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공개방송에 그 출연자가 나올 때마다 나와 아내는 눈을 감는다. 그녀의 음성과 토의 내용은 듣기에 좋으나 그녀의 야릇한 눈초리를 보면 아주 기분이 유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상대방을 바라볼 때마다 눈초리를 밑으로 깔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 올라가기도 하는데 그때 그녀의 흰 눈동자의 움직임은 사람을 경멸하는 듯한 눈초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의 마음과는 완전히 다른 그녀의 눈초리 습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녀가 출연할 때 나와 아내는 눈을 똑바로 뜨고 시청하기로 무언 중 합의를 봤다. 그녀의 눈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인즉 그녀가 어떤 처절한 사건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소나기 비 오듯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으로부터 묻어나는 연민의 정을 못 이겨 사정없이 흘러 내리는 눈물을 봤다. 그녀의 눈물의 눈은 아름다웠다. 사람은 사람과의 접촉에서 반응을 표해야 예절을 지닌 인격자이다. 동문(東問)하는데 무답(無答)도 결례일 것이고 더더구나 서답(西答)하면 이건 완전히 사람 무시행위이다. 울 때 울어주고 웃을 때 웃어 주는 것은 인간의 기본 자세이다. 그의 고난과 함께 고난하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갔을 때 예수님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는 신앙고백에 주님은 극구 칭찬하시고 시몬이란 이름을 베드로(반석)라고 개명하시고 교회를 이 반석에 세우는 천국 열쇠를 약소하신 후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마옵소서” 만류했다. 예수는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매우 엄중하게 책망하셨다.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라도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을 사단으로 정죄하셨기에 그리스도인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몫에 대인 십자가를 거부하는 것을 예수는 사단아 물러가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심히 꾸짖어 말씀하신다. 3학년 때 엄마 따라 절간에 다니는 나에게 외사촌이 준 “예수 만화책”에 나온 십자가에 달려 가시관 쓰고 피 흘려 비참하게 죽는 예수의 모습! 부친이 귀신병 들려서 여러 가지 치료로 낫지 않아 예수쟁이들
“예수님의 생일잔치” 그것은 바로 크리스마스, 곧 구주 성탄절이다. 우리가 믿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생일 잔칫날이다.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생일잔치는 잘 차리는데 예수님의 생일잔치는 어떠한가? 탕자가 돌아왔을 때 베푼 아버지의 환영잔치는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으며, 그 외에도 복음서에 예수님을 모신 잔치는 여러 번 있지 않은가! 충북 옥천군 이원면 강청리 이원침례교회에 부임한 지 2년이 넘는 1970년의 구주 성탄절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몇 년 전 육영수 여사가 우리 침례교회당에서 바로 30미터 떨어진 정자나무들 속에 있는 작은 절간에 다녀갔는데 충청북도와 옥천군 고관들뿐만 아니라 이원면 공화당 간부와 높은 유지들이 떼를 지어 함께 절에 왔다갔다는 것이다. 그 다음 주일 새벽에 굵직한 닭소리가 부엌에서 울려 퍼졌다. 깜짝 놀라 깨어보니 새벽 4시경이었다. 어느 분이 새벽기도에 나오면서 장닭의 다리와 두 날개를 묶은 채로 갖다놓았다. 알고 보니 이원 역전에 사는 손씨 자매의 손길이었다. 한 번은 이원 기차역에서 나오다 보니 몇 몇 아주머니들이 길가 나무 그늘에 앉아 있었는데, 그 중에 골격은 크나 몸이 매우 마르고 얼굴에 화색이 없는 아주머니가
“죽으면 죽으리라”(에4:16)의 결단으로 밤낮 3일을 금식하고 왕궁의 규례를 어기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 호소함으로 에스더는 유대민족의 말살에서 구원해 내었다. 포로된 모르드게도 하만의 모략을 알고 몰살당할 유대민족을 바벨론의 마수에서 구원하는 지혜를 보였다. 요나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랐으나 폭풍 속에 자복하고 바다에 던져져서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금식으로 회개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 결과 니느웨성을 구원하게 됐다. 사무엘도 미스바 대회의 회개와 금식기도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된 것은 하늘에서 큰 우박이 내리므로 에벤에셀(삼상7장)의 결과를 보았다. 사울왕이 전사한 후 모든 장수들이 야베스에 모여 7일간 금식하며(삼상31:13) 애도했다. 다니엘은 세 이래(3주) 동안 금식기도로 종말 계시를 받았다.(단10:2~3) 이외에도 구약성서에서 금식과 기도가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곤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계기가 됐다. 1974년 말 긴급조치 하에 8개월 옥고에서 나오니 도저히 지역사회에선 평판이 나빠 목회를 할 수가 없었다. 1975년 8월 한 달간 금식과 기도를 하고 시내를 뒤지며 새로운 목회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류는 구원의 복음을 받았다. 누구든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기가 결코 쉽지가 않으나 얼마든지 헬라 땅으로 피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만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를 본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그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주후 313년에 로마 세계를 복음으로 정복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이 따랐고, 계속되는 역사속의 복음화로 오늘날 예수의 복음은 세계인구의 2/5로 육박하게 됐다. 한 사람을 잘 양육하지 못한 결과로 아래의 역사적 비극을 되새기며 오늘 우리의 각성을 본다. 이원교회 목회 중 1970년 여름 방익범 목사님을 모시고 한 주간 부흥회 중에 우리는 말씀의 교제와 얘기를 나눴다. 방 목사는 황해도에서 1·4후퇴 시 월남하셨는데 북한 김일성의 원명은 김성주이고 아버지는 김형직, 어머니는 세례교인으로 이름도 강반석이고 외삼촌인 강양옥은 목사이며 나중에 북조선 기독교도연맹의 회장으로 알려졌고 김일성도 주일학교 나간 세례교인이라고 들은 것 같다. 6·25 전란의 300만 사상자의 책임은 누구인가? 히틀러가
“적은 기적”이란 책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 케빈은 “페이스”(믿음)란 이름을 가진 처녀와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반지를 결혼 선물로 손가락에 끼워줬다. 휴양 차 냇물이 흘러 호수로 들어가는 냇가에서 그만 어떻게 되었는지 그 값비싸고 소중한 결혼반지가 빠져 잃어버렸다. 냇가를 모두 다 뒤졌으나 아무도 찾지 못했으나 “믿음”이란 이름의 여인은 반지를 낀 손가락을 볼 때마다 반지가 돌아오리라 믿어졌다. 꼭 20년이 흘러 1992년 케빈 가족은 부모가 돌아가시자 그 옛날 결혼 차 투숙했던 시골집에 휴양차 가서 쉬었다. 십대의 아들은 준비해온 낚싯대로 물이 모인 작은 호수에 낚시질을 했는데 무려 3㎏(7파운드)의 큼직한 송어를 처음으로 잡았다. 가족은 탄성을 올리고 점심준비로 고기 배를 칼로 가르자 잃어버렸던 결혼반지가 나왔다. “믿음” 여인이 아들의 낚시대에 달린 송어가 갖다 준 기적을 체험한 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었던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니”(히11:1) 사직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 두 자매 중 언니 지영이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동생 은영이의 손을 꼭 잡고 가정불화에 대해 말했다. 부산 사직 중앙교회를 개척해 지하와 1층을 지었
살아온 세월과 인생들을 돌아보며 현인들이 외친 말도 많다. 인생의 부귀영화도 남가일몽(南柯一夢)이며,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초로인생(草露人生)이요 일엽편주(一葉片舟)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 했던가? 유교에서는 살아있는 것은 땅에 붙어 있는 것이요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生而寄也 死而歸也)이라 했고, 불교에서도 살아있는 것은 한조각의 뜬구름이요 죽음은 한편의 뜬 구림이 사라지는 것(生而一片浮雲起 死而一片浮雲滅)이라 했다. 아래의 인생에 대한 회고의 글을 본다. 나무는 가을이 되어 잎이 떨어진 뒤에야 가지와 무성하던 잎이 다 헛된 영화였음을 알고,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닫기에 이르러야 자손과 재화가 쓸데없음을 안다(홍자성). 인생은 허영과 죄악 속에서 태어난다. 아침 버섯처럼 이 세상에 나와 그 머릴 곧게 공중으로 치켜들고 얼마 안 있어 먼지로 화하여 없어진다(테일러). 이슬로 태어나 이슬로 사라지는 이내 몸, 인생의 어려운 물결도 꿈 또한 꿈이러니(토요토미 히네요시). 구슬픈 싯구로 내게 말하지 말라. 인생은 공허한 꿈에 지나지 않는다고! 잠자는 영혼이 죽은 것이기에 사물은 눈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거늘(롱 펠로).
‟할 말만 하세요”, ‟발언권 없어요” 기쁘게 참석한 총회에서 수 없이 들었던 말이다.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회의에서 진행자나 대의원 모두 할 말은 많고 다 할 수는 없어 실랑이를 벌이며 했던 모습이었다. 어디 총회만이겠는가? 그러나 작년 총회를 시작하며 “퇴장명령”에 대한 의장의 제안에 회원들이 기쁘게 받아 들였고, 총회를 진행하며 조금이라도 목소리가 높아지면 “퇴장명령”이 내려질지 몰라 소리를 낮추는 광경은 경직되는 회의 분위기에 웃음을 나게 만들었다. 감히 퇴장명령의 권한을 부여 받은 의장 앞에서 큰 소리 칠 수 있겠는가? 총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다시 되새겨 보며 웃음 짓던 말 “퇴장명령”, 그리고 종종 머리에서 되새겨지는 말이다. 회의에 방해가 되거나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다면 가차 없이 내려질 권한이 나라 국회 회의조차 난장판을 만드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해 보였다. 잘못 사용되는̒개인주의̓나, ̒자기 피알(P.R.)시대̓라는 말이 생겨서 독불장군처럼 자라나 자기의 의견만 내세우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기 쉬운 현대에서, 함께 협력하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되기 위해 자기 것을 양보하고 어느 땐 손해도 봐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회의에서
초등학교 1학년때 울릉도 저동 내수정의 바윗돌로 된 바닷가에서 미끼를 잘 뀌어준 삼촌의 도움으로 15마리 정도 잡은 4,5학년 형들보다 나는 갑절로 28마리의 우럭을 잡은 경험을 일평생 생생하게 잊을 수 없어 목회사역에도 사람 낚는 어부의 마음을 간직해 왔었다. 고기 잡는 데는 낚시대와 낚시바늘 그 이상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조그마한 기술도 있어야 한다. 고기 잡는 현명한 삶은 잡기를 원하는 고기의 습성들을 연구한다. 그런 다음 그는 조심스럽게 올바른 미끼를 선택하고 그의 낚시에서 능란하게 얼레를 당긴다. 예를 들어, 고물거리는 지렁이가 맛있는 후식이란 생각을 우리는 갖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고기에게 그것은 매력적으로 맛있다. 다음과 같이 통용되는 판매 전략이 있다. “존스(Jones)씨가 무엇을 살지 알기 원하다면, 당신은 죤스(Jones)씨의 눈을 통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고기 낚는 영적 어부도 전도대상자의 영적 욕구와 기타의 내면을 잘 꿰뚫어 보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복음을 잘 전해야 한다. 언덕 꼭대기에 있는 논에서 일하던 농부가 땅이 갑자기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깜짝 놀라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먼 바다를 바라보았을 때에 바닷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라고 예수님은 선언했는데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목사님, 좀 도와주세요!” 어느 주일 남루한 옷을 입고 술이 덜 깼는지 말도 또렷하지 못하고 얼굴이 검푸른 50대의 새 얼굴의 사람이 예배 전에 일찍 찾아와서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는 구룡마을에 사는데 먹고 살기가 힘들어 찾아왔으니 제발 좀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언젠가 성탄절을 앞두고 극동방송국의 행사에 초대되어 갔더니 구룡마을 무허가 주택의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하고 있어 빈손으로 갈 수 없어 갖고 간 봉투를 김 목사님의 선한 뜻대로 사용되게 전달한 일이 기억나서 예배 후에 박종수 씨를 위해 헌금함에 도움의 손길을 광고했더니 개척교회 가난한 성도들이지만 15만원이 되어 기도하고 잘 전달해 줬다. 그런 후 매주일 예배에 일찍 와서 도와달라고 부탁하여 예배 후에 우리들이 개인적으로 도우다가 교회의 구호헌금에서 도왔다. 2년째에는 매주 돈 받으려 나온 걸인이 성수주일 교인이 되더니 한 달에 두세 번씩 왔다. 아마도 돕는 액수가 차츰 줄어드니까 예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