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스코필드관주성경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가난한 노동자 계층과 이민자 집단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굳이 번역하자면 ‘거룩한 책’이란 이름의 영어성경은 그 성경본문이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이라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착각 또한 마치 진실인 것처럼 각인됐다.
킹제임스 영어성경 또한 다른 모든 ‘번역성경’과 마찬가지로 일개 번역성경에 불과하다. 따라서 번역자들이 안고 있는 부족한 지식과 언어의 한계, 착각과 오류가 개입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서 ‘킹제임스성경’이라고 불리는 것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 영어성경은 다른 모든 번역성경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며, 하나님께서 직접 세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영감받아 기록된 원문성경에 버금가는 영적 권위와 효력을 갖는다는 망상이 저 유명한 스코필드관주성경이 만들어낸 치명적인 착각이다. 1909년에 출간된 ‘스코필드성경’의 본문은 1611년 첫 출간 당시의 영어문장일 수 없다. 영국 국교회를 가톨릭으로 복귀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한 제임스 1세 국왕과 당시 번역위원회가 로마 가톨릭의 ‘벌게이트’(라틴어 성경)를 추종한 흔적이 역력하고, 마리아를 숭배하는 문장과 그림으로 장식하기도 했고, 로마 가톨릭의 ‘위경들’을 성경에 그대로 끼워넣었다. 하여튼 1611년판은 다른 번역성경과 마찬가지로 몇 차례에 걸쳐 철저하게 개정됐다. 스코필드관주성경 또한 성경본문과 관주에 중대한 개정을 할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 개정판 때문에 세대주의자들도 중대한 분열을 겪게 된다. 개정판 스코필드성경을 신뢰하는 이들을 ‘개정세대주의자(들)’이라고 하고, 그 이전 판 스코필드성경을 의존하는 이들을 ‘전통적 세대주의자’로 구분된다. 20세기 말에는 전통적 세대주의 계시론을 버리고 정통 칼빈주의 계시관을 받아들인 세대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을 칼빈주의자의 특징인 계시의 점진성을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점진적 세대주의자(들)”이라 불린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라는 망상을 붙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 이 망상을 국내에 소개한 주요한 인물로 ‘서달석’이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서달석 목사 역시 킹제임스 유일주의 이론(?)을 옹호했고, 한글판 킹제임스성경을 출간했다. 1655년판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저본으로 하여, 2008년 무렵에 ‘한국킹제임스성서협회’ 명의로 완역판 킹제임스 성경을 출간했다. 하지만 서달석 목사는 1991년을 전후로 이단 논란이 제기됐다. 그 전부터 발표한 약 40종(편)에 달하는 서달석 목사의 글들이 ‘시한부 종말론’으로 유명한 이장림과 상당히 유사했거나 이장림이 이용(?)했기에 문제가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구원파와 흡사해 구원파와 연계된 것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서달석 목사의 글에 따르면, 서달석 목사가 처음으로 킹제임스 영어성경 번역을 시도했지만 탁명환, 최삼경 등과 이단시비를 벌이는 사이에, 이송오씨가 등장해 ‘킹제임스성경’을 한글로 번역 출간을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한글킹제임스성경’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했다. 이 번역작업을 근간으로 말씀보존학회와 성경침례교회를 창립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서달석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서달석 목사가 킹제임스성경 번역작업을 할 때 함께 했던 이창희라는 이가 번역자료를 가지고 이송오에게 합류했다. 한편, 이송오 씨는 우리 교단의 ‘총회출판부’(?)에서 잠시 사역했다고도 알려진 박만수라는 분과 공조해 킹제임스 성경을 번역해 ‘새성경’을 출간했으나, 결별했다. 박만수는 ‘안티오크’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설립했고, ‘권위역’이라는 이름으로 킹제임스성경 한글번역본을 출판하고 있다. 박만수가 자신의 출판사 명칭을 ‘안티오크’라고 한 까닭은 로마 가톨릭의 부패한 전승(특히, 바티칸 사본과 시내사본)은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며 신플라톤 철학에 의해 말씀을 변개한 오리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에 의해 확정된 것이다. 이에 반해, 안디옥 교인들은 말씀을 온전히 보존했는데 그 안디옥 교회의 사본 전승이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에게 전달되어 저본으로 사용됐다고 본다.
90년대 초반 무렵부터 서달석, 이송오, 박만수를 중심으로 킹제임스 진영이 분열했고, 서로 상대방의 번역에 치명적인 흠이 있는데 반해 자신의 번역만큼은 완전한 번역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논쟁을 벌인다. 이 논쟁은 킹제임스 유일주의 논쟁과 전혀 다른, 별개의 논쟁이다.
애초에 킹제임스 유일주의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에서 발생한, 일종의 미국식 무속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온전한 말씀이며, RV, NIV, NASV 등의 영어성경은 부패한 사본을 부패한 신학자들이 번역했기 때문에 읽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아무리 완전한 킹제임스 영어성경을 가져다가 한글로 번역했다면, 그 결과물은 원본과는 상관없이 그저 일개 한글 번역성경일 뿐이다. 번역출판본은 한글로 번역한 한글문장의 완성도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그러므로 영어성경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한글 번역성경 논쟁은 관계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서달석과 이송오 그리고 박만수 사이에 벌어진 성경논쟁 이외에도 킹제임스성경 신봉자들의 성경전쟁에 뛰어든 두 인물이 더 있다. 한 사람은 사랑침례교회를 창립한,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정동수라는 인물이다. 또 한 사람은 이송오가 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22년 1월 26일에 사망한 뒤에 이송오를 계승한 것으로 추측되는 윤경원이다.
정동수는 자신의 번역을 ‘킹제임스 흠정역’이라는 이름으로 내놨다가 최종적으로 ‘킹제임스 마제스티’라는 이름을 출간한다. 반면에, 윤경원은 2023년 4월 20일자로 ‘표준킹제임스성경’을 출판했다. 그리하여 정동수와 윤경원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본래, 서달석과 이송오 두 그룹은 급진파로 분류될 수 있다. 이들은 기존의 개신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개역한글 성경도 인정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반대하며, 구원이 없다고 하여 정통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됐다. 그런 와중에도 서달석파와 이송오파가 충돌했다.
반면에 정동수는 근본적으로는 이송오 등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입장이지만 기존의 정통교회들과 개역성경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아, 온건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윤경원과 표준킹제임스성경이 등장하자 정동수와 윤경원 사이에 어떤 번역본이 진짜 번역본인가 등에 대해 논쟁이 벌어졌다.
완전무결한 번역성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보자. 신약성경은 사도들이 ‘그리스’ 사람들의 언어로 기록했다. ‘그리스 언어’ 중에서도 B.C. 3세기~A.D. 3세기 사이의 헬라어를 ‘코이네 헬라어’라고 칭한다. 그 이전의 고전 헬라어가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인해 상당한 변형과 대중화가 이루지는, 변화를 겪어서 형성된 언어가 ‘코이네 헬라어’이다. 사도들이 신약성경 원본을 기록했다. 그것이 진짜 원본이다. 그런데 1000년 혹은 1500년 뒤의 그리스 사람들이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한 원본성경을 본다면 즉, A.D. 15세기 혹은 A.D. 18세기 그리스 사람들은 사도들의 문헌을 친숙하게 읽을 수 있을까? 언어 발달의 속성상 같은 그리스어라고 하더라도 번역에 가까운 개정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달석이 1655년판 킹제임스성경을 저본으로 삼는데 반해, 다른 이들은 대체로 1769년판을 저본으로 사용해 번역한다. 이 두 판의 시간차는 불과 100년 정도이지만 문법적인 발전의 차이는 상당하기 때문에, 1611년 초판의 오류들을 수정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판본을 저본으로 삼는 것 때문에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떤 판본을 저본으로 삼아 번역하더라도, 번역자의 번역철학이나 기술 및 역량으로 인한 의견차이와 이로 인한 논쟁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번역본을 출간하고, 자신의 번역본을 옹호한다. 이쯤 되면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 사상은 선전문구에 불과한 것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