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0일 드디어 새로운 총무가 선출됐다. 이번 총무 선거는 짧은 기간임에도 굉장히 치열한 선거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후보의 대의원권 문제와 특별감사 등 이런저런 문제로 선거 전부터 소송의 회오리가 몰아쳤기 때문이다. 총회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어게인 108차’일 것인가가 이번 선거에 달려있었다. 투표결과는 기호 2번 김일엽 목사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1차 투표는 2/3을 넘지 못해 2차로 넘어갔지만, 2차 투표 결과는 대의원들이 이제 교단이 소송이 아닌 사업총회로 나아갔으면 한다는 소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 교단은 총회는 물론이고 어느 곳이든 갈등과 소송으로 몸살을 앓았다. 급기야 지난 108차 총회는 소송비로 억대가 넘는 총회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자아냈다. 총무선거 직전에 이뤄진 특별감사 관련 보고시간에 소송비 관련 이야기가 나오자 모든 대의원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온 것은 지금까지 교단 역사상 이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이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올해는 3ㆍ1운동 100주년 기념의 해이고 침례교단적으로는 선교 130주년 되는 해다. 우리 침례교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앞으로 해야
#장면1 2014년 11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는 각 교단 목회자를 초청해 개인이 속한 교단의 정체성과 장단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총평을 담당한 손봉호 교수는 “각 교단의 강조점의 차이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침례와 여성 안수 외에는 교단 간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고, 평신도들은 대부분 그 차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다”며 “교단은 오직 목회자들에게만 어느 정도의 정치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평신도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날 월례회에 발제자로 나선 각 교단 목회자들은 교단의 정체성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면2 침례신문에 입사한 후 침례교회를 다니기 위해 교단에 이름난 몇 교회에 출석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청년부 사역자 대부분이 침례신문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교단 소속 사역자라면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신문에 관심을 갖고 이를 통해 교단의 현황이나 필요한 정보를 얻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됐지만, 그동안 대화를 나눴던 청년부 사역자들 상당수는 이러한 일에 신경을 쏟는 이들을찾아보기란 힘들었다. #장면3 109차 총회는 지난 10월 17~18일 여의
지난 108차 총회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싸움을 위해 시작됐고, 싸움만 했으며, 싸움으로 막을 내린 침례교의 불행이라 평하고 싶다. 기자는 108차 총회 회기가 시작한 후 처음 가진 총회장 인터뷰에서 “총회장님께선 교회세움을 위해 총회장에 계속 도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교회세움을 위해서는 침례교 내에 상존한 갈등을 매듭짓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총회장님께서 용기있게 나서서 상대 진영에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하실 의향은 없으신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종철 총회장은 “누가 나를 공격만 하지 않는다면 나도 싸울 이유가 없다. 하지만 누가 날 공격한다면 나도 짱돌을 들고 대응할 것”이라고 답을 했다. 누가 한쪽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내미는 것이 성경 말씀인지라 과연 목회자, 특히 3500여 침례교회의 수장이 할 만한 답인지 의아하긴 했지만, 설마 회기 내내 총회 운영은 뒷전이고 싸움만 하다가 끝낼지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아마 침례교 역사상 이런 총회는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총무는 물론 은혜재단, 선관위, 침신대 등에 지속적으로 싸움을 걸어 오히려 뺨 맞고 짱돌들게 한 쪽은 108차 총회가 아닌지 곱씹게 하는 상황이 연속으로 연출됐고, 총
솔개의 수명과 관련된 예화가 있다. 솔개의 최대 수명은 약 70세인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40세가 됐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노화된 발톱을 뽑고 길게 자란 부리를 깨뜨려 다시 자라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이 설교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거듭나 바로 살아가기 위해선 솔개가 했던 것처럼 발톱을 뽑고 부리를 깨뜨리는 결심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나 또한 그 설교에 은혜를 받았던 한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가짜뉴스이다. 솔개가 부리를 깨뜨리면 그것은 그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이며 부리가 다시 자라나지도 않는다고 한다. 은혜를 위해 가짜뉴스가 강단에서 선포된 것이다. 예화별로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으나 설교에서 사용되는 가짜뉴스는 지금 당장은 은혜로 작용할지 몰라도 건강하다고는 볼 수 없기에 올바른 분별이 필요하다. 설교의 무게감과 책임감은 그 어떤 예배순서보다 크다. 종교개혁 당시 만인제사장을 부르짖은 마르틴 루터 또한 이 사실을 잘 알기에 목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보전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주류 교회 대부분의 예배순서에서도 설교의 비중은 크게 작
군 복무 시절 정신교육 시간에 우리 군의 주적에 대해 “북한 주민을 제외한 군·당·정”이라고 교육을 받았다. 최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주적의 개념을 놓고 볼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무조건으로 반일을 한다며 일본과의 모든 관계를 끊어야 맞는 지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일본인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 이 일을 야기시킨 일본 아베정권에 화살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일본선교에 소명을 품고 있던 나는 대학생 시절 매년 여름마다 통역을 위해 일본 오사카 부근에 있는 히라가타시(枚方市)의 한 교회로 단기선교를 떠났다. 분주한 일정이었지만 현지 교회의 일본인 목사는 강제징용된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살던 마을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정을 빼놓지 않았다. 일제가 당시 우리 국민들에게 어떤 죄악을 저질렀는지 빠짐없이 고백하며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대신 사죄했다. 이 일본인 목회자의 진심어린 사죄를 통역할 때마다 일본선교에 대한 나의 마음은 커져갔다. 일본이 복음으로 변화되면 회개의 불길이 일어나 한일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고 여기서 더 나아가 중동과…
결과를 떠나 북미정상회담은 대한민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빅 이벤트였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한반도의 상황은 중동과 함께 세계의 화약고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북미정상회담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우던 평양 땅에 다시금 교회를 회복시키길 바라는 한국교회에게 북미정상회담은 크나큰 의미로 다가왔다. 특히 우리 교단에게도 북한 땅은 언젠간 다시금 십자가를 바로 세워야 할 고향이다. 교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말콤 펜윅 선교사는 26세 되던 1889년 12월 어느 날, 한국으로 가라는 부르심을 받고 1901년 원산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단의 기틀을 닦았다. 공주, 강경, 칠산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던 엘라씽선교회를 인수한 후 신명균 목사를 통해 충청권에서도 활발한 복음 사역을 펼쳤지만 원산에서의 사역을 빼놓고 침례교의 역사를 논할 수는 없을 만큼 그곳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현재 북한에 억류돼 있는 침례교 선교사들도 아직 풀려나지 않은 채 고초를 겪고 있기 때문에도 북한의 문을 여는 기도는 절대로 소홀히 해선 안된다. 그렇기에 원산을 비롯한 북한 땅의 회복을 위한 기도가 교단 안에서 중점적
#장면 1. 계시보다 왕을 원함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의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이는 사사시대를 한 줄로 표현하는 문장이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우리에게도 왕을 달라고 호소한다. 자신들이 이방민족에게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강력한 왕이 없어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우여곡절 끝에 사무엘을 마지막으로 사사시대가 종료되고 왕국시대가 펼쳐진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그런 시대가 열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따르는 것으로 보인다. 열왕기서나 역대서를 보더라도 하나님 뜻에 합한 왕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장면 2. 엠마오 제자들처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약속을 성취하고자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다. 마침 유대민족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전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구원에 대한 관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정치적 메시아를 원했던 제자들과 인간을 원죄에서 벗어나게 해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두 구도는…
총회가 끝났다. 논쟁보다는 화합과 미래를 위한 대의원들의 합심으로 예정보다 하루 빠른 날짜에 마무리가 됐다. 규약 개정도 90%가 통과됐다. 교단발전의 미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총회로 마무리 지어졌다.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가 남았다. 그것은 바로 선거만 끝나면 썰물처럼 총회 회의 현장이 텅 비어버린다는 점이다. 물론 타 교단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총회 현장의 대의원 숫자가 줄어들긴 하지만 우리교단은 그 현상이 더욱 심한 느낌이다. 선거 당일 앉을 자리 없이 빼곡히 들어선 대의원들이 선거만 끝나면 어디로 갔는지 도통 알 수 없다. 이후 회무는 소수만이 자리에 남아 교단의 중요 문제를 결정짓게 된다. 투표는 굉장히 중요하다. 대의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하지만 그 의무와 권리는 표 한 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극단적인 예를 들어 선거 후 소수만 남은 총회 현장에서 “주님께서 동성애를 허락하셨으니 우리 모두 동성애자에게 목사 안수를 주자”라고 결의해버린다면 그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다음 정기총회 때는 부디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많은 대의원들이 자리에 남아 교단의 미래를 계획하고 설정하는 일에 동참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제3차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안(NAP)이 지난 8월 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한국 교계는 “순교적 각오로 저항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국무회의 통과 전 혈서 투쟁도 벌이고 1일 시위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교계 기자를 하면서 계속 의아한 것이 있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어떤 교계 연합단체는 관련 성명을 발표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성명을 발표하면 정부가 두려워 할 것”이라고 자부한다. 성명서 하나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나? 대체 무슨 효력이 있길래? 물론 교계가 어떠한 입장이다라는 것을 알릴 수는 있지만 성명서 하나 가지고 정부가 두려워서 벌벌 떨 것이라면 굳이 그런 문제되는 행위들을 무리하게 했을까 싶다. 성명을 발표하든지 말든지 그들은 그저 법으로 일을 처리해 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내 기조는 동성혼 합법화 반대 운동에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상 똑같은 얼굴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운동을 펼쳐나간다. 그런데 지금 NAP는 통과됐고 차별금지법도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심한 말로 이들에게 동성혼 합법화를 막을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일선 운동가들이 아닌 교단장들이 이 문제에 대해서 새로운 해법들을 제시
8월 7일, 내가 침례신문에 입사한 지 드디어 1주년을 맞이했다. 오랜 시간 초교파 신문에 몸담다 처음으로 교단지에 들어와 적응을 위해 종종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한 바퀴를 돌았다. 신문사 입사 후 두 가지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그것은 “범 기자는 교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와 “침례신문은 읽을 게 없어서 안 봐”라는 내용이다. 전자의 경우 직접적으로 들은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될 문제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나 후자의 발언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가슴이 사무친다. 물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 내 딴에는 읽을거리 한 번 만들어보겠다고 기사를 썼다가 ‘빨갱이 기자’라는 항의전화만 잔뜩 오니 말이다. 혹시나 교단 정치관련 어느 한쪽 파벌의 손을 들어주는 기사를 원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마음 접으시길 부탁드린다. 침례신문이 정론으로 나아가야지 전쟁의 도화선 혹은 도구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교단 목회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침례신문이 읽을거리가 풍족한 신문이 되도록 동참해달라는 마음이다. 목회를 하면서 느꼈던 은혜를 나누고 많은 분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다.…
한 선교단체가 제주선교 110주년을 기념해 제주도에서 선교대회를 개최했다. 5일간 선교대회를 열고 이후에는 제주도 각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단순히 행사만 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역을 위해 사랑을 전하는 모습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대회 현장 사진 하나가 문제가 됐다. 무대 뒤편에 위치한 새별오름에 ‘지저스 제주’(Jesus Jeju)라는 글이 영어로 새겨져 있던 것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전후사정은 일단 제쳐둔 채 “개념 없는 기독교인이 새별오름에 몰래 올라 조형물을 설치했다”며 분개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대단한 건수를 잡은 듯 했지만 사실 반응은 미미했다. 제주 예멘난민 이슈에 묻힌 것도 있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산을 깎아 내린 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북을 치든 장구를 치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려는 이들도 눈에 띄긴 했지만 이슈화는 실패한 느낌이다. 안타까운 점은 글자가 ‘지저스 제주’가 아닌 다른 문구였다면 이렇게 반응했을까하는 점이다. 진보라는 이름으로 덮어놓고 기독교를 공격하는 무리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저스’라는 이름이 문제가 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슬프게 다가온다. 최근
#1. 항공사 갑질 사태 최근 국내 항공사 양대산맥인 K항공과 A항공 관련 갑질 문제가 세간의 도마 위에 올랐다. K항공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K항공 전 전무의 ‘물벼락 갑질’과 운전기사와 경비원 등을 상대로 ‘갑질’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일으킨 회장 부인 이모 씨 등. A항공은 기내식 문제로 언론에 십자포화를 맞았다. 여기에 A항공 회장의 승무원 교육생 ‘기쁨조’ 동원 의혹까지 불거져 곤혹을 치르고 있다. #2. 신학교 시간강사의 갑질 교단 신학교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 시간강사가 자신의 강의를 돕던 여학생에게 수차례 폭언과 모욕, 심지어 수업 중 질문을 하자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2분 동안 손 들고 서 있어라”고 벌을 세웠다는 것이다. 해당 여학생은 자신이 겪은 폭력에 부당함을 호소하기 위해 학과장에게 ‘경위서’를 제출했고 학과장은 학생의 경위서를 첨부해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는 서면을 학교 관계자에게 제출했으나 “그 학생 마음이 여려서 그런 것”이라며 당국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3. 교회 내에 존재하는 갑질 한 기독교 월간지에 교회 사찰집사들이 겪었던 갑질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사찰집사
몇몇 교회에서 후임 목회자 청빙이 불발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고육지책으로 각자 방법을 찾아가며 기도하고 있지만 이토록 사람이 없는지 안타까운 마음만 앞선다. 물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개교회 입장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요하는 담임 목회자 청빙이 쉬운 문제는 아니리라. 차세대 리더십에 대한 고민은 비단 우리 교단만의 문제는 아니다. 촉망받던 젊은 목회자들이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거나 전임 목회자의 영향력 때문에 실력이 있음에도 목회를 펼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임 청빙 문제로 분열을 겪는 교회도 심심치 않게 목격된다. 좋은 병사가 있으면 평범한 지휘관이라도 좋은 결과를 내지만 지금의 한국교회는 아직 뛰어난 지휘관이 필요한 상황이다. ‘뛰어난’ 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선 교회들이 후임청빙으로 어려움을 겪지는 않도록 투자해야 한다. 먼저 개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젊은 전도사나 막 안수를 받은 목회자가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들의 역할은 대개 교회학교나 대학청년부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교회 내 좀 더 다양한 역할을 경험케 하고 교육시켜야 한다. 총회나 지방회 차원에서도 안수주고 인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차세대 리더를…
어린 시절 다니던 교회에서 항상 의문을 품던 것이 있다. 예배 후 식사시간에 나누는 집사님들의 대화에 신앙관련 주제는 없고 항상 자녀 교육이나 누가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들만 즐비했던 것이다. 대학생 시절 CCC에 몸담았을 당시 어떤 자매님이 모임에 빠지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유를 들어보니 신앙공동체에 신앙 이야기는 없고 항상 나누는 대화들이 연예인 가십이나 어떤 영화가 재밌다거나 그런 내용들 뿐이라 굳이 참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국가조찬기도회를 보면서 문득 위에 언급한 두 사건들이 떠올랐다. 현장을 취재했던 후배 기자는 “문재인 대통령 축사가 오히려 설교 같았다”라고 했고, 어떤 이는 “대통령은 성경을 이야기했고, 설교자는 정치를 이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은 뜨거운 이슈였다. 기도회 전부터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대통령의 국가조찬기도회 참석을 말리는 청원이 등장하는 등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행사 당일, 문대통령은 기도회가 열리는 일산 킨텍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축사에서 희년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교회가 그동안 나라의 자유와 진리를 위해 싸워왔던 숭고한 여정과 신사참배 거부로 고초를 겪은 조수옥 전도
방어기제의 사전적 의미에는 억압·반동형성·투사·퇴행·승화·부정·합리화 등이 있다. 억압은 원하지 않는 생각·감정 등을 의식으로부터 끌어내어 무의식 속으로 억눌러버리는 것이다. 투사는 자신의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옮겨서 그 감정이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승화는 본능적인 욕구를 비본능적인 통로를 통해 변형시켜 분출하는 것이다. 부정은 고통스러운 사실이 있다는 것에 대한 인식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최근 우리교단 내에 이런 방어기제가 유독 심한 부류가 있는 것 같다. 한쪽은 이미 ‘가짜뉴스’라는 여의도의 창을 통해 다뤘고 최근 또 한 부류가 심한 방어기제 반응을 보이고 있어 말하고자 한다. 침례신문은 지난 1월 20일자 신문에 ‘침신대 지원 미달 충격’이라는 기사와 함께 침신대의 위기를 우려하는 사설을 보도했다. 반응이 활어회처럼 싱싱했다. “기사에 나온 익명의 관계자가 누구냐”, “기사 작성자가 누구냐” 등등 침신대 측은 출처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교단 차원에서 교단 신학교의 미래를 위해 힘을 하나로 모으고 있는 판국에 침신대의 이런 반응은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특히나 이사회 정상화를 위해 긴급처리권 이사회
교단 내 임시총회에 향한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교단은 거의 매년 임시총회를 열며 전년도 총회에서 미비했던 문제들을 다뤄 나갔다. 하지만 건설적인 결론이 도출된 것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매번 대의원권 문제, 총회비 문제 등으로 시작도 전에 시간을 거의 잡아먹어 버려서 정작 논의해야 할 문제들은 제대로 된 이야기 한번 못 나누고 종결돼버리는 일이 종종 있어 왔다. 또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서로 “이 규약이 맞다” “저 규약이 맞다”며 입씨름만 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총회(총회장 박문수 목사)는 오는 4월 13일 오후 2시 여의도 총회 예배실을 비롯해 전국에 지정된 장소에서 대면과 비대면을 병행해 임시총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번 임시총회는 △총회 규약과 기관 및 위원회 정관 (규정), 총무 사무규정 수개정의 건 △다음세대 부흥위원회 신설의 건(규약기관) △원로목사(홀사모 포함) 지원의 건 △기관 재정립의 건을 다룬다. 이번 임시총회의 안건들을 살펴보면 크게 원로목사 지원의 건과 다음세대 관련 안건, 그리고 총회 기관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가게될 예정이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기관에 대한 문제다.
완연한 봄 날씨가 성큼성큼 다가왔지만 아직 우리는 메마른 땅에 우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한국에서는 지난 2020년 1월 20일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하고, 2월 16일까지 30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당시 확진자 증가 추세가 하루에 한두 명 수준이고 확진자의 동선 정보 공개도 바로바로 됐지만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된다. 모 사이비 종교를 통해 확산된 코로나19로 인해 확진자 수는 수백 배로 치솟았으며,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아메리카의 확진자가 폭발하기 시작한 2020년 3월 10일 이전까지 확진자 수 순위가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인구수 대비로는 세계 1위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이때부터 한국사회는 물론 교회들의 수난이 지속됐다. 3월 이전까지만 해도 대면예배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확진자 수의 증가는 전국을 사실상 얼어붙게 했고 때때로 조금씩 완화되기는 했지만 1년이 넘도록 비대면예배가 지속되는 아픔을 겪게 했다. 총회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산되면서부터 전국 교회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대응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총회장이던 윤재철 목사(대구중앙)는 “코로나
올해 부활절은 오는 4월 4일로 3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 땅의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죄목도 찾지 못하고 단지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신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이다. 많은 교회들이 부활절은 전후로 해서 사순절과 고난주간을 지키고 부활절 감사예배를 준비한다. 믿지 않는 영혼들을 위해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죄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왜 죽으셨는지를 전하며 교회는 새로운 활력을 찾으며 기쁨과 감사함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 한국교회도 부활절을 기념해 지역별로 수많은 교회들이 함께 참여해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리고 교회가 이 땅의 희망이며 회복임을 선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연합찬양대의 찬양과 설교, 헌금을 통한 구제와 나눔은 한국교회가 쌓아온 오랜 역사와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부활절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예배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부활절과 관련된 여러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비대면으로 부활절을 기념했다. 주의 만찬을 대면행사로 여기는 방역당국의 지침으로 인해 ‘드라이브 스루 주의 만찬’이라는 신개념을 임기응변으로 실
지난 2월 26일 국내에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겠지만 일상으로의 복귀가 점점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없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 지이겠지만 한국교회에게 코로나19 팬데믹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상황이 이리 오래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고 대면예배를 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목회자는 물론이고 성도들의 피로 감은 계속 쌓여만 갔다. 하루빨리 예배당에 모두 모여 찬양하고 기도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국내의 코로나19 1차 대유행은 대구의 모 이단 종교단체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다. 대구·경북의 교회는 코로나 이전에도 해당 종교단체로 인해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1차 대유행 사태를 통해 더욱 크나큰 상처를 받았다. 당시 본보는 해당 지역의 몇몇 교회들과 연락을 취해 그 당시의 상황을 기사로 보도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미디어 선교의 중요성을 알고 미리 대비했던 교회나 그나마 인터넷 사용에 익숙한 목회자들은 여러 방법을 통해 예배를 지속해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교회 들의 경우 그저 하염없이 교회의 문을 잠가 놓을 수밖에 없었다. 목회자가 준비됐다 하더라도 성도들이 인터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교회는 대면예배의 제한과 기타 모임 금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다수가 모이는 시설이라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교회는 철저한 방역지침을 준수하며 어느 기관 못지 않는 철저한 방역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해 옮겼다. 실제 신천지를 제외하고 종교시설 감염자 비율은 8.2%라는 최근 통계도 나오면서 정부는 “교회의 대면 예배를 통한 감염은 거의 없었다. 방역수칙을 준수한다면 대면예배 자체가 감염위험도가 높은 행위가 아니다”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교회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은 여전하다. 매주일 시도공무원들의 교회 방문은 이제 일상적인 상황이다. 방역지침 점검을 내세우며 교회를 방문해 인원을 파악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점검하는 것에 대해 교회를 철저하게 이 지침을 준수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대면모임 비율은 수도권은 20%, 비수도권은 30%이며 예배 이외의 모든 모임은 일체 금지된 채로 1년의 시간이 지나왔다. 그동안 정부의 방역지침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소상공인과 주요 업종별 관계자들은 헌법소원과 소송, 시위, 공청회를 거치면서 해결책을 찾았다. 집단감염 사태가 벌어지는 상황이면 어김없이 정부 측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