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계의 상황에서, 소위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King James Bible Onlyism)를 추종하는 부류는 크게 둘로 나뉜다. 90년대 초에, 탁명환과 최삼경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서달석, 그리고 곧바로 등장한 이송오, 이 두 사람과 그 각각의 진영은 일종의 급진파로서 1611년 킹제임스성경을 철저하게 추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참된 구원이 없는 사람들, 즉 진짜 기독교인들이 아니라고 여긴다. 이들은 자신들을 ‘성경을 믿는 자들’(Bible-believers)이란 용어로 지칭함으로써, 자신들 이외의 신자들을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간단히 정리한 셈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들만이 바울의 안디옥교회 전통,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신앙전통과 유산을 계승한다고 믿으며,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을 오리겐처럼 철학에 의해 신앙을 변질시킨 알렉산드리아 전통을 계승한다고 믿는다. 오리겐이 변개한 ‘거짓된 성경’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화해 황제주의적 기독교를 창안하는데 이용했고, 이 사탄적 교회가 로마 가톨릭으로 성장했고, 여타의 개신교회들은 사실상 로마 가톨릭의 변종들이라고 믿는다. 킹제임스 유일주의라는 동일한 신조를 고수하지만, 서달석과
미국에서 스코필드관주성경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과 이민자 집단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굳이 번역하자면 ‘거룩한 책’이란 이름의 영어성경은 그 성경본문이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이라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착각 또한 마치 진실인 것처럼 각인됐다. 킹제임스 영어성경 또한 다른 모든 ‘번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일개 번역성경에 불과하다. 따라서 번역자들이 안고 있는 부족한 지식과 언어의 한계, 착각과 오류가 개입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킹제임스성경’이라고 불리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다른 모든 번역성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하나님께서 직접 세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영감받아 기록된 원문성경에 버금가는 영적 권위와 효력을 갖는다는 망상이 저 유명한 스코필드관주성경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착각이다. 1909년에 출간된 ‘스코필드성경’의 본문은 1611년 첫 출간 당시의 영어문장일 수 없다. 영국 국교회를 가톨릭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한 제임스 1세 국왕과 당시 번역위원회가 로마 가톨릭의 ‘벌게이트’(라틴어 성경)를 추종한 흔적이 역력하고, 마리아를 숭배하는 문장과 그림으로 장식하기
영어성경 가운데 아직까지 넘사벽인 성경으로 인정받는 것이 KJV이다. 그러나 그 탁월함을 절대적인 것 혹은 불변적으로 독보적인 것으로 간주해도 될 정도의 넘사벽이 아니며, 다른 모든 번역성경을 읽어볼 가치가 없는 것으로 만들었을 정도의 넘사벽이 아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NIV 성경이나 개역한글 성경을 보면 성경에 무지해진다거나 구원에 문제가 생긴다거나 걱정이 된다면,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라는 전염병에 접촉됐고 감염되기 시작했다고 의심해야 마땅하다. KJV 즉, Version이 아니라 KJB 즉, Bible이라고 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걱정이 들어도 마찬가지다. 말씀보존학회 이송오 쪽에서 생각한 것처럼,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성령의 특별한 영감을 받았고 그 결과물인 번역텍스트(KJV 본문)가 고귀한 영감이 서려있는 산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단으로 정죄받은 무리에 속하기 시작한 셈이다. 독립침례교회 정동수 쪽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개역한글 혹은 개역개정 성경이 로마 가톨릭의 라틴어성경(벌게이트)의 뿌리가 되는, 소위 ‘오염’된 사본의 영향을 받았고, 킹제임스 성경은 순수한 사본을 ‘단어 대 단어’로 정확하게 번역했기 때문에, 계시된 말씀을
‘명품’의 가치는 헤아릴 수가 없다. 그 가격이 평범한 사람의 상상력을 뛰어넘지만, 실상 명품의 가치에는 그 가치를 이룬 비할 수 없는 탁월함과 역사와 전통이 흠잡을 데 없이 스며들어 있기에 그 값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세월이 명품의 수준을 뒷받침하지만 수많은 아류뿐만 아니라 자기 분야의 거의 모든 물건을 하류로 밀어버릴 만큼의 압도적인 기술력과 기량,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그 분야를 대표하고 주도하는, 위풍당당한 물건이 ‘명품’이라면, 그런 명품은 단순한 ‘럭셔리’와는 차별된 좋은 것이다. 그런 명품을 소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정말이지 복된 인생이다. ‘교회’에도 명품이 있을까? 교회가 정말이지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지만 명품 교회라고 인정할만한 교회가 있다면 어떨까? 물론, 한국교회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고, 세계 최대의 교회라는 타이틀을 기네스북에 올린 교회도 있다. 3000억 원가량의 건축비가 사용된, 그리고 건축상을 받은 교회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유명한 교회는 아직 ‘명품’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 품격이 그 내면에 깊숙이 배어있으며, 교회다움을 아는 이들이 흠모하는 그런 명품스러운 교회가 아직은 없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성경침례교회는 그 원조가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이다. 다시 말하면, 기존에 성장하고 있던 어떤 나무에서 가지가 새로 돋아나고 뻗어나간 그런 측면에서, ‘성경적으로 잘 한다’라는 이상과 ‘침례교 정신’이라는 이상이 정상적으로 안착한 사례로 볼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라는 이상을 중심으로, ‘킹제임스 유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시작된 신흥 종파라고 보는 것이 훨씬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은 김포에 자리잡은 성경침례교회가 본래 말씀보존학회 이송오 씨가 ‘킹제임스 유일주의’에 동조하는 이들과 함께 1992년 4월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서 창립한 교회다. 췌장암으로 투병하던 2022년 1월에 사망한 이송오 씨를 이어 박승용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로 이끌고 있다. 이송오는 미국의 Pacific Coast Baptist Bible College(신학사), Liberty University(석사), Californ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신학석사, 박사) 등에서 수학했다. 무엇보다도 미국 펜사콜라 성경신학원(PBI)의 피터 럭크만에게서 지대한 영향을 받고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KJB Onlyism)라
필자는 종종 ‘어떤 성경이 가장 좋은 성경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 질문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다.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른 답변이 필요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래서 질문자 자신도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한 ‘궁금증’의 원천을 찾아보면 대개는 두 개의 질문으로 정리된다. 그렇게 수렴되는 이유는, 필자가 제작해 올리는 설교 동영상에서 설교 본문을 아직도 ‘개역한글’을 사용한다고 명시하고, 개역한글 본문을 기준으로 설교하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필자의 유튜브 채널 “임원주 목사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에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라는 이의 신학과 이 사람이 주장하는 소위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KJB onlyism)를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다수의 동영상을 제작하여 올렸기 때문이다. 정동수 씨가 ‘사랑침례교회’란 교회를 개척하고 성공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는 영어공부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어떤 영어성경을 사용하면 도움이 될까 혹은, KJV을 공부하면 성경지식과 더불어 영어실력이 좋아지는지에 대한 질문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킹제임스 유일주의는 본래 미국에서 세대주의가 위세를 떨치면서 등장한 20세기 미국적 현상이다. 1611년
2021년 2월 무렵부터, 유튜브 채널에 동영상을 만들어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관련 기술이나 요령을 하나도 모른 채 시작했다. 동영상을 어떻게, 무엇으로 촬영하느냐는 것도 모르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손에 든 핸드폰으로 시작했다. 어떻게 편집하는지도, 어떤 편집 프로그램이 좋은지도 몰랐다. 당장 필요한 것부터, 하나 둘씩 유튜브에서 찾아 시청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잘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점점 구체적이 되고, 무엇보다도 내가 만든 동영상의 문제점들이 너무 잘 보이니, 온갖 종류의 잘 만들었다고 할만한 동영상들을 반복적으로 찾아보게 된다. 그러다가 유명하다는 뮤직비디오 동영상까지도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가 최근에, 중소 연예기획사가 키워낸 ‘걸그룹’ 하나가 출범 1년이 안 되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됐지만, 돌연 걸그룹 멤버들이 기획사 대표를 상대로 ‘전속계약 무효 가처분’ 소송을 제기한 일이 벌어졌다. 음악과 동영상, 그리고 프로모션에 관련된 업계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전한 싸움이 되다보니, 비록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배울만한 기본적인 기량들이 자연스럽게 발휘된 동영상들을 접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보니, 유튜브 자체
필자가 학부과정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고, 평생 추구해야할 모델 신학자는 헨리 디이슨(Henry C. Thiessen, 1883~1947)이었다. 조직신학 수업 도중에 존 웨슬리의 신학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가 이러한 중도노선을 추구하는 신뢰할만한 신학자로 ‘헨리 디이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시 교수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헨리 디이슨’의 신학노선은 바로 침례교 신학노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장 원서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고 침례교회가 대단히 보수적이며 대단히 건전한 신학을 견지한다고 믿게 됐다. 학부를 졸업하고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신학교 M.Div. 과정에 진학할 때에는, 신학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는 하지만, ‘헨리 디이슨’ 혹은 그 사상적 계보를 잇는 신학을 제대로 접하게 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1947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인이었기에 시대적 한계로 인해, 신학에 몇 가지 치명적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매우 건전한 조직신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큼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전에 내려와보니 침신대는
6월 9일부터 진행한, ‘다음세대부흥위원회’ 주관의 전국 침례교회 릴레이 기도회가 한국교계의 모 주요 언론지에 기사화됐다. 이 기사는 김인환 총회장의 발언을 빌어 “‘다음 세대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복하며…아울러 다음 세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후원하며 침례교회의 미래를 바라보기를 원한다’고 취지를 밝혔다”라고 전한다. 김인환 총회장의 발언에 포함된, 지금 다음 세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통찰력과 다음 세대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는 당위성, 그리고 간절한 소망은 전적으로 동의할만하다. 아니, 어떤 누구라도 감히 부정하지 아니할 것이다. 특히, 두 번째 문구 “우리의 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자복하며”라는 말은 절실하게 맞는 말이다. 정확하게 맞는 말이기 때문에, 그리고 다음 세대가 무너진 중요한 원인제공자가 바로 지금 우리이고,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비록 가슴이 아프더라도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부족함 없이 철저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 정말이지, 올바른 방향설정이다. 그런데 12일간에 걸쳐 진행되는, 12개 교회의 명단은 우리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들인 셈인데 모범적이며 바람직한 모델일까에 대해 의구심이
성경이 가르치는 믿음은 비록 사람이 믿는 것이며, 사람이 믿기로 결단해 믿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로부터 오는, 그 기원과 출처가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하심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바울은 이 내용을 간단히 압축해 ‘선물’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엡 2:8~9). 그래서 교회를 좀 다녔다고 한다면 이 내용과 이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따라서 누구든지 믿음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이 구절의 개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몇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류의 의구심이 조금도 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개는 크게 실패하거나 낙담하거나 큰 죄책감에 짓눌려 견디지 못한 채 하나님 앞에 엎드린 사람들이 보여주는 믿음의 경우다. 성경적 믿음의 정의에 기본적으로 깔린 개념은 ‘도구’이며, 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인데, 정말이지 사람이 이 기본개념에 충실해지는 것은 자신감, 자존감, 자부심을 상실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실패의 상태에 있을 때, 의기소침해져 있을 때, 자신감을 잃었을 때 겸손한 태도를 갖
우리 교단은 결코 작은 교단이 아니다. 성경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도 뛰어나다. 뿌리도 깊다. 게다가 이 땅에 오롯이 하나로 우뚝 서 있다. 따라서 하나가 둘로 갈라져 어느 쪽이 진짜냐, 누가 장자교단이냐는 식의 싸움이 우리 교단에는 없다. 한국 개신교단 가운데 우리와 같은 교단이 없다. 침례교인으로서 당당한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물론, 선배 목사님들의 지혜와 각별한 헌신과 협동의 정신이 맺은 결실이다. 그러나 역할 혹은 기여라는 측면에서는 ‘너무 부족하다’라는 것 역시 사실이다. 두 가지 부분에서 그러한데 첫째는 침례교회의 역사적 뿌리와 정체성에서 그러하다. 고유하면서도 정통적인 역사, 그리고 신학적으로도 완숙한 정치체제를 갖췄다고 평가될 수 있는 교파/교단은 극히 적다.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이 셋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와 부흥운동이라는 특기할만한 역사를 갖추고 있지만 웨슬리는 충분히 정립된 조직신학을 남기지 않았다. 반면에, 침례교회는 확고한 성경적 신학과 교회론 위에서 출발했다. 교회와 신학의 그 역사성과 정밀성을 피로써 입증했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탈바꿈하는 데에는 장로교인들의 역할이 컸
‘우연’을 믿는 사람일지라도 우연이 겹치면 우연이라고 믿지 못한다. 필연이라고 믿는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며 섭리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이라고 믿는다. 그렇다. 성경은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뿌린 대로 거둔다고 가르친다. 1945년 8월 6일 이른 아침, 특별하게 제작된 B-29 폭격기들이 일본을 향해 이륙했다. 특별한 폭격임무를 위해 특별제작된 폭탄을 투하할 폭격기 ‘에놀라게이’를, 특별편성된 비행전대장 폴 티비츠 대령이 직접 조종했다. 이보다 1시간 전에, 3대의 B-29 폭격기가 먼저 이륙했다. 1대는 고쿠라, 다른 1대는 히로시마, 다른 1대는 나가사키, 이렇게 일본의 세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각 도시의 기상상황이 폭탄투하에 적합한지를 관측해서, 에놀라게이를 조종하는 폴 티비츠 대령에게 보고하는 것이 임무였다. 어쩌다 나가사키가 아닌 히로시마였을까? 폴 티비츠 대령은 고쿠라와 히로시마의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끼어 있었지만 나가사키의 상공만이 맑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히로시마 상공을 비행하던 B-29로부터 연락이 왔다. 히로시마 상공의 구름이 갑자기 걷히면서 시계가 아주 좋아졌다는 보고였다. 게다가 일본군 요격기도 보
2023년 2월 27일 한국침례신학대학교(한국침신대) 이사회는 혹독한 산고를 겪은 끝에 제15대 총장을 선출하는데 성공했다. 관련 당사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는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물론, 대학이사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10년에 걸친 분란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다고 말할 이들도 있겠지만 고통은 산술적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다. 고통이 크기만큼 결실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눈물을 흘리며 뿌린 씨앗을 기쁨의 결실로 바꾸는 것, 한국침신대의 생존만이 아니라 교단 전체에 비전을 제시하는 것 등의 수많은 과제가 신임 총장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대학총장의 중요성은 총회장 몇 명을 합친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교단의 백년대계를 책임진다. 대학총장의 비전은 교단정치에 뛰어드는 이들이 제시하는 ‘청사진’ 혹은 ‘비전’과는 도무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 교단의 목회자들, 침례교인들이 한국사회에서 받는 평가의 가장 큰 몫의 책임은 역대 총장들이 짊어져야 한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라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린 이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농부는 1년 동안 흘린 피와 눈물과 땀의 양과 무게로 평가받지 않는다. 얼
지금 세상은 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졌다.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다.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많이 소유하기 위해 돈을 쫓아 살았다. 그러다보니 인격이 작아졌다. 가족을 놓쳤다. 건강을 잃었다. 크게 소유했지만 존재의 크기는 작아졌고, 행복을 잃었다. 감히 말해본다 식욕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다. 사는 동안 불필요한 잉여욕망과 싸워야 한다. 새들은 적게 먹고 적게 배설한다. 새들은 날기 위해서 뼛속까지 비운다. 그렇다고 새들이 불행하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뼛속까지 비웠다고 새들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잘 먹고, 잘 산다. 가진 것이 적었을 때가 걱정거리가 가장 적었다. 감히 말해본다. 부족할 때 보다는 풍족했을 때 더 괴로움이 많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적게 가지면 괴로움도 적고, 바라는 것이 작으면 불
미국 대선 레이스가 한창 진행 중이다. 공화당 트럼프는 재선을 위한 SNS 정치를 계속하고 있고, 민주당은 트럼프와 맞서 승리할 후보를 고르는 중에 있다. 현재까지는 버그 샌더스와 부통령을 지낸 조바이든, 동성애자 부티지지 등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그 외의 다른 후보들이 열심히 뛰고 있지만 아마도 이들 중 한 후보가 대선전에서 트럼프와 치열한 혈투를 벌일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트럼프와 상대할 후보군에서는 멀어져 있지만 유권자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는 한 후보가 있다. 그는 0%의 지지율에서 최근 8%까지 끌어 올리는 놀라움을 주고 있는 대만계인 앤드류 양 갱(Yang Gang)이다. 그는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 4위에 올라 있고 그의 지지층 표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어느 날 혜성같이 나타난 그가 이렇게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정치적 기반 또는 배경 때문이 아닌 그의 선거운동 방식 때문이다. 그의 선거운동 방식을 연구한 언론은 첫째, ‘좌도 우도 아닌 새로운 지지층’ 둘째, ‘해시(#)태그와 인터넷 신조어로 무장’ 셋째, ‘숫자(math)로 설득’ 넷째, ‘즐기면서 선거 운동’ 등 네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분명 진보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