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란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이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가 규정하고 있는 장애인의 법적 정의이기도 하다. 우리 교단은 이러한 장애인들을 기억하고 함께하기 위한 주일로 작년에 처음 ‘침례교 장애인 주일’을 지켰다. 이는 장애인들이 겪는 삶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더 분명히 들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편리와 효율 중심으로 목회 사역을 이어가기 쉬운 평범한 일선 목회자 중 한 사람으로서,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었지만 동시에 반가운 소식이기도 했다. 지난 2025년 우리 교회의 첫 번째 장애인 주일은 매우 단순한 형태로 진행됐다. 중·고등부 학생들이 장애인 주일을 알리는 피켓을 준비했고, 예배당에 들어오는 성도들의 손등에 하트 스티커를 붙여 드리며 이날의 의미를 함께 나눴다. 주일 설교는 아가서 1장 1~17절을 본문으로 “그 아픔까지 사랑하시다”라는 제목으로 전했다. 우리의 사랑이 제한된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점점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를 닮아가야 함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설교의 마무리에는 유튜브에서 찾은 수어 찬
이후에도 여성 목사 안수와 사역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은 계속됐다. 1996년부터 게이트웨이 침례신학대학원(Gatewa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교수였던 리차드 R. 맬릭 주니어는 1998년 5월 뱁티스트 지(Baptist Press)에 “여성 목회자, 성경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를 기고해 여성 목사 안수를 비판했다. 그 당시 신약 성서학 교수였던 맬릭은 남침례회 역사에서 수 세기 동안 대다수의 신학자들은 여성 목사 안수를 허용하지 않았고 최근 몇몇 교회들이 여성들을 목사 안수하는 것은 성서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맬릭은 여성 목사 허용 문제는 동등한 가치(여성은 열등하고 남성은 우월한)나 효과적인 사역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의 말씀에 대한 헌신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여성 목사 허용을 반대하고 있는 신약성서의 구절들(디모데전서 2장 12절, 고린도전서 14장 34∼35절)은 구원론적인 문제(칭의에 있어서는 남성과 여성은 동일하다)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으나 교회의 질서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앞의 두 구절은 특히 교회의 질서 문제를 다룬 것으로 성경은 가정과 교회의 위계질서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고 맬릭은 해
피터스 선교사의 눈에 비친 1899년의 당시 제주(켈파트섬)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가 기록한 “제주도 탐방기(A VISIT TO QUELPART)”의 일부를 살펴보자. 먼저 이 기행문은 원래 미국 유니언신학대학교 도서관(UTS)에 소장됐으나. 현재는 아이비리그 대학교 중 하나인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교 도서관(Columbia University Libraries) 시스템의 일부(Burke Library Archive)로 통합되어 관리되고 있다. 버크 도서관(Burke Library)은 북미에서 가장 큰 신학 도서관 중 하나로, 특히 “해외 선교 기구 기록물(Missionary Research Library Archives)”이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국에서 활동했던 미국인 선교사들이 본국 선교 본부에 보낸 “보고서, 편지, 일기, 사진 등”이 이곳으로 모이게 됐다. 피터스 선교사의 제주 기행문 원본 역시 당시 선교 보고의 하나로 제출되어 이곳 아카이브(기록 보관소)에 보존된 것이다. 기행문의 원본은 일기 형식이고, 손 글씨로 기록됐다. 원문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독자가 읽기 쉽게 편집했다. 비바람 속에서 시작된 제주 여정 우리는 2
밟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면서도 마냥 영원성의 종속에다 꼬리를 달고 기지개를 켜보면서 걸음마를 시작한다 무너질 시각을 모르면서 생각하고 있다 존재의 가치를 망각한 체 연기 속에 생각을 드리우고 장고의 시각이 종지부를 내리치는 줄도 모르면서 시각이 연결 되면 시간이 되고 시간이 흘러가면 세월이 된다면서도 세월 속에 사라져가는 자신을 잊고 산다 내가 밟고 선 땅이 낯설지는 않아도. 바람 속에 찾아 오는 외로운 고독은 언젠가 혼자 가야 하는 신호탄이란 것을 잊고 산다고 하지만 잊고 살게 따로 있지 바보처럼 살면서 제일인척하고 산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석양이 다가서면 눈물질 것이라 의미도 없이 사는 것은 낭비한 인생이고 낭비한 것 같아도 길을 알고 살았다면 마지막 가는 길이 짐이 되지 않으리 땅 위에서 잘 살았다고 큰소리치지 마는 큰소리 칠 게 하나도 없지 남은 것이 없으니 후회하지 않게 위를 보고 걸어라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살았었지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누가 알아주나 열심히 먹고 살았던 시간을 자화상이 흐려지고 생각이 끊어지고 존재의 시각이 새롭게 다가서거늘 고집 부리지 말고 항복할지어다 따스한 온기가 감사히 여겨지거든 진실된 눈물이 흘려
오늘도 사랑하는 내 주님을 기다리네! 가실 때 다시 오신다던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내 마음의 창가에 기대서서 먼 하늘 바라보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내 주님의 발자국 소리 들리는 것 같아 어느새 한줄기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네! 철없는 내 마음은 이름 없는 한 마리의 작은 나비가 되어 먼 창공 높은 하늘로 사랑하는 내 주님 마중 간다네!
20세기 중반부터 타 교단에서부터 여성 목사 안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성 목회자들의 활동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단 내의 일부의 교회들도 여성을 목사나 사역자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의 가정을 포함한 사회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성평등과 여권 신장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문화⋅사회 변화에 교단 내의 지도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정확히는 1979년 근본주의자들이 총회를 장악)부터 2000년 전까지 교단 내에서 벌어졌던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의 싸움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하여 교권을 장악함으로써 여성의 사역과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 무오성과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고수해 여성 목사 안수 및 사역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은 대표적인 침례교 전통 가운데 하나인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사역의 문제를 지역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나름 균형 잡혀 보였던 교단의 양 세력의 균형이 1984년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여성목사 안수 금지를 결정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결의안은 각
처음부터 조선의 왕이 적색 곤룡포를 입은 것은 아니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이는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완전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권지고려국사(임시로 고려를 다스리는 사람)’라는 직책만 내렸던 굴욕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후 태종 1년(1401) 정식 책봉이 이뤄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세종실록”에서 세종 26년(1444)에 ‘대홍직금곤룡포’가 등장한다. ‘홍직(紅織)’은 적색으로 짰다는 뜻이다. 이 무렵부터 적색 곤룡포가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고종(조선 26대)은 황색 곤룡포를 입게 됐을까?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승리하게 됐다.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 황색 곤룡포의 착용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는 외교 질서의 변화와 함께 상징 체계도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권력은 색으로도 드러난다. 그러나 색이 바뀌었다고 권력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곤룡포는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단종의 비극이 보여주듯 권력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조선의 왕이 입던 곤룡포는 단순한 왕의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박물관, 그 중에서 고고학박물관에 가신다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사람 아닌 사람이 있다. 박물관 입구에 전시된 사람 모양의 토관들이다. 이 유물은 지금부터 3300~3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이 이용한 것이다. 그 사람들의 관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가자에 있는 텔 테이르 엘-발라(tel Deir el-Balah)에서 1967년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의 유명한 군인이자 정치인이었던 모세 다얀(Moshe Dayan)이 개인적으로 무단 발굴해 소장했다가 1981년 박물관에 기증․판매된 ‘다얀 컬렉션’의 일부이다. 이 토관은 보통 사람 키보다 크고(160~195cm), 이집트 오시리스 수염과 팔 모양을 한 모습으로 마치 이집트 미라를 위한 관 모양과 유사한데 관 안에서는 고인의 유골과 함께 사후 세계에서 사용할 토기, 장신구, 청동거울, 무기 등이 함께 발견됐다. 이 토관의 주인공들에 대한 규명은 명확하지는 않다. 이집트 사람과 밀접한 교류 지역이니 이집트 사람일수도 있고, 아니면 이집트 장례문화의 영향을 받은 블레셋 사람 또는 가나안 사람일 수도 있다. 아직 DNA분석까지 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그런데 고고학 박물관에 갈 때마다
피터스 선교사가 머물렀던 제주도는 오랫동안 ‘유배의 섬’으로 불렸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이곳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육지와 떨어진 지리적 특성은 감시와 통제를 용이하게 했다.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도 인조반정 이후 제주로 유배되어 생을 마쳤다. 이렇게 제주는 중앙 권력의 끝자락이자, 권력에서 밀려난 자들의 종착지였다. 최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왕과 같이 사는 남자”는 6대 임금 단종의 비극을 다시 소환했다. 단종은 1452년 12세(10세)에 즉위했으나, 숙부 수양대군이 주도한 계유정난(1453년)으로 1455년 왕위를 빼앗겼다. 이후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됐고, 1457년 사약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이 영화의 감독 장항준은 왜 수양대군(훗날 세조)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가 등장하면 악역 한명회의 무게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는 서사의 집중을 위한 영리한 선택이다. 이렇게 단순해야 힘이 있다. 단순하다는 것은 메시지를 한 지점에 모으는 일이다. 설교와 강의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내용을 나열한다고 힘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핵심에 집중할 때 설득력이 생긴다. 한
한국침례신학대학교와 대공원침례교회(유재영 목사), 주원침례교회(김주원 목사), 성산침례교회(윤양중 목사)는 지난 1월 11~18일 필리핀으로 단기 선교 및 해외봉사 활동을 전개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단기선교에는 김주원 교수와 조은샘 교수, 기독교교육학과 6명, 신학대학원 2명의 학생들이 함께 했습니다. 필리핀 선교를 위해 교회 및 교수들과 학생들은 영어 복음설교, 합창, 발레, 태권도, 춤, 중독 예방 교육과 성교육을 준비했습니다. 성교육과 중독 예방교육은 조은샘 교수와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과 학생들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학생들은 “익숙치 않은 영어로 강의를 준비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지만 언어와 사고의 폭을 확장케 하는 통로”가 됐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단기 선교팀은 11일 밤 비행기로 출발해 12일 새벽 필리핀에 도착하고 공항에서 숙소로 4시간을 이동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향할 때 하나님께서는 필리핀을 향한 긍휼한 마음을 부어주셨고 필리핀 사역 가운데 성령님이 인도하시길 간구했습니다. 숙소에서 짐을 푼 후 바로 아마라오 국립고등학교로 이동해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첫째 날은 아마라오 국립고등학교, 둘째 날은 GIS 학교, 셋째