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 따라 산 넘고 바다 건너모든 길이 차단된 저 산정에 오르기 위해 많은 도구 필요치 않네구부러진 막대기 하나, 낡은 옷 한 벌로 족하네구름도 쉬어가는 저 산정 내려오기 위해 복잡한 서류 필요치 않네그동안 빌려 입은 낡은 육신 벗어놓고 바람밧줄이면 족하네-메갈로 메테오른이병구 지각티스 강가에서유럽의 복음화는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해 네압볼리에 도착함으로 시작됐다. “신도시”라는 뜻을 가진 작은 항구도시 네압볼리는 비잔틴시대에는 “크리스토폴리”로 불리다가 오스만통치 이후로는 “말잔등”이라는 뜻의 까발라로 불리고 있다. 까발라에는 사도 바울의 “비마”자리가 있다. 비마란 강단이라는 뜻인데 배에서 내린 바울이 여기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처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비마자리에는 바울이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건너온 일화가 모자이크벽화에 그려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까발라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호텔 측에서 마련해준 장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순례는 네압볼리에서 시작해서 빌립보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베뢰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와 메테오라와 고린도 그리고 아테네로 이어졌다. 그리스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파묵칼레)늦은 저녁 카이세리공항을 나서자 투어버스는 우리를 에바노스의 에브라시아호텔에 풀어놓았다. 드디어 터키중부의 갑바도기아에 온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파사바, 젤베, 괴레메, 우치히사르 계곡을 둘러봤다. 이 계곡들은 오래전에 에스시에르산의 화산폭발로 형성된 기묘한 지형이 특징이다. 우연히 이곳을 여행하던 벨기에 작가 피에르 클리프드는 버섯모양의 원추형 봉우리들과 토굴속의 집단거주지를 보고 만화영화 “스머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특히 괴레메계곡에는 크고 작은 365개의 동굴교회가 있었다. 오랜 세월로 인해 훼손을 피할 수 없었으나 일부 예배당은 여전히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기법의 성화로 장식되어 있어 보는 이의 눈을 복되게 하였다. 본래 이들 예배당과 주거지는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으나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훼손되어 지금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괴레메동굴교회를 둘러보고 차로 30여분 떨어진 데린구유로 갔다. 데린구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지하도시다. 깊이가 55m에 8층 높이의 지하도시로 7천명은 충분히 살 수 있는 규모다. 동굴은 지하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데 통로마다 외부침입을 막기 위해 돌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하도시에
모든 여행은 저마다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 헤아려보면 들에 핀 들풀조차 의미덩어리일진데 삶의 한 조각을 떼어 잠시 낯선 거리에 세우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의미 있겠는가. 낯설음을 통해 신선한 혼란을 맛보고 다름을 통해 공존의 방식을 체득하는 일은 여행이 주는 큰 혜택이다. 더욱이 팔레스틴이라는 변두리에서 시작된 기독교를 세계화시키는 데 공헌한 바울일행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일은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자들에게 흥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행로를 단순한 여행에서 순례로 격을 올려도 무방하리라.2014년 4월 1일을 불과 5분 남겨놓고 우리는 잠시 조국을 떠났다. 어둠이 자욱한 인천공항을 이륙한 철새는 묵직한 몸을 이끌고 하염없이 서쪽으로 날아갔다. 갈 길이 멀다는 사실에 주눅 든 여행객들은 담요를 목까지 끌어당겨 잠을 청하고 어떤 이들은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의자에 붙은 모니터에서 액션영화를 골라보았다. 허리가 뒤틀려 화장실에 한두 번 다녀오고, 배달된 밥상을 두어 차례 비우는 동안 철새는 새로운 둥지를 찾아 쉼 없이 날개 짓을 하였다. 드디어 이스탄불이다. 땅에서 발을 뗀지 11시간 만이었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서니 터키파 투어버스가 대기하고 있었
침례신학대학교 세계선교훈련원(WMTC 원장 최원진)에서는 in2mission(선교학교)를 통하여 지난 1월과 2월에 훈련원장인 최원진 교수와 스탭을 포함해 4개국(인도,네팔,잠비아,요르단)으로 22명의 학생들이 선교현장실습을 다녀왔다. 인도팀은 어린이사역과 현지인 교회사역을, 네팔팀은 고아원과 현지 학교사역을, 잠비아팀은 4교회 총 1000명의 어린이사역(성경학교)을, 요르단팀은 시리아난민, MK사역 등 어린이 사역을 중점적으로 돕고 왔다.최원진 원장은 “신학생들이 선교현장을 밟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더 알아가고, 도전과 비전을 받는 귀한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선교 현장실습(단기선교)을 통하여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타문화권의 민족과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선교의 헌신자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선교훈련원은 매년 봄과 가을로 대학에서 교양과목 및 “in2mission” 선교학교를 개설해 재학생을 대상으로 선교동원을 하고 있으며 선교학교를 마치면 여름 및 겨울방학을 이용해 선교지에서 선교현장실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여름방학에도 “세계선교훈련원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이라는 주제로 2개국(인도, 요르단) 선
1. 기획단계 : 3~6월지구촌교회 여름단기 선교를 준비하면서 선교다큐멘터리 기획단계에서는 기존의 선교다큐의 형식과 내용적인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영상을 제작하기로 기획을 세워나갔다. 국내의 단기선교팀이 공연준비를 하고 선교물품을 준비하여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가서 물질적으로 돕고 전도를 하는 선교의 일반적인 내용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가 선교일정에 녹아들고 그 내용을 통해 복음을 알고 현지의 어려움을 정보전달을 통해 표현해 정보전달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고민을 했었다. 그러는 와중에 선교팀 가운데 다문화예배부, 즉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선교하는 팀에 흥미를 느끼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시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취재하고 국내촬영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출연자들이 한국어가 서툴기도 했고 다문화예배부에는 아직까지 비자가 해결되지 않아 촬영을 하게 되면 분위기가 민감해져서 자칫 제작진행 중에 이들이 불안감에 교회를 떠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본격적인 촬영 시작 1개월 전부터 담당목사와 면담을 하고 다문화예배부에서 제작팀을 소개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한 땅에 저를 옮겨 앉히셨습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이곳, 메마르고 가난한 이 땅. … 하지만 주님 순종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뜻 따를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이루시리….” -언더우드의 기도 중에서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다시 읽게 된 언더우드 선교사이 기도문의 일부이다. 선교지에 처음 발을 디딘 언더우드 선교사의 마음의 고백에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애절하면서도 단호한 고백이 몽골의 메마른 이미지와 동시에 떠오르며, 다시금 몽골을 위해서 기도하게 했다. 몽골에서의 사역은 네 가지 영역에서 진행됐다. 첫째는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돌아간 몽골지체들 모임인 거룩한 믿음회가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것이며, 둘째는 몽골의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찬양 인도와 악기 연주를 가르쳐서 이들이 찬양인도자, 반주자로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이다. 셋째는 현지 개척 교회에 의약품과 의료 물품을 전달하고 그들이 진행하
“엄마의 빗자루 냄새입니다.”몽골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엄마의 빗자루 냄새’였다. 몽골에 도착하자 그냥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먼지 냄새였다. 정확히 우리 단기 선교팀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바로 건조한 사막에서 나는 먼지 냄새였다. 그런데 이 먼지 냄새를 맡으면서 두 가지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나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미지와 다른 하나는 메마른 영혼들이 사는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결심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때의 순수한 시절의 믿음으로 메마른 영혼들을 섬기겠노라고 말이다. 몽골은 유목민의 전통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 곳 저 곳을 철따라 옮겨 다닌다. 물론 지금은 정착 생활이 많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유목민 시절에 사용하던 임시 텐트인 ‘게르’를 주거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르는 몽골 전체 주택에 약 40% 정도를 차지하고, 시골 뿐만 아니라 높은 아파트가 있는 울란바토르(수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게르는 천막으로 온 가족이 함께 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각 방이라는 개념이 없는 몽골 유목민들은 어린 아이부터 부모까지 한
“여전히 행복해요?”호기 자매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호기 자매는 2006년에 돈 벌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서울에서 몇 년 일하고 성남에 있는 직장으로 옮겨왔을 때, 가까운 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지구촌교회 다문화 예배부를 알게 되어 교회에 출석하게 된 자매다. 얼마 후 호기 자매는 바야라 형제를 만나게 된다. 바야라 형제는 어머니의 재혼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어려움 속에 성장했지만, 호기 자매와 예수님을 한국에서 만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다 보상 받았다고 고백한 형제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2012년도 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바야라 형제가 먼저 천국으로 가게된 것이다. 그때 호기 자매는 태중에 아들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한국에서 신앙을 지키면서 승리(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 봤다. “저는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힘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행복합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지금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어가 많은 늘은 호기 자매는 정확하고, 씩씩하게 여전히 행복하다고, 당당히 이
‘각오한 일입니다!’ 몇 자 되지도 않는 문장이지만, 읽는 순간 느껴지는 단호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조금은 위축되게 한다. 보통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앞에 두고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이 말을 들은 것은 공중파 방송국의 ‘기황후’라는 드라마에서다. 이 드라마는 고려 시대 지금의 몽골인 원나라에 공녀(원나라의 요구에 따라 고려 왕조가 원나라로 보낸 여자들)로 팔려간 여주인공이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황후가 된다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지원이 극중에서 열연하고 있는 ‘기승냥’의 전쟁 같은 하루하루에 많이 공감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광고도 많이 붙었다고 한다.몽골과 한국의 역사 고증에 의하면, 기황후는 실제 존재하였던 인물이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많은 몽골 사람들은 몽골 역사 속에 등장하는 고려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을 ‘스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면서 매우 친근하게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기황후’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근에 한국을 친근하여 여기는 몽골 사람들이 ‘각오한 일입니다’ 라는 결심으로 한국에 오고 있다. 이들은
선교사 협력 체계 구축…지역교회 중심 사역 강조필리핀 선교에 대한 한결같은 열정으로 달려온 아멘선교회 이진선 목사(81). 교회 은퇴 이후에도 변함없이 아멘선교회를 이끌면서 필리핀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인도,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세네갈 등 세계 주요 곳곳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특히 필리핀에서 진행되는 한비전도대회는 21차에 걸쳐 수많은 필리핀 영혼이 예수를 영접하고 복음의 문으로 들어갔다. 이 사역의 첫 걸음을 띈 것이 바로 이진선 목사였다.그동안 한비전도대회를 이끌어온 이진선 목사가 필리핀 선교에 모든 열정을 쏟는 이유는 바로 선교와 전도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 스스로 선교사로 나서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지만 결국 선교를 돕고 후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직접 선교지에서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하는 마음을 품었던 것이다.이진선 목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목회자의 삶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또한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지키고 따르는 게 우리의 사명임을 항상 머리에 떠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전도대회를 시작하면서 수많은 교회들이 함께 해왔다. 작은 교회, 큰 교회에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