으로 설교자와 청중의 관계가 전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고 간파하였다. 그는 기독교가 심각하게 쇠락함으로써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서 문화적 지원의 발판을 잃어버렸다고 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설교자는 성직자로서의 권위를 내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본문의 권위를 담보할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를 직시한 크래독은 성경의 저자와 본문이 차지했던 권위를 청중에게 내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경의 권위와 성경 저자가 의도한 본문의 의미를 강조하는 대신 청중이 설교에 스스로 결론을 내리게 하는 방식을 주장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설교의 시작은 복음이 아니라 청중의 경험이며 청중의 기대를 고조시키기 위해 비권위적인 귀납법 설교가 보다 적합한 통화 방식임을 주창하기에 이르렀다.크레독은 연역적 설교에서 청중은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설정한 명제에 대한 반감으로 인하여 설교자와 청중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았다. 반면에 귀납적인 설교는 단정적이기보다는 설명적이며, 명령적이기보다는 권면적인 것으로 특징지어진다고 강조하면서 이런 이
다윗이 밧세바와의 불륜사건을 감추기 위하여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까지 살인한 일이 발생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하셨다. 나단은 다윗이 저지른 범죄를 간접적으로 지적하기 위해서 예화를 활용한다. 많은 양과 소를 소유한 부자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서 가축을 잡는데, 자신의 양을 잡지 않고 겨우 한 마리의 양을 애지중지하는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접대에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아내와 첩들을 거느린 다윗이 남의 아내를 빼앗았음을 고발한 예화이다. 몇 년 후 다윗은 또 하나의 예화와 접하게 된다. 드고아에서 온 여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이다. 자신에게 아들 둘이 있었는데, 형제간에 사이가 좋지 않아 자주 다투다가 어느 날 형이 동생을 폭행치사 했고, 마을 사람들은 살인죄를 저지른 형마저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상황이라 왕께 도움을 청하러 왔다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실화로 시작되었지만, 다윗이 여인의 큰 아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자신이 했던 이야기가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암논을 쳐 죽이고 외국으로 도망간 다윗왕의 아들 압살롬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